'한국군 코멘터리'에 해당되는 글 84건

  1. 2021.10.12 훈장 수여와 전투 명칭, 왜 정권 따라 바뀌나
  2. 2021.08.10 ‘같기도’ 한·미 연합훈련 부른 대통령의 지시
  3. 2021.07.13 존재 이유 의심받는 ‘군대 귀족’, 군 법무관들
  4. 2021.06.15 군 성추행 사건, 차라리 특검을 하라
  5. 2021.05.18 ‘도로 기무사’ 본색 드러내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6. 2021.04.20 과학화·기동화 군대의 그늘
  7. 2021.03.23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요구받는 한·미 연합훈련
  8. 2021.02.23 ‘입맛대로’ 인사 탓에 기본 무너진 군대 (1)
  9. 2021.01.27 전작권·남북대화 ‘두 마리 토끼’ 쫓기
  10. 2020.12.30 다문화 시대의 ‘개인 맞춤형’ 군대
  11. 2020.12.02 물 샐 틈 없는 철통경계 ‘도그마’는 이제 그만 (1)
  12. 2020.11.04 근본 없는 ‘악어새’ 국회협력단을 해체하라
  13. 2020.10.07 ‘유령 조직’으로 소통하는 국회와 군
  14. 2020.08.12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국군사관학교’ (2)
  15. 2020.07.24 ‘전문 경영인’ 국방장관이 필요하다
  16. 2020.06.26 국민청원 게시판 글로 시달리는 군대
  17. 2020.05.29 ‘엿장수’ 유엔사의 DMZ 조사결과 발표
  18. 2020.05.29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군대는 곤란하다
  19. 2020.04.03 국방부의 ‘사드 페이퍼’를 기대한다 (1)
  20. 2020.02.07 문재인 청와대의 ‘별 인플레이션’과 군부 길들이기
  21. 2020.01.10 국방개혁과 병사 한 명의 가치
  22. 2019.12.13 미국 ‘키세’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
  23. 2019.10.18 ‘한·미동맹’ 디테일에 숨은 악마
  24. 2019.09.2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방의무
  25. 2019.08.16 정부는 GSOMIA ‘조건부 파기’ 선언을 빨리하라
  26. 2019.07.19 ‘운장’도 모자라 ‘묵장’까지 등장한 군
  27. 2019.06.21 “국방 SC 쇼는 그만, ‘숨은 손’을 처벌하라”
  28. 2019.05.23 ‘지뢰영웅’의 진실과 라쇼몽
  29. 2019.04.26 군부는 문 대통령의 ‘절치부심’을 이해하고 있는가
  30. 2019.03.29 ‘천안함’은 진행형···‘2%의 진실 찾기’ 계속돼야 한다

불타는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무공훈장이란 무엇인가. 그 허망함을 보여주는 <철십자 훈장>이라는 오래된 영화도 있지만, 무공훈장이 주는 상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군인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은 대부분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날인 지난 1일 해병대 김정수 소령과 천중규·김상혁 상사에게 각각 화랑무공훈장과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들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 포7중대 중대장과 부사관들이다. 김 소령 등은 북한의 무차별 포격에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 사격한 공을 인정받았다. 당시 K9 자주포와 철모 위장포에 불이 붙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응 사격에 나선 임준영 상병은 해병대 전투정신의 상징이다. 해병대 연평부대 전승기념관에는 임 상병의 불탄 철모를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들 해병에 대한 훈·포장 수여는 전투가 벌어진 지 11년 만에야 문재인 정권에서 결정됐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해안포 등을 동원해 170여발을 발사했고, 연평도를 지키던 해병대 연평부대가 K9 자주포로 80여발을 대응 사격한 사건이다. 당시 대포병탐지레이더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연평부대는 1차 대응 사격을 도발 원점이 아닌 북의 무도 기지를 향해 실시했고, 이후 적의 2차 사격 이후에야 탐지레이더가 정상으로 돌아와 도발 원점인 개머리 기지로 응사했다. 레이더가 제때 정상 작동되지 않은 것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한미연합사의 존 A 맥도널드 장군은 적의 기습 포격에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13분 만에 대응 사격을 한 것을 두고 연평부대 포대원들의 용기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이는 ‘파이트 투나잇’ 정신으로 평소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평부대 기록에 따르면 포7중대 대원들은 2010년 1월1일부터 포격전이 벌어진 11월23일까지 전투 배치훈련을 무려 455회나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군 수뇌부는 이들의 전공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합참은 전비태세 검열 결과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먼저, 연평부대 K9 자주포가 대응 사격했던 외부 포상(포를 배치하는 진지) 바닥이 콘크리트로 잘못 설계됐던 점을 문제 삼았다. 북한군 포탄이 외부 포상의 콘크리트 바닥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생긴 파편이 1번 자주포와 3번 자주포의 케이블을 손상시키면서 자주포를 작동 불량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훈련 중 남은 폐작약을 방치해 적 포탄에 불이 붙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폐작약 불똥이 튀는 바람에 자주포와 철모에도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부대 시험평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해병대의 훈장 요청도 거부했다.

 

이후 해병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연평부대가 ‘북한의 기습 포격에 맞서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 사격해 승리를 거둔 전투’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였다. 국방부는 이 요청 역시 거부했다. 이를 놓고 군 수뇌부가 ‘자위권적 대응과 응징’에 실패한 것과 해병대의 즉각적 대응이 대비되는 것을 의식한 조치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권이 바뀐 후 해병대 숙원이 풀렸다. 국방부는 지난 3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했다. 이어 제73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을 앞두고 연평도 포대원에 대한 훈·포장 수여안이 통과됐다.

 

정권 교체 후 남북의 군사적 충돌사건에 대한 명칭이 바뀐 사례는 여러 차례다. 2002년 일어난 제2 연평해전의 본래 명칭은 ‘서해교전’이었다. 해군은 서해교전에서 ‘NLL 수호’라는 임무를 완수해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서해교전을 ‘완패한 전투’로 규정했다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 ‘북한의 도발을 막아낸 승전’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그러면서 ‘서해교전’ 명칭도 ‘제2 연평해전’으로 격상했다. 그러다보니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불과 2분간 일어난 남북 해군 간 충돌조차 ‘대청해전’으로 높여 불러야 했다. 연평부대 포대원들의 목숨을 건 대응 사격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대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훈장 수여 기준과 기념일 명칭이 덩달아 바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년 7월 동해에서 열린 한·미 연합훈련.

한국과 미국이 10일부터 사실상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한다. 이번 훈련에 참가하는 한·미 병력은 전투참모단에 증원 인력을 편성하지 않는 등 전반기 훈련 때보다 대폭 쪼그라든 것으로 전해졌다. 군 내부에서는 “이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낫지 않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했다 치고’ 식의 ‘같기도 훈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예상대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한 뒤부터 남남 갈등은 표면화됐다. 훈련을 둘러싼 한·미 간 불협화음 얘기도 들린다. 김여정 발언 이후 통일부는 연합훈련 연기론을 띄웠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5일에는 여당 의원 74명이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연합연습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훈련 불가피론을 폈다. 그러면서 훈련의 방어적 성격, 실병력 기동 없는 지휘소 훈련, 전작권 회수를 위한 검증 필요성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야당에서는 집권여당이 북한 하명부를 자처하는 모습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이미 상당수 미군은 훈련을 위해 한반도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김여정도 한·미 연합훈련 취소가 가능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물리적 환경이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군부에 군사적 판단이 아닌 정무적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군 통수권자는 정무적 판단을 한 후 군부에 군사적 판단을 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통수권자가 정무적 결정에 따른 부담을 국방장관에게 지운 것이다.

 

그나마 물꼬는 질병관리청이 터줬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조치를 한·미 연합훈련에도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이 이뤄지는 지휘소 내부에서도 인원 간 2m 거리 두기를 엄격히 시행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 참가인원 축소 요구의 핑곗거리가 됐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훈련에 백신 접종을 마친 병력만이 참가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돌파감염’ 우려를 내세웠고, 이는 ‘같기도 훈련’으로 이어졌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정치이며 정치는 길 안내를 하는 지성”이라면서 군사적 관점을 정치적 관점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군사를 지도한다는 의미다. 군사가 정치의 수단이라는 위치에서 이탈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서욱 국방장관이 “지시대로 신중하게 판단한 결과,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강력한 동맹의 의지를 보이는 차원에서 이번 후반기 한·미 연합훈련은 정상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라고 했다면 문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을까. 가정이긴 하지만 “한번 더 신중하게 판단해보라”고 다시 지시했을 것이다. 군이 정치의 눈치를 보면서 정무적 판단을 하게 되면 망가진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이라는 말도 논리가 맞지 않는 이유다. 미국은 이미 전작권 전환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강대국과 약소국 관계에서 약소국의 침묵은 동의와 수용을 의미한다. 이해관계의 영역도 다르다. 지금 한·미 연합훈련은 미국 정부의 ‘군사 분야’이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정치 영역’이다. 미국의 군사 분야와 한국의 정치 영역을 ‘등가성’ 차원으로 해석하는 게 이해가 빠르다. 미국의 지엽적 군사 분야가 한국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빛 샐 틈 없는 한·미 동맹의 비대칭성이 갖는 현실이자 숙명이다.

 

그런 만큼 미국의 군사적 판단이 자칫 남북관계에 매달리는 한국 정부에는 치명적인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에 있어서 한·미 연합훈련은 군사적인 옵션이지만, 한국 정부에는 군사적 성격을 넘어 남북 간 평화 문제에 직결되는 최고 수준의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결단은 정치 지도자의 책무이자 숙명이다. 전략적 결단을 보여주는 대신 부하에게 “신중하게 판단하라”고만 말하는 군 통수권자는 비겁하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지시가 전략적 결단이었다면 할 말은 없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방부 합동수사단의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고에 대한 지난 9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놓고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조차 “미흡하다. 이게 최선인가”라면서 “합동수사단이 눈치보기, 제 식구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을 꿈꾸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한마디로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것이다.


국방부는 “수사·징계·보직해임 대상자가 총 38명”이라며 “공군 창설 이래 역대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사 대상자는 내사자를 포함했고, 징계 및 보직해임자도 앞으로 할 예정까지 포함시켰다. 숫자 부풀리기로 여론을 무마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인다. 게다가 투망식 수사로 형사입건 대상 숫자를 늘리면서도 정작 핵심 연루자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국방부 검찰단이 주도한 합동수사단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문에서 황당한 것은 여군 부사관의 사망 원인 부분이다. 이번 사건 개요를 ‘이 중사가 선임부사관에 의해 성추행당한 이후, 여러 차례 신고하였으나 군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회유와 협박, 면담 강요, 피해 사실 유포 등의 2차 가해가 지속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이라고 해놓고, 나중에는 “피해자 사망의 원인에 대하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에 있습니다”라고 전혀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짜맞추기식’ 얼렁뚱땅 수사결과 발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군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허접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공군 20비행단 검찰은 부실·늑장 수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공군본부 법무실과 법무실장은 부실 초동수사의 ‘윗선’으로 지목받고 있다. 공군 법무관들을 수사해야 하는 국방부 검찰단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드러났듯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군 검찰 법무관은 따지고 보면 군 판사 법무관이기도 하다. 군 검사를 하다가 국선 변호장교, 군 판사를 순환보직하듯 번갈아 맡는다. 여기에 과거 상관이었던 법무관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면 ‘원님 재판’이 이뤄진다는 의혹의 시선이 쏠린다. 군 법무관들의 동료의식과 폐쇄적 근무환경에서는 군 사법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리 만무하다.

 

이런 폐쇄적 문화에서는 지휘관에 따라 사건 처리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오지만, 거꾸로 법무관이 법을 잘 모르는 지휘관을 ‘가스라이팅’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번 사건의 허점투성이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놓고도 군 법무조직이 장관의 지휘권을 훼손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군 법무관의 자질을 의심하는 시선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일선 부대 법무관이 수사능력에 대한 부담감과 부대생활 부적응 등을 호소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발생했다. 또 군 법무조직이 피의자의 전역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다 사건을 민간으로 떠넘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수사능력 부족이나 직무태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무관들은 2005년 국가를 상대로 낸 보수금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본봉 35%가량을 수당으로 받는다. 조종사나 잠수함 승조원보다 많다. 일반 장교가 22년가량 근무해야 가능한 대령 진급도 15년이면 된다. 그런데도 지난 4월에는 7개월 동안 19일만 정상 출근하고 나머지는 무단결근하거나 지각, 허위 출장 등을 일삼은 한 공군 법무장교의 존재가 민간법원 판결에서 드러났다.

 

군 법무관들을 ‘군대 귀족’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8년 9월에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직원 69명이 평일 일과시간에 단체 술자리를 가졌다. 국회 국방위의 야당 의원이 징계를 요구하고 장관도 징계를 지시했으나,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과연 조사권, 징계권,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을 모두 갖고 있는 법무병과답다’는 말이 나왔다.

 

민간법원 법관이 1인당 연평균 700건 정도를 처리할 때 군 판사는 1인당 17건(2014년 국회 법사위 국감) 담당하고 있다. 군사법원이 과도하면서도 비대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군내 범죄의 95%가 군사와 관련없는 일반범죄(2020년 국회 법사위 국감)다. 평시 군사법원 및 군 검찰 운영을 중단하고, 관련 업무를 민간법원 및 검찰로 이관하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법무병과는 군사 관련 법과 연합훈련에서의 국제법적 지원, 지휘관의 원활한 지휘권 행사를 위한 법률적 조언 등에 주력하는 게 맞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공군 부대장을 지낸 예비역이 여성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보도를 보고 보낸 것이다. 그는 사건·사고 발생 후 은폐와 회유, 조직적 왜곡의 공군부대 문화를 고발했다. 그는 ‘말로는 재정비하고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지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글을 마쳤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감성’ 대책 먼저 내놓을 때부터 이상했다. 과거 정권이 군에서 대형사고만 일어나면 했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청와대는 공군참모총장부터 경질했다. 국방부는 대통령 지시라며 병영문화개선 민관군합동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2014년 4월 윤모 일병이 선임병 4명에게 구타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청와대는 육군참모총장부터 잘랐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민관군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7년 전 대책과 이번 사건 대책이 정확히 겹친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 총장이 경질되면, ‘진짜’ 책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참모총장 경질이라는 대형 폭풍이 오히려 보호막이다. 이들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도 계선상에서 책임질 일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이번에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이번 사건의 관건은 보고 누락과 늑장 수사 의혹을 밝히는 일이다. ‘지휘체계에 따른 보고’ ‘공군 양성평등센터를 통한 보고’ ‘군 수사단계 보고’ 등 세 가지가 다 작동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모두 ‘먹통’이었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누구누구는 정권 실세가 시켰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말이 나돈다. 그런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들은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와 인권나래센터에 대한 뒤늦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군본부 법무실 관계자들과 웃으며 안부를 주고받는 등 압수수색 분위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한 검찰단 수사관은 ‘친정집에 오는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라는 발언까지 해놓고 ‘피압수자의 저항감을 완화하려는 의도’라는 변명을 내놓았다. 2곳을 압수수색하는 데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일반 법무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번 사건의 양성평등센터를 통한 보고와 군 수사단계 보고의 정점은 공군본부 법무실이다. 이곳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이번 사건의 수사가 완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는 압수수색 대상에서 공군본부 법무실을 쏙 빼놓았다. 앞서 한 압수수색도 20비행단 군사경찰,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와 인권나래센터 등으로 시차를 두고 찔끔찔끔 했다. 수사 대상 기관의 ‘시간 벌기’를 도와준 압수수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압수수색은 수사 대상의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여러 곳을 동시에 전격적으로 실시해야 하는데 그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봐주기 수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게 현역 법무관(대령)의 말이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지난해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한 직무감찰을 실시했다. 내부 고발에 따른 감사였다. 여러 혐의 중 하나가 근무지 무단이탈과 함께 수사활동을 하지 않는 공군 법무실장(준장)의 군검찰 수사활동비 부정 수령이었다. 이에 대해 법무실장은 공군검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활동을 하기 때문에 부정 수령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국방부 직무감찰담당관실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법무실장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해선 ‘경고처분’으로 마무리해 ‘봐주기 감사’라는 말이 나왔다.

