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코멘터리'에 해당되는 글 61건

  1. 2019.09.2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방의무
  2. 2019.08.16 정부는 GSOMIA ‘조건부 파기’ 선언을 빨리하라
  3. 2019.07.19 ‘운장’도 모자라 ‘묵장’까지 등장한 군
  4. 2019.06.21 “국방 SC 쇼는 그만, ‘숨은 손’을 처벌하라”
  5. 2019.05.23 ‘지뢰영웅’의 진실과 라쇼몽
  6. 2019.04.26 군부는 문 대통령의 ‘절치부심’을 이해하고 있는가
  7. 2019.03.29 ‘천안함’은 진행형···‘2%의 진실 찾기’ 계속돼야 한다
  8. 2019.03.05 군 스스로 관성을 깨기 어렵다면…
  9. 2019.02.01 ‘합참 제2작전본부’가 필요하다
  10. 2019.01.28 한일 ‘초계기’ 해결책은 ‘CUES’···군사력 충돌은 손해
  11. 2019.01.04 일본 ‘피해자 코스프레’에 말려들지 말고 국방장관 직접 나서라
  12. 2018.12.07 “한반도 평화에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13. 2018.11.09 ‘꿩 대가리 숨기기’ 군사기밀
  14. 2018.10.12 여군 전투복은 패션의류가 아니다
  15. 2018.09.14 독도함을 ‘국제관함식’ 좌승함으로 하라
  16. 2018.08.21 전사자 유해 발굴의 정치학
  17. 2018.08.06 이임식도 없이 쫓겨난 기무사령관들 "왜?"
  18. 2018.07.31 기무사의 대통령과 국방장관 통화 감청은 불법일까
  19. 2018.07.20 ‘계엄문건’ 보고, 기무사답지 않은 일처리
  20. 2018.06.22 주한미군 숫자도 모르는 ‘깜깜이 한·미동맹’
  21. 2018.05.25 북한 김영철 벤치마킹과 맥스선더 훈련
  22. 2018.04.27 독도함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기대하며
  23. 2018.03.30 ‘김재규 사진’ 못 걸고…장군 수에 목숨 거는 육군총장
  24. 2018.03.02 ‘노회한 승냥이’로 평가받던 김영철의 방남이 남긴 것
  25. 2018.01.29 문재인 정부의 ‘기무’ 사용설명서
  26. 2017.12.29 기무사 감청과 ‘왝더독’
  27. 2017.12.01 ‘더스트 오프’와 한국군 군진의학
  28. 2017.11.13 미 해군의 ‘포토 EX’와 한·미·일 공동군사훈련 딜레마
  29. 2017.11.13 ‘문제적 군인’ ① 김관진 전 국방장관
  30. 2017.11.03 문 대통령과 따로 노는 군국주의 후예들

‘병력 50만명 시대’가 불과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18일 인구감소에 따른 ‘군인력 획득체계’에 대한 개선 방침으로 ‘첨단 과학기술 중심 전력구조로 개편’ ‘병역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전환복무(의경·해경·소방 등) 및 대체복무(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 등) 적정수준 검토’ 등을 내놓았다. 여군 활용 확대 방안 모색, 부사관 임용제도 개편 및 귀화자 병역 의무화 검토도 포함시켰다.


수년 전부터 나온 대책의 재탕이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방의무 방안을 찾아야 할 때인데도, 병역자원 숫자에 집착하는 과거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다. 시대에 맞게 병과제도를 혁신하는 군 내부의 소프트웨어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역자원 부족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현역자원 부족을 막기 위해 무리한 현역 판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국방부 등은 적정한 현역 판정률을 평균 83%로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 부작용으로 매년 현역병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조기 전역하거나 자살 예방을 위한 관리 프로그램인 그린캠프 입소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높은 현역 판정률에 의한 병역 약자들의 군 입대로 병역 부적합자의 조기전역이 연간 7000명, 그린캠프 입소자가 4000명, 입실자가 3만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복무기간을 21개월로 가정해도 오는 2020년 군의 규모를 52만명으로 유지하려면 현역 판정률은 92.4%까지 높아지게 된다”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감소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현역 판정률이 90%를 넘는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군 입대를 해야 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는 현역 판정을 할 때 병력이 모자라면 신체 기준을 낮추고, 여유가 있으면 높이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서 죽였다.


이제는 국방부와 병무청도 상상력을 발휘해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도 기존 외교 문법의 틀을 벗어난 상상력이 만든 세계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듯이 병무행정도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는 군대 가고 누구는 안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누구라도 군 복무를 기꺼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징집이 가능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모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근무할 수 있는 맞춤형 군대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수표 컴퓨터 배치와 같은 산술적 평등에서 벗어나 적재적소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병역자원을 컴퓨터 무작위 배치가 아닌 적재적소에 배치하도록 병역자원 관리개념을 바꿔야 한다. 병역자원 배치도 국가와 군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과 맞물려 이뤄질 수 있다. 가령 군에서 컴퓨터 운용과 사이버전을 수행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전공자를 선발해 실무 훈련을 시켜 활용해야 한다. 병사들은 전역 후에도 관련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 물론 병사 모두에게 전문성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군대가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굳이 28세로 군대 징집 연령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스라엘군의 ‘9900부대’는 정보국 산하 리얼타임 인텔리전스 센터의 영상정보관리조직이다. 이곳에서는 30여명의 병사가 위성 사진 판독 등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무집중도와 전문성은 최고 수준이다. 그 배경에는 18~22세 고졸 인터넷 및 게임 마니아들이 배치된 데 있다. 자폐증세가 심한 ‘서번트 지니어스’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군대에서는 장애인이라도 얼마든지 근무할 수 있는 보직을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여러모로 한국군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스라엘군은 우수한 인재가 군복무 기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군도 이를 벤치마킹해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를 도입했지만, 최상위 고교 졸업생 50명을 뽑아 양성한 후 국가 핵심 두뇌로 양성하는 탈피오트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은 엘리트 음악인을 위한 ‘아웃스탠딩 뮤지션 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일부 소수 인원에게만 혜택을 주는 한국의 병역특례제도와는 다르다. 해당 병역자원들은 5주 기초군사훈련 후 하루 6시간을 근무한다. 이들은 퇴근 후 레슨 및 개인연습을 할 수 있고 90일간 출국도 가능하다. 대신 출국기간만큼 복무기간이 연장된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에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군 병과제도는 원정군 개념의 미군을 본떠 만든 6·25 당시 시스템이 4차 혁명시대인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전적 재편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전장인 한국군은 독일군처럼 재정과 군종, 법무 등 민간위임이 가능한 분야는 민간인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도 병력 수를 줄이는 하나의 방안이다.


인구절벽으로 모자라는 자원을 모병제로 충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일종의 징병제와 모병제의 혼용이다. 필요하다면 남녀평등 차원에서 여성자원도 병사로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 


병역자원을 모병하는 데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 군대도 하나의 직장이다. 입대부터 적정 보수를 받으며 장기 복무할 전문 병사가 필요하다. 모병 자원은 숙련도와 동기부여가 높아 군 전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저소득층만 주로 지원할 거라는 우려에 대해선 군대를 어엿한 일자리로 자리매김해주고, 장기 복무에 대한 사회적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대학 특별전형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징병·모병 혼합제로 전환할 경우 북한과의 전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구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필요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등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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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지금 시계 두 개가 ‘최종시간’을 향해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먼저 ‘연장이냐, 파기냐’를 결정해야 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시계가 오는 24일을 마감으로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다. 그 옆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조치의 시곗바늘이 효력 발생일인 오는 28일을 향해 재깍거리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GSOMIA 파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데 ‘안보협력국’을 전제로 한 GSOMIA 유지는 상호모순이기 때문이다. 반면 GSOMIA 파기는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일부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틀을 유지하면서 일본에 대한 대응조치도 되는 방안으로 GSOMIA를 연장하되 ‘정보 공유의 일시중단’을 선언하는 것을 제시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여러 입장이 있지만, 이제는 정부가 ‘GSOMIA 조건부 파기’를 하루라도 빨리 선언해야 할 때이다. 오는 24일까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GSOMIA는 파기될 수밖에 없다고 발표해야 한다.


한국은 GSOMIA를 파기해도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을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GSOMIA를 파기하면 미·일도 TISA를 통한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 틀이 무너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GSOMIA는 한·미·일 안보협력 사안의 전략적 옵션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GSOMIA는 2016년 한국이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미국이 강요한 협정이다. 당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가 GSOMIA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GSOMIA는 표면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응 차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GSOMIA 체결을 압박한 당사자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GSOMIA 유지를 위해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 하는 게 도리다. 


세부적으로 보면 GSOMIA는 호혜적 정보 교환이지만, 현재는 일본에 매우 유리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은 조기경보가 핵심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제공하는 정보가 일본 안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GSOMIA가 파기되면 일본의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GSOMIA를 파기하면 한국이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미국의 동북아 핵심전략은 더욱 친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는 GSOMIA가 한·미·일 관계의 핵심이며, 미국은 한·미동맹보다 미·일동맹을 더 중요시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즉 GSOMIA를 파기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한국은 미·일동맹의 종속변수 정도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미·일 관계는 상당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한·미·일 안보구조는 동등한 대칭적인 것이 아니라, 한·일관계를 미·일관계 밑에 두는 계선적인 하부구조로 만들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수직적 한·미·일 계선구도 속에서 GSOMIA가 한국의 전략적 역할과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파기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의 경제침략 도발을 묵인하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12일 지난달 방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을 종속변수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운용하려 하는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라며 “미국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관여를 할 것이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의 말대로 미국이 한·미·일 안보관계보다 일본의 재무장을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면, GSOMIA 파기를 무시할 것이다. 반면 한·미·일 3각관계를 중요시한다면 일본이 경제도발을 중지하도록 나설 것이다. 특히 미국이 만일 일본과 경제도발을 협의하지 않았다면, 동북아 안보질서를 한·미·일 구도로 가져가기 위한 첫걸음인 GSOMIA의 파기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GSOMIA 카드’는 미국에 한·미·일 안보체제를 유지하려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을 중지시키란 궁색한 요구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다. 미국은 3국 안보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한·일 간 경제전쟁에 개입해 더 이상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 정부는 GSOMIA 파기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중단을 시도해야 한다. 상대방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카드를 사용조차 못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GSOMIA 파기 선언은 일본이 지난달 각의 결정을 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일이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GSOMIA 파기는 또 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동맹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은 상호 신뢰다. 일방적 요구나 양보는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한·미동맹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나치면 지나치다고 이야기해야 동맹이 강화된다. 한·일 간 생존적인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미국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해 GSOMIA 파기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는 비정상 국가다.


설사 정부의 GSOMIA 파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미·일이 아무런 행동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미동맹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의 의미가 나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방위비 분담금 6조원을 준다 하더라도 한·미동맹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눈뜨게 될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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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서해 행담도 휴게소 인근 해상에서 ‘잠수함 잠망경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지난 17일 군이 보인 태도가 딱 그짝이다. 잠망경 추정 물체 신고는 5시간 만에 신고자의 착각으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는 언론에 두 차례 문자 공지를 하고 상황 종료 후 작전상황 백브리핑까지 실시했다. 이는 과거 사례와 견줘 매우 이례적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합참은 5시간 동안 벌어진 해프닝에 대해 마치 중계하듯 브리핑했다. 고속도로 순찰대원의 신고 순간부터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32사단에 전달된 과정, 신고 내용이 다시 고속상황전파체계를 통해 합참에 전파돼 박한기 합참의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위기조치반을 가동한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장관과 합참의장 주관의 상황평가회가 열렸던 사실도 전달했다. 그러면서 현장 해역 수심 등을 고려할 때 오인 신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해상과 육지에서 수중 침투 상황 등에 대비한 다중 수색·차단 작전을 펼쳤다고 했다. 수로 집중탐색 작전과 대잠초계 작전을 실시하고, 침투자의 이동속도를 고려한 차단 작전도 전개했다는 것이다.


합참은 오인 신고 가능성이 큼에도 관련 상황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개한 배경에 대해 “병력이 현장에 출동하면 외부에서도 알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군의 정상적인 노력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달빛이나 등대에 비친 물체를 보고 신고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사건’ 등을 계기로 불거진 은폐·축소 논란을 고려한 조치라는 점도 밝혔다. 그러면서 출동한 장병들이 다 휴대폰을 쓰고 있고 이후에라도 알려질 부분이라서 설명한 거라고 했다. 최근 북한 소형 목선 사건과 해군 2함대사령부 거짓 자백 등 잇단 은폐·조작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군이 혹시라도 모를 논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라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상세하게 브리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군 당국의 이례적인 ‘친절’은 잇단 경계작전 실패와 은폐·조작 의혹으로 인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정 장관이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대공 수색·탐지 작전 상황을 공개하는 합참 장성들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군 당국의 이 같은 대언론 브리핑은 군의 ‘전략적 소통’, 즉 전략 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에 따라 이뤄진다. SC는 9·11 테러 이후 미군의 전략목표 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강화·유지하기 위한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군은 미군을 모방해 ‘핵심 대상’에게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SC를 활용하고 있다.


군이 규정하는 SC는 “전·평시 국가의 전략목표 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대상의 인식, 신념,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부 차원의 통합된 체계와 과정”이다. 문제는 군이 국민을 상대로 SC를 적용하면서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기보다는 기만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6월 제17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반도 연합훈련을 ‘로키(low-key)’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놓고 국방부는 “연합훈련을 진행하되, 전략적 소통 차원에서 과다한 홍보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헷갈리는 발언이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약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훈련은 과거처럼 고강도로 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만 자제하겠다는 건지 모호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 무능을 숨기기 위한 의도로 필요하다면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미군 병력을 부풀리는 것도 SC에 포함했다. 


이런 사례는 약과다. 북한 소형 목선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불리한 건 숨기고, 변명거리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요새 군의 SC다.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이기적 소통(Selfish Communication)’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탄핵정국 때는 군사뉴스 자료를 집중적으로 뿌려 이른바 ‘시국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군사뉴스를 양산해 탄핵뉴스 꼭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대선정국에서는 안보 위기감을 키우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실제로 탄핵정국 당시 각군 총장들과 해병대사령관의 훈련 지도 보도자료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급증했다.


심지어 댓글 공작까지 SC 일환으로 여겼다. 이명박 정부 때 군의 댓글 공작을 주도한 이태하 전 사이버사 530단장(심리전 단장)은 “한국 대·총선, 미 대선, 러 대선 등 과도기를 이용한 북한·종북(세력의) 활개가 예상된다”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C)에 따라 국가·국방정책 홍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소형 목선 사건에서 보여준 군의 ‘SC 메시지 관리’는 대실패작이었다. 군 수뇌부는 잘못된 SC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책임을 야전군 지휘관에게 떠넘겼다. 윗선이 두리뭉실하게 또는 딴 얘기를 하면 부하가 책임을 안고 가는 꼴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장·용장·덕장은 없었다. 다만 운으로 진급하고 영전했다는 ‘운장(運將)’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묵장(默將)’만 있었다. 국방부가 주요한 언론 관련 대응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한다는 것을 알 만한 군 간부는 다 알고 있던 터다.


국방 역시 공공재다. 최근 군에 대한 불신은 공공재 정보를 선택적으로 알리고 수위를 조절해 여론을 관리하려는 SC에서 비롯됐다. 군 고위층을 두고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자신들을 위한 SC만 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맛에 따라 팩트도 무시하고 여론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른바 SC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된다. 군이 국민의 알권리가 뭔지를 모르는 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호들갑스러운 잠수함 ‘오인 신고’ 브리핑을 보면 아직 먼 길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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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경계태세 문제점의 해결책에 대한 군의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단 불리한 건 숨기고, 변명거리는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군이 좋아하는 전략커뮤니케이션(SC)이다. 그런 후 장비가 노후화됐느니, 감시전력이 충분치 않느니 하면서 국민들에게 읍소한다. 잘못을 나무라고 때릴 땐 때리더라도 안보를 위해 줄 건 줘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그러다보면 책임소재를 놓고 직위해제나 보직해임 등으로 한바탕 푸닥거리를 벌이고, 대신 신형 무기나 장비를 손에 쥔다. 마치 무슨 태권도 품새라도 펼치는 듯 순서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국민감정과 정치권 질타에 편승한 대증요법만 난무하고, 정확한 현상 진단은 뒷전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사건 때로 돌아가보자. 북의 연어급 잠수정에 해군 초계함이 침몰하는 역대급 참사가 발생하자 군은 여러 정황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국방부는 천안함이 침몰하는 장면이 찍힌 열영상감시장비(TOD) 영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거짓이었음이 금방 들통났다. 이후 언론 브리핑도 계속 헛발질이었다. TV로 생중계되는 브리핑에서 국방부 대변인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기자들의 항의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합참의장을 해임하고 간부들을 줄줄이 징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군은 서해에 배치된 대잠 소나가 구형이어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빠뜨리지 않았다. 해병대는 TOD 노후화를 주장하며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음탐 장비와 초계함의 레이더 교체, 소해헬기 도입, 대포병레이더(AN/TPQ-36·37)와 K-9 자주포 고정 배치, 신형 TOD 배치 등으로 이어졌다.