 

법무병과는 조사권, 징계권,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을 전부 관할하고 있다. 여성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공군검찰의 부실 수사와 사건 뭉개기, 늑장 보고 등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돼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국방부 감사관실도 자칫 이번 성추행 사건 조사로 그들의 지난해 부실 감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군에서는 국방부 감사관실이 봐주기식 ‘부실 감찰’ 등으로 형평성을 잃은 조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차라리 군 최초로 특검을 하라.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 내 보안·방첩부대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공식 약칭은 ‘안지사’다. 군사안보지원사는 2018년 9월 출범하면서 조직의 약칭을 안지사로 해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과거 국군기무사령부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군사안보를 통해 군 내 작전부대의 성공을 ‘지원’하는 것이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핵심 역할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랬던 안지사가 최근 태도를 슬그머니 바꿨다. 알음알음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약칭으로 ‘안지사’ 대신 ‘안보사’를 써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원보다는 안보를 주도한다는 이미지를 내세우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약칭을 안지사에서 안보사로 바꾸면 ‘전제용 안지사령관’은 ‘전제용 안보사령관’이 된다. 안보의 최고 책임자라는 얘기인가. 현재 군사안보지원사 내부 문서에서는 조직의 약칭을 ‘안보사’로 쓰고 있다고 한다. 군사안보지원사가 출범했을 때부터 약칭을 외부에는 안지사로, 내부 문서에는 ‘안보사’로 했다면 국민과 언론에 이중적 얼굴을 보여준 셈이다. 또 출범 때 사용했던 ‘안지사’란 약칭을 이후 ‘안보사’로 바꿨다면 해편 후 약속한 초심을 배신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청와대는 ‘해편’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해 국군기무사령부를 대체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출범시켰다. 당시 송영무 국방장관은 조직 해체를 강력히 주장했으나, 청와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군 내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참여연대 등 8개 시민사회단체까지 “졸속으로 만든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기무사 개혁은 실패했다”며 “안보지원사는 기무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안지사 출범 당시 폐쇄 구조였던 사령부에 외부 조직의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해 상호 견제와 조직 쇄신을 도모하겠다며 기존 10% 수준이던 군무원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꼼수’ 채용으로 변질됐다. 안지사는 지난해 군무원 채용에서 과거 퇴출시켰던 기무부대원을 다시 군무원으로 받아들이는 등 합격자 96%를 전·현직 부대원으로 채웠다. ‘도기사’(도로 기무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군 안팎에서는 안지사가 오히려 영향력을 기무사 시절보다 더 키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령급 이상 진급 대상자에 대한 인사자료로 제공되는 소위 ‘세평’ 수집은 이제 훈령으로도 보장받고 있다. 방위산업체에 대한 영향력도 더 확장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3월1일자로 계약업체 선정을 위한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을 개정해 시행했다. 이 지침을 보면 ‘전년도 방위산업기술보호 통합 실태조사 우수업체’에는 가(산)점을 주도록 돼 있다. 이는 안지사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방위산업기술보호 우수업체라 함은 국가정보원과 방사청, 안지사가 참가하는 실태조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업체이기 때문이다. 입찰 제안서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소수점 이하에서 점수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인 점을 감안하면 실태조사를 주도하는 안지사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방산기술 보호라는 거창한 명분 뒤에서 안지사의 영향력 챙기기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방산업계에서는 다 안다.

 

안지사는 인원이 기무사 시절 4200여명에서 2900여명으로 줄었지만, 장군 숫자는 3성장군(중장)인 사령관과 2성장군(소장)인 참모장을 포함해 6명이다. 군사경찰이 인원 1만6000여명에 장군은 준장만 2명뿐인 것과 견줘 과도한 계급 인플레 조직임을 알 수 있다. 안지사 역시 기무사처럼 군 내 권력기관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오죽하면 다이어트로 기무사보다 더 튼튼해진 안지사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기무사 공군 부대장 출신인 전제용 현 안지사령관은 이례적으로 임기제 진급을 두 차례나 하면서 조종사 동기생보다 1년3개월이나 더 빨리 중장으로 진급하는 기록을 세워 특혜라는 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를 이름만 바꿔 계속 활용하는 쪽을 선택한 결과다. 안지사령관을 계속 3성장군으로 하는 것은 ‘국방개혁 2.0’에도 어긋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방개혁도 버전업 시대다. 참여정부에서 만들어진 ‘국방개혁 2020’은 군 구조·전력체계 및 3군 균형발전, 병영문화 발전, 문민화 등을 목표로 한 장기적 국방개혁 청사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국방개혁 2020을 기반으로 한 ‘국방개혁 2.0’을 선언했다. 현 정부 임기 내 완결을 목표로 했다.

 

그렇다면 국방개혁 2.0은 지금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을까. 국방부는 지난 15일 서욱 장관 주재로 국방개혁 2.0 추진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정부의 국방개혁 추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수정하는 자리였다. 국방부는 22사단 ‘헤엄 귀순’으로 뚫린 경계 실패의 원인도 진단했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노후화와 기능 미흡으로 과도한 오경보 발생’ ‘육상·해안 동시 경계 등 경계작전 여건의 상대적 부족’이 지목됐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책이 인공지능(AI) 기반 과학화경계시스템 시범사업의 추진이었다.

 

국방부 설명을 들으면 AI 시스템이 도입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들린다. 과연 그럴까. 과학화경계시스템은 2015~2016년 사이에 전력화됐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 기술을 적용했다는 이 시스템의 핵심은 광케이블망(광망)을 사용한 철책이었다. 광망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경보가 울리는 방식이다. 문제점은 곧 드러났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장비 기능이 약해지고 결함이 발생하는 순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고라니, 토끼 등이 건드려 경보가 울리는 일이 잦아지는 바람에 철책 아래쪽에는 동물들이 싫어하는 기피제를 담은 깡통들을 줄줄이 매달아야 했다. 장비 오작동도 수시로 일어났고, 기상상황에 따라 경보가 울리는 ‘민감도’가 달랐다. 경사가 심한 산악지대 광망은 폭우가 내리고 태풍이 불면 유실되기도 했다. 지금도 작년 8월 악천후로 유실된 광망 17㎞ 중 상당 부분이 복구되지 못한 상태다. 이런저런 환경을 생각하면 AI 시스템 도입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다. 경계 실패의 책임은 장비에 있으니,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미봉책일 뿐이다. AI 시스템 경계가 뚫리면 그때는 또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과연 철책만을 바라보는 경계가 최선인가를 놓고도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국방개혁 2.0의 현실은 뚫려서 문제가 된 후에야 개선점을 찾는 과학화경계시스템과 같다. 곳곳에 문제가 드러날 수 있는 복병이 숨어 있다. 군은 첨단전력 위주의 기동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30×70㎞’인 군단의 작전책임지역은 ‘60×120㎞’로 면적이 3∼4배 확대된다. 병력 우위의 기계화보병사단도 몸집을 줄인 기동사단으로 개편돼 K-2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량으로 무장하게 된다. 군단과 사단이 기동하는 데는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을 모토로 하는 공병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유사시 공병이 전차와 자주포가 갈 수 있는 길을 뚫어줘야 하고, 도하작전을 통해 기동부대의 강습도하를 지원해야 한다.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는 평지작전 위주의 유럽이나 사막의 중동지역보다 공병의 역할이 더 크다. 그러나 공병의 경우 4.3%에서 3.5%로 병력을 줄인다고 한다. 공병이 7%인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교훈으로 8%대까지 높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다보니 공병을 투입하는 훈련은 ‘했다 치고’ 하는 시뮬레이션이 많다. 이미 알려진 지뢰지대 100m를 개척하는 데 보통 3~4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확인 지뢰지대를 개척하는 데도 짧은 시간에 ‘했다 치고’ 식으로 훈련이 이뤄진다.

 

군수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작전 종심이 길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다. 군수 지원이 시원치 않으면 기동화 군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첨단장비 도입은 서두르면서 막상 장비 가동률과 전쟁 지속 능력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 소위 과학화·기동화 군대의 그늘에 가려진 부분도 잘 살펴야만 국방개혁 2.0이 국방개혁 3.0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사용어에서 ‘훈련’과 ‘연습’의 정의는 다르다. ‘합참 훈령’을 보면 연습(Exercise)은 ‘연합·합동 작전 과정에서 작전술 제대의 작전 기획·준비·시행을 포함한 군사 기동 또는 모의된 전시작전 시행 절차 숙달 과정’이다. 연습은 최대한 실제처럼 실시해야 한다. 훈련(Training)은 ‘전술 제대의 개인 및 부대가 부여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식과 행동을 체득하는 조직적인 숙달 과정’으로 유격 훈련, 사격 훈련, 화생방 훈련 등을 말한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군에서 훈련과 연습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 18일 끝난 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CCPT)도 그렇다. 시대가 바뀌면 용어 사용 방법도 변하나 보다.

 

1954년 유엔군사령부 주관으로 실시한 포커스 렌즈 연습에서부터 시작한 한·미 연합훈련은 그 명칭과 방식이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포커스 렌즈는 포커스 레티나, 프리덤 볼트, 팀스피릿,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 키리졸브(KR) 및 프리덤가디언(FG) 연습 등 여러 명칭으로 이어졌다. 2019년에는 키리졸브를 대체해 ‘동맹 19-1’ 훈련이 처음 시행됐으나 이후 ‘동맹’이란 명칭도 사라졌다. 지금은 상반기 및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이란 이름으로 실시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한·미 연합훈련도 일종의 진화를 거듭한 셈이다. 반면 이를 두고 보수층에서는 북한 눈치를 보며 한·미 연합훈련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1년에 두 차례 실시해 온 정기적인 한·미 연합훈련은 태권도에서 말하는 일종의 ‘약속 대련’이다. 한·미 연합작전계획인 작계5015를 기반으로 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통상 2주에 걸쳐 진행된다. 북한의 남침을 1, 2차 저지선에서 막아낸 후 평양이나 개성까지 진격한다는 게 대체적인 기본 골격이다.

 

한·미 연합훈련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나 하와이·괌 등에서 증원되는 전력을 수용·대기·전장이동·통합(RSOI)하는 연습이다. 한때 한·미 연합훈련에 RSOI 연습이란 명칭을 붙였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한·미 연합훈련 RSOI의 전제는 대규모로 증원되는 미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실현 가능할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에는 미군이 최대 69만명의 증원 전력을 한반도로 보내게 돼 있다고 기술됐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 기술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미 연합작계는 북한의 핵공격 능력을 반영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한·미 연합훈련에 북한의 핵공격을 상정한 훈련은 없다. 현행 작전계획 시나리오대로 훈련을 한다면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의 남침을 격퇴하고 평양까지 탈환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이란 얘기다. 또 북한이 한반도 해역으로 향하는 미군 증원 병력의 접근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미국이 증원 전력을 보내겠는가. 북한의 핵공격 이후에는 그 자체가 파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핵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 보고문에서 전술핵무기 완료를 시사했다. 전략핵무기가 아닌 북한의 전술핵무기는 남한을 상대로 한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KN-23과 같은 단거리미사일이나 방사포 체계에 전술핵탄두를 실전 배치한다 해도 한·미 연합전력의 우선 선제타격 대상이기 때문에 위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0.1~0.2KT(킬로톤) 정도의 야포용 핵탄두까지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한반도를 둘러싼 다양한 변수의 상황을 대입해 풀어나가는 ‘정치·군사게임(Pol·Mil Game)’이 한·미 연합훈련에 더 유용한 시점이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론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했다. 천동설은 아무리 개선하고 발전시켜도 천체의 운행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은 한·미 연합훈련도 칸트처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대가 알게 모르게 무너지고 있다. 군 기강이 훼손되고 기본이 무너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위아래가 따로 논다. 또 뚫린 최전방 경계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동해 최북단 해안으로 월남한 북한 남성은 폐쇄회로(CC)TV에 최소한 4차례 이상 포착됐는데도 감시병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설치한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가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근무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만 설치해주면 된다고 여긴 군 수뇌부 책임이 적지 않다.

 

한두 곳도 아니고 최소한 4곳 이상에서 경보음이 울렸는데도 아무도 녹화 화면을 되돌려 움직이는 물체를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관행적으로 경보를 무시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부대 관리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부대원이 새벽 운동을 한다며 감시구역을 달려 장비 경고음을 작동시키는 사례가 잦다는 제보도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작전군기 문란 행위다. 8군단의 대침투 경계령인 ‘진돗개 하나’의 늑장 발령도 비정상적이다. 지휘관의 책임의식 부재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일이 북한 통치자였을 때는 군내에서 ‘김정일이 한국군 장성 인사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천안함 사건처럼 북한 도발에 대한 부실 대응 등으로 군 수뇌부가 대폭 교체되는 사례가 왕왕 나오게 된 것을 두고 한 얘기였다. 역설적으로 북한 도발이 한국군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방증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 도발을 했어도 이전 정권처럼 국지도발은 별로 없었다. 9·19 군사합의 영향이 컸다. 대신 이번에는 탈북자가 한국군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군 인사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군 서열 1위인 합참 의장은 최소한 30년이 넘는 야전 생활에서 쌓은 노하우를 부하들에게 전수하면서 전군의 작전 지휘에 혼신의 전력을 쏟아내는 직위다. 언제부터인지 합참 의장이 ‘대령급 TF그룹’을 만들어 작전환경을 배워가면서 전군을 지휘한다거나, 4성 장군 계급에 걸맞지 않게 사단장 수준의 지침을 전군에 내리는 사례도 나타났다. 또 작전보다 워라밸을 우선하는 합참 의장도 등장했다. 경험과 경륜이 모자란 장군을 정권 입맛대로 임명하다보니 생긴 결과였다. 과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무능한 대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 인사를 놓고 이번 정권에서는 뒷말이 더 무성하다. 대선 캠프에 참여한 군부 인사들이 고위층과 관변 조직을 나눠먹고, 장군 인사는 원칙보다는 정권 줄서기처럼 비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군단이 능력보다는 정권과의 연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군내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그러다보니 전문성을 살린 인사가 되기 어렵고, 부하들이 지휘관을 존경할 리 만무하다. 군에서 전문성을 더 쌓기보다는 국회 국방위원들과 안면을 트거나, 권력기관으로 파견을 나가는 게 진급의 지름길이 됐다. 과거 정권보다 훨씬 더 그렇다. 경계가 뚫린 8군단과 22사단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경계수요가 가장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적재적소 인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군 간부들은 입을 모은다.

 

지휘관이 부하 눈치를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군대 내 ‘소원 수리함’과 같은 고발 창구가 된 지 오래다. 강철같은 규율과 기강을 앞세워 솔선수범하기보다는 ‘워라밸’을 강조하는 지휘관이 인기가 높다. 얼마 전에는 육군 원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육군참모총장이 ‘장교는 부사관에게 존칭을 쓸 수도 있고 반말을 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을 놓고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창군 이래 부사관의 육군참모총장 고발은 초유의 일인 것 같다. 인권위원회가 인격권 침해가 아니라고 기각하면서 이 문제는 흐지부지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군 내부 분위기는 싸늘하다. 육군참모총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군내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군 인사를 전문성보다는 정권의 ‘입맛’대로 한 탓이 크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파나마 2021.02.25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팩트를 알고 계시는군요 일단 전문성이 없지만 정권가의 연줄로 장군되는 경우가 많지요
    능력도 부족한 사람들을~~ 심각한 일입니다
    출신좋고 교육성적 좋으면 거의 승진하는 사례 발생~~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는 문재인 정부 안보정책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신년회견 메시지를 내놓았다. 보수층 반발이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남북, 북·미 대화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당하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군사적 합의가 적대국 사이에서 이뤄졌다. 한반도에서 ‘적’과의 협의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있어 왔다.

 

문제는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싸고 전작권 전환과 남북대화가 엉켜 있다는 점이다. 한·미연합훈련에서 전작권 전환 조건을 평가한다는 것은 한·미 간 합의사항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실시에 대해 군사적 대응까지 시사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한·미연합훈련을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데, 남북대화 조성을 위해서는 한·미연합훈련의 축소 또는 보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한·미연합훈련을 통해 한국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령부에 대해 1단계 기본운용능력(IOC),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검증·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는 2019년 IOC 검증을 끝내고 지난해 FOC 검증을 마치려 했으나 3월 연합훈련은 취소, 8월 훈련은 대폭 축소하면서 올해로 미룬 상황이다. 국방부는 FOC 검증을 조기에 시행한다는 계획이지만, 미측은 ‘그것은 한국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분위기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도 지난해 11월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작권 전환 시점을 현 정부 임기 내로 예측하는 것에 대해 ‘날짜를 못 박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전작권 전환은 한국군 능력보다는 미국 의지에 달려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2009년 10월 조기 전환’을 주장했던 미국이었다. 한·미가 현재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위한 3가지 조건은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능력 확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능력 구비’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 등이다. 그러나 한국군의 핵심능력 확보를 의미하는 FMC는 전작권 전환 후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오히려 갖춰질 수 있는 요소다. 게다가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 평가’는 너무 포괄적 개념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미래연합사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과제 중심으로 전작권 전환 조건의 수정 및 보완을 미측에 요구해야 한다. 한·미는 이미 2004년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을 최종 합의한 이래 수차례 조건과 내용을 수정한 바 있다. 특히 지금의 전작권 전환은 노무현 정부 당시 합의했던 ‘한측 주도, 미측 지원의 병렬형 지휘체계’에서 ‘한측 주도 일체형 연합지휘체계’로 바뀐 것이다. 이는 미래연합사령부의 사령관과 부사령관의 국적만 바뀌었을 뿐 현재의 연합사 체계와 큰 차이가 없다. 즉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만 검증되면 얼마든지 전작권 전환이 가능한 구조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또 ‘한반도 및 지역안보’를 인도·태평양 영역에 포함시키고 싶어한다. 로이드 오스틴 신임 미 국방장관은 서욱 국방장관과의 첫 상견례 통화에서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의미하며, 중국 견제도 포함된다. 게다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되면 한국군은 한반도 전장만을 바라보지만, 미군은 따로 동북아 전체의 군사적 움직임을 구도로 작전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코로나19 확산방지 명목과 한국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는 형식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축소 내지는 보류하면서, 이를 핑계로 미군의 전작권을 그대로 유지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무늬만 환수’라는 비판을 받는 일체형 전작권 환수조차 이루지 못하는 것은 정권의 무능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미군은 일찍부터 장병들에게 특정 종교를 위한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할랄(무슬림)·코셔(유대교인) 인증 전투식량(MRE)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군에도 미군처럼 무슬림 식단이 도입된다고 한다. 국방부는 내년 중 무슬림(이슬람교도) 병사에게도 종교를 고려한 맞춤형 음식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지난 27일 밝혔다. 무슬림 병사가 맞춤형 식단을 선택할 경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종교가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군에 복무 중인 병사 가운데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례는 1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군 내에도 다문화가정 출신 입영자를 중심으로 무슬림 병사가 상당수 있으나 이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차별을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국방부는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 현황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부대관리 훈령’ 제122조에도 “다문화 장병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으로서 별도의 관리 대상이 아니며 다른 장병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 동반입대병 제도를 2019년 말 폐지한 것도 신청자가 다문화가정 출신임을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 요소가 있다고 병무청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군도 다문화 물결에 예외일 수 없다. 국가수호에 있어서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이 ‘국민’이라는 공통의식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다문화 시대를 반영해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서 충성 대상은 ‘민족’이 아닌 ‘국민’이다. 군 내에는 이미 병사뿐만이 아니라 다문화가정 출신 군 간부도 상당수가 근무하고 있다.

 

국방부가 밝히고 있는 ‘다문화 장병’의 범주는 외국인 귀화자, 북한이탈주민 가정 출신 장병, 국외 영주권자 입영 장병, 결혼이민자 등이다. 1991년생까지는 인종, 피부색으로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은 5급 제2국민역으로 군복무가 면제됐다. 그러다 한국 국적이면 모두가 병역의무를 지도록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된 이후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군 입대가 속속 늘기 시작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다문화가정 출신 징병검사 대상이 3000여명 수준이었고, 2028년에는 다문화가정 출신 현역병 수가 1만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가정 출신도 다문화 장병 범주에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을 보면 탈북 주민 가족이 한국에 정착한 후 태어난 자녀는 군 입대 대상이다. 탈북 청소년은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군 입대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탈북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입영 연령이 되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해당자가 한 해 200명 안팎이지만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로 다문화가정 출신 병사들은 귀중한 병력 자원이다. 대신 군은 다문화가정 출신이 이슬람교를 포함한 소수종교를 믿는 경우에도 종교활동 등의 여건을 보장해줘야 한다. 요새는 다문화가정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다양하게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군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군종도 있다. 국내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는 모르몬교 군종도 포함된다. 한국군에는 군종장교를 둘 수 있는 종교가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개뿐이다. 한국군에서는 신자나 신도가 일정 비율 이하면 군종장교를 둘 수 없지만, 외국군의 경우에는 종교나 종파 비율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과거에는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에게 차별화된 관심과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이 때문에 군의 다문화 장병에 대한 관리의 핵심도 이들을 차별대우하지 않겠다는 데 모아졌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맞춤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것이 굳이 다문화 장병들만 대상은 아닐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의 경계작전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고질병처럼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달 초 발생한 북한 주민의 탈북 당시 22사단 최전방 철책의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놓고 방위사업청과 육군이 진실공방을 펼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철책을 넘을 때 전방 GOP(일반 전초) 철책 그물형 광망의 윗부분에 설치된 ‘감지유발기’가 작동하지 않아 경고 센서가 울리지 않은 것이 누구 탓이냐는 것이다. ‘감지유발기’는 압력을 센서에 전달해주는 나사가 풀려 있는 바람에 작동하지 않았다. 군은 앞으로 나사가 풀렸는지 여부까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나섰지만, 155마일 철책선의 봉인된 리벳까지 일일이 뜯어 그 안에 있는 나사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게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군의 경계인력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이처럼 현실에서는 뚫려봐야 문제가 뭔지 드러나는 수준이다.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관리가 더 어렵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 이채익 의원에게 보고한 자료를 보면, 2015년 9월부터 5년간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장비 작동 오류 및 고장은 2749건이었다. 하루 평균 1.5건꼴이다. 경보음이 울린 것은 2016년 이후 총 1만2190여회로 집계됐다. 동물이 광망을 건드려 경보음이 울린 것은 2300여회(18.9%)였다. 철책마다 동물기피제 깡통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유다. 시스템 오류로 인한 것은 3290여회(27%)였다. 시스템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유지·보수 예산이 매년 늘고 있다.

 

22사단의 경계작전은 사실 ‘모범 사례’다. 비록 광망시스템이 장비 오류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열상감시장비(TOD)로 이중철책을 넘는 상황을 포착하고 수색 작전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포착 후 14시간이 지나서야 탈북자 신병을 확보했다면서 ‘늑장 대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지뢰밭까지 깔려 있는 가파른 산악 지형에서 섣부른 작전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장병들은 작전 매뉴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했지만, 철책이라는 ‘경계선’이 뚫렸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평균 1개 소대 병력으로 좌우 길이 5㎞ 정도의 휴전선 일대 경계를 맡는 상황에서 북한군 한 명도 철책을 뚫고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학화경계시스템도 만능이 아니다. 한국군의 휴전선 방어 태세의 본래 목적은 북한군 병사 한두명이나 탈북자를 찾아내는 개념이 아니다. 중대나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이 전면전을 위해 남하할 때 철책에서 시간을 끌도록 만든 방어 태세다. 적 동향 등을 파악하는 경계 태세가 먼저다.

 

휴전선 GP(감시초소) 경계작전도 선의 개념이 아닌 공간 개념이다. 이에 따라 ‘철책 전방’ ‘철책 선상’ ‘종심 지역에서의 차단 작전’ 등 3단계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이 뚫리면 군의 ‘기강 해이’와 ‘경계 허술’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전방보다 병력이 부족한 후방 지역 경계는 더욱 어렵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말들이 역설적으로 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맥아더 장군이 실제 한 말이 아니다. 맹목적인 ‘경계 도그마’를 합리화하기 위한 가짜 경구다. “물샐틈없는 경계태세로 (바다인) NLL을 지키겠다”는 말도 가당치 않은 표현이다.

 

한국군은 세계에서 경계 근무 비중이 가장 큰 군대다. 문제는 병역 자원 감소로 갈수록 인력 투입형 경계작전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라는 점이다. 물리적으로 실천이 불가능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소위 물샐틈없다는 식의 ‘경계 도그마’만 내세우면 병력의 피로와 전력 약화만 초래한다.

 

인식을 바꾸지 못하면 비슷한 사례는 언제든 되풀이된다. 군 수뇌부가 좋아하는 특단의 대책보다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합리적 대응을 말할 때다. 그것은 병사들의 훈련과 휴식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oddamn 2021.03.01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같은 시각이라면
    일과시간 이후의 미군의 경우
    상하관계가 없고 바에서는 맞잔도 하는데 그럼 군기가 빠지고 정신빠진 인간들 군대겠네?

    예전 군부독재정권 하의 군기나 안보 그리고 획일적 군인사 시스템을 원하냐?
    언론이 안보상업주의로 시민들을 토끼몰이하여 자본을 축적하던 경직된 그딴 시각으로 바라보니까

    우물안 개구리 꼰대식 시각의 글로 자기기만을 일삼는 기레기사회의 시각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회와 군의 관계란 어떤 것일까. 34년 전 얘기다. 1986년 3월21일 ‘국방위 회식사건’이라는 전대미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임시국회를 마치고 육군 수뇌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서울 회현동의 요정 ‘회림’으로 초청해 폭탄주 술자리를 가졌다. 참모총장을 비롯한 육군 참석자들 거의가 하나회 소속인 신군부 쿠데타 주역들이었고, 국방위원 상당수가 여야 중진이었다.


여야 원내총무가 약속 시간에 늦으면서 싸늘하게 시작된 폭탄주 술자리는 국회의원들과 군인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난투극으로 변질됐다. 말이 난투극이지 많이 다친 사람들은 국회의원이었다. 참석자들은 ‘술자리의 일이니 술자리에서 풀기’로 했으나 정치 사건으로 비화됐다. 이후 육군참모차장은 예편 조치됐지만 공천을 받고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인사참모부장은 좌천 형식을 취했지만 나중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이 사건은 군벌의 권력이 다른 권력보다 우세했던 시절의 한 단면이었다.


이후 회식사건 당시 술잔을 던졌던 의원은 한 신문 칼럼에서 국방위원장 출신 예비역 대장이 전방을 방문했을 때 발언을 소개했다. 한 장성이 “국회의원하고 장군하고 어느 쪽이 더 높습니까” 하고 묻자 “그것은 사과하고 배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은 과일인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은 거야. 장군은 장군 격이 있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격이 있는 것이지”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우문현답이다.


지금은 어떨까. 국방부엔 국방위원을 깍듯이 모시는 군 조직이 있다. 국회 본청에 사무실을 둔 국방부 국회협력단이다. 현역 육군 준장이 단장, 국방부 소속 중령이 총괄담당이다. 또 협력관이란 명칭의 육·해·공·합참·방사청·해병대 소속 대령들과 주무관, 위관 장교 등 10명이 사무실에 상주한다.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 및 국회와 국방정책 현안에 대한 연락협조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국회협력단은 1963년 ‘국방부 국회연락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군사 쿠데타 이후 군 출신이 국회 국방위를 장악하면서 편의를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비슷한 조직인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청 연락단은 1988년 모두 사라졌지만, 국회협력단은 수년 전부터 외려 규모가 커졌다. 영관급이던 단장 계급까지 장군으로 올라갔다. 군 간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국회협력단을 국방위 ‘민원창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휴가처리 과정에 갑자기 등장한 대위가 국회협력단의 연락을 받고 나타났다는 소문이 군 안팎에서는 파다했지만 군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국방위원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들인 김모 상병의 죽 배달 사건에도 국회협력관이 관련됐다는 말이 나왔지만, 군 수사기관은 파악 중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협력단이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협력단장이라는 직위도 공식적으로 없는 자리다. 입법기관인 국회와 행정부처인 국방부가 함께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가 국회협력단장을 국회 소속의 ‘정원 외’ 군 장성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은 더 웃기는 일이다. 장성 수를 줄이는 게 국방개혁의 한 축이라고 한 정부 설명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굳이 현역 장성을 국회 소속으로 하겠다면 법으로 그 근거를 만들고, 미국처럼 국회의장의 안보보좌관 역할이어야 하는 게 상식에 맞다. 지금처럼 군부의 ‘로비스트’라든지, 정치권의 ‘민원 해결사’로 인식돼서는 곤란하다.


국방위와 국회협력단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로 변질됐다. 국방위원들의 군부대 시찰 방문과 전투기 시승 안내 등을 잘 챙겨야 유능한 국회협력단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국방위원들이 타는 헬기 배치도 잘하고 나중 선거 홍보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진도 잘 나오도록 해야 한다. 거꾸로 일부 장성급 부대장이 국회협력단에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를 방문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급을 위해 정치인에게 ‘눈도장’ 찍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침 군 인사철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2년 전 일이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 국방위원회 요청으로 국방부 국회연락단 철수를 요구했다. 국회 본청에 마련돼 있던 국방부 연락단 ‘방을 빼라’는 얘기였다. 국방부 국회연락단은 국방부와 국방위의 협조 연락 창구라는 이유로 1963년 이후 45년간 유지돼 오던 터였다. 결국 대령급 단장을 비롯한 군 장교 6명의 사무실 출입이 봉쇄됐다.


당시 국방위는 국회연락단 철수 요구 배경으로 국방장관의 국정감사 답변 내용 및 태도와 국방 현안에 대한 국방부의 무성의를 내세웠다. 또 국방부 국회연락단 자체가 ‘그 어떤 법적 근거가 없는 편제기구’라는 점을 들었다. 한마디로 국방부 국회연락단 자체가 ‘유령 조직’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국회연락단 폐쇄는 당시 국방위 차원에서 요구한 국회연락단장 A대령의 장군 진급을 국방장관이 거부한 데 따른 후폭풍이었다는 것을 알 만한 군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1년 후 국방장관이 바뀌자 반전이 이뤄졌다. 국회 국방위는 ‘국방부 국회연락단’ 부활을 국방부에 요구했다. 새 장관이 온 만큼 과거를 잊고 국회와 국방부의 가교 역할을 잘하도록 하자는 게 취지였다.과거 국회연락단장은 사실상 국방위원들의 ‘심부름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국회연락단 장교들은 군 골프장 정회원 대우를 받지만 공식 부킹이 쉽지 않은 국방위원이나 보좌관들의 군 골프장 예약까지 국방장관실에 연락해 대신해주기도 했다. 국회연락단장은 소위 ‘잘 나가는’ 대령들이 기피하는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장군 진급이 어려운 환경의 간부들이 국방위원들의 로비로 별을 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국방위원 모시기’에 최선을 다하는 직위로 인식됐다. 국회연락단장으로 임명된 이유도 국방위원장의 고교 후배여서, 기무사(현 안보지원사)에서 퇴출됐지만 로비력이 뛰어나서, 능력이 뛰어난 아까운 인재여서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서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후 국방부 국회연락단은 국회협력단이란 이름으로 다시 국회 본청에 자리 잡았다. 협력단장의 계급은 대령급에서 장군으로 높아졌다. 문제의 A대령도 나중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군 내부에서는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길들이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국회협력단을 바라보는 군내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군 정기 인사가 끝날 때면 누구누구가 진급한 데는 특정 국방위원의 ‘입김’이 있었다는 뒷말이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협력단은 국방장관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창구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과거 국회 국방위가 지적했듯이 국회협력단은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조직’이라는 점이다. 군에는 국방부와 육해공군 각 군에 다른 행정부처럼 국회담당이 각 1명씩 있을 뿐이다. 당연히 ‘국회협력단장’이라는 직위도 공식적으로 없는 자리다. 입법기관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유령 조직’을 통해 업무 협조를 한다는 사실에 기가 찰 노릇이다. 국회협력단이 꼭 필요하다면 법으로 설립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단장 계급도 장군이어서는 안 된다. 대령 계급으로도 그 역할을 하기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국방개혁으로 내세운 장군 숫자 줄이기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국회협력단과 함께 국방장관 정책보좌관들의 역할도 논란거리다. 국방정책이 정권 철학에 맞도록 제어하고, 국회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정무적 역할이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당 의원이 민감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양해를 구하는 소위 ‘마사지’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정치권 민원을 국방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정치권과 군부가 유령 조직인 국회협력단이나 정치권 출신 정책보좌관들을 통해 ‘악어-악어새’와 같은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사이 정치군인의 토양은 커진다. 검찰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한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문제를 군 간부들이 ‘국회협력단과 정책보좌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서 여전히 의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 정부의 태릉골프장 택지 개발 추진과 맞물려 전국 지자체들이 육군사관학교 유치를 위한 물밑 경쟁에 나섰다. 육사 유치 경쟁에는 충남 논산시, 강원 화천군, 경북 상주시 등이 뛰어들었다. 동두천·연천 등 경기 북부 지자체와 전북 장수군도 유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육사 이전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육사도 결국 이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가운데 육사는 유일하게 서울에 남아 있다. 공사는 청주, 해사는 진해에 있다.