2010년 11월23일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업자들과 일부 군인이 국민을 등쳤다.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군은 서북도서 북쪽 북한군, 특히 포병 동향을 24시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240억원을 들여 무인 전술비행선 2대를 도입했다. 그러나 2대 모두 파손되거나 추락했다. 알고봤더니 이 전술비행선은 이미 수년 전 효용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포격 도발을 틈타 들여온 것이었다. 마약 단속 등의 목적으로 주로 미국 남부 해안지역에서 사용하던 전술비행선을 바람이 강하고 기온차가 큰 서북도서에서 운용하겠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


대당 50억여원에 달하는 음향표적탐지장비 ‘할로(HALO)’의 도입은 더 기가 막힌다. 할로 역시 우리 군에 적합한 장비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던 것인데, ‘땜질처방’ 전력으로 긴급 배치됐다. 할로는 파도가 심한 서해5도 지역에서는 파도 소리 등에 간섭을 받아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사막지대에서 최대 성능을 발휘하는 할로를 서해5도에 배치한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군 당국은 지난 17일 “북한 귀순 선박이 높이 1.3m, 폭 2.5m, 길이 10m로, 당시 동해상 파고 1.5∼2m보다 낮아 근무요원들이 파도가 일으키는 반사파로 인식했다”고 했다. 이 배가 엔진 동력으로 삼척항 부두에까지 접안한 사실은 아예 숨기고 통일부 발표를 인용했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면서도 벌써 군 관계자 입을 빌려 ‘해안 감시전력 보강’ ‘견고한 해안 감시시스템 구축’ 등 얘기가 나온다. 해안 감시레이더와 TOD를 대거 해안에 깔겠다는 것이다. 장비가 수명 연한을 넘겼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해안 감시레이더 핵심 부품을 개량하거나 신규 장비를 도입해 대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중에서 해상을 밀착 감시할 수 있는 초계기 전력 보강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TOD는 야간에만 운용하기 때문에 해가 뜬 이후 삼척항에 접근한 북한 귀순 어선 탐지와는 관계없는 장비다. 연안 레이더 탐지 역시 소형 선박이 정지돼 있거나 저속으로 파도 높이로 움직여도 레이더 조사 각도에 따라 희미하게라도 인식되는 것을 근무요원들이 훈련을 통해 체크하는 방법을 익히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근무요원의 숙련도가 더 필요하고, 이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더 필요할 뿐이다.


해안선 영상감시체계와 해양수산청·해경의 폐쇄회로(CC)TV에도 귀순 어선이 촬영되어 있었지만, 남측의 어선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 역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다.


군과 해경은 57시간이 넘는 동안 이 선박의 동태를 식별하지 못했다. 만 이틀이 넘는 동안 우리 영해상을 떠돌아다닌 것을 포착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선박이 간첩선이었으면 어떡할 뻔했느냐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다. 바다에서의 군 작전은 잠수함 또는 고속 침투하는 반잠수정과 같은 해상 침투 세력의 움직임을 포착하거나 적 동향을 주시하는 방향으로 특화되어 있다. 경운기 동력 수준으로 움직이는 소형 목선을 잡는 것은 주요 업무 밖이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군의 몫과 해경의 몫이 따로 있다. 민간 어선의 신고 도움을 받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소형 목선까지 쪽집게처럼 잡아내려면 군의 경계작전 개념과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번 북한 소형 목선 귀순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핵심은 군이 왜 ‘엉터리 브리핑’으로 국민 불신을 초래했느냐였다. 애초에 군의 해상작전 대응의 개념과 한계를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으면 될 문제였다. 그러나 군이 불편한 것을 감추기에 급급해 불신이 확산됐다. SC의 부작용이다.


물론 조사과정에서 허위보고나 은폐행위가 드러나면 당연히 처벌해야겠지만, 그것보다 ‘엉터리 브리핑’을 하도록 뒤에서 조종한 ‘숨은 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우선이다. 


군의 과거 사례를 보면, 사건 파장이 계속 확산되면 흔히 고위층이나 상부로 불리는 ‘숨은 손’은 더 깊숙이 숨고 먼지털이식으로 ‘희생양’을 찾은 일이 다반사여서 하는 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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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수 없어.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라쇼몽(羅生門)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숲길에서 무사가 도적에게 살해당했다는 한가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은 모두 제각각이다.


라쇼몽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잊어버린다.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진술 속에는 각자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사건에 모순된 진술과 입장이 공존한다. 심지어 그 진술과 입장이 번복되기도 한다.


지뢰지대 표식.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60·육사 39기)의 ‘영웅 조작설’ 논란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마치 라쇼몽을 보는 듯 하다. 핵심은 이종명 의원이 2000년 6월27일 육군 1사단 전방 수색부대 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할 당시 지뢰를 밟은 후임 대대장을 구하려다 자신도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했을 때의 육군 발표를 둘러싼 의문이다.


사고 초기부터 군 내부에서는 ‘이종명 중령은 영웅이 아니라 징계 대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이 중령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후임 대대장 등을 데리고 수색로를 이탈해 지뢰밭으로 들어가 위험을 자초했다는 주장이 사실인 지 여부를 가리면 이 논란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다.


이게 쉽지 않다.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사고 다음날인 28일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문건에서 사고 장소를 ‘미개척된 3m 지점’으로 특정했다. 작전로가 아닌 곳에서 지뢰를 밟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의원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조사보고서 내용을 부인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박모 대령도 경향신문의 서면 질의에 ‘(사고 장소가) 개척된 수색로였다”고 답변했다. 두사람 모두 당시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군의 공식 보고서 내용을 지금에 와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상황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주장이 모두 엇갈린다. 육군 헌병과 5부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일관되게 이 중령과 후임대대장인 설 중령, 중대장인 박 대위 등이 군사분계선(MDL) 가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MDL 선상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나오면서 일어난 사고”라고 반박했다. 자신이 (MDL쪽으로) 앞에 가고 그다음이 중대장, 설 중령이 맨 뒤에 따라갔다가 돌아나올 때는 역순으로 설 중령이 맨 앞에 나오고 자신이 맨 뒤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당시 중대장은 “진출 및 복귀간 이종명 의원이 제일 선두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선임 대대장이었던 이 의원과 중대장이었던 박 대령, 군 조사보고서가 당시 상황을 놓고 모두 엇갈리는 모순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이 모두 제각각이었던 영화 ‘라쇼몽’의 장면들이 철책선 인근에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 포스터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Courage Under Fire)’의 한 장면. 1991년 1월, 걸프전에 투입된 기갑대대 대대장 나다니엘 설링 중령(덴젤 워싱턴 분)은 알 바스라에서 야간 공격 작전 도중 T-54 적군 탱크라고 여겨진 물체에 포격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가 폭파한 것은 아군 탱크였고, 이 사고로 미군 수명이 숨졌다.


진상조사에 착수한 국방부는 이 사건을 ‘아군에의 오발’로 무마하고 설링 중령을 국방성의 ‘훈장 및 포상업무 부서’에 배속한다. 설링 중령은 작전중 숨진 ‘구조 헬리콥터 조종사’ 카렌 월든 대위(맥 라이언 분)의 명예훈장 자격 여부를 심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월든 대위는 ‘치열한 전투 상황 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용기’로 이 상의 수여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상부에서는 ‘공적이 확실하니’ 명예훈장 수여 승인을 빨리 할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설링 중령은 부상자 구출 작전 도중 월든 대위의 행동에 대한 구출팀 대원들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에 의혹을 품고 불확실한 보고서 제출을 거부한다.


설링 중령은 국방부의 애초 발표가 월든 대위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영웅’으로 포장한 언론 플레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국방부 압력을 거부하고 월든 대위 죽음의 진상과 국방부의 은폐, 조작을 공개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실링 중령의 오발 사건에 대해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결정내리겠다고 협박하지만, 그는 진실을 택한다. 국방부는 공격 받은 아군 전차가 피아식별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사실도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난다. ‘진실의 왜곡과 그것의 규명’이란 점에서 이 영화는 19년 전 지뢰폭발 사고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난주에 육군에 질의했다. 이종명 의원 등을 포함해 당시 지뢰폭발 사고 당시 수색대대원들의 훈장 및 포상이 있었는 지에 대한 문의였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는 “훈·포상은 개인 신상에 관계된 사안으로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육본 법무실의 공식 답변이라는 것이다. 과거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이 의원은 이 사고와 관련해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공적으로 훈장을 수여했는 지 다시 물었더니 육군본부의 돌아온 답변은 “훈장 공적서 보존 기간 5년이 지나 폐기한 관계로 내용을 알 수 없다”였다.


육군은 지난 16일 김승겸 참모차장 주재로 언론대응 대책회의를 열고 “기자 질문에는 ‘검토중’ 스탠스를 유지하고 이슈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가 나오자, 육군은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17번이나 했다. 국방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국방부는 지난 21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방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육군 확인 이후에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시간끌기를 하다 나중에 ‘뭉개버리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검토하겠다”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말은 군이 실제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은 진실을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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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공군 출신 국방장관과 학군(ROTC) 출신 합동참모본부의장은 상대적 ‘비주류’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과거 정권이 육군 출신 국방장관과 육사 출신 합참의장을 주로 임명해 온 것과 견줘 하는 비유다. 6·25전쟁을 빼고 육군에서 비육사 출신 대장이 육사 출신 보다 더 많이 배출한 것도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현 정부가 ‘비주류’ 군 고위층에게 맡긴 핵심 미션은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이다. 이들에게 문 정부 임기내 전작권 전환을 책임지라고 한 것이다. 이는 과거 주류인 육군과 육사 출신이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이고, 그 결과 진행이 지지부진하고 사실상 퇴행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임기내 전작권 전환 의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 후 가진 환담에서 한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전 후 70년 가까이 아직도 한미 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독자적 전작권까지 갖지 못한 상황”이라며 “북한의 핵도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도 강한 힘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절치부심(切齒腐心)을 8차례나 언급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예로 들며 “이를 갈고 가슴에 새기면서 치욕이나 국란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새로 ‘별 넷’을 단 군 고위층들은 지난 16일 취임식에서 한목소리로 “전작권 전환 추진”을 강조했다.


과거 10여년 동안 전작권 전환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육사와 육군이 주축인 ‘군 수뇌부’의 소극적 자세가 한몫했지만, 북한의 도발과 위협, 특히 핵무장 능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장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앞세운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였던 탓에 전작권 전환은 후순위로 밀렸다. 북의 현실적 군사위협은 지지부진한 전작전 전환에 대한 ‘핑곗거리’로는 충분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북한의 도발 위협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만큼 군 당국이 전작권 전환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합참도 합참의장 직속으로 ‘전작권 전환추진단’ 편제를 반영하는 등 외견상으로 전작권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군 당국은 올해 한국군 주도의 작전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전작권의 안정적 전환여건을 조성하고 미래연합지휘구조 개편(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초작전운용능력(IOC)을 평가할 때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적용하고, 전환조건을 조기 충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 및 위기관리체제를 규정하는 근거문서와 관련약정도 작성해야 한다.


국방부는 25일 “한미 국방부가 23∼2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5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에서 남북 군사합의 이행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계획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국방부 발표와 설명을 듣고 있자면 ‘무지개 빛’ 얘기처럼 들린다. 무지개 건너편에 뭐가 있는 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비밀이라니 공식 발표 때까지는 세부사항을 알 수 없다. 지상전은 한국군이, 해전·공중전은 미군이 주도한다는 과거 ‘무늬만 전작권 전환’이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확인이 어렵다. ‘막연한 안보’, ‘막연한 국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합참은 이번주에 “근무직원들의 사기진작과 화합, 단결 차원”이라며 매일 반나절씩 4일간 체육대회를 열었다. 직원들간에 서로 얼굴을 익히는 단합의 계기였다고 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서로 얼굴을 모르는 직원이 많았다는 것으로, 합참 기능이 수평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비효율적인 업무환경이라는 반증이다.


합참체육대회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군의 ‘치열한 몰입’과는 거리가 있다. 합참은 체육대회로 친목을 도모해야 하는 단순한 단위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합참은 전쟁을 대비하는 육·해·공군의 최고 군령기관이다. 군정기능까지 겸하는 행동부대인 일선 야전 사단이라면 체육대회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지휘부인 합참은 성격이 다르다. 분야별 전략, 전력·작전기획 등 전문가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간과 관계없이 일해야 하는 군의 ‘고급 두뇌’ 집단이다. 800여명 근무자들이 반나절씩이라고는 하지만 나흘간 단체로 체육대회를 하는 모습은 합참이 한가롭게 비쳐지게 한다. 누가 합참이 ‘절치부심’하고 있다고 보겠는가. 게다가 합참 근무자들에게는 수요일 전투체육의 날을 제외하고라도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1시간씩 체력 단련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옛말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 합참 체육대회는 북의 도발 위협이 없으니까 여유가 생겨 하는 것으로 밖에서는 보여진다. 북의 군사위협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전작권 전환에 군 당국이 ‘일로매진’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러다가 남북관계가 급냉각되면서 북한 도발이 재현되면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의한’이란 단서 조항에 더 힘을 실어주면서 또다시 후순위로 밀려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경우 군의 ‘주류’와 ‘비주류’나 똑같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최근 불법 논란과 함께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강행하고 있는 ‘워라밸’을 위한 테니스장 건설로 시끄럽다.


문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군수뇌부 신고를 받으며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금의 모습을 보면, 군 수뇌부 칼집에서 나온 ‘칼’의 날이 시퍼렇게 서 있을 지 의문이다. 전쟁에 임한 7년 동안 허리 요대를 풀지 않았다는 ‘칠년불해대(七年不解帶)’란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생각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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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은 진행형이다. 상당수 진실이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지진판 감지기록 시간인 2010년 3월26일 오후 9시21분58초에 멈춰 있다.


이명박 정부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폭침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후 관련 책자도 쏟아졌다.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 관계자나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한 기자들이 저자였다. 그러나 애매모호했던 부분들에 대한 의문점들을 이 책들에서 해소하기란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언론에 ‘천안함의 진실’은 파고들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 공방 대상이 돼버린 대통령의 추모식 참석 여부가 더 큰 취재거리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났는데도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들은 여전히 많다. 왜 합동조사단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들이 상당수인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이라는 발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긴 의문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북한 소행이라는 100% 근거를 찾아내 완벽한 조사를 했다고 발표한 탓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실은 팩트가 모여 만들어지지만 팩트가 취사선택될 경우 진실은 가려질 수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합조단이 수집하고 분석한 증거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이를 조합해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파생시켰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제라도 합조단이 발표한 내용의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러 정황과 증거들을 볼 때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은 98%의 확률로 보인다. 이는 100%에서 2%가 모자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합조단 발표가 100% 과학적 결론이라고 보기엔 미흡하다며 국내외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근거가 미약한 주장도 있지만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학자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부분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침몰됐다는 것을 부인한 게 아니라, 합조단 발표의 과학적 허점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걸어 이 학자들을 비난했다.


문제는 과학적인 허점이 드러나는 2%가 98% 확률을 깨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확실’ ‘단언’ 등 단어가 들어간 확신에 찬 발표였다.


합조단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 하더라도 겸허했어야 했다. 당시 합조단 발표가 확신의 ‘100% 확률’을 채우기에 ‘2%’ 부족했던 사실은 나중에 드러났다. 그런 만큼 ‘최종 조사결과’도 ‘중간 조사결과’ 발표였어야 했다. “98%의 확신이 있지만, 나머지 모자라는 2%의 확률을 채우기 위한 과학적 검증 작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어야 했다.


게다가 조사결과 발표 전에 군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사건 초기에는 “천안함 침몰 영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가 언론 보도로 관련 영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뒤늦게 공개했다. 속초함이 76㎜ 함포로 사격한 대상인 괴물체가 ‘새떼냐 잠수정이냐’를 두고 논란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은 격파사격 영상 일부가 삭제된 사실조차 비밀에 부쳤다. 은폐 사실은 9년이 지난 최근 드러났다. 당연히 이 사실은 백서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설사 기기 오작동으로 녹화영상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1분가량이 삭제됐다 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실제로 기계가 고장난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똑같은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장비 결함 여부를 살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또 포렌식을 통해 지워진 영상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군 당국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군 당국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증거를 찾기 위해 ‘군의관이 백령도 인근에서 발견된 돌고래 사체까지 부검’한 해프닝까지 언론에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증거를 놓고 ‘입맛’에 맞게 가공했다는 의혹은 사지 말아야 한다. 검증한 결과 부식 정도로 봤을 때 1번 어뢰가 1개월 보름 정도 바닷속에 있었다고 발표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국방과학연구소(ADD)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그 어떤 전문가도 그런 결론을 내리고 합조단에 통보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합조단의 발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와 어느 전문가 회의를 통해 나온 것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굳이 논문과 비교하자면 각주가 제대로 달린 것인지를 검증해 보자는 것이다.