군 내부 기류는 부정적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육사는 국군 역사와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라며 “차라리 서울대를 지방으로 옮기는 게 지방을 살리는 길”이라는 반응까지 보였다. 게다가 육사 바로 옆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육사의 녹지와 체육시설을 개방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정부는 정권 초기에 택지 개발 차원이 아니라 육해공 3군 사관학교 통합을 위한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에서 육사 이전 후보지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이는 육사뿐만 아니라 해사와 공사 이전까지 아우르는 3군 통합사관학교 후보지로, 새만금 일대가 거론됐다. 이곳에 3군 통합사관학교를 세울 경우 공군사관학교를 위한 활주로와 해군사관학교를 위한 항구 건설도 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육해공군 통합사관학교, 가칭 국군사관학교가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래전에 대비하고 육해공군의 통합 작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개혁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꾸준히 제기됐다.


국방부는 2009년 3월 ‘사관학교 교육운영 개선 TF’를 구성해 사관학교 교육과정의 합동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따로 놀던 육해공 3군의 통합성을 제고하기 위한 해법으로 사관학교 교육 통합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각 군의 미온적 입장과 조직이기주의에 눌려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지금의 사관학교 교육이 폐쇄적인 군 특성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21세기 다변화된 전장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육군은 보병, 해군은 함정, 공군은 조종 병과가 진급과 서열에서 중심이 돼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인식에도 변함이 없다. 그 결과 육해공군 간 상호 합동 작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군 작전지휘구조 개편은 ‘합참의장(합동군사령관 기능)-3군 참모총장’으로 개편하고 육해공군 합동성을 강화해 군의 신속한 대응력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이 개편안은 “군 안팎의 기득권을 확대하려는 육군 주도로 통합군제를 도입하려는 꼼수”라고 규정한 해군과 공군 예비역 장성들과 “참모총장의 효과적인 지휘가 어렵고 한·미 연합작전이 혼란에 빠진다”는 일부 육군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다.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그 논리는 해석하기에 따라 모두 일응 타당했지만, 결국은 각 군이 서로 특성과 작전을 이해하는 ‘합동성 마인드’를 공유하지 못했다. 지금도 육해공군 지휘부 사이에서 합동성 강화 방안에 대한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통합사관학교 계획이 무산되자 국방부가 내놓은 게 1학년 생도들의 순환교육이었고, 지금은 2~3주간 생도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합동성 강화 차원으로 포장했을 뿐, 사실 합동성을 높이는 것과는 별 관계없는 생도들 간의 친목 강화 조치에 불과하다. 일본 방위대학의 경우 군사전략이나 전사 등 핵심 공통과목에 대해 2년간 통합교육을 한 뒤 고학년이 되면 육해공군의 특성에 따라 전공을 선택해 나머지 과정을 이수한 후 초급장교로 임관하는 시스템이다.


통합사관학교는 현재 사관학교 교육의 폐쇄성을 깨고, 학문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절실하다. 사관학교 교수진은 거의 대부분이 군 출신으로 민간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 생도들이 군사학 분야를 제외한 국제관계·경제학 등 주요 학문에서 민간 수준의 전문성을 쌓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군사학 분야에서조차 3군 전체를 아우르는 교육을 받기 어렵고 전략가를 키우기 힘든 구조다. 박사학위 보유자까지 일반 대학 교수진에 견줘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초급장교 교육과정에 소요되는 인력과 시설, 비용의 중복 투자를 없애기 위한 국방개혁 차원에서도 통합사관학교는 필요하다. 생도 규모를 고려할 때 현재의 사관학교 교육시스템은 비효율적이다. 육사는 생도 1200여명, 교수진 150여명이다. 해사는 생도 680명, 교수진 100여명이고, 공사는 생도 750여명, 교수진 110여명이다. 전문가들은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해 운용하면 교육자원 집중으로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교육이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영유지비가 들어가는데도 장기 복무 자원을 배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등으로 국방개혁 차원에서 폐교 위기까지 갔던 간호사관학교도 3군 사관학교에 더해 통합 대상으로 포함시킬 만하다. 3군 사관학교가 통합한 국군사관학교 교장이 꼭 군인일 필요도 없다.


통합사관학교가 되면 관리 주체를 군에서 정부로 바꿔 국가 핵심 인재를 유치하는 등 위상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사관생도들을 안보·외교·행정의 국가 인재로 키우자는 것이다. 군에 남길 원하는 인재는 장교로, 사회에 진출하고자 할 경우에는 5년 의무복무 이후 사회 각계에서 두루 활약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자는 뜻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5년 군 복무 후 사회에 진출한 미 육사 출신이다. 각 군의 의견을 듣고, 공청회라도 열어 한 발짝씩 발걸음을 뗐으면 싶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yngshik 2020.08.16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합사관학교는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하다

  2. ynkshik 2020.08.1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합사관학교는 자칫 3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하나의 동기생으로 뭉칠 수있고
    그래서 태국이나 인니 사례를 참고해야한다

청와대가 다음주에 참모진을 개편하면서 일부 부처 장관도 바꿀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지금 국방장관이 여기에 포함될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앞으로 임명될 국방장관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추경 편성이었다.


정부는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국방비에서 1조8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삭감했다. 당초 총 국방예산의 3.6% 수준이다. 국방부는 예산 삭감에 대해 “이번 감액 추경으로 인해서 어떤 장비의 도입 시기가 늦어진다든가 전력화가 지연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군 내부에서는 “1조8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깎아도 문제가 없다는 게 더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5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2020년 국방예산안(50조1527억원)을 의결했다. 세계 7위 규모였다. 이를 놓고 정부가 진보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 50조원을 돌파했다’는 상징성을 만들기 위해 ‘부풀리기식’ 예산 편성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50조원을 넘어서는 2020년은 국방예산 역사에 남을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며 “2020년대 중반쯤 국방예산 규모가 사실상 일본에 거의 상응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다보니 코로나19 위기 극복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깎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상작전헬기 사업비 2000억원을 삭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방위사업청이 전력화가 시급한 ‘핵·대량살상무기(WMD) 대응전력’이란 이름으로 엉터리 포장해 예산을 배정했지만, 애초부터 예산 투입이 시급한 게 아니었다.


국방부는 1조8000억원 가까이 삭감하면서도, ‘황당한’ 사업에 예산을 새로 배정했다. ‘4차 산업 체험장’의 시범 구축을 구실로 군사훈련과 무관한 ‘무조건 이기는 가위바위보 로봇’이나 ‘사탕 뽑기 머신’ ‘로봇 바리스타 커피머신’ 등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수억원을 끼워 넣었다. 그런 ‘강심장’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는 것은 국방예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방예산은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국방예산이 20조원에서 30조원을 돌파하는 데 6년, 30조원에서 40조원 시대를 여는 데 다시 6년이 걸렸다. 하지만 국방예산 50조원 시대는 이의 절반인 3년 만에 다가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그 많은 국방비, 다 떡 사먹었습니까, 자기 나라 군대의 지휘를 외국 군대에 맡기고, 지휘를 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처럼 그 많은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한국군이 북한군에 견줘 우세하다고 자신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군 간부들이 지금도 상당수다. 북핵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도 우세를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매년 북한의 국민총생산(GNP) 규모를 국방예산으로 사용하고, 지난 10년간 420조원 이상의 국방예산을 투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로 나가기 때문”이라는 것도, “북한 통계는 숨겨져 있는 게 많아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라는 것도 핑곗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안보를 경제적 관점에서 책임져야 할 시점이다. 강한 군대는 마구잡이식 예산 투입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투입된 비용으로 성과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경영인 출신인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 국방장관은 1960년대에 컴퓨터를 이용한 국방예산과 전략의 합리화를 추진시켜 국방계획에 ‘비용 대 효과비’를 도입했다. 그는 이를 통해 소련과의 체제경쟁을 핑계로 국민 세금을 물 쓰듯 하면서 비효율이 만연했던 미군을 개혁했다.


프랑스 국방장관이 국영철도회사 경영진 출신인 것처럼 상당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방장관은 민간 전문 경영인 출신이 맡고 있다.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여성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사례도 적지 않다. 국방부 차원의 업무를 전쟁을 감당하고 부대를 관리하는 군인의 시점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이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당연히 군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다수 현역 군인들조차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도 국무위원이면서 국방 업무의 전반을 전문성 있게 담당할 경영인 출신의 장관이 나올 때가 됐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국방장관은 예비역·퇴역 단체나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 조직의 효율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국방사업에서도 비용 지출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중간 점검, 획득, 운용, 문제점 처리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 전투 임무태세는 ‘전쟁 전문가’로서 군복을 입은 합동참모본부 및 각군 지휘관들에게 맡겨도 문제가 없다.


한국군은 강력한 구조조정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3대 국방과제인 ‘국방개혁 2.0’과 ‘전작권 전환’ ‘남북 군사합의’와는 결이 다른 문제이다. 국방예산은 ‘단군 이래 최초의 50조 돌파’ 운운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국방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군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이유로 장성 출신이, 막연히 문민이라는 이유로 경영 마인드가 떨어지는 정치인 출신이 임명되는 자리가 돼서는 곤란하다. 국방장관이라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게 덕목이 아니라, 국방 철학을 교감하기 위해 맥나마라처럼 대통령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미·중관계 악화와 함께 맞이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3대 국방과제도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군대에서 병사의 자격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기본 능력만 갖추면 충분하다. 그런데 요새 병영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집단 생활문화에 거부감을 표시한다. 심한 경우에는 사회에서는 없던 신체 질환증세까지 입대 후에 나타났다면서 지휘관에게 특별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소위 ‘병영 부적응’ 병사들이다. 이에 따른 지휘관들의 고민이 크다. “‘아들이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특별히 잘 돌봐달라’는 병사 부모의 지속적인 전화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털어놓는 간부도 있다.


야전에서는 병사들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행군에 불참해도 군 간부들이 시빗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자세한 사유 묻기를 피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아예 해당 병사를 현역 복무 부적합 심의 대상으로 분류해 전역조치시켜 병사 관리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지휘관도 생긴다.

공군이 지난 24일 부대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황제 복무’ 의혹이 제기된 병사에 대한 감찰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이른바 ‘병영 부적응자’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지휘감독이 소홀했다며 건강 문제나 병영생활 부적응 등 관리가 필요한 병사들을 투명하게 지원하기 위한 제도 보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감찰 결과를 보면 지난해 9월 부대에 전입한 ㄱ상병은 평소 매주 주말 가족 면회 시간에 자신의 세탁물을 부모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2월 말 코로나19로 인해 면회가 제한되자, ‘피부질환 때문에 생활관 공용 세탁기 사용이 어려우니 부모를 통해 자가에서 세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소속 부서 간부인 ㄴ중사에게 요청했다. ㄴ중사는 3월부터 5월까지 13회에 걸쳐 세탁물을 부모에게 전달했다. 이를 놓고 ㄴ중사는 ‘병사 애로사항’ 해결 차원이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는 “병사가 부사관 간부에게 ‘빨래 셔틀’을 시키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특혜라고 비판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특혜’로도 비칠 수 있고, ‘배려’로도 볼 수 있다. 특혜라는 시각으로 보면 ‘간부의 빨래 셔틀’이고, ‘배려’라는 시선으로 보면 ‘부적응 병사를 위한 친절’이다. 이런 행위를 처벌하려면 빨래의 영외 반출이 병영생활지침에 따른 규정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살피면 된다. 지휘관 허가가 있으면 규정 위반이 아니지만, 허가가 없으면 규정 위반이라는 게 군 당국의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생긴다. 지휘관 허락이 있더라도 주변에서 ‘지휘관의 과도한 배려는 특혜’라고 여기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 병사들은 ㄱ상병이 아프기에 편의를 제공해준다고 하지만, 돈 없고 집안 배경이 좋지 않은 병사에게도 같은 편의를 제공해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 배경에는 ‘군대만큼은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병영 부적응 병사들을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다루었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지휘관들은 머리 아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병사의 경우 부대의 배려가 없어서 본인 질환이 악화됐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군대 병사들의 주류는 이제 2000년대생들이다. 이들은 ‘평등’과 ‘공정’을 얘기하면서도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군대 행정을 요구한다. ㄱ상병의 부모도 ‘애가 아프니 좀 도와달라’는 식의 전화를 간부들에게 수십통 한 것으로 조사됐다. ㄱ상병은 맞춤형 배려를 요구하고, 동료들은 평등을 앞세운다. 그러다보니 건강문제나 병영 부적응 등으로 관리가 불가피한 병사들에 대한 군내 관리 매뉴얼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이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군대 내 ‘소원 수리함’과 같은 고발 창구 통로가 돼버렸다.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고, 인터넷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글을 올리는 세태와 맞물렸다. 부대 내 시스템을 통해 신고하면 지휘관이나 선임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부대장의 훈련에 대한 지휘판단까지 국민청원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6월 ‘현역 중장의 보직 해임을 요구한다’는 글이 청원 게시판에 올랐다. “현역 군단장이 비합리적인 부대 운영과 지휘, 명령으로 젊은 장병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며 “(군단장이) 특급전사만을 강요하며 특급전사가 되지 못한 장병은 휴가와 외박을 제한시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온라인상에서는 “훈련이 과도하다”는 의견과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반론이 맞섰다. 육군본부 감찰 결과, 군단장의 지휘·명령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난 18일에는 한 육군 여단장이 일병에게 “너는 뭐가 불만이냐. 태도가 왜 그러냐”라고 지적한 뒤 여단장실로 불러 부모까지 거론하며 인격모독을 했다고 주장하는 글도 올라왔다. 이 역시 육군본부가 감찰 중이다. 청원 게시판에 올리면 청와대를 의식해 육군본부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인식이 장병 사이에 퍼져 있다고 한 육군 간부는 병영 분위기를 전한다. 이를 놓고도 ‘군 기강 해이’와 ‘군의 잘못된 관행이 빚은 불신’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병사 관리에 지친 지휘관들은 “차라리 모병제를 실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군 당국은 병영생활 도움관리위원회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병사들 스스로 21세기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보여야만 가능하다. 


각종 사건의 시시비비를 떠나 지휘관들이 위축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젊은 장병들의 병영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은 기본적으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을 평소에 키우는 곳이다. 병사들의 애로사항을 잘 살피는 것 못지않게 야전 지휘관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엔군사령부(UNC)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놓고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보수정권에서 일어난 정전협정 위반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는 철저히 숨기고, 진보정권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 사건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엿장수 맘대로’식 발표다.