군 당국은 미국과 호주, 영국, 스웨덴 전문가가 합조단에 합류해 국제 공조체제하에 합동조사를 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를 도출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합조단에 참여한 국내 인사들은 이들 국가 전문가의 경우 전시가 아닐 때 발생한 어뢰 폭발이 매우 희귀한 사례여서 관련 자료를 연구하기 위해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나 합조단의 종합조사결과는 향후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이다. 깔끔한 북한의 사과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여는’ 미래지향적인 남북관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대신 북한의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측이 꼬투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깔끔한 근거자료가 마련돼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의 천안함 백서나 합조단의 조사결과가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만약 천안함 관련 재판에서 조사결과 발표의 일부라도 부정하는 판결이 나오면 어쩔 것인가. 남은 2%를 최대한 찾아내는 것 역시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방식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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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 이후 국민들이 체감하는 남북 군사적 긴장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군사력은 한반도를 에워싸면서 한국 해군과 공군의 작전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우리 군의 전력을 ‘가두리 양식장’ 속 물고기처럼 일본과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촉발한 ‘초계기 위협’과 중국의 반복되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무단진입과 ‘서해의 내해화(內海化)’ 움직임이 그 방증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지난해 말부터 1월까지 수차례 한국 해군 함정을 위협하는 저공비행을 한 배경에는 한국 해군으로 하여금 카디즈 바깥 해역으로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 있다. 군사적으로 분쟁지역을 확대해 자위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표면적인 정치·군사적 목적 외에, 토끼몰이 하듯 한국 해군을 카디즈 안쪽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실질적인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건의 발단은 일본 초계기가 카디즈 바깥쪽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 구조작전을 실시하던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STIR-180)로부터 조사(겨냥해 비춤)를 받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일본 자위대는 사태를 봉합하기보다는 한국 해군의 율곡이이함과 노적봉함에까지 저공 위협비행을 실시했다. 그 이면에는 한국 해군이 굳이 카디즈를 벗어나 작전을 하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다고 해군 장교들은 지적한다.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진입은 한 수 더 뜬다. 전자전 정찰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 군용기는 아예 카디즈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불과 2년 사이에 카디즈를 무단진입한 횟수는 2.8배나 늘어났다. 무단진입 범위는 더 깊어지고 있다.

 

중국 정찰기는 카디즈나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자디즈)에 무단진입할 때 중국 군함과 함께 움직이는 입체작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카디즈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에 진입하는 외국 항공기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군사 패권주의’나 다름없다.

 

한·중·일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공역인 제주와 이어도 공역에서도 중국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그들의 앞마당인 양 지나다니고 있다. 중국 해군 함정도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이어도 해역에 대한 실질적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군당국의 분석이다. 

 

중국은 서해와 이어도 근해에 ‘중국해양관측부표’나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표시한 부표 8개를 설치했다. 이 부표들 가운데 4개는 한국 해군의 공해상 작전구역에 설치했다. 중국이 한·미·일 잠수함과 함정에 대한 감시·경계 목적으로 부표를 설치했을 것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해군은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 문제를 영토분쟁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해를 내해화하기 위한 중국의 기도는 124도 E선을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틈만 나면 이곳 해역에서 매년 대규모 해군 연습을 정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해군에 124도 E선을 넘지 말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124도 E선이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어지면 서해 대부분은 중국 바다가 된다.

동해는 각국이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치열한 각축장이다. 공중에서는 미국의 RC-135 정찰기·MC-12W 정찰기·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이 날아다닌다. 일본은 EP-3, YS-11 전자정보 수집기를, 중국은 Y-8·Y-9 정찰기를, 러시아는 IL-20·Tu-214R 신호정보 수집기를 운용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일본의 정보수집함은 물론 중국의 동디다오급(815식) 정보수집함과 러시아의 발잠급 정보수집함 등이 활동하고 있다. 동해를 자신들의 작전 영역으로 여기는 주변국들은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한국 해군 자체 훈련도 감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정보수집함이 몰려드는 바람에 해군이 훈련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연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한 한국군의 전력은 언감생심이다. 금강 정찰기는 대북 정보 전용이다. 정보수집함은 속도가 느려서 기동훈련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한국군이 대북 정보 외에 주변국 군사동향을 탐색하고 정보를 얻으려는 시도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미군이 관련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어도 해역에는 중국과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해상 레이더조차 없다. 그나마 공중급유기를 들여와 장시간·장거리 작전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이 위안거리다.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이나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무단진입은 단순한 일회성 무력시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이 구체적 대응전략을 세웠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대북 상황에만 몰입하던 관성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 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그동안 인재를 키우지 않은 탓이다.

 

주변국의 위협은 지금까지의 우리 안보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안보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군사 전략이나 정책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우리 군은 한반도 주변의 바다와 하늘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일깨워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주변국의 살라미식 도발이라 하더라도 안보 상황은 한번 밀리면 계속해서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군의 대응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주변국 위협에 대응해 카디즈 전 공역에서의 정례 훈련이 가능한지도 보고받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가 의지가 반영된 ‘톱다운’ 방식의 전략지침이라도 군에 내려야 한다. 군 스스로 관성을 깨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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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 사건은 국방백서에서 말하는 ‘잠재적 위협’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시사해줬다. 개인적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가 ‘어거지’ 부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일반 사회라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는 힘의 논리에 묻히는 현실을 목격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일본의 도발에 가까운 초계기 위협비행은 군사적으로 분쟁지역 확대를 통해 자위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입을 모은다. 군사력 보유 명분의 확보 차원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국방예산 확보를 위해서도 군사 갈등을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은 2019년 이후 5년간 시행되는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에서 이즈모급 함의 항모화와 F-35B 추가 도입 등을 위해 약 274조2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이미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대 군사비 책정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일본 군사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본 자위대를 공격형 군대로 바꾸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는 ‘자위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앞뒤 맞지 않는 말이 돼버렸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도발에 가까운 군사적 행위 역시 상궤를 넘은 지 오래다. 중국은 서해 내해화를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적 위협보다 심각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한·중 해군은 124°E 선을 놓고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서해에서 124°E 선을 사실상의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고착시키려 하고 있다. 124°E 선이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어지면 서해 대부분이 중국 바다가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 해군은 124°E보다 훨씬 먼 123°E 선 주변 바다에서 주기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함정 역시 한국 함정을 따라다니며 밀착 감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해양굴기를 앞세운 중국이 일본의 초계기 위협처럼 언제 한국 해군 함정에 근접해 위협을 가할지 모르는 형국이다. 중국은 서해를 일종의 군사적 안전해역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곳 해역에서 매년 대규모 해군연습을 정례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어도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은 2013년 이어도와 주변 배타적 경제수역(EEZ) 상공을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으로 선포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를 포함하는 수역으로 확장했다. 이후 이어도 인근 해·공역은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까지 겹치는 군사적으로 민감한 영역이 돼버렸다.

 

중국은 이어도 인근 해역에 수시로 함정과 항공기를 보내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2016년 이후 대폭 늘어난 중국의 서해 및 KADIZ 내 군사활동이 그것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 문제를 영토분쟁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전조는 이제는 정례화되다시피 한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이다. 중국 정찰기는 이어도와 제주도 인근 해역에 진입한 후 한국 연안에 근접해 울릉도 동쪽 해역까지 북상 비행하다가 다시 같은 경로로 복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해 2월과 8월 사이에 서해와 이어도 근해상에 폭 3m, 높이 6m의 주황색 부표를 8개 설치했다. 이어도 관할권 확보나 한국과 EEZ 경계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차원이다. 실효적 지배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일 수 있다. 군사적으로는 해양 관측으로 가장해 잠수함 운항 정보 탐지용 감시장비를 겸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부표 4개는 한국 해군의 공해상 작전구역에 있다. 이는 한국 안보에 또 다른 도전이다.

 

중국과 일본의 행동은 미국이 빠진 힘의 공백만큼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 툭하면 유엔사 후방기지가 자국 내 위치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한반도 유사시 일본 허락이 없으면 유엔사 후방기지 물자가 반출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일본까지 가세한 한반도 부근에서의 군사활동은 점점 더 강화되고 횟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언제 ‘쓰나미’로 변해 한반도로 몰려올지 모르는 형편이다.

 

물론 주변국과의 군사적 신뢰 구축이 먼저다.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남북 군축을 넘어 동북아 군축까지 제안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주변국까지 가세한 잠재적 군사 위협은 안보 프레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북한에 집중했던 군사력 건설 방향을 새롭게 검토할 요인이 생긴 것이다.

 

현재 군 대비태세의 우선순위는 대북 작전에 있다보니 주변국의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위협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당장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되는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제78집단군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중국은 북한 내 중국인 보호를 명분으로 유사시 대북 군사개입까지 할 것으로 한·미 군 정보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한국군은 평시작전권의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정전 시 교전규칙’에 따르게 돼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이 도발할 경우에 대해서도 이 교전규칙을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가 우방국 소속이라는 이유로 근접 위협비행에 속수무책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반도 안보 환경은 주변국의 군사력 강화 명분을 위한 도발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이제는 만에 하나라도 주변국이 도발할 경우를 대비한 독자적 교전규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주변국 군사활동에 대한 대응을 전담하는 ‘합동참모본부 제2작전본부’ 필요성도 나오고 있다.

 

합참 제2작전본부는 주변국 안보 상황 변화에 따른 최대한의 방어 전략까지 구상해야 한다. 육·해·공 각군의 교육사령부도 주변국 군사상황에 맞춘 교리를 개발해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 이 밖에 북한이 비난하는 F-35와 공중급유기 도입도 동북아 군사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더 이상 시비를 걸 사항이 아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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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은 치밀한 ‘시나리오’ 도발 VS 韓은 ‘냉·온탕’ 대응

· 지금 상황이 악화되면 ‘한·일 무력 충돌’ 가능성 배제 못해

· 일본의 의도된 무력충돌에 잘못 말려들면 ‘포크랜드 전쟁’ 악몽 재현될수도

 

일본의 도발로 촉발된 한·일 초계기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칫 ‘사소한 불씨’ 하나로 무력충돌로까지 번질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 사진 가운데)이 지난 26일 해군 초계기 조종사 가죽점퍼를 입고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부두에서 출항 준비중인 세종대왕함 전투통제실을 방문해 일본 해상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강력한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25일 초계기가 배치된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를 찾아 지속적 경계 감시활동을 당부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6일 부산의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일본 초계기가 다시 위협비행을 할 경우 군 대응수칙대로 적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정 장관의 해작사 방문은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이 전날 해상자위대 아쓰기 기지를 찾은 데 대한 맞불 차원이다. 아쓰기 기지는 지난달 20일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저공 위협비행을 했던 P-1 초계기가 배치된 곳이다. 이와야 방위상은 이곳에서 “주변 해역의 경계 감시 활동을 착실하게 실시하라”면서 “여러분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바다, 하늘, 영토, 국민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실익없는 군사력 대응

 

그러나 국제 여론은 이와야 방위상의 발언과 정 장관의 발언을 비교해본 후 한국 군부가 ‘호전적’이라고 평가할까 우려스럽다. 정 장관 발언은 ‘무력사용도 불사하라’는 의미로 읽혀지는 반면, 이와야 방위상 발언은 해상 자위대원들에 대한 격려발언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외견상으로는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민들 입장에서는 이와야 방위상 발언의 뒤에 숨은 뜻까지 파악할 수 있지만 ‘제 3자’인 외국인 입장은 다르다.

 

이는 자칫하면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에 이은 계획적인 군사적인 충돌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간 일본은 치밀한 도발로 군사적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살라미’식으로 한국을 자극해 왔다. 교활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 특히 국방부의 대응은 전략적인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을 어느정도 높이는데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를 위기상황까지 몰아부쳐 더 높은 지지율을 얻으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국제 여론전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 자위대의 질주에 대한 경계심도 읽혀진다. 군사적으로는 한국 보다는 일본 입장을 거들어준 사례가 많은 미군조차도 개입을 거부했다.

 

‘말폭탄’ 수준을 넘어선 도발에 응징하라는 한국군 군령·군정권자의 발언의 파장은 실제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사력이 대치하는 현장에서는 사소한 자극 하나가 확대돼 무력 충돌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일본의 의도된 계산인지 모른다.

 

한일간 군사분야 갈등에서 ‘버퍼링’(완충) 역할을 했던 미군이 끼어들 틈도 없이 양측이 무력충돌할 경우 그 파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만큼 이제는 군사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무력 대응은 실익이 없다. ‘전쟁은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손자병법에도 어긋난다. 국내 여론을 의식해 시작한 아르헨티나의 ‘포크랜드 전쟁’ 악몽은 자칫 한반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냉정한 현실은 무력충돌이 벌어지더라도 일본측에 승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이 군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는 배경이다.

 

일본은 해상초계기는 물론, 전투함정, 잠수함 등 거의 모든 해상전력에서 한국에 저만치 앞서 있다. 해상초계기만 살펴봐도 한국 해군은 P-3 16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 해상자위대는 P-3 80여대와 P-1 3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보유대수로 일본에 1대7의 압도적 열세다. 일본이 자체 제작한 신형 P-1은 최대속도, 항속거리, 최대이륙중량 등 모든 면에서 P-3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해군력 비교의 잣대인 함정 총 보유톤수는 일본이 46만t, 한국이 19만t으로 일본이 2.5배 앞선다. 초계기 사건이 발생한 원양에서의 작전이 가능한 대형 함정도 일본이 더 많이 갖고 있다.

 

작전 훈련중인 광개토대왕함. 해군 제공

 

■서태평양 23개국 해군이 배심원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Western Pacific Naval Symposium)의 해상규범인 ‘CUES’(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에 있다.

 

WPNS는 서태평양 지역 해군 간 해양 안보협력과 상호신뢰, 이해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1988년부터 2년 주기로 실시되고 있는 서태평양 역내 유일의 다자간 협의체다. WPNS는 돌발적인 해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해군 함정과 항공기들이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사용할 표준화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CUES는 2014년도에 호주 주도로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Western Pacific Naval Symposium)에서 한·일·미·중·러·싱가포르·뉴질랜드·베트남 등 아태지역 25개 국가들의 만장일치로 비준한 것이다. 이름 그대로 해상위에서 예상치 못한 선박·항공세력간 조우가 있을시 적대적인 행동이나 오해없이 서로 잘 넘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상호 무전방법 무터 대형, 속도까지 매우 상세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이 CUES에 서명했다. 비록 국가간 약속의 성격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를 어기면 국제 여론에 반하는 것이다.

 

12월 22일 일본 방위성은 광개토대왕함의 사격 관제 레이더 사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는 2014년 한일 양국이 모두 서명한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에 관한 강령’(CUES·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광개토대왕함이 ‘승선중인 지휘관(해군 함장)이 적대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을 금한다’는 CUES 2조 8.2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CUES 2조 8.2항은 ‘···공격행위와 유사한 주포·미사일·대공포·사격통제(화기관제)레이더· 어뢰관 또는 다른 무기를 조우한 함선 또는 비행체 방향으로 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와 관련한 과학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억지 주장만을 반복했다.

 

■‘CUES’ 위반한 日 초계기

 

일본 와야 방위상은 또 P-1 초계기가 150m 이하로 저공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에 규정된 것보다 높게 비행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이 기준은 일본이 마음대로 독자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국제법 또는 국내법, CUES나 항공법 등에 따른 것”이라며 “미군이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등도 거의 같은 기준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싱가포로 회담에서도 초계기 특성 및 전술 목적상 저고도 비행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한국 해군 초계기도 (북한 상선 정찰을 위해) 저고도 비행을 하지 않느냐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찰 목적 항공기의 운용은 군사자원의 운용에 관한 부분이고, 주권사항으로 그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한국 국방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은 민간항공기에만 적용되는 것일 뿐, 군용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CUES 2조 8항에서는 ‘해군기(초계기 포함)에 대해 함정 주변에서의 곡예 비행이나 공격 태세 시연도 피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저공비행이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일상적인 관행이라 하더라도 해군 함정에 저공으로 위협적인 근접 정찰비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만큼 국방부는 WPNS 회원국들에 일본 초계기가 CUES를 위반했는 지 여부를 물으면 된다. 일본에도 공동으로 하자고 제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CUES 합의국이니만큼 WPNS에 유권해석을 함께 요청하자고 하는 데 대해 반대할 명분이 없다.

 

정상적인 상식을 지닌 국가라면 일본 초계기가 CUES를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CUES에 합의한 25개국 가운데 일본을 제외한 그 어느 국가도 일본 초계기의 도발적인 정찰활동을 용납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회원국들이 ‘강령 위반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린다 해도, 앞으로 해군 초계기도 일본 함정에 대해 똑같은 비행패턴으로 감시하면 될 일이다.

 

앞으로도 일본 초계기 도발은 일상화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WPNS 회원국에 CUES 문제를 제기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기간만큼은 일본도 국제여론을 의식해 초계기 도발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한기 합참의장(가운데)이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하기 전 식순에 따라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합참의장 지휘서신의 ‘부작용’

 

박한기 합참의장의 지난 26일 ‘지휘서신 1호’는 예하 부대 입장에서는 자칫 무책임한 지시로 해석될 수 있다. 박 의장은 서신에서 최근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상황과 관련, 작전 반응 시간 단축과, 작전현장 가시화를 위한 신속·정확한 상황 보고체계 확립 및 행동화 숙달을 강조했다. 이 지휘서신은 일본 초계기의 저고도 위협비행에 대한 지침으로 보인다.

 

합참은 군의 작전 대응 시간 단축과 신속 정확한 상황 보고체계 확립을 주문했다고 하지만, 합참의장 지휘서신에는 이율배반적인 내용이 숨어있다. 상부에 신속 정확한 상황보고를 하면서 동시에 작전 대응시간을 단축하기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작전 현장의 지휘관이라면 상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북한군 도발에 대해서 ‘선 조치 후 보고’라는 작전 지침이 전군에 내려졌던 것이다.

 

현재 군지휘통제 및 전술통신체계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인근 해상에서 해군 함정과 일본 초계기가 맞대응을 하는 상황이라도 합참 지휘통제실과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동시에 인지하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돼 있다. 해군과 일본 자위대의 대치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합참과 해군작전본부는 지통실에서 상황을 24시간 정밀하게 모니터하면서 먼 바다에서 작전중인 해군 함정으로부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고 외에는 현장 조치를 우선시하도록 해 상부 보고부담을 덜어주는 게 맞다.

 

게다가 합참은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사건이 발생한 이후 대응수칙 매뉴얼을 다단계로 구체화한 터다. 그런만큼 바다위 함정에서는 각 단계마다 상부보고 절차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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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판결 이후 날 선 대립을 이어오던 한·일관계가 지난달 20일 발생한 일본 자위대 P-1 초계기의 ‘위협비행’으로 격랑 속으로 더 빠져들고 있다.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일본 정부의 ‘피해자 코스프레’가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방위상과 관방장관, 총리까지 나서 적반하장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방부가 일본이 도발한 ‘프레임 전쟁’에 말려들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13일 만인 지난 2일에야 일본 측에 사과를 처음으로 요구하는 등 수세적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그동안에는 마치 한국이 “우린 잘못한 것 없는데 일본 측이 오해하고 있다”는 식의 변명하는 듯한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줬다. 국방부가 일본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실 사안은 간단하다. 엄밀히 말해 한국 해군 입장에서 보면 ‘레이더 논란’이 아니라 일본 자위대 P-1 초계기의 ‘위협비행 사건’이 본질이다. 군국주의 시절 ‘가미카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모하게 비행한 일본 P-1 초계기가 문제였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다.

일본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일본 초계기가 공격적인 레이더 전파를 맞았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일본 초계기는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위협을 느꼈다면 조종사는 무조건 ‘풀파워(전속력 회피)’를 외치며 자리를 피했어야 한다.

 

일본 초계기는 또 대공미사일을 갖춘 군함을 경계하기는커녕 무모하게 접근했다. 일본 P-1 초계기는 대잠탄과 어뢰뿐만 아니라 대함 유도탄, 공대지 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다. 구축함 입장에서는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통상 예측불가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군함에는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게 국제 관례다. 그런 만큼 한국 해군 초계기는 외국 군함을 발견하면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멀찍이 떨어진 데서 사전 교신을 한다. 1~1.5㎞ 이내에는 접근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신을 시도한다. 그런 후 인가를 받고 들어가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게다가 일본 자위대는 ‘사고 전과자’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1990년대 림팩 훈련에서 표적 예인기 역할을 하던 미 해군의 A-6E기 한 대를 ‘오발’로 떨어뜨렸다. 일본은 호위함 근접방어무기(CIWS)가 오작동했다고 변명했으나 조준 자체가 A-6E기를 향했던 것으로 분석 결과 밝혀졌다. 미군기 격추 7개월 전인 1995년 11월에는 항공자위대의 F-15J 전투기가 앞서 가던 동료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 명중시키는 사건도 벌어졌다. 처음에는 기기 오작동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조종사 실수로 드러났다. 두 사건 초기에 일본은 거짓으로 일관했다. 만약 한국 해군 P-3 초계기가 일본 초계기처럼 행동했다면 격추당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초계기의 상식 밖 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일본 초계기는 한·일 해군 간 소통할 수 있는 통신망 대신 국제상선공통망을 이용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하에 통신을 했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후 일본 정부 각료들이 문제를 확대시켰고, 지난달 28일 13분7초 분량의 일본어판·영문판 영상을 공개해 파문 확산의 기폭제로 사용했다. 지난 1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가세했다.

 

둘째, 일본 초계기는 인도적인 해상 수색 및 구조 작전(SAR Operation) 현장에 사실상 난입해 구조활동을 방해했다. 당시 일본 P-1기의 광개토대왕함 상공 150m 저공 위협비행은 국제적으로 ‘비전문적 행위(unprofessional behavior)’였다. 파도가 바람에 날리는 ‘백파’ 현상이 나타나는 현장에서 조난 선박 식별을 위해 광학영상장비(EOTS)를 작동한 것을 두고, 마치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P-1기에 대해 적대행위를 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SAR 작전의 기본 원칙과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일본 P-1기는 구조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광개토대왕함에 근접비행을 하면서 헬리콥터 탑재 여부 정찰 등 위협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한 것이 확인됐다. 이는 적성국 항공기라면 대공 미사일 격추를 자초하는 행위였다. 공해상에서 빠른 속도로 초계기가 위험수준으로 접근해 머리 위까지 왔는데 미사일 발사 준비조치를 하지 않은 광개토대왕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항해 중인 군함에 대한 저공 접근은 그만큼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개토대왕함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고려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셋째, 일본 해상자위대는 스스로 일본 해군이라고 자처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제4항공군 소속 초계기 기장은 ‘일본 해상자위대(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JMSDF)’가 아닌 “Japan Navy(일본 해군)”라고 수차례 스스로 불렀다. 이는 이미 일본이 정상 군대를 갖고 있다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다. 또 군사적 분쟁지역 확대를 통해 자위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군사력 보유 명분의 확보 차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이 ‘기획도발’을 했다는 정황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꼬투리를 잡을 수 있으면 사사건건 걸고 넘어가겠다는 일본 정부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군의 대응도 단호해야 한다. 일본의 속내가 무엇이든, 국내 정치적 명분을 얻기 위한 도발 대상으로 한국을 정조준한 것이 이번 사건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과 요구에 그치지 말고 필요하다면 정경두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인도적인 작전을 방해한 일본 해상자위대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청해야 한다. 일본 초계기는 한·일 간 20년 가까이 실시해온 ‘수색 및 구조 훈련(SAREX)’을 무력화시켰다. 국제사회에도 일 자위대의 행위가 한·일 간 상호 협력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동북아 및 태평양 안보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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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건강식품 광고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란 광고 문구가 히트를 친 것이다. 이 광고 문구는 건강식품을 광고할 때 식품위생법상 제품 성분 및 효능을 구체적으로 넣을 수 없어서 나온 고육책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 어떤 표현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오래전 건강식품 광고를 뜬금없이 내세운 것은 ‘9·19 남북 군사합의서’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에서다. 게다가 6개 항목의 22개 조항으로 돼 있는 남북 군사합의서가 갖는 의미는 벌써 퇴색되는 분위기인 데다 이를 둘러싼 논란만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마디로 “남북 군사합의서, 한반도 평화에 참 좋은데…, 국민들이 알아주질 않네”라는 푸념이 나오는 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군을 20년 가까이 지켜본 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의 ‘9·19 남북 군사합의서’ 대국민 홍보는 거의 최악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도 싸다. 국방부가 군내 적폐청산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련 브리핑을 봇물 터트리듯이 해왔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남북 군사합의서가 담고 있는 6개 항목의 하나하나는 신문 1면 머리기사나 방송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것들이었다. 항목 하나하나가 모두 국방부의 백브리핑이나 군 고위관계자 및 실무자들의 자세한 배경 설명이 요구되는 사안들이었다는 의미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군사 합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남북 군사당국이 합의한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의미를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려면 언론을 상대로 한 개 항목씩 나눠서 백브리핑을 해야 하는 기간만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필요했다. 또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후 설명이 아닌 ‘엠바고’를 전제로 한 사전 브리핑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마치 양계장 닭들에게 모이를 뿌리듯 ‘남북 군사합의’ 보도자료와 해설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리고 한두 차례 질의응답을 한 게 전부였다. 게다가 해설자료에 잘못 표기된 부분이 몇 군데 있다보니 “군이 북한에 양보한 것을 숨겼다”는 불필요한 억측도 이어졌다.

 

군의 편의주의적 ‘비밀주의’는 남북 군사합의 이행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북 군사협상의 대상인 최전방 초소(GP) 숫자조차도 군사기밀이라는 군의 입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협상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자료를 교환해 서로가 뻔히 아는 사실조차도 국민들은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국민들은 최전방에 얼마나 많은 GP가 있고, 그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말이다. 이 같은 군의 태도는 남북 군사합의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GP 철수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할 수 있도록 시빗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에다 남북한군 지휘관이 만나 악수했던 시기조차도 숨기는 국방부의 태도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22일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남북 도로 연결 작업에 참여한 남북 인원들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포함한 사진 4장을 공개했다. 사진을 찍은 시기는 국방부가 공개한 날보다 약 일주일 전이었다. 국방부는 남북 인원들이 만난 지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사진을 공개하면서 ‘정확한 날짜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남북한군이 만나 악수하는 사진을 한참 뒤에 공개하면서 그것도 날짜를 정확히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또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에 등장하는 남측 군 지휘관은 전유광 육군 5사단장이었다. 북측 군 지휘관의 신원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알아서’ 밝히지 않았다. 북측 지휘관이 장군이라면 MDL에서 남북 장성이 악수하는 사진은 역사적 기록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그 의미를 축소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방부의 부실한 발표와 설명은 몇몇 보수언론과 일부 군 출신 인사들의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9·19 군사합의서가 한국군의 손발을 묶어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국방부 장관 출신이 포함된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일동’ 토론회로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가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정공법적인 대응보다는 뒷담화식으로 비판세력을 비난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남북 군사합의를 비판하는 예비역 고위 장성에 대해 ‘현역 시절 입장과 다르다’는 그의 이율배반식 태도를 여당 국회의원을 통해 지적하거나, 정부를 지지하는 예비역 장성들의 언론 기고를 부추기는 게 대표적이다.

 

야전에서는 정훈장교들의 하소연도 들린다. 상부에서는 남북 군사합의 의미를 장병들에게 잘 홍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자신들도 기껏해야 신문 보도 수준의 정보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중구난방식 보도여서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남북 군사합의에 대한 ‘무소신’ 장군들의 태도도 한몫하고 있다. 구태여 나서서 정권이 바뀐 뒤에 불이익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실제로 머릿속은 ‘태극기 깃발부대’인데 몸은 촛불이 흔들리는 대로 이리저리 따라가는 장군들의 모습도 보인다. 심지어 인사철을 앞두고 진급 후보 대상자들이 써야 하는 서식에 “본인은 진급을 원하지 않는다”고 기재했음을 주변에 밝힌 장군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어차피 지금 정권에 찍혀 진급이 안될 것이 뻔한 그의 입장에서는 정권이 바뀐 후에 ‘과거 정권에서 진급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소신’으로 둔갑할 것이다.

 

어찌 됐든 정부가 남북 군사합의가 한반도 평화에 좋은 점을 국민들에게 표현할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건강식품처럼 제품 성분 및 효능을 구체적으로 광고 문구에 넣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안보부서 고위층과 장군들은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군사기밀’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언론 입장에서는 정보가 없어 팩트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한 한마디를 꼭 한다. “우리 군의 안보태세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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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군 숫자는 436명이다. 이 장군 숫자가 과거에는 군사기밀이었다. 군은 왜 ‘육·해·공군 장성이 몇명인지’를 비밀로 했을까.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에 국군 장성에 대한 정보가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장군 숫자가 노출될 경우 “별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부는 비대해진 군 조직의 군살을 빼겠다는 게 국방개혁의 핵심이라며 장군 숫자를 공개했다.

 

군 관계자들은 언론의 질의나 국민들의 궁금증에 대해 툭하면 ‘군사기밀’이라고 포장해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실제로 군사기밀일 수도 있지만 대답하기가 귀찮으면 습관적으로 “비밀입니다”라는 말로 퉁쳐버리는 경우가 많은 듯싶다. 얼마 전에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관계자가 북한 인민무력성 부상(차관급) 숫자는 군사기밀이라고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민무력성 부상들에 대한 소개는 통일부 홈페이지에 실린 북한인명록에도 올라가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창고로 들어간 대북확성기도 마찬가지다. 군은 합참 정보본부 심리전단이 관리했던 대북확성기의 위치도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전방지역 안보전망대를 가본 관광객들은 다 안다. 전망대 옆의 북한군 초소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에 대북확성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처럼 북한군도 뻔히 알고, 관광객들도 훤히 알고 있는 대북확성기 위치를 군 당국은 ‘군사기밀’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북한군이 알고 있더라도 군이 밝히는 것 자체가 북한군에게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비밀로 한다는 핑계를 댔다.

 

군의 군사기밀 분류는 자의적이고 이중적이기까지 하다. 정치적 목적이나 군의 책임 회피를 위해서는 군사기밀의 봉인이 너무도 쉽게 풀린다. 2015년 8월 경기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 추진철책 통문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 폭발사고(사진)가 대표적이다. 군 당국은 1953년 정전 이후 최초로 사건 현장인 DMZ 추진철책까지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관련 사진도 제공했다. 합참은 목함지뢰 2차 폭발 당시 상황을 담은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군 감시장비 자산으로 찍은 영상은 북한군이 감시장비의 해상도를 알 수 있다는 이유로 모두 대외비로 해왔던 자료였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안보 무능’ 정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군사상황을 과잉 노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군 당국은 그러면서 서부전선 포격사건과 관련한 동영상 제공 요청은 묵살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당시 유엔사는 한국군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던 터였다.

 

주요 군사기지의 위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군 전략부대인 미사일사령부의 위치가 국감 일정 공개자료를 통해 공개됐다. 이전까지 미사일사령부의 위치는 군 당국이 대외비로 해 왔다. 2년 전에는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유해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이유로 비밀이었던 수도권 패트리어트 레이더 기지와 조기경보 레이더 ‘그린파인’ 기지의 위치를 공개했다. 당시 군 당국은 사드 자체의 정확한 요격 범위나 효용성, 환경영향성 등에 대해서는 ‘군사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면서 우호적 여론 형성을 위해 비밀 군사시설은 공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군 당국이 언제는 군사기밀이라고 했다가, 느닷없이 언론에 공개하는 사례의 뒷배경에는 책임회피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 섬인 장재도에 설치한 2개의 가짜 해안포를 봐도 군의 입장이 얼마나 조변석개인지를 알 수 있다. 군은 북이 2개 해안포의 포문을 닫지 않은 것은 가짜 포문이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과거 같으면 군의 정보능력이 노출된다는 이유로 일절 언급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북한이 남북 군사합의를 성실히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벌어진 일이었다.

 

최근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DMZ 남북유해발굴 현장 방문을 소개한 홍보 동영상에 감시초소(GP) 통문번호가 노출됐다는 이유로 공식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GP 통문번호가 과연 군사기밀로 분류할 만큼 비밀이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국방부는 ‘군사기밀에 속하는 사안은 아니나, 군사훈련을 위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한다.

 

남북은 10여 개의 최전방 GP를 시범 철수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서는 군 당국이 아군 GP 현황을 북한군에 전달하고, 북한군 GP 현황에 대한 정보를 받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은 최전방의 남북한군 GP 현황은 물론 그 숫자조차도 군사기밀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 언론보도마다 GP 숫자가 들쭉날쭉이다. 북한군도 뻔히 알고 있는 GP 숫자를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군 당국은 ‘조자룡 헌칼 쓰듯’하는 이유를 댄다. 북한군이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 군이 이를 밝히면 공식적인 확인이 되기 때문에 공개가 어렵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잘 이해되는 이유일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변명이다.

 

군은 책임회피나 원하는 여론조성을 위해서라면 군사기밀 봉인을 쉽게 떼고, 불리하면 ‘군사기밀’ 명패 뒤에 숨어버리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군사기밀 가운데 실제로 철저한 보안이 필요한 것들이 과연 몇프로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애초부터 비밀로 분류하지 않아도 될 사안들에 대해서도 일단 군사기밀에 넣고 보자는 식의 군내 관행을 반증하는 사례들이 숱하기 때문이다. ‘꿩 대가리 숨기기’라는 말이 있다. 꿩이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 머리만 수풀에 처박고 몸통은 훤히 드러나게 두는 우스운 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군 당국이 군사기밀이라고 하는 것들의 상당수가 이 ‘꿩 대가리 숨기기’를 연상시킨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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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용산 삼각지 일대에서는 점심시간이면 전투복을 착용한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군은 남군과 달리 허리선이 안으로 약간 들어간 전투복을 입고 있다. 이는 국방부가 2011년부터 허리를 약간 잘록하게 디자인한 여군 전투복을 보급했기 때문이다. 남녀 구분이 없는 미군 전투복과 달리 한국군은 여군용 전투복이 따로 있는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데 일부 여군은 평균선을 벗어나 피팅 작업을 통해 상의 허리선을 더 파거나, 허벅지에 지나치게 달라붙도록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다. 심하게 전투복을 피팅한 여군의 경우 전시에 사격을 하다 봉제선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다. 이 정도면 전투복이 전투를 위한 기능복이 아니라 외부 시선을 끌기 위한 역할에 더 충실한 경우다. 과거 전투복 상의를 바지 안으로 집어 넣어 입어야 했던 시절 설문조사에서 상당수 여군 장교가 ‘전투복을 입었을 때 부하들 시선이 힙 라인에 쏠리는 것을 느껴 부담스러웠다’고 답했던 것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대다수 여군은 ‘전투복은 전투복다워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삼각지는 요새 국정감사 시즌이다. 이맘때만 되면 낮은 여군 진급률이나 부족한 편의시설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진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이다. 여군의 활동영역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시설과 환경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군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여군을 위한 시설과 환경은 여전히 ‘사각지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군 영관 장교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그들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은 만만치 않다. 한 간부는 신병훈련소 중대장 시절 행군을 앞두고는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여군에게 화장실은 전투력 향상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같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부터 진급에서의 ‘유리천장’ 깨기까지 여군의 질적·양적 전투력 향상을 위한 연구와 투자는 시급하다. 여군 스스로도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전투복의 과도한 허리선 피팅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을 터이다.