유엔사는 지난 3일 발생한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남북한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이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내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아온 관행에 크게 어긋난 사례다. 게다가 유엔사는 공보실장인 리 피터스 대령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터스 대령의 왼쪽 가슴에는 ‘U.S. ARMY’라는 군 식별 표지가 선명했다. 그는 주한미군 공보실장을 겸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군 식별 표지를 단 채 유엔사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어색하다. 한국군 선수와 미군 선수가 한편을 먹고 북한군을 상대로 축구경기를 하다 북한군의 도발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때 같이 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던 미군이 느닷없이 동료 선수인 한국군과 상대방 선수인 북한군에게 ‘레드카드’를 동시에 들이대는 것과 뭣이 다른가. 미군은 ‘선수가 아닌 심판’이라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즉각 “유감”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방부가 동맹군인 주한미군에 유감을 표시했다고 해석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엔사는 28일 현재까지도 페이스북을 통한 공개 외에는 한국군 측에 조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동맹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이번 유엔사의 조사결과 발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8월20일 일어난 국군과 북한군 포격사건에 대한 태도와는 정면 배치된다. 당시에는 언론의 조사결과 발표 요구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국방부를 자극하는 내용을 공식 공개했다. 두 사건에는 유엔사 조사결과 ‘한국군의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엔사의 이례적인 조사결과 발표에 한국군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유엔사는 민감한 대북 기술정보(감청 등 포함)까지 언급하며 북 GP의 총격을 우발적인 상황으로 판단한 한국군의 입장과 배치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례와 달리 유엔사는 2015년 8월20일 발생한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당시 합참은 “DMZ 포격은 북한군의 도발로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사 군사정전위는 북측이 아닌 남측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고도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 모두 유엔사가 한국군 주장과 다른 결과를 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유엔사는 보수정권 때는 침묵했고, 진보정권에서는 이례적 공개를 택했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부분이 여럿 있다. 먼저 5년 전에는 남측이 76.2㎜ 북한군 포탄 3발이 떨어졌다는 탄착지점도 확인하지 않고 155㎜ K55A1 자주포 29발을 북쪽으로 발사하는 대응 포격을 실시했다. 북한군 도발원점도 찾지 못했다. 당시 합참은 전군에 최고 수준 경계령을 내렸고, 북한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GP 부대원들이 북한군 14.5㎜ 고사총 탄흔을 확인한 후 절차에 따라 대응 사격했다.


유엔사는 5년 전 남북 간 포격 사건 조사결과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이번에는 GP 총격 사건 조사결과를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특히 5년 전에는 한·미 군 당국이 유엔사 1차 조사결과를 수정한 후 비공개하기로 사전 조율했다는 소위 ‘짬짜미’ 의혹까지 제기됐다. 당시 미 공군 소령을 팀장으로 군사정전위·중립국감독위·연락단으로 구성된 유엔사 특별조사팀(SIT)이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에 대해 ‘북한 포격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1차 조사결과를 작성했고, 이후 한국군 수뇌부 요구를 반영한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합참은 “한국군과 유엔사 군사정전위가 DMZ 포격 사건에 대해 서로가 일치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엔사 공보실장 겸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인 로버트 매닝 대령은 “유엔사는 (DMZ 포격 사건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 발생 1년 후 유엔사 중감위 스위스 대표인 우르스 게르브르 육군 소장이 판문점 중감위를 찾은 기자에게 “작년 8월 DMZ 포격 사건 때도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민감한 문제로)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지만 (DMZ 포격 사건에 대해) 남측과 미측, 중감위 결론이 동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군과 유엔사 군정위가 포격 사건에 대해 내린) 결론은 제각각이었고, 그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도 제각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 발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유엔사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소위 ‘유엔사 재활성화’와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GP 총격 사건 조사결과 발표는 유엔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엔사는 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사항에 대한 조사결과 공개에 대해 정권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유엔사는 5년 전 보수정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이번에는 공개 행보를 통해 진보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다. 이번 ‘한국군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발표는 군사조직인 주한미군이 유엔사를 통해 정치적 행보를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있는 군은 지금 ‘투서의 계절’이다. 군에서는 정기 인사철만 되면 비리를 폭로하는 투서가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난무한다. 그러다보니 이미 잊혀진 과거 사건까지 다시 들먹이는 경우가 있다. 투서가 군 지휘부나 군 수사기관, 감찰기관에 전달되는 비리 고발 성격이라면 제보는 군 밖 언론기관이나 인권단체 등에 전달되는 사건·사고들이다. 군 관련 제보는 군 내부 조사·수사가 이뤄졌거나 이미 조사 등이 진행 중인 사건·사고를 외부에 알려 사안을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 올해는 투서 못지않게 제보까지 봇물을 이루면서 군 ‘기강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통계적으로는 군내 사건·사고 발생에 따른 징계 건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재 전체적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5년 전과 비교하면 50% 정도로 줄었다”고 밝혔다. 군의 징계 건수는 2015년 6만2359건에서 2019년 4만2038건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매년 4000∼8000건가량 꾸준히 감소한 결과다. 혹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제보가 많아져 군내 사건·사고가 많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계상으로는 감소한 ‘하극상’ 사건의 경우, 형사사건화된 건수는 2015년 63건에서 2019년 217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 비행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육군에서는 상병이 상관인 여성 중대장을 야전삽으로 폭행하고, 부사관이 위관급 장교를 성추행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휘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휘관 의중을 파악한다며 군단 지휘통제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회의 내용을 엿듣다 수사를 받고 있는 대령의 사례가 언론에 제보됐다. 전방 부대에서 병사들이 3급 기밀인 암구호를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렸다가 적발된 사례도 마찬가지다. 전투력 유지보다 부대원 관리가 먼저고, 투서와 제보에 흔들리는 군대다.


정 장관은 국회에서 “젊은 장병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지금은 모든 것이 드러난다”면서 “법규에 따라 정확하게 지휘권을 보장해주고, 그러면서도 장병들 인권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선진화된 병역으로 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군은 최근 연일 ‘지휘관 대책 토의’를 열어 ‘기강’과 ‘소통’을 함께 확립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장 지휘관들은 부대의 전투력 유지보다 부하들 ‘모시기’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명확하게 일벌백계하는 미군을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주한미군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수칙을 어긴 상병을 훈련병으로 강등시키고 2개월 급여를 몰수했다. 승인 없이 기지 밖 술집에 가고, 기지 울타리 구멍을 통해 부대에 복귀한 일병 등 3명도 계급을 훈련병으로 강등하고, 역시 2개월간 급여를 몰수했다. 그러나 모병제로 입대한 지원병이 아닌 징집병인 한국군 병사에게 미군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 군대에서는 병사들 사이에 서로를 부르는 명확한 호칭도 없다. 같은 부대원이 아니라고 병장이 일병에게 “병사님”이라고 부른다. “아저씨” “저기요”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게 요새 군대다. 혹자는 장병들의 군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명령에 불복종하는 병사 1~2명만 즉결처분해도 군기는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가 되더라도 지휘관은 부하를 즉결처분할 수 없다. “돌격 앞으로!” 명령에 불복해 도망가더라도 군법회의에 넘겨 사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6·25전쟁 초기에 있었던 분대장급 이상 간부의 즉결처분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휘관에게는 평소에 기강과 소통을 확립해 유사시 죽음을 감수하고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차라리 휴대폰을 병사들 손에 쥐여주는 게 부대 관리가 수월해서 좋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간부들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하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으면 과거 일까지 들먹이며 상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일선 지휘관들도 면피성 상부 보고가 일상화돼 있다. 


자신이 책임지고 종료할 수 있는 사안도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하고 본다. 혹시라도 나중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동티가 날까 우려해서다. 군 고위층도 가벼운 경고조치면 될 만한 사안에 대해서까지 툭하면 감찰과 일벌백계를 강조한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탓이다.


군 부대 경계를 한번 보자. 육군 대대급 부대의 경우 주둔지가 보통 5000~1만평(33만㎡) 정도이며 외곽 울타리 둘레만 3~4㎞다. 100m 간격으로 경계병력 2명이 근무하는 초소를 둔다면 교대병력까지 감안해 200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30명 정도가 교대로 2~3㎞를 경계하는 게 현실이다. 해·공군 기지는 육군보다 수십~수백배 넓다.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철통같은 경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탄약고와 주요 군사장비 등 핵심 경계시설 위주의 3선 방어개념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투입하면 울타리 경계까지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경계 책임 한계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규정이 있어야 하지만, 일단 사건이 터지면 부대장은 희생양이 되는 게 현실이다. 군 최고위층이 지시한 ‘특단의 대책’은 주한미군처럼 기지 울타리를 높은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친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나올 수가 없다. 희생양 찾기를 하게 되면 군 인사가 지휘관의 능력과 관계없는 ‘복불복’ 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그런 탓에 나름 최선을 다하는 지휘관이 대다수겠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일어날까 두려워 훈련을 건성건성으로 하는 지휘관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군대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더 포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 정부가 30년간 숨겨온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다. 미국 여성 최초로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을 지냈던 캐서린 그레이엄과 편집국장을 지냈던 벤 브래들리가 등장하면서 기자들의 세계가 나오고, 정부의 취재 방해가 나오고, 특종이 나오는 영화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등 명대사도 많이 등장한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기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영화다. 직업이 기자인 데다 흥미를 끄는 요소가 많아 영화를 두 번 봤다.


영화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닉슨 대통령 시대가 배경이다. 그 유명한 통킹만 조작 사건 등 당시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담긴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타임스 특종 보도로 세상에 폭로되면서 미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법원에서 공표금지 명령을 얻어내고 뉴욕타임스를 국가반역죄로 기소하겠다고 윽박질러 관련 보도를 금지시킨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후속 보도를 못하게 되지만, 경쟁지 워싱턴포스트는 베트남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입수에 사활을 건다. 결국 4000장에 달하는 기밀문서를 손에 쥔 여성 발행인과 편집국장이 “그들(정부)의 거짓말을 이제 끝내야 한다”면서 신문사의 모든 것을 걸고 보도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추가 폭로로 뉴욕타임스와 함께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받게 되고 대법원은 6 대 3으로 언론의 손을 들어준다. 결과적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고 실태를 알리는 ‘위대한 폭로’라고 불릴 만한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펜타곤 리포트라고도 불리는 펜타곤 페이퍼는 1967년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국방장관의 책임 아래 18개월에 걸쳐 작성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의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1967년’이다. 맥나마라는 비록 국민들에게는 거짓말을 했지만, 베트남전쟁의 실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그랬기 때문에 펜타곤 페이퍼는 베트남전쟁의 정확한 사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정부가 한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나마 외교문서는 본국과 주재국 대사관이 주고받은 게 있어 나름 정확하게 사실이 기록되고, 시간이 지나면 공개된다. 외교부가 지난달 31일 작성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24만여쪽을 원문해제한 게 대표적이다. 일반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일이나 아키히토 당시 일왕의 방한 관련 사항 등 노태우 정부 초기의 주요 이슈들이 흥미롭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2만8000여권(약 391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외교안보 부서인 국방부는 어떠한가. 


기자가 출입하면서 겪은 큰 사건만 열거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당장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슈만 해도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침몰사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미군기지 이전 등이다. 그렇다면 이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한 군당국의 기록은 얼마나 있는가. 또 얼마나 정확한가.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나마 백서를 만든 천안함 사건은 일반 국민들에게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결과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하지만 그 기록이 100% 정확한가에 대해서는 논란거리다. 99%의 과학적 뒷받침이 있다 하더라도 1%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의지로 대신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과학적으로 풀지 못한 미진한 부분조차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백서를 제작했다. 그러다보니 1%의 부족한 부분 탓에 99%의 사실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천안함 사건은 백서라도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백서는커녕 나중에라도 교훈이 될 만한 기록을 남겼는지 의문이다. 중국의 경제보복을 초래하고 국론을 분열시킨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과 관련 인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군부의 허술한 대처 과정도 당시 상황을 아는 관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달될 뿐 정확한 기록이 없다.


과거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맺은 군사 양해각서는 밀실처리됐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한국이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는 UAE를 포함해 사실상 2개국”이라는 말까지 했다. 군 안팎에서 나돌았던 한국과 UAE의 상호방위조약설은 언제 다시 활화산이 돼 문제가 될지 모른다.


군은 군사기밀이라는 방패 뒤에서 대부분의 정책 사안을 밀실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예민한 정책 사안을 담당하는 인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기록은 잘 남기려 하지 않는다. 단순한 팩트 체크를 위해 기자들이 정보공개 요청을 해도 ‘군사적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개가 제한된다는 답변을 받기가 일쑤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다룬 펜타곤 페이퍼 작성을 지시했다. 기록은 상황을 정확히 읽게 하고 나중에라도 유사한 경우에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국방부는 늦었지만 우선 ‘사드 페이퍼’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한 군대는 훌륭한 장교들이 만든다. 훌륭한 장교는 유능한 전문직업군인이다. 훌륭한 장교단은 올바르게 정립된 민군관계에서 나온다. 고급장교들이 인사철만 되면 여기저기 민간 권력기관을 기웃거리거나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실력자를 찾는 군대라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 반대 논리도 성립된다. 권력기관이나 실력자들이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양성한 고급장교들로 하여금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게 만든다면 그 군대 역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우리 군은 오랜 세월 동안 사조직과 연줄, 파벌 등으로 인한 폐해를 겪어 왔다. 김영삼 정부 이후 사조직이 공식적으로 정리됐다고 했으나, 그 이후에도 군 인사에서 이런저런 연줄과 파벌은 작동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군 최고책임자는 진급을 사적관계 보상으로 이용했다는 내부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노무현 군부’의 색깔을 뺀다며 전 정권 때 잘나갔던 장성 상당수를 1차 진급에서 탈락시킨 후 한직으로 밀어냈다. 군내에서는 ‘전 정권 군부 수혜자 명부’, 소위 ‘살생부’가 나돌아다닌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육본 인사참모부장(소장)의 사표 제출 파동까지 일어나는 등 내홍으로 시끄러웠다. 과거 정권에서 잘나갔던 고급장교들의 빈자리는 당시 군 최고실력자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은 역전됐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관 등으로 청와대에 파견근무를 했던 고급장교들은 진급 ‘0순위’였다. 대신 과거 정권에서 잘나갔던 인사들은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역차별’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이라이트’는 박찬주 현역 육군대장의 구속이었다. 본래 박 대장에 대한 수사의 본질은 공관병 갑질 의혹이었다. 국방부는 박 대장의 전역지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법령에도 없는 임시 보직인 ‘육군인사사령부 정책연수’를 명령했다. 이후 수사는 별건으로 이어졌고, 갑질이 아닌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수갑을 찬 그의 모습이 일반에 공개됐다. 현역 육군대장이 수갑을 찬 모습을 지켜본 고급장교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대법원은 박 전 대장 사건 상고심에서 뇌물 혐의는 무죄로 보고, 부하 중령에게 보직 청탁을 받고 들어준 혐의만 김영란법 위반으로 유죄를 인정하여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수사의 단초였던 직권남용에 대해서는 부인의 ‘갑질 혐의’와는 별개로 박 전 대장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현역 육군대장의 자진전역까지 막고 수갑을 채웠던 박 전 대장에 대한 수사는 결과적으로 ‘망신주기’였다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현역 신분의 대장을 포승줄에 묶어 대중 앞에 세운 것은 과거 노무현 정부의 ‘신모 대장 사건’의 재연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 검찰단은 업무상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로 신모 육군대장을 구속 기소하고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 역시 수갑을 찬 채로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 공개됐다. 그러나 결과는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벌금형에 그쳐 석방됐다. 그는 법정 최종진술에서 “금전적인 문제만큼은 부대와 부하를 위해 사용했다고 생각했고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기꺼이 책임지겠다”며 “38년 동안 쌓아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비통하다”고 말했다. 당시까지는 군내에서 부대 지휘관이 부대 운영비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게 오랜 관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구속 수사는 다른 군 장성들을 겁주기 위한 ‘표적 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같은 잣대를 들이댈 경우 혐의를 피할 수 있는 부대 지휘관은 거의 찾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국방부 수석검찰관은 최강욱 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이다.