 

나아가 군내에서 여군과 관련한 성역도 무너뜨려야 한다. 대표적인 게 국군간호사관학교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생도 1명당 투자 비용과 향후 활용도를 비교해보면 소위 ‘가성비’가 매우 낮은 기관이다. 군당국도 이를 감안해 과거 정부에서 폐교를 시도했으나 여성 정치인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일반대학 간호학과 출신들의 군 취업을 제한하는 아이러니를 빚었다. 군내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자칫 ‘역풍’을 맞을까 봐 군 간부들은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여군의 전투병과 진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사례 연구와 검토 없이 특정 병과의 ‘1호 여군’ 배출 홍보에만 신경을 쓰면 곤란하다. 군내 ‘금녀의 벽’을 깨뜨리는 것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현대전에서는 ‘전투’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수㎞ 후방에 위치한 야전 통신부대의 여군도 미사일 공격 밑에서는 소총수와 같은 위험에 처한다. 전투와 최전선의 개념이 모호해진 것이다. 전쟁 개념도 개인의 육체적 능력이 중시되는 섬멸전에서 하이테크 전략무기로 적 지휘부를 무력화하는 제한적 타격전으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전술이 중요해지고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되는 등 전장 환경이 바뀌면서 여군의 활동영역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미군이다. 전체 군인 가운데 15%가 여성인 미군은 10여년 전만 해도 육군 전투병과에 여군이 없었다. 미 국방부(펜타곤)의 ‘직접지상전투’에 관한 규정에 여군은 최전선 지상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전 등 몇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최전선 개념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 국방부는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폐지했다. 이후 미군은 소규모 부대 편성 시 남군과 여군을 ‘몇 대 몇’ 비율로 하는 게 전투력 발휘에 가장 적합한지까지 연구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이라도 17세부터 준비해 만 18세가 되면 군에 입대한다, 여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31%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군 대외협력처에 따르면 이스라엘 여군은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국경선을 넘을 수 없다. 여군 전투병은 주로 혼성 국경방어부대에 소속돼 국경 방어 임무에만 활용된다. 이는 이스라엘군이 적군에 의한 여군 피랍은 절대 발생해서는 안되는 경우로 간주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여군 피랍 방지를 위한 방안 관련 연구를 장기간 실시해 왔고, 그 결과를 군 편성 및 전투교리 수립에 반영하고 있다.

 

육군은 마지막 ‘금녀지대’였던 기갑부대에도 여군을 배치했다. 이를 놓고 기계화부대 사단장 출신인 ㄱ 예비역 중장은 “전쟁이 벌어지면 전차 안에서 수일 동안 숙식과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과거 이스라엘 전차부대가 골란고원 전투에서 실제 겪었던 사례”라고 말했다. 남군과 구별하지 않는 전투병과 배치도 좋지만 군 당국이 과연 전투 발발 시 여군 전투력 활용의 명암을 고민했는지에 대한 반문이었다.

한국군에서 여군은 올해 6월 기준 1만1000여명이다. 전체 군인 가운데 6%다. 한국군에서 여군 참여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육군 보병 소대장과 특전대원에서부터 해군 전투함 요원, 공군 전투조종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전투병과에 여군이 진출해 있다.

 

공군 조종사들의 전투기량을 측정하는 공중사격대회에서도 여성이 두드러진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이 여군과 남군이 전투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실제 연구를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 없다. 소위 실전용 연구·검토보다는 여군 비율 확대에만 골몰한 탓이다. 두가지는 병행해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전투복은 전투복일 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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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관함식(觀艦式)은 1949년에 열렸다. 해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1주년을 기념하고, 발전된 해군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1949년 8월16일 인천 해상에서 관함식을 개최했다.

 

해군 함정 8척이 참가한 이 관함식은 요새 기준으로 보자면 편대기동훈련이나 다름없었지만, 단종진(單縱陣·함정이 일렬로 항진하는 형태)으로 항해하면서 실시한 37㎜ 함포 사격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열한 이 관함식은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민에게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

 

세계 각국의 군함이 참가하는 국제관함식은 해군이 건군 50주년을 기념해 1998년 처음 개최한 이래 올해 3번째로 열린다. 해군은 다음달 10~14일 제주 민군복합관광미항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국제관함식이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하는 문제로 시끄럽다. 논란은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할 예정이라고 해군이 지난 6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14개국 21척의 외국 군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는 이번 국제관함식에는 미국이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등 4척, 러시아가 순양함 바랴그 등 3척을 보낼 예정이다. 중국과 일본은 구체적으로 어떤 함정을 파견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본 자위대 함정은 과거 제국주의 해군기에서 유래한 욱일기를 달고 참가한다는 것이다. 군함은 정박 시 통상 함수(뱃머리)에 소속 나라의 해군기를 단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는 일본 국기 ‘일장기’의 붉은 태양 주위에 욱광(旭光·아침 햇살)이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했다. 일본은 1945년 패전과 함께 욱일기 사용을 일시 중단했으나, 1954년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욱일기를 자위대기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국제사회가 용인해주다보니 심지어 주일미군마저 후지산과 욱일기 햇살 문양을 합해놓은 형상의 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욱일기를 단 일본 군함의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게시글이 수십개나 올라온 상태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상징이며 한국민에겐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급기야 한국 홍보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13일 “전범기(욱일기)는 달지 말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e메일과 편지를 자위대와 무라카와 유타카 해상막료장(해군참모총장)에게 보내기에 이르렀다. 서 교수는 e메일에서 “행사에 초대받아 참여하는 것은 좋으나,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를 군함에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역사를 제대로 직시한다면 스스로 게양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라고 밝혔다.

“일본은 또 다른 곳에서 제주 입항을 사례로 들며 전범기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 뻔하다”는 서 교수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난 뒤 ‘나치기(하켄크로이츠)’ 사용을 법으로도 금지했지만, 일본은 전범기를 부활시켜 여전히 군사제국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군은 국제 관례 등을 고려할 때 초청 국가인 우리가 일본에 자국 해군의 군함기인 욱일기 게양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군함의 경우 국제법적으로 치외법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일본 함정이 우리 영해에 들어오더라도 국내법이 아닌 일본법의 적용을 받는 까닭에 자위대 함정에 어떤 깃발을 달지는 전적으로 일본의 권리라는 것이다. 일본 자위대는 1998년과 200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관함식 때도 모두 욱일기를 달고 참가했다는 과거 사례도 소개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1만4500t급 대형 상륙함인 독도함을 이번 국제관함식의 좌승함(座乘艦)으로 해야 한다. 관함식에서 좌승함은 대통령이 탑승하는 사열함이다. 국가 주요 인사, 군 수뇌부, 외국군 대표 등 초청 인사도 함께 탑승하는 영예로운 함정인 것이다.

 

해군은 이번 국제관함식의 좌승함이 4900t급 한국형 상륙함인 ‘일출봉함’으로 정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도함으로 좌승함을 교체할 필요가 있다. 독도함은 일본이 자국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독도를 함정의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국제관함식 때도 해군이 애초 계획했던 좌승함은 독도함이었다. 그러자 일본이 “독도함이 좌승함이라면 관함식 참가를 거부하겠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자칫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까 우려해 좌승함을 ‘강감찬함’으로 변경했고, 독도함을 시민 등이 탑승하는 시승함으로 변경했다. 그것이 올해도 반복돼 독도함은 시승함으로 예정돼 있다.

 

만약 당시에도 해군이 일본의 억지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독도함을 좌승함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국제사회가 한국 해군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할지, 아픈 식민지 역사를 다시 한번 자극한 일본 해군의 오만함을 비판할지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러는 사이 일본은 욱일기를 자랑스럽게 군함에 내걸고 유세를 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 미국·영국·독일·중국 등 14개국 외국 무관들이 참석한 독도함 진수식 때 자국 무관의 참석 거부를 지시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예비 장교들에게 다른 함정의 견학은 허용하지만, 독도함만큼은 탑승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 해군은 욱일기를 달고 한국 군항을 방문하고 있다.

이에 맞서 독도함이 좌승함으로 나서는 것은 전 세계 해군에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카드다. 일본 욱일기를 누르는 자존심의 과시이기도 하다. 또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홍보하는 최대·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의 반발이나 불참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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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반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유해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과 과거청산의 일환으로 진행된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이 대표적이다. 두 작업은 발굴 대상이 비정상적이고 비참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차이점은 있다. 전사자 유해 발굴은 강한 국가보훈적 성격을 띠고 있다. 반면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은 부당한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과오에 대한 반성을 통해 과거청산의 계기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학살자 유해 발굴작업을 재개하기도 했다.

 

전사자이든, 피학살자이든 발굴해 재매장한다는 것은 죽은 자의 유해를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만 해도 전사자는 대체적으로 숨진 곳에 묻혔다. 전사자 본국에 ‘무명용사의 묘’가 많았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여기에 변화를 일으킨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을 치른 후 전사자 유해를 본토로 송환하는 사업을 중점 추진했다.

 

미국은 1973년 실종자와 전사자를 찾는 전문 기관인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를 설립했다. 이들의 모토는 ‘우리는 절대로 당신을 전장에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느 경우든 반드시 당신을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였다. 전쟁 실종자나 전사자는 반드시 가족에게 인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은 2016년 1월 JPAC에 미공군 생명과학연구소 등 2개 기관을 더해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으로 확대했다. DPAA에는 유럽·지중해 작전 파트와 아시아·태평양 파트까지 있다. 이들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은 물론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실종자와 미수습 전사자까지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국방부도 JPAC를 벤치마킹해 2007년 1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했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유해발굴감식단 휘호석에 새겨진 문구다.

 

DPAA는 한국군 유해발굴감식단과 유해공동발굴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 송환을 계기로 북한에서의 미군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 재개를 북측과 협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에서 이송된 미군 6·25 전쟁 전사자 유해 55구에 대한 송환 행사가 지난 1일 미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첫 미군 유해 송환은 1990년 5월 28일 이뤄졌다. 이날 판문점에서는 북한이 유엔사 군사정전위를 통해 한국전쟁 중 실종, 사망한 미군 유해 5구를 주한유엔군사령부에 인계하는 행사가 열렸다.

 

북한이 건넨 유해함은 길이 2m, 폭 40㎝, 높이 30㎝ 잣나무관이었다. 유골은 몸형태 부위별로 수습돼 흰솜과 종이로 쌓여 있었다. 소위 ‘K208’ 유해들이었다.

 

이후 북한이 발굴해 판문점에서 전달하는 유해 송환 행사는 33차례 더 이어졌다. 그 사이에 ‘인도주의적 차원’이란 이름하에 미군 유해 송환작업이 진행되면서 미군 유해를 인수하는 주체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주한미군’으로 바뀌어 갔다. 과거 주한미군을 인수주체로 표기한 언론에 대해 꼬박꼬박 ‘잘못’을 지적하면서 유엔군사령부로 표기해달라던 유엔군사령부측 요청도 나중에는 사라졌다.

 

미군유해 인수주체는 정전협정 체제에 대한 남북한 간의 상이한 견해, 남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나름 심각한 사안이었다. 한국과 미국은 정전협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판문점에서 이뤄지는 미군 유해 송환의 주체는 유엔군사령부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북측은 96년 4월에 정전협정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이후부터는 유엔군사령부 존재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유엔군사령부가 아닌 미군 대표가 판문점에 나와 미군유해를 인수해 가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핵심은 북한이 미군 유해 인도를 미국과의 직접 통로 창구로 활용하려는 데 있었다.

 

북한의 의도는 관철됐다. ‘유엔군 유해 송환’이란 말은 ‘미군 유해 송환’으로 바뀌었고, 유엔군이 아닌 미군이 유해를 인수했다는 보도로 바뀌었다.

 

이처럼 북한의 유해 발굴과 송환은 철저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뤄졌다. 지금도 북한은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 문제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활용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음을 숨기려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도 북한 외교처럼 ‘살라미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찔끔찔금 미군 유해를 전달하면서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연결 고리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단계적으로 유해를 보내는 북측의 협상 태도에 미국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베트남을 벤치마킹하라고 공공연하게 권하고 있다. 미국과 베트남이 성공적인 정치·경제·안보 관계를 이룰 수 있는 토태를 마련해준 것은 미군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베트남 당국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이 문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베트남은 1988년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계기로 미국과 관계가 발전해 1995년 양국간 공식 수교로 이어졌다.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인 평화지대화를 합의했다. ‘6·25 전사자 유해 공동발굴’은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등장했다. 사실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은 2007년 11월 국방장관회담 때 남북 간 합의사항이었다. 경색된 남북관계로 오랫동안 서류철 깊은 곳에 묻혀 있다가 11년만에 다시 끄집어져 나온 것이다.

 

이렇듯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끝까지 찾아 책임지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로 자리매김했지만, 여러가지 다른 성격의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무장 지대의 전사자 유해 발굴은 남북한군 뿐만 아니라 미군 및 다른 유엔군 참전용사들, 심지어 중국군 유해 발굴까지 겸하는 작업이다. 남북간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세계 여러나라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래저래 유해 발굴은 단순히 죽은 자를 다시 찾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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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육군 중장(육사 41기)과 장경욱 전 육군 소장(육군 36기). 육사 5년 선후배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군 정보기관 수장 자리인 국군기무사령관직에서 이임식조차 갖지 못하고 쫓겨나듯 내몰려진 부분이다. 두 사람이 직속 상관인 국방장관한테 비난받은 것도 유사하다.

 

1월 25일 서울 현충원에서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버린다”며 손을 씻는 세심의식을 하고 있다. 기무사 제공

 

2013년 10월 장군 인사 발표날 기무사 직원들은 장경욱 사령관이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축하 꽃다발과 함께 다과회까지 준비했다가 기무사령관이 경질됐다는 황망한 소식을 접했다. 기무사령관이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교체된 경우는 1993년 3월 서완수 기무사령관이 회의 중 전화로 교체를 통보받는 형태로 잘린 이후 처음이었다. 장 사령관은 후임 보직조차 받지 못하고 군복을 벗었다.

 

약 4년 10개월 후인 지난 3일 기무사 직원들은 이석구 사령관이 전격 교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다음날에는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이 열렸고, 남영신 신임사령관(학군 23기)이 송영무 국방장관과 함께 기무사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취임식장에 들어섰다.

 

장경욱 전 소장은 자신이 정권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여겼다. 이것이 그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돼 순순히 대구로 내려가는 이 전 사령관의 경우는 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을 수 있다.

 

아무튼 두 사람이 경질된 결정적 이유는 청와대와 국방장관에 ‘지휘 부담’을 준 탓이었다. 두 사람 모두 국방장관과 맞서는 모양새였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가 기무사령관 손을 들어주게 되면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후임 장관 청문회를 준비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기에는 정권 입장에서는 부담이 너무 컸다. 설사 국방장관을 자르려고 한다 하더라도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 조직에서 부하인 기무사령관을 놔두고 상관인 국방장관부터 먼저 날리기는 어렵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있다. 장 전 기무사령관은 중장과 대장급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에 김관진 국방장관의 인사 전횡 문제를 군내 여론동향으로 은밀하게 보고한 것이 화근이었다. 반면 이 전 기무사령관은 최근 국회국방위에서 공개적으로 송영무 국방장관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등 ‘하극상’을 연출한 탓이었다. 특히 이 전 사령관으로서는 청와대 의중을 충실히 받들었다고 여겼을 지 모르나,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은밀하게든, 공개적이든 두 사람은 모두 정권이 자신들의 충정을 믿고 지지할 것으로 착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두 사람 모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 됐다. 정권 차원에서 기무사령관으로 임명한 만큼 무한신뢰를 보낼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이 지난 4일 송영무 국방장관과 함께 취임식장에 들어서자 기무부대원들이 박수로 맞이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게다가 정권 입장에서는 대체재가 없었던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후임 이재수 사령관에게는 ‘예정된 기무사령관’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이번에 취임한 남영신 사령관의 경우에도 지난해 9월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 전격 발탁됐을 당시부터 문재인 정부 군부의 새로운 실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부산 동아대 학군(ROTC) 출신인 그는 비육사 출신 첫 특전사령관이었다. 그동안 특전사령관과 기무사령관은 육사 출신이 독점하다시피 한 관례에 비춰 보면 정권 차원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남 신임 사령관에 대해 “특수전 및 야전 작전 전문가로, 폭넓은 식견과 전문성, 조직관리 능력을 갖췄다”며 “솔선수범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상하 모두에게 신망을 받는 장군이며, 기무사 개혁을 주도하고 추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이석구 전 사령관도 경질돼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밀려나기 전까지는 새로 출범한 정권의 기대주였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기무사령관 자리를 놓고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인 이석구 소장과 제1야전군 참모장인 최영철 소장(육사 41기·현 육군교육사령관)을 저울질하다 지난해 9월 이석구 장군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이 장군이 노무현 정부 당시 영관급 장교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했던 인연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는 ‘통수 보좌’ 임무를 강조한다. 대통령의 군 통수권 행사를 위한 ‘눈’과 ‘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기무사령관이 직속상관인 국방부 장관 보다 청와대와 지근 거리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그러다 보면 기무사령관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청와대에 직언하다 괘씸죄에 걸리거나, 거꾸로 청와대 의중을 믿고 국방장관을 압박하다 ‘역풍’을 맞는 사례도 있다. 장경욱 전 사령관은 지난 정권에서 국방장관의 독단을 견제하는 것은 기무사의 고유 임무이기 때문에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경질이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 독대를 위해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 주변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만약 국방장관이 독단과 전횡을 한다고 신임 기무사령관이 청와대에 보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침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는 ‘국방장관 비리에 대해서는 기무사령관이 군 통수권 보좌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청와대에 직보할 수 있다’고 발표한 터이다.

독단과 전횡이 비리 범주에 포함되는 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정답은 ‘(청와대 반응이) 그때그때 달라요’가 아닐까 싶다. 기무사령관 입장과 정권의 입장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변치 않는 결론은 있다. ‘군인은 명령이 나면 움직이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토사구팽일지언정~.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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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가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통화 내용을 감청했다는 시민단체 군인권세터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30일 “노 전 대통령과 윤 전 장관이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맡고 있는 업무에 관해 논의를 했다”며 “장관이 사용하는 군용 유선전화를 통해 감청이 이뤄진 것”이라고 현직 기무사 요원의 제보 내용을 밝혔다.

 

기무사가 대통령과 국방장관 통화 내용을 감청한 것은 불법일까.

우선 기무사 감청이 다 불법은 아니다.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있거나 간첩에 대한 수사를 할 때는 고등법원의 감청 영장을 받아 당연히 이뤄진다.

 

수사 목적 외에도 기무사가 군 기관을 무작위 감청한다는 것은 군에서는 하나의 상식처럼 통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국가안보 관련 중요사항과 관련한 군내 감청은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하는 일반 감청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4개월마다 한번씩 대통령의 포괄적 승인을 받아 감청을 할 수 있다. 기무사는 이를 빌미로 사실상 무제한 감청을 해왔다.

 

 

국방장관과 국방차관, 합참의장 등 군 고위층 경우에는 24시간 감청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기무사는 수사 목적이 아닌 경우 무작위적으로 제한적 감청을 할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군 고위층이라 하더라도 특정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감청은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믿는 군 인사는 거의 없다.

 

안보문제가 아닌 단순 동향 보고를 위한 영장 없는 감청 혹은 민간인에 대한 정보수집은 불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무사는 암암리에 군 장성이나 국방부 고위관료 혹은 민간인의 단순 동향 파악도 해왔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기무사 감청의 가장 큰 목적은 쿠데타 방지다. 쿠데타(coup d’Etat)는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기무사 감청은 쿠데타 가능성을 막기 위한 여러 법적·제도적인 군부 감시 방안 중 하나다.

 

기무사의 쿠데타 방지 임무수행은 징후를 포착해 미리 제거하는 개념에 가깝다. 기무사가 군 주요 지휘관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의 동향을 일일이 챙기는 배경으로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 고위층에 대한 무작위 감청 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 감청은 신군부의 1979년 12·12 군사반란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쿠데타를 막아야 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쿠데타 수괴로 변신한 것은 보안사 감청의 결과였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내보내려던 계획이 보안사 감청을 통해 새나가면서 위기를 느낀 전두환 사령관이 쿠데타를 주도해 12·12가 일어난 것이다.

 

1993년 3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하나회를 정리했다. 취임 11일 만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12·12 군사반란 연루자의 군복도 벗겼다. 만약 감청 등을 통해 관련 정보가 새나갔다면 군부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문민정부 관계자들은 보안사 감청으로 12·12가 일어났던 것을 감안한 전격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전화통화하는 송영무 국방장관. 국방부 제공

 

만약 기무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 사이의 일상적인 업무 통화를 무작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감청한 후 내부 이익을 위한 특정 목적에 사용했다면 위법성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게 군 검찰관의 설명이다. 감청 업무 담당자들이 국방장관의 전화 통화를 별도로 감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이 역시 합법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감청 정보를 보고서로 만들어 문서로 만들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무사는 지난해 11월 말에도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 포스(TF)’를 감청해 수사 정보를 미리 파악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기무사는 국방부 TF 책임자의 전화 통화를 세차례 감청해 기무사에 압수수색을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기무사령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국방부 TF가 기무사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 수행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실무진이 이를 특이동향으로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해 수사기밀을 누출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군 검찰은 이 사안에 대한 위법사항 조사에 나섰다. 특이사항이 아닌 정상적인 활동내용도 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후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면 위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 검찰은 한달 후 “(감청 정보를 이용한) 기무사의 추가적인 증거인멸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고, 감청 또한 합법적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무사가 사이버 댓글공작 TF장의 회선이 아닌 상대방 회선을 합법적으로 감청하던 중 우연히 취득한 정보인 데다 이 같은 정보를 증거인멸이나 수사방해 등에 활용한 정황도 파악되지 않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수사 정보가 기무사 측에 더 많이 새나갔을 가능성과 함께 기무사의 무차별적인 군 전화회선 감청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무사의 감청 업무가 감청 목적에 부합하게 이뤄지는 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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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 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전선 앞장을 서리(2절은 ‘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나가리’)….”

 

요새 ‘촛불 계엄 문건’으로 시끄러운 국군기무사령부 부대가 일부분이다. 부대가만 보면 은밀하게 일하는 보안·방첩부대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명령만 내리면 (설사 그것이 정권을 찬탈하는 일일지라도 ‘역사’를 앞세운 사령관의 명령이라면)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나가 임무를 완수했던 충성스러운 부대였다는 이미지는 와닿는다.

 

역대 기무사 위상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던 기무사령관 대통령 독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무사령관 독대는 이뤄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 보고는 배석자가 없으면 ‘독대’가 된다. 과거 정부에서는 배석자가 있다 하더라도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 대면보고는 사실상 ‘독대’로 간주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지금까지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는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 보고를 예외적으로 일부 허용하는 기무사 개혁위의 검토안과 거리가 있어, 청와대가 향후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극히 예외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대통령 직접 보고가 이뤄지면서, 국방부 장관도 기무사령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군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기무사령관 역시 국방장관 부하로서 역할보다는 아무래도 견제하는 역할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기무사에서는 월요일이면 기무사령관 책상 위에 국방장관 주말 골프 스코어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군 고위층이 외부 인사와 회식을 가지면 기무요원이 상부 보고를 위해 ‘폭탄주는 몇 잔이나 마셨나’까지 알아보고 다녔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역대 정권마다 집권 초 기무개혁을 검토했지만 대통령 통수에 대한 보좌 기능이라는 논리에 순응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말이 통수기능 보좌이지, 이는 군의 쿠데타 방지 또는 군 수뇌부 부패 방지라는 명목으로 장교들의 동향을 관찰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김대중 정부 당시 “이제 기무사도 정부 햇볕정책에 어떤 도움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고 부하들에게 설파했던 한 기무사 영관 장교가 이명박 정부에서 장군이 된 뒤 “군내에서 ‘햇볕정책’ 운운하는 종북세력을 뿌리 뽑는 게 기무사 역할”이라고 부대원들에게 역설하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기무사 보고는 달콤할 뿐만 아니라 유용하다”며 “기무사 개혁의 핵심은 대통령과 기무사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무사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 반지’에 비유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 힘을 갖고 있는 반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막상 반지를 끼고 난 뒤에는 반지의 힘에 휘둘리는 것처럼 정권은 기무사를 활용하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로 군에서 기무사 보고서는 중독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잘 훈련된 에이스 요원들이 작성하는 기무사 보고서는 일목요연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기무사 촛불 계엄 문건의 보고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이번 계엄 문건 사건의 발단은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16일 오전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이 문건을 보고한 것이다. 당시 송 장관은 국방연구소(ADD) 이사회 참석 때문에 이 사령관 보고를 자세히 듣지 못하고 “(문건을) 놓고 가라”고 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대목에서 의아스러운 점은 문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 사령관은 “중요한 문건이므로, 차후에라도 자세한 설명을 드려야 하니 다시 시간을 내주십시오”라고 했어야 했다. 송 장관 역시 나중에 이 문건을 정독한 후에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기무사령관을 다시 불러 추가 보고와 후속 절차를 지시했어야 상식적이다. 이런 절차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령관의 촛불 계엄 문건 보고에 대해서도 평소의 기무사답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사령관이 ‘문건 성격에 관한 기무사 내부의 확인 검토 및 향후 대응방안’까지 함께 마련해 보고했어야 했다”는 말이 기무사 예비역들 사이에 거론되고 있다. 이 사령관은 ‘이런 문건이 나왔으니 장관께서 알아서 하세요’로 끝내버린 셈이다.

 

송 장관도 마찬가지다. 나중에라도 보고자인 이 사령관을 다시 불러 의견을 교환하는 게 상식이지 않나 싶다. 국방부의 첫 보고 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시 정황 등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다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국방부가 문건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순 보고했다는 의미다. 더 거슬러가면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에게 무성의한 보고를 했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군대에서 최고위층에게 보고할 때 핵심은 단순한 문건의 전달이 아니라 문건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파급력 및 그 대응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보고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게 상식인 점에 비춰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군대에서는 ‘끼워넣기 보고’라는 말이 있다.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껄끄러운 사안을 여러 보고 문건에 슬쩍 끼워넣어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또 지휘관이 시간이 촉박해 가장 바쁠 때 보고시간을 잡은 후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도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문건 파문의 출발점은 기무사의 5분 보고였다. 이것이 국방부의 청와대 부실 보고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책임 떠넘기기식 설명을 해 파문을 키웠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진 이번 파동의 책임은 이들 기관 모두에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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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은 몇 명인가. 한·미 국방당국이 밝히고 있는 주한미군 병력은 2만8500명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기차게 주한미군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병력 숫자를 3만2000명이라고 하고 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3월14일에는 “지금 남북한 사이에 우리 군인 3만2000명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자”고 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주한미군이 증원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는 언론보도로 이어졌다.

 

논란이 일자 크리스토퍼 로건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지난 4월14일 “공식적인 주한미군 수는 여전히 2만8500명이며, 일본 주둔 미군의 수는 5만명”이라면서 “병력 규모는 훈련과 다른 전개 상황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국방부도 “주한미군은 2만8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SCM(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을 통해 주기적으로 재확인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다만, 주한미군 병력 수는 순환배치 및 훈련 등으로 일시적으로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나 순환배치에 따른 교대를 핑계로 대는 한·미 군당국 해명이 군색하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최근 내놓은 ‘전략 다이제스트’ 2018년판을 통해 주한미군 병력이 3만명 이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한미군 ‘전략 다이제스트’는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현황과 기지 실태, 훈련 종류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공식 문건이다. 그동안 미국이 주한미군 숫자를 고무줄 셈법으로 계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군 ‘입맛’대로 달라지는 ‘고무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사안은 주한미군 병력만이 아니다. 미군이 발표하는 한·미 연합훈련 참가 미군 병력도 고무줄이다. 대표적인 게 올해 훈련이 취소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 참가하는 미군 병력 숫자다.

 

UFG가 처음 실시된 2009년 당시 훈련에 참여한 미군 병력은 1만여명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이 일어나자 한미연합사령부를 겸하는 주한미군사령부는 UFG 훈련에 해외 미군 3000여명을 포함한 미군 3만여명이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해외 병력 3000여명을 포함한 미군 참가 병력은 3만명’이라는 발표가 사실이라면, 주한미군은 2만7000명이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게다가 시뮬레이션 훈련인 UFG에 1만명이던 참가 병력 숫자가 순식간에 3배나 늘어난 것은 누가 봐도 비현실적이다. 이 수치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차원의 액션을 기대하는 한국민들에게 내놓은 ‘립서비스’ 차원이었다. 이는 안보 무능을 숨기기 위한 한국 보수 정권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2015년 이후에는 참가 병력을 5000여명 줄여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UFG가 지휘소 훈련임을 감안하면 상식에서 벗어난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UFG에 실제 참가하는 미군 병력 숫자를 숨기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군이 전략커뮤니케이션(SC)을 앞세워 거짓 숫자를 발표해 왔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에 통보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결정하고 이를 먼저 북한에 통보했다. 그러다보니 8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남측 대표가 연합훈련 중단과 관련해 북측 대표한테 “남한 대표 준비 좀 잘해 와라” 하는 훈계를 듣고 반박조차 하지 못하는 불편한 일까지 일어났다. 그동안 한·미는 ‘빛 샐 틈 없는(No Daylight)’ 동맹관계라고 강조해 왔지만 이쯤 되면 (진실을 밝히는) 빛이 못 들어오는 ‘깜깜이 동맹’이라고 비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앞서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 2일 싱가포르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연합훈련을 ‘로키(low-key)’로 진행하기로 했다. 8월로 예정된 UFG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전략자산 전개의 경우 비공개하고 훈련 전반에 관한 사실도 나서서 홍보하지 않겠다는 합의였다.

 

당시 송 장관은 “(한·미관계는) 0.1㎜, 즉 한 치의 오차도 없다”고 말했지만, 양국 합의는 열흘 만에 깨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사전 교감은 전혀 없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의 일시 중단을 바라고 있었다는 점에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미국의 일방적 발표가 보수층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점도 유리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주한미군이나 다른 연합훈련에 관한 중요 사항도 일방적으로 통보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불균형 군사동맹인 한·미관계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문제는 키리졸브와 독수리, UFG 등 3대 한·미 연합훈련뿐만이 아니라 다른 연합훈련까지 북한이 중단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대비책이 있냐는 것이다. 만약 이런 훈련조차 중단된다면 한·미 군사동맹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고, 다시 한번 ‘깜깜이 한·미동맹’의 일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향후 북한이 미국의 조치에 상응하는 행동을 이어나간다면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는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향후 역할도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하거나 중국을 견제하는 ‘동북아 기동군’으로 급속하게 무게중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새로운 한·미 군사동맹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연합훈련 중단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철수도 공공연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는 한·미동맹의 이완을 통해 북한의 긴장고조 행위를 막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한·미 군사동맹에 의존해온 한국 사회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주목된다. 사실 정확한 주한미군 병력 숫자조차도 어긋나는 한·미 군사동맹에서 ‘빛 샐 틈 없다’는 전제는 허구였다는 현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였어야 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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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동부~중부~서부 전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횡단 5박6일 취재를 다녀왔다. 휴전선을 지키는 일반전초(GOP) 부대에서 많은 장병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남북 정상의 만남과 판문점선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살짝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흥분됐습니다” “통일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 복무기간이 짧아져 전역이 앞당겨진다면 모를까 관심없습니다” “떨떠름합니다. (북의) 위장 평화 아닙니까” 등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요즘 안보환경에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군은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로 대답이 한결같았다. 어찌 보면 틀에 박힌 듯한 교과서 답변이었지만, 국민이 군에 바라는 정답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한·미·일 블루 라이트닝 훈련을 놓고도 병사들 개인 의견처럼 제각각 뒷말들이 많다. 블루 라이트닝 훈련은 미국이 B-52 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해 주변국에 전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훈련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B-52는 핵 확산 억제 정책을 수행하는 미 전략자산의 하나다. 미군은 B-52를 가끔씩 한반도에 보내 미 전략자산의 출현이라는 메시지를 주변국에 알려왔다. 동시에 전략핵폭격기의 전시 절차 수행 훈련과 조종사의 임무 수행능력 향상을 함께 꾀해 왔다. 일각에서는 한반도 오른쪽에서 훈련을 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라이트닝이라는 명칭을 붙인 훈련을 여러 개 하고 있다. ‘코럴 라이트닝’은 남중국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겨냥한 훈련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또 인도양에서는 화이트 라이트닝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블루 라이트닝 훈련엔 한국 공군이 불참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미 한 달 전에 B-52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시키지 않을 것임을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B-52가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에 전개될 것처럼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다가 B-52가 맥스선더가 아닌 한·미·일 블루 라이트닝 훈련에 참가할 예정이었다가 한국 정부 요청으로 한반도 공역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내외신 보도로 바뀌었다. B-52를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은 것이 미측의 결심인지, 송 장관의 요청인지를 놓고도 오락가락 보도 등으로 혼동을 빚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치 한국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우와좌왕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이러는 사이에 북한은 맥스선더 훈련을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 구실로 삼았다. 아마 북한도 그토록 싫어하는 B-52가 맥스선더 훈련에 등장하는 것으로 혼동했던 듯싶다. 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저서 출간만을 시비 걸기에는 명분이 약해 맥스선더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든 맥스선더는 실질적으로 24일 종료됐다. 맥스선더 종료로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재개할 명분이 생겼다.