노무현 정부 때나 문재인 정부 때나 수갑을 찬 현역 대장이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 공개되자 일선 지휘관들은 권력에 찍힐까 봐 ‘말 조심’ ‘행동 조심’에 나섰다. 정부의 거리낌 없는 장군 인사에 ‘토’를 다는 장군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30대 초반의 청와대 행정관과 50대 후반의 육군참모총장이 커피숍에서 만나 군 인사 관련 사항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나도 군인들은 뒤에서나 수군거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또 하나의 특징은 청와대나 총리실에 근무하는 장성들의 ‘별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청와대 경호실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예비역 중장이다. 안보실 1차장은 과거 정부에서는 주로 국정원이나 외교부 출신이 맡았던 자리였고,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예비역 준장이 맡았던 직위다. 총리실 대테러센터장은 김혁수 육군중장이다. 전임자는 예비역 준장이었다. 두 자리 모두 ‘별 하나’ 자리에서 ‘별 셋’ 자리로 껑충 뛰었다.


현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은 김현종 육군중장이다. 청와대는 육군소장이던 그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계속 근무하게 하고 있다. 국방개혁비서관 계급을 ‘별 둘’에서 ‘별 셋’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과거 대통령 국방비서관 직제 때는 주로 ‘준장’이 임명됐던 직위다. 과거 정부에서는 ‘별 하나’인 준장 자리였던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별 둘’인 소장 자리로 높였다.


군 안팎에서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장군들의 계급이 역할에 견줘 너무 높다는 여론이 주류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전·현직 장군들이 계급에 걸맞은 역할을 찾으려다 ‘월권’할 우려도 크다. 


지난해 북한 목선의 삼척항 정박 사건 때 빚어진 문제점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장군들은 ‘별 숫자’로 업무를 보는 곳이 아니다. 군내 상황의 종합·정리·보고가 주업무다. 설마 청와대가 ‘폼’ 재려고 ‘별 인플레이션’을 한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현 정부 청와대의 군 인사에 대한 인식은 곱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적어도 삭막하고 외로운 전방고지와 망망대해, 순간이 생명을 가르는 하늘에서 청춘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장교들에게는 그렇게 비치고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바야흐로 ‘버전 업’ 시대다. 운동화까지 ‘2.0’이니 ‘3.0’이니 하면서 버전 업이 됐음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 국방개혁도 ‘버전 업’을 했다. 참여정부 ‘국방개혁 2020’은 군 구조·전력체계 및 3군 균형발전, 병영문화 발전, 문민화 등을 목표로 한 청사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선언했다. 국방개혁 2020을 기반으로 진화 발전시킨 ‘국방개혁 2.0’을 국민에게 내놓은 것이다.  


이는 군 지휘구조 및 개편, 방산비리 척결, 상비병력 감축, 병사 복무기간 단축, 무기체계 개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이 국방개혁 2020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개혁이라고 공언했다. 현 정부 임기 내 완결을 목표로 하는 진화적 개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비병력을 줄이면서 병사 복무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은 전체 전력지수 강화 측면에서 보면 모순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활동 인구 증가 등 국가 경쟁력 강화의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병력 자원 문제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국방개혁 2.0의 핵심으로 다뤄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 중이던 1862년 9월17일에 시작된 북부연방과 남부동맹의 앤티텀 전투는 양쪽 모두 약 2만3000명의 전사상자 및 행방불명자가 발생해 미국 역사상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 이는 남군이 나폴레옹이 구사했던 결정적 순간에 적을 여러 방향에서 타격을 하는 ‘분진합격(分進合擊)’ 기동에 집착한 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기갑부대와 맞서다 전멸하는 모습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로 알려진 폴란드 기병부대는 최고 정예부대였다. 그들은 우연히 조우한 독일 기갑부대와 격전을 벌여 순식간에 100여명이 전사했다. 독일군 전차들에 포위당한 폴란드 기병대가 항복 대신 돌격을 선택한 결과였다. 현장에 있었던 이탈리아 기자는 ‘바보 같은 폴란드 기병들의 돌격’이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6·25 전쟁은 ‘고지전’이었다. 고지 점령을 위해 이동하는 수단도 대부분 걸어서였다. 이제는 보병이 10시간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산악 목표도 헬기로 이동하는 공중강습 병력은 불과 10분이면 갈 수 있다. 작전지역에서는 소형전술차량이나 신형 바퀴식 장갑차로 이동하는 시대가 됐다. 한정된 인적자원으로 전술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동력이 필수이기에 나온 결과다.


군사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초연결 지상전투 체계가 접목된 미래 전장 환경에서는 전투 현장에 인간 병사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지금도 정찰 정보 획득은 육안이나 쌍안경 수준에서 무인정찰 차량, 드론과 무인기, 중·고고도정찰기 등 각종 정찰자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참모는 적군의 규모와 위험가중치, 아군의 현재 상황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최적의 전투방안을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정보 수집과 분석, 판단, 결정 등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과거 수십시간에서 이제는 수분이면 끝나게 된다. 거의 실시간 상황 파악과 대응이 이뤄지게 된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과거처럼 전쟁을 하면 병사들의 피로 대가를 치른다. 현대전에서도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과거 전사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장군들이 새로운 전장 환경에 적응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병사들의 몫이다.


이제 군에서 가장 비싸고 소중한 자원은 사람이다. 오늘날 군대는 인해전술처럼 ‘사람을 가장 싼 자원’으로 투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미군의 예를 보면 20대 병사가 부상할 경우 국가가 부담하는 평생 치료비가 680만달러라고 한다. 해마다 들어가는 13만6000달러의 치료비를 50년 동안 더한 결과다. 여기에 다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서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비용까지 ‘+α’로 더하면 병사 한 명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부상 병사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주변의 아픔은 측량하기 힘든 부분이다. 결국 병사들의 생존성을 높이는 개인 방호 장비와 견마로봇, 드론 등이 비싼 것처럼 보이지만 전장에서의 인명 손실에 따른 손익계산과 견주어 보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병사의 ‘몸값’은 갈수록 뛰고 있다. 사상자 발생은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는 시대다. 게다가 한국군은 병력자원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장병 1인이 지켜야 할 국민의 수도 올해 106명에서 2022년이면 134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자녀 가정도 ‘1차 인구절벽’ 시대에 접어드는 2년 후면 전체 가구의 67%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누군가의 아들딸들이 군에서 다치거나 사망하면 그 후유증은 과거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국방개혁 2.0’이 인력동원 중심 군대에서 기계화·기동화, 나아가서 첨단지능형으로 나아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중국군도 400만명에서 최근 상비병력 200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병력 줄이기가 대세다. 그러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안보환경을 보면 아직까지는 인구 대비 대규모 병력 유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올해 국방예산이 50조원을 넘어서는 등 세계 10위권의 국방 예산이라고 하더라도 병력 전부를 첨단 전력으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탓이다. 게다가 첨단 전력 무장 또한 약점이 있다.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첨단전력을 만나면 손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방개혁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사람이 비싼 자원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 ‘키세(KISE)’의 승리였다. 정부는 지난 11일 “제200차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에서 한·미 양측은 오염 정화 책임과 주한미군이 현재 사용 중인 기지의 환경관리 강화 방안, SOFA 관련 문서의 개정 가능에 대해 협의를 지속한다는 조건하에 4개 기지 즉시 반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환 합의는 이날 즉시 효력을 발휘했다. 이와 함께 용산 미군기지 반환을 위한 협의 절차도 본격적으로 개시됐다.


키세는 미측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논리였다. 키세는 미국이 내세운 반환기지 환경오염 치유기준인 ‘KISE(Known·Imminent·Substantial·Endangerment to Human health)’를 말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인간 건강에 대해 알려진·임박한·실질적인·급박한 위험’을 의미한다. 그동안 10년 넘게 한국 측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영향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미국 측은 키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해 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부는 반환되는 기지들의 환경오염 정화비용으로 추정되는 1100억원을 먼저 우리가 부담한 뒤, 차후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비용 부담과 책임 소재 등을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미측이 협의를 지속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진 불투명하다. 미측은 ‘배째라’식으로 10년을 넘게 버텨 문제가 된 기지의 열쇠를 한국 정부에 넘겼다. 이후 협상에서 미측이 정화비용을 부담하리라 여기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말이 좋아 ‘선 환경정화비용 부담, 후 분담금 청구’다. 사실상 안 주겠다고 버티면 그만이다.


키세는 한·미 간 문화 차이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키세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환경폐기물을 묻을 곳이 많은 미국의 환경오염 치유기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키세를 반영했다가는 당장 환경단체가 들고 일어날 일이다.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국면에서 미군기지 반환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동시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했다는 점을 은근히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측이 무시하면 그만이다. 지역 숙원사업 해결 차원이라면 10년 넘게 이 문제를 왜 질질 끌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미국은 한국 내 기지 반환 과정에서 비용을 분담할 경우 향후 전 세계 미군기지의 반환 시 적용할 선례가 된다는 점 때문에 환경정화비용 부담에 확실히 선을 그어왔다. 실제 SOFA에 환경조항이 신설된 2003년 이후 미국은 지금까지 80곳의 반환 대상 미군기지 중 54개 기지를 반환하면서 환경정화비용을 단 한 번도 분담한 적이 없다. 미측 입장에서는 기지를 반환하면 이미 협상은 종료된 거나 마찬가지다. 당장 환경단체들은 ‘미군에 면죄부를 줬다’며 반발하고 있다.


용산기지 등 반환되지 않은 나머지 22개 기지 역시 이들 4개 기지처럼 한국 정부의 ‘선 비용 부담·후 협의’로 갈 것이다. 여기서도 미국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군이 그동안 마구 버린 기름과 중금속 등으로 야기된 오염의 정화비용을 한국이 떠안고 갈 것이라는 말이다. 예상대로 주한미군 보도자료를 보면 오염 정화 관련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 의도를 거스르지 않았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어떤 주체적인 결정이나 선택도 미국은 용납하지 않았고,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조건부 연장 결정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GSOMIA 종료 선언을 지속하는 역량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GSOMIA 종료 유예를 실용적·전략적 선택을 했다면서 ‘솔모론의 지혜’인 양 포장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정부의)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적절한 카드로 당시 잘 활용됐다”고 평가했다.


GSOMIA는 이번 기회에 그 정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일 양국 간 군사비밀보호협정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행정부와 입법부가 모두 달려들어 GSOMIA 종료를 막았다. 제임스 리시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에서 “GSOMIA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지난달 15일 서울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회의 종료 직후 열린 양국 국방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GSOMIA의 만료로 이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 GSOMIA 체결 당시에는 중국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한·미·일 3각 동맹을 만들어 중국을 봉쇄하고자 GSOMIA 체결을 압박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이는 그동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문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이 동등한 지위를 지니는 한·미·일 3각관계도 아니고 미국을 정점으로 일본을 중간 파트너로, 그리고 한국을 제일 말단의 하위 파트너로 하는 수직적 동맹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GSOMIA의 조건부 연장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정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는 일본의 태도를 보고 종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는 지난 9월 말 미 대사관저에서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소속 여야 의원 10여명을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좌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게 사실이냐”라고 물은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국방부가 F-35 추가 구매를 시사하는 등 문 대통령이 미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좌파’여서 GSOMIA를 종료하려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상식밖의 무례였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키세나 GSOMIA 유지처럼 압력에 굴복하는 동맹의 미래는 밝지 않다. 동맹은 상호 이익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강화된다. 한·미동맹 자체에 비대칭 성격이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 심기를 건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가 심각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동맹이 어떻게 정상적인 동맹이겠는가. 미측에 끌려다니면서도 자주성을 발휘한 것처럼 포장하는 정부도 한심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교육방송 EBS가 동양인과 서양인 간 사고방식의 차이를 비교하고 그 이유를 찾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원숭이와 판다, 바나나 등을 놓고 그룹으로 묶는 실험을 통해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를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원숭이, 판다, 바나나 등을 놓고 셋 가운데 둘을 묶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피실험자들에게 던졌다. 한·중·일 3국의 동양인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엮었다. 동양인의 경우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 관계라는 이유로 이 같은 조합을 선택했다. 그러나 서양인은 원숭이와 판다를 선택했다. 둘 다 ‘동물’이라는 개체의 속성에서 공통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심리학자를 포함한 과학자들은 이 같은 차이가 개인적 성향에서 오는 게 아니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즉 동양인은 사물을 볼 때 전체 속의 조화를 중시하고 서양인은 각 사물의 개별성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동료들 사이에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있었다. 동료들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있는데 가운데 서서 혼자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해 동양인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양인은 행복해 보인다고 해석했다. 동양인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분석했으나, 서양인은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주변인들과 별개로 간주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서양인들과 만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한·미관계를 취재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다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갈등과 오해를 많이 지켜봤다. 멀리는 ‘미선·효순양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고 촛불시위까지 벌어졌을 때 한·미 간에 심각한 이슈가 될 것으로 직감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관계자를 비롯해 미국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양인 관점에서 단지 국도에서 일어난 하나의 교통사고가 왜 국가적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뒤늦게 미군이 한국적 정서를 파악하면서 수습됐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주한미군의 ‘함께 갑시다(Go Together)’ 프로그램이다.


리처드 니스벳이 쓴 책 <생각의 지도> 역시 동양문화권과 서양문화권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저자는 무역을 우선시했던 서양인들에게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킬 수 있도록 논리적인 사고가 요구됐고, 농경을 중심으로 한 동양인들은 논쟁보다 타협하는 문화를 발전시키도록 유도했다고 분석했다.


전시작전권 전환이나 유엔사 문제,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한·미 간 협상에서도 양측은 접근 방법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한국 측은 현안을 전체적으로 보는 반면 미국 측은 철저히 세부 사안별로 분리해 분석해서 접근한다. 그러다보니 한국 측은 디테일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 심지어 “한·미동맹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미측의 요구를 다 수용하면 미국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현직 장군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맹목적인 ‘미국 바라보기’를 틈타 미측이 무리한 요구를 두루뭉술하게 관철시킨 사례도 여러 차례다.


우선 전작권 전환과 유엔사 문제를 보자. 지난 8월에 실시했던 후반기 한·미 지휘소훈련 기본운영능력(IPC) 검증 연습 중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데프콘 3’ 시뮬레이션 상황에서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평시 유엔사 교전규칙을 적용하겠다고 나서 한국군 합참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반면 합참은 평시작전권이 1994년 한국군에 이양된 만큼 유엔사령관의 요구는 월권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결국 미측의 요구대로 훈련은 진행됐다.


주한미군 최선임장교인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어 모자를 4개 쓰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이양되면 한미연합사령관직은 한국군 4성 장군이 맡게 된다. 이 경우 한반도 ‘데프콘 3’ 단계를 누가 통제하느냐는 문제가 이번에 제기된 것이다. 현재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고 있어 한반도 전투준비태세가 ‘데프콘 3’로 격상된다 하더라도 지휘권에 문제가 없지만,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 각각 다른 사람이면 이번 훈련에서처럼 권한 다툼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미군은 치밀한 논리를 준비했고, 한국군은 전혀 준비가 없었다. 결국 한국군은 전작권 전환이라는 큰 틀만 주장하다 세밀한 부분까지 치고 들어온 미측의 논리에 밀린 셈이 됐다.


유엔사가 작전사령부로 변신할지 여부를 놓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유엔사는 “유엔사를 작전 기능을 가진 사령부로 만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유엔사의 전투사령부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당시 합의문에서 작전통제권을 이양(handover)한 게 아니라 위임(reference)했다. 이는 유엔사 작전지휘권이 소멸되지 않았으며, 유엔사 작전통제 아래 주한미군과 한국군뿐만 아니라 주일미군까지 한반도 유사시 동원이 가능하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도 한국군이 미측의 선의만 믿고 향후 협상에서 명확한 합의를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경우 미군은 과거의 합의문을 들고나올 개연성이 있다. 문서로 뒷받침되지 않는 말의 약속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주로 예정된 제11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2차 회의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직간접적인 주한미군 운용비용이 연간 50억달러(약 6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50억달러는 전략자산(무기) 전개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 액수다. 그러나 SMA는 인건비와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3개 항목으로만 구성돼 있다. 미국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은 지불할 근거가 없다. ‘동맹 비용’이라는 두루뭉술한 미측의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다. 애초부터 이런 요구는 미국 스타일도 아니다. 또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는 경구는 한·미 협상에 유효한 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병력 50만명 시대’가 불과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18일 인구감소에 따른 ‘군인력 획득체계’에 대한 개선 방침으로 ‘첨단 과학기술 중심 전력구조로 개편’ ‘병역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전환복무(의경·해경·소방 등) 및 대체복무(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 등) 적정수준 검토’ 등을 내놓았다. 여군 활용 확대 방안 모색, 부사관 임용제도 개편 및 귀화자 병역 의무화 검토도 포함시켰다.