 

남북 대화 분위기 속에서 국방부의 ‘국방개혁 2.0안’도 사실상 표류 중이다. 공세적 신작전수행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 폐기에 들어간다고 해도 당장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굳이 한반도가 아니더라도 적 군사 위협에 대응하는 전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준비해야 하는 게 군 작전의 기본이다. 군축이 현실화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심지어 해군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 진수식에 대해서도 해상에서 펼쳐진 도발적인 군사적 움직임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북한 반응까지 일일이 고려해야 한다면 국방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북한 태도에 일희일비하면서 “맥스선더 훈련은 예정대로”라고 말한 송영무 국방장관에 대해 분위기를 모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남북 대화에도 도움이 안된다. 큰 틀에서 맥스선더 훈련 때문에 깨질 남북 대화라면 언젠가는 또 다른 사소한 이유로 깨지게 돼 있다.

 

분명한 것은 여러 혼동을 빚게 하는 정부 태도나 보도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측이 우왕좌왕한다고 판단하면 자신들의 페이스대로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다고 여긴다. 차라리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배석했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영철 부장은 본인 스스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김일성 주석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만났을 때 김 주석 뒤쪽에 서 있었다고 남측 인사들에게 주장한 바 있다. 사실이라면 46년째 대남 전문가다. 그는 1989년부터 남북 군사접촉과 대화에서 북측 대표를 해왔다.

 

그는 회담 전문가이자 대남 공작과 도발 전문가인 양면적인 인물이다. 남북 회담장에서는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측 인사에게 고함과 호통을 치고 모욕을 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상부 지시 수행을 위해서는 비굴하게 사정하고 변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금 북측이 맥스선더 훈련을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하는 구실로 삼고, 남측 기자들의 풍계리 핵실험장 현장 취재를 막판까지 가슴 졸이게 하다 허가해주는 방식도 김영철식 밀당(밀고 당기기) 연장선상이다.

 

남측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대화 국면을 계속 끌고 가기 위해서는 북측 의도를 알면서도 끌려가는 부분을 일정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무력집단인 군까지 알아서 눈치보기식으로 하라는 것은 오히려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국방부는 평화 국면에서도 무력을 준비해야 하는 유일한 정부 부처다. 오히려 군을 대북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레드 플래그 훈련을 벤치마킹해 맥스선더 훈련을 만들었듯이 김영철을 벤치마킹해서라도 남측이 북측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내 대화 주도권을 잡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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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은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담대한 발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만난다. 두 정상의 만남은 제2의 몰타 회담에 비견되고 있다. 1989년 12월3일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한다고 선언했다. 회담 직후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는 ‘냉전 이후’라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회담이 열린 곳은 지중해 몰타섬에 정박한 소련 여객선 막심고리키였다.

 

역사는 몰타 회담처럼 때때로 선상에서 이뤄졌다. 특히 배 위에서 결말을 본 경우가 많았다. 후일 유엔 공동선언의 기초가 된 대서양헌장도 1941년 8월 함정에서 만들어졌다. 캐나다 동해안 섬인 뉴펀들랜드 플레센티아만에 정박한 영국 해군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서였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해군 구축함 맥두걸을 타고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올랐다. 이 전함에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처칠 총리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정상은 북대서양에서 5일간 선상회의 끝에 공동선언인 대서양헌장을 발표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총리,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 등 세 연합국 수뇌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세계대전의 수행과 전후 처리 문제를 사전 협의했다. 한국 독립 문제가 처음 언급된 이 회담에서 정상들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는데, 한번은 미국 전함 아이오와 함상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 밖에 1842년 아편전쟁은 영국 군함 콘월리스에서 맺은 난징조약으로, 태평양전쟁은 1945년 9월2일 요코하마에 정박한 미 전함 미주리에서 일본이 공식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마무리됐다.

 

6·25전쟁 때는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가 휴전회담 장소가 될 뻔했다.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이 1951년 6월 공산군 측에 원산 앞바다의 덴마크 선박 위에서 휴전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공산군 측이 회담 장소를 수정제의해 함상 회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1994년에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대동강 요트에서 회담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선상 회담의 원조는 임진왜란 때 조선이 왜군과 벌인 선상 담판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예조판서 이덕형이 대동강에 배를 띄우고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돼 선조는 의주로 몽진했다.

 

유럽 국가들은 1985년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솅겐 인근 모젤강에 띄운 배 위에서 솅겐조약을 맺고 나라 간의 통행 제한을 풀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의 ‘빅3’ 정상은 2016년 8월 나폴리 인근 벤토테네섬에서 정상회의를 가진 뒤 항공모함 가리발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 해군도 정상회담과 같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함정을 갖고 있다. 독도함이다. 독도함은 1만4500t급 대형 수송함(LPX)이자 상륙함정이다.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억지 주장하는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한국 해군 함정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2005년 7월 미국과 영국·독일·중국 등 14개국 무관들이 참석한 독도함 진수식에도 일본 무관의 참석 거부를 지시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방위대의 해상자위대 예비 장교들에게 다른 함정의 견학은 허용하지만, 독도함만큼은 탑승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에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독도함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판문점에서 열리지만, 다음번에는 독도함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면 어떨까 싶다. 선상은 안전과 보안에도 유리하다. 해군이 매년 독도함에서 함상 토론회를 열어왔을 만큼 공간도 넓다. 2010년 10월에는 국회 국정감사가 독도함에서 열리기도 했다. 독도함이 머물 장소는 서해나 동해의 북방한계선(NLL)도 좋고, 원산만도 관계없다. 북한은 남측 대통령이 최고 존엄을 알현하러 원산까지 군함을 타고 왔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할지도 모른다. 거꾸로 남측 군함에서의 정상회담이라는 이유로 절대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도함에서의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북측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대신 남북 모두 실리를 챙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독도함은 회담 개최 장소로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다. 남북 정상이 독도함에서 머리를 맞대고 회담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전달되면 세계는 독도함이 연상시키는 독도에도 주목할 것이다. 당장 다음번이 힘들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독도함에서의 남북 정상 간 만남은 이뤄질 수 있다.

 

독도함에서의 정상회담은 몽상가의 생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몽상에서 시작해 현실로 이어진 역사도 많다. 군함 위에서의 정상회담은 어색하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4월28일 중앙선관위 초청 2차 토론 마무리발언에서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미 핵항모인) 칼빈슨호 함상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은 제3국에서 열리는 것이 상례다. 그런 면에서 이왕이면 남북 정상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나 몽골까지 갈 것도 없이 독도함에서 만나면 금상첨화다. 회담 당사국에 제3국의 선상은 통상적으로 중립지대로 간주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가 함상에서 그려질 수 있다. 불필요한 의전을 생략할 수 있고 실무적인 의견을 교환하기에도 적당하다. 다만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일본만은 반발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에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가 그려진 망고무스 디저트에 대해서도 항의하는 일본이니 말이다. 일본의 항의는 무시하자.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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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군 경찰이라는 본연의 업무와 관련한 이미지도 있지만, 아직도 장삼이사는 일제강점기 긴 칼을 옆에 차거나 권총을 들고 독립투사를 검거하려 혈안이 된 일본군 헌병 모습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영향도 크다.

 

<밀정>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헌병은 ‘경찰헌병’이다. 일제는 1910년대 우리의 국권을 뺏은 후 한민족을 위협하고 편의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군인인 헌병을 군사뿐만 아니라 일반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경찰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일제가 무단통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경찰헌병이다. 일제 헌병은 ‘무단통치’의 주역이었고, 한국인을 헌병 보조원이나 순사보로 임명하여 독립운동가 색출 및 체포, 고문을 일삼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제 헌병경찰 통치의 대표적인 ‘앞잡이’로 악명높은 인물이 바로 김창룡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그는 1941년 일본 관동군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하다 나중에 헌병 오장(伍長)으로 특진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배후로 거론됐고 특무부대장(현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냈다. 안양 사설 묘역에 있던 그의 묘는 1998년 기무사 노력으로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김창룡 예비역 중장 사진은 국군기무사령부에 5대 사령관 자격으로 역대 사령관 사진(존영)과 함께 걸려 있다. 기무사에는 부부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도 걸려 있다.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20대 사령관)·노태우(21대) 전 대통령의 사진도 나란히 내걸려 있다.

 

역대 사령관 사진 중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냈고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것은 없다. 기무사는 지난달 초 정치중립 준수를 선언하면서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부대 내에 다시 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프레스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해 국방부에 보냈다. 이 내용이 한 언론에 보도된 후 기무사 예비역 장성들의 시비성 전화가 잇따랐고, 기무사는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거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고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령부가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정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힘들다. 김창룡 전 특무대장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진으로 미뤄 기무사가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몇년 이상 금고형으로 처벌된 경우 역대 부대장 사진 대신 이름과 재임 시기만 적어 놓아 후배 장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만약 단순한 기록의 의미라면 군은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다.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에서도 그는 빠져 있다. 부대 역사 문서에서도 그의 이름을 ‘파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요즘 영관장교들조차 김 전 중정부장이 장군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인 줄 아는 경우가 태반이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도 김 전 중정부장 사진이 시사하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철저히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역시 신군부 반란이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선배 장군들을 의식한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마도 육군 수뇌부는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이 다시 내걸리면 ‘군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과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싶다.

 

육군은 개혁차원에서 아직도 일제강점기 헌병을 떠올리게 하는 ‘헌병’ 명칭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일본군 헌병으로 인해 사찰 등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는 ‘헌병’이라는 병과 명칭을 군경(軍警)·군경찰(軍警察)·경무(警務) 등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무’라는 명칭은 육군본부의 한 고위 장성이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경찰이라고 하면 일반인도 쉽게 그 고유 업무를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경무’를 선택하려 하는 것은 무언가 특수한 조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군기무사령부도 마찬가지다. ‘기무’라는 명칭은 조선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 당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가져온 용어다. 이 관청은 군국 기밀과 일반 정치를 총괄하던 관청으로, 그 장관을 총리대신으로 했다. 기무사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政務) 등의 의미’는 오히려 기무는 모든 업무를 다 관장한다는 의미로도 읽혀진다.

 

이처럼 육군은 과거 유산에서 온고지신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과거 영화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육군사관학교는 최근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연구실적 미흡을 이유로 교수를 해임했다. 육사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고, 군 개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육군은 이 같은 육사의 조치를 지지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요새 육군 기류는 국방개혁에 관한 사항은 참모총장 혼자만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읽혀진다. 아마도 육군 수뇌부는 국방개혁의 주요 핵심 사항이 해·공군보다는 육군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중구난방식으로 개혁 얘기가 나오면 불리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육군 개혁의 최종 타깃은 육군 장성 수 줄이기로 귀결된다고 여기는 듯싶다. 육군 내부에서는 육군 장성 숫자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은 육군 하드웨어를 바꾸기 위한 법제화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는 육군 간부들의 정신, 즉 소프트웨어가 변하지 않은 탓이 컸다. 육군이 군 역사 기록 차원에서 필요한 선배 장군 사진조차 내걸지 못하면서, 장군 숫자 지키기에 전념하는 한 국방개혁은 아직도 요원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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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냥이 같은 X이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는 얼굴이 편안하지 않고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책임 부담이 얼굴에 보이는 듯했다. 막무가내로 큰소리치고 억압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얘기하려던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남북 군사회담 경험자인 예비역 장성 2인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에 대한 평가다.

 

그는 1989년부터 남북 군사접촉과 대화에서 북측 대표를 해 왔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에 남측 대표가 말려들거나 머뭇거리면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며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고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7년 5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 북측 대표는 미리 준비해 온 조크를 남측 수석대표인 정승조 소장에게 던졌다. 한 고교생이 당시 미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자동차에 치일 뻔한 것을 구해주고 난 후 “당신이 부시 대통령인 줄 알았으면 구해주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가 알면 맞아 죽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정 수석대표는 바로 “(북한처럼) 최고지도자를 상대로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는데 미국은 진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맞네요”라고 응수했다. 순간 김영철은 당황하면서 화제를 남북 간 안건으로 돌렸다.

 

앞서 2006년 5월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는 남측 수석대표인 한민구 소장이 김영철의 ‘순혈 논쟁’에 말려들었다. 한 수석대표가 “농촌 인구가 줄어들어 총각들이 몽골·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처녀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자 북측 김영철 단장은 “민족의 단일성이 사라지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한 수석대표가 “한강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이라고 하자, 김영철은 버럭 화를 내면서 “우리는 백의민족으로 하나의 혈통을 중시해 왔는데, 잉크 한 방울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고 맞받아쳤다. 한 수석대표는 과거 동이족과 어울려 살던 말갈·여진·만주족 등까지 동원했지만 김영철은 “시간 낭비하지 말고 회담에 들어가자”고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의도적인 상대방 기죽이기였다. 이후 북한 노동신문은 “남조선의 친미사대매국세력이 운운하는 ‘다민족, 다인종 사회’론은 민족의 단일성을 부정하고 남조선을 이민족화, 잡탕화, 미국화하려는 용납 못할 민족말살론”이라고 비난했다.

 

김영철은 북한 김정일이 2009년 인민무력성 정찰국과 노동당 작전부, 35호실 등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든 후 임명한 첫 수장이었다. 군 정보당국은 그가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2015년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과 사이버 해킹 등의 총책임자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북한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2박3일간 방남했다 지난달 27일 귀환한 김영철 부위원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은 남남 갈등의 양상까지 빚어냈다. 비난하는 측은 주로 그의 평창 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타깃으로 삼았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 환대받아 참석하는 건 천안함 피격의 주범에게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남북 접촉에 방점을 두는 측은 북핵 해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반박했다. 정부 관계자는 “김영철이 미국 동향, 우리 입장 등 얘기를 경청했으니 올라가서 보고하고 또 (김정은의) 반응이 있을 것”이라며 “김여정이나 김영남과는 큰 틀의 얘기만 하고, 디테일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김영철과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예비역 고위 장성 ㄱ씨는 “대남전략 총책임자인 김영철과의 대화는 남북관계의 향배를 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며 “통전부장 김영철은 과거 김양건과 달리 무력도발도 기획 건의한 바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김정은의 여러 참모 중 남북관계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적장을 불러들여, 그 결과 북·미대화와 한반도 평화에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면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숱한 숙청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김영철도 이번 남북 접촉 결과에 대한 부담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자칫 숙청의 빌미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정책 실패에 따른 자신의 권위 손상을 막기 위해 전형적인 책임전가 수법을 쓸 경우 김영철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 경우 김영철을 남한으로 불러들인 것이 그의 몰락을 부채질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김영철의 방남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 태도였다. 정부는 “천안함 피격 주도자가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 (공식 문건에) 공식적으로 김영철이나 정찰총국을 언급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북대화가 우선인 통일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평화 국면에서도 무력을 준비해야 하는 국방부의 태도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협상 전문가들은 강온 전략이 협상 테이블에선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남북관계에서 통일부가 북한을 어르고 달래더라도, 국방부는 “군은 김영철이 천안함 피격의 배후임을 잊지 않고 있지만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마무리와 남북관계, 나아가 북·미관계 개선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김영철의 방남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보였어야 한다. 무력을 보유한 정부 부처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 북측에 정치적 부담을 주는 실리를 챙기면서 남북대화의 명분도 살렸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합의에 따라 경의선 남측 육로 2㎞ 도로 공사를 실시했다. 당시 군은 적에게 침공로를 열어줬다는 보수층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남북대화를 뒷받침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군사적 목적에 따라서는 도로를 즉각 폐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또 고정식 전차를 경의선 육로 부근에 은밀하게 배치, 혹시라도 있을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했다.

 

정부는 대승적 견지에서 보수층까지 아우르는 국민의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우처럼 명분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얻는 데 소홀해 비판을 받았던 것은 반면교사였다. 김영철이 비핵화에 대한 우리 입장을 김정은에게 전달하는 효과가 커 세계적 축제에까지 초청한 것이라고 정부가 당당하게 설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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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2018년 1월18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는 출입기자들이 언론보도에 대한 국군기무사령부 조사를 성토하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에 보도된 ‘청(靑), 차관과 주요 현안 협의, 송 장관 조기 경질설 파다’ ‘한·미간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일정 확정’ ‘한미 연합사령부의 국방부 영내 이전’ 등 3가지 기사에 대한 기무사의 출처 조사에 항의한 것이다.

 

국방부는 이 기사들이 보도됐을 당시 그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나중에 청와대가 송영무 장관을 불신한다는 기사는 국방부의 공식 부인으로 봉합됐지만, 한·미 연합훈련 일정과 연합사 이전 기사는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기무사가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기사 취재 과정을 조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가 차관과 주요 현안을 협의한다”는 언론보도의 경우 서주석 국방차관의 명령으로, 한·미 연합훈련 일정과 연합사의 국방부 영내 이전 보도는 청와대 지시를 받은 국방부 고위간부 명령으로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에 대해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혹시 조율되지 않은 의견들이 나갈 경우 국익을 해치거나 또는 불편한 사항을 만들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보도된 내용이 비밀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보안성 검토 등과 같은 관련 절차나 승인 없이 무분별하게 보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사보안업무 훈령에도 이 부분이 적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요지는 국방부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만 보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 같은 해명과 태도에 대해 기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보도 내용들이 군사비밀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 내부에서도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사안들에 대해서 기무사를 동원해 취재 경위를 조사하여 언론에 무리하게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한·미 연합훈련 일정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연합사 이전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언급과 관련이 있는 보도들이었다.