수년 전부터 나온 대책의 재탕이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방의무 방안을 찾아야 할 때인데도, 병역자원 숫자에 집착하는 과거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다. 시대에 맞게 병과제도를 혁신하는 군 내부의 소프트웨어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역자원 부족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현역자원 부족을 막기 위해 무리한 현역 판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국방부 등은 적정한 현역 판정률을 평균 83%로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 부작용으로 매년 현역병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조기 전역하거나 자살 예방을 위한 관리 프로그램인 그린캠프 입소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높은 현역 판정률에 의한 병역 약자들의 군 입대로 병역 부적합자의 조기전역이 연간 7000명, 그린캠프 입소자가 4000명, 입실자가 3만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복무기간을 21개월로 가정해도 오는 2020년 군의 규모를 52만명으로 유지하려면 현역 판정률은 92.4%까지 높아지게 된다”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감소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현역 판정률이 90%를 넘는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군 입대를 해야 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는 현역 판정을 할 때 병력이 모자라면 신체 기준을 낮추고, 여유가 있으면 높이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서 죽였다.


이제는 국방부와 병무청도 상상력을 발휘해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도 기존 외교 문법의 틀을 벗어난 상상력이 만든 세계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듯이 병무행정도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는 군대 가고 누구는 안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누구라도 군 복무를 기꺼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징집이 가능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모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근무할 수 있는 맞춤형 군대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수표 컴퓨터 배치와 같은 산술적 평등에서 벗어나 적재적소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병역자원을 컴퓨터 무작위 배치가 아닌 적재적소에 배치하도록 병역자원 관리개념을 바꿔야 한다. 병역자원 배치도 국가와 군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과 맞물려 이뤄질 수 있다. 가령 군에서 컴퓨터 운용과 사이버전을 수행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전공자를 선발해 실무 훈련을 시켜 활용해야 한다. 병사들은 전역 후에도 관련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 물론 병사 모두에게 전문성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군대가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굳이 28세로 군대 징집 연령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스라엘군의 ‘9900부대’는 정보국 산하 리얼타임 인텔리전스 센터의 영상정보관리조직이다. 이곳에서는 30여명의 병사가 위성 사진 판독 등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무집중도와 전문성은 최고 수준이다. 그 배경에는 18~22세 고졸 인터넷 및 게임 마니아들이 배치된 데 있다. 자폐증세가 심한 ‘서번트 지니어스’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군대에서는 장애인이라도 얼마든지 근무할 수 있는 보직을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여러모로 한국군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스라엘군은 우수한 인재가 군복무 기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군도 이를 벤치마킹해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를 도입했지만, 최상위 고교 졸업생 50명을 뽑아 양성한 후 국가 핵심 두뇌로 양성하는 탈피오트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은 엘리트 음악인을 위한 ‘아웃스탠딩 뮤지션 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일부 소수 인원에게만 혜택을 주는 한국의 병역특례제도와는 다르다. 해당 병역자원들은 5주 기초군사훈련 후 하루 6시간을 근무한다. 이들은 퇴근 후 레슨 및 개인연습을 할 수 있고 90일간 출국도 가능하다. 대신 출국기간만큼 복무기간이 연장된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에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군 병과제도는 원정군 개념의 미군을 본떠 만든 6·25 당시 시스템이 4차 혁명시대인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전적 재편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전장인 한국군은 독일군처럼 재정과 군종, 법무 등 민간위임이 가능한 분야는 민간인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도 병력 수를 줄이는 하나의 방안이다.


인구절벽으로 모자라는 자원을 모병제로 충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일종의 징병제와 모병제의 혼용이다. 필요하다면 남녀평등 차원에서 여성자원도 병사로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 


병역자원을 모병하는 데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 군대도 하나의 직장이다. 입대부터 적정 보수를 받으며 장기 복무할 전문 병사가 필요하다. 모병 자원은 숙련도와 동기부여가 높아 군 전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저소득층만 주로 지원할 거라는 우려에 대해선 군대를 어엿한 일자리로 자리매김해주고, 장기 복무에 대한 사회적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대학 특별전형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징병·모병 혼합제로 전환할 경우 북한과의 전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구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필요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등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반도에는 지금 시계 두 개가 ‘최종시간’을 향해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먼저 ‘연장이냐, 파기냐’를 결정해야 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시계가 오는 24일을 마감으로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다. 그 옆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조치의 시곗바늘이 효력 발생일인 오는 28일을 향해 재깍거리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GSOMIA 파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데 ‘안보협력국’을 전제로 한 GSOMIA 유지는 상호모순이기 때문이다. 반면 GSOMIA 파기는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일부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틀을 유지하면서 일본에 대한 대응조치도 되는 방안으로 GSOMIA를 연장하되 ‘정보 공유의 일시중단’을 선언하는 것을 제시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여러 입장이 있지만, 이제는 정부가 ‘GSOMIA 조건부 파기’를 하루라도 빨리 선언해야 할 때이다. 오는 24일까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GSOMIA는 파기될 수밖에 없다고 발표해야 한다.


한국은 GSOMIA를 파기해도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을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GSOMIA를 파기하면 미·일도 TISA를 통한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 틀이 무너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GSOMIA는 한·미·일 안보협력 사안의 전략적 옵션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GSOMIA는 2016년 한국이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미국이 강요한 협정이다. 당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가 GSOMIA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GSOMIA는 표면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응 차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GSOMIA 체결을 압박한 당사자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GSOMIA 유지를 위해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 하는 게 도리다. 


세부적으로 보면 GSOMIA는 호혜적 정보 교환이지만, 현재는 일본에 매우 유리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은 조기경보가 핵심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제공하는 정보가 일본 안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GSOMIA가 파기되면 일본의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GSOMIA를 파기하면 한국이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미국의 동북아 핵심전략은 더욱 친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는 GSOMIA가 한·미·일 관계의 핵심이며, 미국은 한·미동맹보다 미·일동맹을 더 중요시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즉 GSOMIA를 파기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한국은 미·일동맹의 종속변수 정도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미·일 관계는 상당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한·미·일 안보구조는 동등한 대칭적인 것이 아니라, 한·일관계를 미·일관계 밑에 두는 계선적인 하부구조로 만들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수직적 한·미·일 계선구도 속에서 GSOMIA가 한국의 전략적 역할과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파기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의 경제침략 도발을 묵인하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12일 지난달 방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을 종속변수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운용하려 하는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라며 “미국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관여를 할 것이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의 말대로 미국이 한·미·일 안보관계보다 일본의 재무장을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면, GSOMIA 파기를 무시할 것이다. 반면 한·미·일 3각관계를 중요시한다면 일본이 경제도발을 중지하도록 나설 것이다. 특히 미국이 만일 일본과 경제도발을 협의하지 않았다면, 동북아 안보질서를 한·미·일 구도로 가져가기 위한 첫걸음인 GSOMIA의 파기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GSOMIA 카드’는 미국에 한·미·일 안보체제를 유지하려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을 중지시키란 궁색한 요구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다. 미국은 3국 안보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한·일 간 경제전쟁에 개입해 더 이상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 정부는 GSOMIA 파기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중단을 시도해야 한다. 상대방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카드를 사용조차 못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GSOMIA 파기 선언은 일본이 지난달 각의 결정을 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일이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GSOMIA 파기는 또 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동맹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은 상호 신뢰다. 일방적 요구나 양보는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한·미동맹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나치면 지나치다고 이야기해야 동맹이 강화된다. 한·일 간 생존적인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미국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해 GSOMIA 파기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는 비정상 국가다.


설사 정부의 GSOMIA 파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미·일이 아무런 행동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미동맹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의 의미가 나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방위비 분담금 6조원을 준다 하더라도 한·미동맹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눈뜨게 될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서해 행담도 휴게소 인근 해상에서 ‘잠수함 잠망경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지난 17일 군이 보인 태도가 딱 그짝이다. 잠망경 추정 물체 신고는 5시간 만에 신고자의 착각으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는 언론에 두 차례 문자 공지를 하고 상황 종료 후 작전상황 백브리핑까지 실시했다. 이는 과거 사례와 견줘 매우 이례적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합참은 5시간 동안 벌어진 해프닝에 대해 마치 중계하듯 브리핑했다. 고속도로 순찰대원의 신고 순간부터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32사단에 전달된 과정, 신고 내용이 다시 고속상황전파체계를 통해 합참에 전파돼 박한기 합참의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위기조치반을 가동한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장관과 합참의장 주관의 상황평가회가 열렸던 사실도 전달했다. 그러면서 현장 해역 수심 등을 고려할 때 오인 신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해상과 육지에서 수중 침투 상황 등에 대비한 다중 수색·차단 작전을 펼쳤다고 했다. 수로 집중탐색 작전과 대잠초계 작전을 실시하고, 침투자의 이동속도를 고려한 차단 작전도 전개했다는 것이다.


합참은 오인 신고 가능성이 큼에도 관련 상황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개한 배경에 대해 “병력이 현장에 출동하면 외부에서도 알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군의 정상적인 노력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달빛이나 등대에 비친 물체를 보고 신고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사건’ 등을 계기로 불거진 은폐·축소 논란을 고려한 조치라는 점도 밝혔다. 그러면서 출동한 장병들이 다 휴대폰을 쓰고 있고 이후에라도 알려질 부분이라서 설명한 거라고 했다. 최근 북한 소형 목선 사건과 해군 2함대사령부 거짓 자백 등 잇단 은폐·조작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군이 혹시라도 모를 논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라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상세하게 브리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군 당국의 이례적인 ‘친절’은 잇단 경계작전 실패와 은폐·조작 의혹으로 인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정 장관이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대공 수색·탐지 작전 상황을 공개하는 합참 장성들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군 당국의 이 같은 대언론 브리핑은 군의 ‘전략적 소통’, 즉 전략 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에 따라 이뤄진다. SC는 9·11 테러 이후 미군의 전략목표 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강화·유지하기 위한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군은 미군을 모방해 ‘핵심 대상’에게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SC를 활용하고 있다.


군이 규정하는 SC는 “전·평시 국가의 전략목표 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대상의 인식, 신념,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부 차원의 통합된 체계와 과정”이다. 문제는 군이 국민을 상대로 SC를 적용하면서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기보다는 기만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6월 제17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반도 연합훈련을 ‘로키(low-key)’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놓고 국방부는 “연합훈련을 진행하되, 전략적 소통 차원에서 과다한 홍보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헷갈리는 발언이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약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훈련은 과거처럼 고강도로 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만 자제하겠다는 건지 모호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 무능을 숨기기 위한 의도로 필요하다면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미군 병력을 부풀리는 것도 SC에 포함했다. 


이런 사례는 약과다. 북한 소형 목선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불리한 건 숨기고, 변명거리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요새 군의 SC다.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이기적 소통(Selfish Communication)’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탄핵정국 때는 군사뉴스 자료를 집중적으로 뿌려 이른바 ‘시국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군사뉴스를 양산해 탄핵뉴스 꼭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대선정국에서는 안보 위기감을 키우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실제로 탄핵정국 당시 각군 총장들과 해병대사령관의 훈련 지도 보도자료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급증했다.


심지어 댓글 공작까지 SC 일환으로 여겼다. 이명박 정부 때 군의 댓글 공작을 주도한 이태하 전 사이버사 530단장(심리전 단장)은 “한국 대·총선, 미 대선, 러 대선 등 과도기를 이용한 북한·종북(세력의) 활개가 예상된다”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C)에 따라 국가·국방정책 홍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소형 목선 사건에서 보여준 군의 ‘SC 메시지 관리’는 대실패작이었다. 군 수뇌부는 잘못된 SC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책임을 야전군 지휘관에게 떠넘겼다. 윗선이 두리뭉실하게 또는 딴 얘기를 하면 부하가 책임을 안고 가는 꼴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장·용장·덕장은 없었다. 다만 운으로 진급하고 영전했다는 ‘운장(運將)’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묵장(默將)’만 있었다. 국방부가 주요한 언론 관련 대응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한다는 것을 알 만한 군 간부는 다 알고 있던 터다.


국방 역시 공공재다. 최근 군에 대한 불신은 공공재 정보를 선택적으로 알리고 수위를 조절해 여론을 관리하려는 SC에서 비롯됐다. 군 고위층을 두고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자신들을 위한 SC만 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맛에 따라 팩트도 무시하고 여론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른바 SC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된다. 군이 국민의 알권리가 뭔지를 모르는 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호들갑스러운 잠수함 ‘오인 신고’ 브리핑을 보면 아직 먼 길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경계태세 문제점의 해결책에 대한 군의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단 불리한 건 숨기고, 변명거리는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군이 좋아하는 전략커뮤니케이션(SC)이다. 그런 후 장비가 노후화됐느니, 감시전력이 충분치 않느니 하면서 국민들에게 읍소한다. 잘못을 나무라고 때릴 땐 때리더라도 안보를 위해 줄 건 줘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그러다보면 책임소재를 놓고 직위해제나 보직해임 등으로 한바탕 푸닥거리를 벌이고, 대신 신형 무기나 장비를 손에 쥔다. 마치 무슨 태권도 품새라도 펼치는 듯 순서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국민감정과 정치권 질타에 편승한 대증요법만 난무하고, 정확한 현상 진단은 뒷전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사건 때로 돌아가보자. 북의 연어급 잠수정에 해군 초계함이 침몰하는 역대급 참사가 발생하자 군은 여러 정황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국방부는 천안함이 침몰하는 장면이 찍힌 열영상감시장비(TOD) 영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거짓이었음이 금방 들통났다. 이후 언론 브리핑도 계속 헛발질이었다. TV로 생중계되는 브리핑에서 국방부 대변인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기자들의 항의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합참의장을 해임하고 간부들을 줄줄이 징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군은 서해에 배치된 대잠 소나가 구형이어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빠뜨리지 않았다. 해병대는 TOD 노후화를 주장하며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음탐 장비와 초계함의 레이더 교체, 소해헬기 도입, 대포병레이더(AN/TPQ-36·37)와 K-9 자주포 고정 배치, 신형 TOD 배치 등으로 이어졌다.


2010년 11월23일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업자들과 일부 군인이 국민을 등쳤다.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군은 서북도서 북쪽 북한군, 특히 포병 동향을 24시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240억원을 들여 무인 전술비행선 2대를 도입했다. 그러나 2대 모두 파손되거나 추락했다. 알고봤더니 이 전술비행선은 이미 수년 전 효용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포격 도발을 틈타 들여온 것이었다. 마약 단속 등의 목적으로 주로 미국 남부 해안지역에서 사용하던 전술비행선을 바람이 강하고 기온차가 큰 서북도서에서 운용하겠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


대당 50억여원에 달하는 음향표적탐지장비 ‘할로(HALO)’의 도입은 더 기가 막힌다. 할로 역시 우리 군에 적합한 장비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던 것인데, ‘땜질처방’ 전력으로 긴급 배치됐다. 할로는 파도가 심한 서해5도 지역에서는 파도 소리 등에 간섭을 받아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사막지대에서 최대 성능을 발휘하는 할로를 서해5도에 배치한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군 당국은 지난 17일 “북한 귀순 선박이 높이 1.3m, 폭 2.5m, 길이 10m로, 당시 동해상 파고 1.5∼2m보다 낮아 근무요원들이 파도가 일으키는 반사파로 인식했다”고 했다. 이 배가 엔진 동력으로 삼척항 부두에까지 접안한 사실은 아예 숨기고 통일부 발표를 인용했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면서도 벌써 군 관계자 입을 빌려 ‘해안 감시전력 보강’ ‘견고한 해안 감시시스템 구축’ 등 얘기가 나온다. 해안 감시레이더와 TOD를 대거 해안에 깔겠다는 것이다. 장비가 수명 연한을 넘겼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해안 감시레이더 핵심 부품을 개량하거나 신규 장비를 도입해 대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중에서 해상을 밀착 감시할 수 있는 초계기 전력 보강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TOD는 야간에만 운용하기 때문에 해가 뜬 이후 삼척항에 접근한 북한 귀순 어선 탐지와는 관계없는 장비다. 연안 레이더 탐지 역시 소형 선박이 정지돼 있거나 저속으로 파도 높이로 움직여도 레이더 조사 각도에 따라 희미하게라도 인식되는 것을 근무요원들이 훈련을 통해 체크하는 방법을 익히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근무요원의 숙련도가 더 필요하고, 이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더 필요할 뿐이다.


해안선 영상감시체계와 해양수산청·해경의 폐쇄회로(CC)TV에도 귀순 어선이 촬영되어 있었지만, 남측의 어선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 역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다.


군과 해경은 57시간이 넘는 동안 이 선박의 동태를 식별하지 못했다. 만 이틀이 넘는 동안 우리 영해상을 떠돌아다닌 것을 포착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선박이 간첩선이었으면 어떡할 뻔했느냐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다. 바다에서의 군 작전은 잠수함 또는 고속 침투하는 반잠수정과 같은 해상 침투 세력의 움직임을 포착하거나 적 동향을 주시하는 방향으로 특화되어 있다. 경운기 동력 수준으로 움직이는 소형 목선을 잡는 것은 주요 업무 밖이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군의 몫과 해경의 몫이 따로 있다. 민간 어선의 신고 도움을 받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소형 목선까지 쪽집게처럼 잡아내려면 군의 경계작전 개념과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번 북한 소형 목선 귀순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핵심은 군이 왜 ‘엉터리 브리핑’으로 국민 불신을 초래했느냐였다. 애초에 군의 해상작전 대응의 개념과 한계를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으면 될 문제였다. 그러나 군이 불편한 것을 감추기에 급급해 불신이 확산됐다. SC의 부작용이다.


물론 조사과정에서 허위보고나 은폐행위가 드러나면 당연히 처벌해야겠지만, 그것보다 ‘엉터리 브리핑’을 하도록 뒤에서 조종한 ‘숨은 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우선이다. 


군의 과거 사례를 보면, 사건 파장이 계속 확산되면 흔히 고위층이나 상부로 불리는 ‘숨은 손’은 더 깊숙이 숨고 먼지털이식으로 ‘희생양’을 찾은 일이 다반사여서 하는 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알수 없어.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라쇼몽(羅生門)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숲길에서 무사가 도적에게 살해당했다는 한가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은 모두 제각각이다.


라쇼몽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잊어버린다.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진술 속에는 각자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사건에 모순된 진술과 입장이 공존한다. 심지어 그 진술과 입장이 번복되기도 한다.


지뢰지대 표식.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60·육사 39기)의 ‘영웅 조작설’ 논란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마치 라쇼몽을 보는 듯 하다. 핵심은 이종명 의원이 2000년 6월27일 육군 1사단 전방 수색부대 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할 당시 지뢰를 밟은 후임 대대장을 구하려다 자신도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했을 때의 육군 발표를 둘러싼 의문이다.


사고 초기부터 군 내부에서는 ‘이종명 중령은 영웅이 아니라 징계 대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이 중령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후임 대대장 등을 데리고 수색로를 이탈해 지뢰밭으로 들어가 위험을 자초했다는 주장이 사실인 지 여부를 가리면 이 논란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다.


이게 쉽지 않다.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사고 다음날인 28일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문건에서 사고 장소를 ‘미개척된 3m 지점’으로 특정했다. 작전로가 아닌 곳에서 지뢰를 밟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의원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조사보고서 내용을 부인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박모 대령도 경향신문의 서면 질의에 ‘(사고 장소가) 개척된 수색로였다”고 답변했다. 두사람 모두 당시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군의 공식 보고서 내용을 지금에 와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상황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주장이 모두 엇갈린다. 육군 헌병과 5부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일관되게 이 중령과 후임대대장인 설 중령, 중대장인 박 대위 등이 군사분계선(MDL) 가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MDL 선상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나오면서 일어난 사고”라고 반박했다. 자신이 (MDL쪽으로) 앞에 가고 그다음이 중대장, 설 중령이 맨 뒤에 따라갔다가 돌아나올 때는 역순으로 설 중령이 맨 앞에 나오고 자신이 맨 뒤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당시 중대장은 “진출 및 복귀간 이종명 의원이 제일 선두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선임 대대장이었던 이 의원과 중대장이었던 박 대령, 군 조사보고서가 당시 상황을 놓고 모두 엇갈리는 모순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이 모두 제각각이었던 영화 ‘라쇼몽’의 장면들이 철책선 인근에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 포스터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Courage Under Fire)’의 한 장면. 1991년 1월, 걸프전에 투입된 기갑대대 대대장 나다니엘 설링 중령(덴젤 워싱턴 분)은 알 바스라에서 야간 공격 작전 도중 T-54 적군 탱크라고 여겨진 물체에 포격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가 폭파한 것은 아군 탱크였고, 이 사고로 미군 수명이 숨졌다.


진상조사에 착수한 국방부는 이 사건을 ‘아군에의 오발’로 무마하고 설링 중령을 국방성의 ‘훈장 및 포상업무 부서’에 배속한다. 설링 중령은 작전중 숨진 ‘구조 헬리콥터 조종사’ 카렌 월든 대위(맥 라이언 분)의 명예훈장 자격 여부를 심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월든 대위는 ‘치열한 전투 상황 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용기’로 이 상의 수여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상부에서는 ‘공적이 확실하니’ 명예훈장 수여 승인을 빨리 할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설링 중령은 부상자 구출 작전 도중 월든 대위의 행동에 대한 구출팀 대원들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에 의혹을 품고 불확실한 보고서 제출을 거부한다.


설링 중령은 국방부의 애초 발표가 월든 대위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영웅’으로 포장한 언론 플레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국방부 압력을 거부하고 월든 대위 죽음의 진상과 국방부의 은폐, 조작을 공개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실링 중령의 오발 사건에 대해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결정내리겠다고 협박하지만, 그는 진실을 택한다. 국방부는 공격 받은 아군 전차가 피아식별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사실도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난다. ‘진실의 왜곡과 그것의 규명’이란 점에서 이 영화는 19년 전 지뢰폭발 사고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난주에 육군에 질의했다. 이종명 의원 등을 포함해 당시 지뢰폭발 사고 당시 수색대대원들의 훈장 및 포상이 있었는 지에 대한 문의였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는 “훈·포상은 개인 신상에 관계된 사안으로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육본 법무실의 공식 답변이라는 것이다. 과거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이 의원은 이 사고와 관련해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공적으로 훈장을 수여했는 지 다시 물었더니 육군본부의 돌아온 답변은 “훈장 공적서 보존 기간 5년이 지나 폐기한 관계로 내용을 알 수 없다”였다.


육군은 지난 16일 김승겸 참모차장 주재로 언론대응 대책회의를 열고 “기자 질문에는 ‘검토중’ 스탠스를 유지하고 이슈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가 나오자, 육군은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17번이나 했다. 국방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국방부는 지난 21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방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육군 확인 이후에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시간끌기를 하다 나중에 ‘뭉개버리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검토하겠다”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말은 군이 실제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은 진실을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재인 정부의 공군 출신 국방장관과 학군(ROTC) 출신 합동참모본부의장은 상대적 ‘비주류’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과거 정권이 육군 출신 국방장관과 육사 출신 합참의장을 주로 임명해 온 것과 견줘 하는 비유다. 6·25전쟁을 빼고 육군에서 비육사 출신 대장이 육사 출신 보다 더 많이 배출한 것도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현 정부가 ‘비주류’ 군 고위층에게 맡긴 핵심 미션은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이다. 이들에게 문 정부 임기내 전작권 전환을 책임지라고 한 것이다. 이는 과거 주류인 육군과 육사 출신이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이고, 그 결과 진행이 지지부진하고 사실상 퇴행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임기내 전작권 전환 의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 후 가진 환담에서 한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전 후 70년 가까이 아직도 한미 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독자적 전작권까지 갖지 못한 상황”이라며 “북한의 핵도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도 강한 힘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절치부심(切齒腐心)을 8차례나 언급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예로 들며 “이를 갈고 가슴에 새기면서 치욕이나 국란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새로 ‘별 넷’을 단 군 고위층들은 지난 16일 취임식에서 한목소리로 “전작권 전환 추진”을 강조했다.


과거 10여년 동안 전작권 전환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육사와 육군이 주축인 ‘군 수뇌부’의 소극적 자세가 한몫했지만, 북한의 도발과 위협, 특히 핵무장 능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장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앞세운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였던 탓에 전작권 전환은 후순위로 밀렸다. 북의 현실적 군사위협은 지지부진한 전작전 전환에 대한 ‘핑곗거리’로는 충분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북한의 도발 위협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만큼 군 당국이 전작권 전환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합참도 합참의장 직속으로 ‘전작권 전환추진단’ 편제를 반영하는 등 외견상으로 전작권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군 당국은 올해 한국군 주도의 작전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전작권의 안정적 전환여건을 조성하고 미래연합지휘구조 개편(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초작전운용능력(IOC)을 평가할 때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적용하고, 전환조건을 조기 충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 및 위기관리체제를 규정하는 근거문서와 관련약정도 작성해야 한다.


국방부는 25일 “한미 국방부가 23∼2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5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에서 남북 군사합의 이행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계획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국방부 발표와 설명을 듣고 있자면 ‘무지개 빛’ 얘기처럼 들린다. 무지개 건너편에 뭐가 있는 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비밀이라니 공식 발표 때까지는 세부사항을 알 수 없다. 지상전은 한국군이, 해전·공중전은 미군이 주도한다는 과거 ‘무늬만 전작권 전환’이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확인이 어렵다. ‘막연한 안보’, ‘막연한 국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합참은 이번주에 “근무직원들의 사기진작과 화합, 단결 차원”이라며 매일 반나절씩 4일간 체육대회를 열었다. 직원들간에 서로 얼굴을 익히는 단합의 계기였다고 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서로 얼굴을 모르는 직원이 많았다는 것으로, 합참 기능이 수평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비효율적인 업무환경이라는 반증이다.


합참체육대회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군의 ‘치열한 몰입’과는 거리가 있다. 합참은 체육대회로 친목을 도모해야 하는 단순한 단위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합참은 전쟁을 대비하는 육·해·공군의 최고 군령기관이다. 군정기능까지 겸하는 행동부대인 일선 야전 사단이라면 체육대회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지휘부인 합참은 성격이 다르다. 분야별 전략, 전력·작전기획 등 전문가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간과 관계없이 일해야 하는 군의 ‘고급 두뇌’ 집단이다. 800여명 근무자들이 반나절씩이라고는 하지만 나흘간 단체로 체육대회를 하는 모습은 합참이 한가롭게 비쳐지게 한다. 누가 합참이 ‘절치부심’하고 있다고 보겠는가. 게다가 합참 근무자들에게는 수요일 전투체육의 날을 제외하고라도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1시간씩 체력 단련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옛말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 합참 체육대회는 북의 도발 위협이 없으니까 여유가 생겨 하는 것으로 밖에서는 보여진다. 북의 군사위협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전작권 전환에 군 당국이 ‘일로매진’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러다가 남북관계가 급냉각되면서 북한 도발이 재현되면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의한’이란 단서 조항에 더 힘을 실어주면서 또다시 후순위로 밀려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경우 군의 ‘주류’와 ‘비주류’나 똑같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최근 불법 논란과 함께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강행하고 있는 ‘워라밸’을 위한 테니스장 건설로 시끄럽다.


문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군수뇌부 신고를 받으며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금의 모습을 보면, 군 수뇌부 칼집에서 나온 ‘칼’의 날이 시퍼렇게 서 있을 지 의문이다. 전쟁에 임한 7년 동안 허리 요대를 풀지 않았다는 ‘칠년불해대(七年不解帶)’란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생각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천안함은 진행형이다. 상당수 진실이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지진판 감지기록 시간인 2010년 3월26일 오후 9시21분58초에 멈춰 있다.


이명박 정부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폭침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후 관련 책자도 쏟아졌다.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 관계자나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한 기자들이 저자였다. 그러나 애매모호했던 부분들에 대한 의문점들을 이 책들에서 해소하기란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언론에 ‘천안함의 진실’은 파고들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 공방 대상이 돼버린 대통령의 추모식 참석 여부가 더 큰 취재거리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났는데도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들은 여전히 많다. 왜 합동조사단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들이 상당수인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이라는 발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긴 의문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북한 소행이라는 100% 근거를 찾아내 완벽한 조사를 했다고 발표한 탓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실은 팩트가 모여 만들어지지만 팩트가 취사선택될 경우 진실은 가려질 수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합조단이 수집하고 분석한 증거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이를 조합해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파생시켰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제라도 합조단이 발표한 내용의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러 정황과 증거들을 볼 때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은 98%의 확률로 보인다. 이는 100%에서 2%가 모자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합조단 발표가 100% 과학적 결론이라고 보기엔 미흡하다며 국내외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근거가 미약한 주장도 있지만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학자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부분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침몰됐다는 것을 부인한 게 아니라, 합조단 발표의 과학적 허점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걸어 이 학자들을 비난했다.


문제는 과학적인 허점이 드러나는 2%가 98% 확률을 깨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확실’ ‘단언’ 등 단어가 들어간 확신에 찬 발표였다.


합조단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 하더라도 겸허했어야 했다. 당시 합조단 발표가 확신의 ‘100% 확률’을 채우기에 ‘2%’ 부족했던 사실은 나중에 드러났다. 그런 만큼 ‘최종 조사결과’도 ‘중간 조사결과’ 발표였어야 했다. “98%의 확신이 있지만, 나머지 모자라는 2%의 확률을 채우기 위한 과학적 검증 작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어야 했다.


게다가 조사결과 발표 전에 군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사건 초기에는 “천안함 침몰 영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가 언론 보도로 관련 영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뒤늦게 공개했다. 속초함이 76㎜ 함포로 사격한 대상인 괴물체가 ‘새떼냐 잠수정이냐’를 두고 논란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은 격파사격 영상 일부가 삭제된 사실조차 비밀에 부쳤다. 은폐 사실은 9년이 지난 최근 드러났다. 당연히 이 사실은 백서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설사 기기 오작동으로 녹화영상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1분가량이 삭제됐다 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실제로 기계가 고장난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똑같은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장비 결함 여부를 살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또 포렌식을 통해 지워진 영상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군 당국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군 당국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증거를 찾기 위해 ‘군의관이 백령도 인근에서 발견된 돌고래 사체까지 부검’한 해프닝까지 언론에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증거를 놓고 ‘입맛’에 맞게 가공했다는 의혹은 사지 말아야 한다. 검증한 결과 부식 정도로 봤을 때 1번 어뢰가 1개월 보름 정도 바닷속에 있었다고 발표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국방과학연구소(ADD)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그 어떤 전문가도 그런 결론을 내리고 합조단에 통보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합조단의 발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와 어느 전문가 회의를 통해 나온 것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굳이 논문과 비교하자면 각주가 제대로 달린 것인지를 검증해 보자는 것이다.


군 당국은 미국과 호주, 영국, 스웨덴 전문가가 합조단에 합류해 국제 공조체제하에 합동조사를 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를 도출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합조단에 참여한 국내 인사들은 이들 국가 전문가의 경우 전시가 아닐 때 발생한 어뢰 폭발이 매우 희귀한 사례여서 관련 자료를 연구하기 위해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나 합조단의 종합조사결과는 향후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이다. 깔끔한 북한의 사과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여는’ 미래지향적인 남북관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대신 북한의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측이 꼬투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깔끔한 근거자료가 마련돼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의 천안함 백서나 합조단의 조사결과가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만약 천안함 관련 재판에서 조사결과 발표의 일부라도 부정하는 판결이 나오면 어쩔 것인가. 남은 2%를 최대한 찾아내는 것 역시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방식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