 

국방부는 이전에도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은 사안이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되면 기무사를 ‘조자룡 헌 칼 쓰듯’ 여러 차례 동원했다. 그러면서 대변인실을 통하지 않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는 국장급 이상만 가능하다는 국방부 훈령을 근거로 들었다. 취재 자유를 제한하는 이 훈령의 문제점은 10년 넘게 지적돼 오고 있다.

 

# 장면 2

25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육군 중장) 등 기무사 간부 600여명은 국립서울현충원 등에서 ‘정치적 중립’ 선포식을 가졌다. 기무사령관 등 장군단은 물에 손을 씻고 자필로 작성한 정치적 중립 준수 서약서에 손을 얹은 뒤 ‘잘못된 관행 개선’ ‘정치적 중립 준수’ ‘오직 국가와 국민에게만 충성하겠다’ 등 기무사의 다짐을 읽어 내려갔다. 전국의 모든 기무부대도 지역 충혼탑 등지에서 같은 시간대 동시에 행사를 진행했다. 기무사 본부와 예하 부대가 동시에 참가해 정치적 중립을 다짐하는 행사를 연 것은 기무사 창설 이후 처음이다.

 

앞서 기무사 출신 장군·대령 22명은 지난해 4월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선언을 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군 최고의 강한 보수 이미지를 가진 국군기무사 지휘관 출신들이 민주진보 진영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건국 이래 최초 사례일 것”이라며 지지 선언의 의미를 설명했다.

 

당시 군 간부들은 이들의 성명 내용에 대해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들이 기무사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내부를 감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비역이라는 이유로 정치권 줄서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을 주도한 기무사 출신 예비역 장성은 그 공로로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에 취임했다.

 

지난 12일 이 기무사령관은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김용화 감독과 배우 하정우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 영화에서 저승 삼차사의 리더로 출연한 하정우씨는 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귀의 한을 풀어주는 연기도 했다. 기무사가 하씨에게 감사패를 준 이유는 그가 영화에서 군대 의문사를 수사하는 과정을 통해 기무사를 빛내고 홍보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군 의문사 조사와는 관련이 없는 기관이다. 이래저래 현충원 ‘세심 의식’과 함께 과도한 퍼포먼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무사는 과거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낡은 관행과 적폐를 청산한다며 조직개편 등을 통해 리모델링에 나섰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무사는 대부분 국방부 직할부대에서 장군 지휘관이 무더기로 없어진 가운데 유일하게 3성 장군이 지휘관인 부대로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개혁안의 하나로 기무사의 동향보고를 금지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의 취재원에 대한 과도한 추적은 넓은 의미의 동향보고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기무사는 군사기밀 누출과 관련이 없는 기자의 취재원 조사는 기무사 본연의 업무를 왜곡시킬 수 있다며 ‘수명’(명령을 받아들인다는 기무사 용어)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기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국방부는 기무사의 조사를 중단시켰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정부는 국가 이익을 위해 비밀리에 조율한다는 핑계로 특정 사안을 정권 편의주의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잦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맺어 후유증이 심각한 위안부 합의가 대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사안을 취재·보도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사회의 ‘감시견’인 기자의 역할이다. 기무사 역시 스스로의 역할이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군사기밀 보호와 방첩 등 본연의 업무가 아닌 상부의 명령이라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을 명령권자로 섬기는 진정한 ‘기무사의 다짐’, 즉 ‘DSC(기무사령부 영문 약자) Promise’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은 충신을 토사구팽하지 않는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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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면 시사잡지에 군부 동향에 대한 기사가 곧잘 오르내렸다. 야당 등 정치권에서 정세 분석을 할 때도 군부 동향을 눈여겨봤다. 군사독재정권이 종지부를 찍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은 군부가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으로 꼽혔다. 그랬던 한국 군부는 이제 쿠데타와는 거리가 멀고 군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하는 안보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데타(coup d’Etat)는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당연히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군대와 쿠데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군에는 쿠데타를 막기 위한 장치가 여러겹 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법적·제도적으로 군부에 대한 감시 울타리를 여러겹 쳐놓았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감청도 이 중 하나다.

 

기무사의 핵심 임무는 대전복(對顚覆) 활동이다. 쿠데타 방지 활동이라는 의미다. 기무사의 대전복 임무수행은 전복 위협을 찾아서 제거하는 차원보다는 전복 징후를 포착해 미리 제거하는 개념에 가깝다. 미리 관리해 전복 위협요소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기무사가 군 주요 지휘관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의 동향을 일일이 챙기는 배경으로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의 감청은 신군부의 1979년 12·12 군사반란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쿠데타를 막아야 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쿠데타 수괴로 변신한 것은 보안사 감청의 결과였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내보내려던 계획이 보안사 감청을 통해 새나가면서 위기를 느낀 전두환 사령관이 쿠데타를 주도해 12·12가 일어난 것이다.

 

1993년 3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하나회를 정리했다. 취임 11일 만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12·12 군사반란 연루자의 군복도 벗겼다. 만약 감청 등을 통해 관련 정보가 새나갔다면 군부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문민정부 관계자들은 보안사 감청으로 12·12가 일어났던 것을 감안한 전격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 군부의 쿠데타는 과거완료형 상태다.

 

최근 기무사가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 포스(TF)’를 감청해 수사 정보를 미리 파악한 사실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무사는 지난 11월 말 TF의 유선전화를 감청해 국방부 TF가 기무사에 압수수색을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기무사령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기무사는 국방부 TF가 압수수색을 위해 수사관들을 여러 곳에서 차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전화를 감청했다고 한다. 기무사가 군 기관 여기저기를 무작위로 감청한다는 것은 군에서는 하나의 상식처럼 통한다. 군내 감청은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하는 일반 감청과 달리 4개월마다 한번씩 대통령의 포괄적 승인을 받아 이뤄질 수 있는 것을 빌미로 기무사가 사실상 무제한 감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기무사의 국방부 TF 감청 역시 일상적 업무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에서 수사팀이 기무사 압수수색과 관련한 사항을 유선전화로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수사 기밀을 노출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각에서는 비판한다. 한마디로 아마추어 수사라는 것이다.

 

여하튼 문제는 국방부 TF가 기무사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 수행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실무진이 이를 특이동향으로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TF 관계자는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보는데 위법사항이 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과정에서 기무사령관에게 보내는 보고서 외에 국방부 TF의 다른 정상적인 활동내용도 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후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면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무사의 국방부 TF 감청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비교했을 때 군 댓글 공작에 대한 군의 수사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터졌다. 2008년 창설된 기무사 스파르타 부대는 사이버사 창설 전 댓글부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방부 TF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언론에서 이미 보도한 사안들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군 외부에서는 국방부가 지금껏 자체조사를 통해 검찰 등에 제대로 된 수사의뢰를 한 적도 없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던 터였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김관진 전 장관의 석방에 대해 “참 다행이다”라고 말한 것을 놓고도 송 장관이 사실상 부하들에게 김관진 전 장관의 연루에 대한 수사는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송 장관 측은 “단지 인간적인 소회를 얘기한 것으로 국방부 TF에도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적폐청산 수사를 소신껏 할 것을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군 외부에서는 군이 정치개입 의혹 규명에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방부 TF 구성원들이 과거 동료들을 조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방부 TF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덮었던 사건을 포렌식을 통해 일일이 복원해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외부의 수사미진 운운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하소연했다. 나아가서 관련 PC를 폐기처분했으면 국방부 TF의 수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관진 전 장관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자 외부에서 엉뚱하게 군에 화살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군 댓글사건 수사가 결정적인 ‘한방’이 나오지 않자 수사 물꼬를 엉뚱한 쪽으로 돌리는 게 아니냐는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자칫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 같은 논란 속에서 TF 활동 기간을 3개월 연장했다. 수사결과가 왝더독이 될지 본질의 핵심을 꿰뚫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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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탈북한 북한군은 주한 미8군 더스트 오프팀의 신속한 이송과 응급조치 덕분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아주대 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밝혔다. 당시 알려지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주한미군 의무항공대 더스트 오프팀의 블랙호크 헬기가 JSA에 착륙한 지 2분 후 한국군 의무헬기도 현장에 도착했던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만약 한국군 의무헬기가 미군 헬기보다 먼저 도착해 중상을 입은 탈북 북한군을 이송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더스트 오프 구급대원들은 헬기 안에서 흉관 삽입술을 실시했다. 이 교수는 “헬기가 상승하면서 기압이 낮아지면 찢어진 폐에서 나온 공기로 인해 압박성 기흉(氣胸) 문제가 발생한다”며 “더스트 오프팀이 헬기 안에서 흉관 삽입술을 실시해 폐에서 나온 기체를 다 뽑아냈다”고 말했다. 찢긴 폐에서 빠져나온 공기가 폐와 심장을 눌러 쪼그라뜨리는 압박성 기흉 문제를 헬기 안에서 완벽하게 해결했기에 1차 응급 수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국군 의무헬기에서도 이 같은 응급처치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응급처치할 수 있는 의무헬기 내 장비는 차치하고라도 헬기 안에서 이 같은 시술을 할 수 있는 의무인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더스트 오프 대원들은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 응급의료 및 이송 작전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군 의료체계는 탈북 북한군조차 아주대 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수술해야 할 만큼 허술한 게 현실이다. 탈북 북한군이 국군병원이 아닌 판문점에서 거리도 먼 수원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된 것은 총상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만한 군 의료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이는 군의료 체계가 전쟁과 같은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수개월 전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 부상 장병 상당수도 민간 병원에서 수술 및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군의료에 총상치료 능력은 꼭 필요하지만, 이를 갖추는 건 쉽지 않다. 해외에서도 수년 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 실습이 어렵다 보니 영국 군의관들이 일부러 총상을 입힌 돼지를 대상으로 치료 실습을 하다 동물보호단체의 극렬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다.

 

군인의 보건·위생이나 전장에서 다친 장병의 진료와 방역을 연구하는 군인 대상의 의학을 군진의학이라고 한다. 생화학무기 연구나 군 특수의학 연구, 전시와 평시 의무체계를 연계한 진료시스템 구축 등도 군진의학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군 군진의학은 군 내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논란이 되곤 했다. 2005년 군에서 위암이 발병했으나 엉터리 초동진료로 인해 전역 후 보름 만에 사망한 노충국 병장 사건을 계기로 군은 의무발전 추진 계획을 내세웠다. 군 병원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고 이송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중견 의료 인력 확보 차원에서 장기 군의관 확보를 위해 단기 군의관의 장기전환, 민간 계약직 의사의 고용도 추진했다.

 

미국 국방의과대학과 일본 방위의과대학을 본뜬 국방의학전문대학원도 설립하겠다고 나섰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이는 포기했다. 그 대신 육군사관생도의 서울대 의대 위탁교육이 시작됐다.

 

이제는 위탁교육을 통해 양성된 육사 출신 군의관이 국군의무사령관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군이 육사 생도를 서울대 의대로 보내 양성한 군의관으로는 응급의학 전문의도 있지만, 피부과 전문의와 성형외과 전문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등도 상당수다. 아마도 총상이나 화상 등의 후유증 치료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인 듯싶다.

 

문제는 육사 출신 군의관이 배출되면서 국군의무사령관 자리가 육사 출신의 전유물이 돼버린 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청와대 의무실장, 국군서울지구병원장, 의무사령부 처장, 육군본부 의무실장, 의무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소위 군의관 로열코스를 독식하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야전 의무부대 중대장조차 거치지 않고 의무사령부 고위 간부에 임명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발생한, 군의관이 에탄올 주사를 놓아 병사의 왼팔이 마비된 의료사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군 관계자는 “군 병원을 관리하는 의무사령부 책임자가 의무중대장을 경험하지도 않았으니, 야전병원의 실태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며 “이런 것이 의무사고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부 육사 출신 군의관의 경우 본인이 현역복무 부적합 신청을 통해 의무복무 기간 전에 전역한 후 개업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조기 전역 후 강남에 성형외과를 개업한 육사 출신 군의관도 있다. 국가가 비싼 의대 학비를 대주고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군의료 체계 개혁을 위해 선택한 육사 출신 군의관 배출이 군 의무병과의 골품제 논란으로 변질되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 가려고 육사에 지원한 수험생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다시 탈북 북한군 사건으로 돌아가서 군에도 이국종 교수와 같은 중증외상치료 전문의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군에서는 총상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과 사고 시 이를 치료할 중증외상치료 전문의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군이 이를 염두에 둔다면 외상센터가 특화된 아주대로도 위탁교육을 보내 중증외상치료 전문의를 양성하는 게 상식에 맞다고 여겨진다.

 

특화된 의료분야뿐만이 아니다. 전반적인 군 의료 수준에 대한 장병들의 신뢰는 낮다. 군이 의료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본인이 원할 경우 민간병원 이용이 가능하게 한 이후 장병들은 군 병원보다 민간병원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고위간부들도 마찬가지다. 일선 사단장을 거친 한 장군은 “부대장으로 있으면서 병사들에게 민간병원 이용을 오히려 권했다”며 “군 병원으로 보내면 절차를 따지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인 데다, 제대로 진료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JSA 북한군 탈북사건이 한국군의 군진의학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노충국 병장 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군 의료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게 현실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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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포토 EX’인가

 

한·미 해군이 지난 12일 동해상에서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에는 한국 해군의 세종대왕함 등 6척이, 미 해군 항공모함 3척을 포함해 총 9척이 참가했다. 양국 해군은 14일까지 동해상에서 미 해군은 항모 3척과 이지스함 11척, 우리 해군은 이지스구축함 2척 포함 7척의 함정이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미 해군 항공모함은 좌측상단부터 니미츠함(CVN-68), 로널드레이건함(CVN-76), 루즈벨트함(CVN-71). 해군 제공

 

미 해군의 3개 항모강습단이 지난 12일 한국 해군 함정과 함께 동해상에서 본격적인 한·미 연합훈련에 돌입하면서 국내 언론에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다. ‘Photo EX(Exercise)’가 그것이다. 한국군 공보장교들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진 훈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로널드 레이건함(CVN 76),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 니미츠함(CVN 68) 등 미국 항공모함 3척이 ’Photo EX‘를 위해 동해 한국작전구역(KTO)에 진입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미 항모 3척은 다른 함정들과 함께 한국작전구역에서 동시에 항공 촬영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미 항모 3척과 미 이스함 6척, 한국 함정 6척 등 대형 함정 15척이 한꺼번에 카메라 앵글에 포착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 위용도 대단했다.

 

한미 해군은 동해상에서 먼저 3열 종대로 포즈를 취했다. 미 항모는 니미츠함과 로널드레이건함, 루즈벨트함 등을 선두로 세줄로 줄을 섰다. 그 뒤를 따라 이지스함을 포함한 한미 해군 함정들이 나란히 항해했다.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은 서애류성룡함(DDG-993)과 세종대왕함(DDG-991)이 합류했다.

 

항모 3척이 한반도 해상에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처음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2007년 괌 인근 해역 훈련 이후 10년 만이다. 미국이 북한에 공개적으로 보내는 강력한 군사적 경고메시지다. 북한이 도발을 계속할 경우 언제든지 군사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도 항모 3척에서 시작됐다.

 

미국으로서는 그만큼 위용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항모 3척의 동시 등장은 북한의 핵포기와 도발에 대해 역할을 하라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력이기도 하다. ‘포토 EX’는 단순한 훈련을 넘어 일종의 무력시위 작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동해상에서 연합훈련 중인 한·미 해군. 미 해군 항공모함은 첫번째열 왼쪽부터 니미츠함(CVN-68), 로널드레이건함(CVN-76), 루즈벨트함(CVN-71). 두번째열 제일 왼쪽이 우리 해군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제일 오른쪽이 세종대왕함. 해군 제공

 

■한·미·일 연합훈련의 딜레마

아마도 이번 포토 EX에 일본 해군도 함께 했다면 그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일본 함정들까지 가세하면 군함 20~30척이 바다를 누비는 모양이 연출되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미 항모강습단은 일본 작전구역에서 미·일 연합훈련을 마친 후 한국작전구역(KTO)에 들어왔다. 한국작전구역은 한·미연합사령관이 군사작전을 위해 한반도 주변에 선포하는 구역이다. 영해뿐 아니라 공해도 포함한다.

 

미 항모를 주축으로 한 한국과 미국, 일본 등 3국의 공동 군사훈련은 한국 측 거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2일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일정에 맞춰 핵추진 항공모함 3척을 동원한 훈련을 실시하자고 제안했으나 한국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항하는 한·미·일 결속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3국 공동훈련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환영했지만, 한국은 자위대의 한반도 주변 해역 진입을 경계하는 국민감정 등을 이유로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미국 측에 전했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은 미국, 호주와 함께 6~7일 제주도 앞바다에서 실시한 북한의 핵 관련 물질 수송 저지 공동훈련 때에도 일본의 동참 요구를 거절했다.

 

사실 한국은 3국 공동훈련을 요구하는 미국과 일본의 요청을 마냥 거부하기에도 난감한 형편이다. 한국작전구역의 수색 및 구조훈련에는 3국 해군이 그동안 공동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작전구역 중 공해는 미 해군 뿐만 아니라 러시아 해군도 마음대로 다니는 곳이다. 그런 해역을 일본 해상 자위대라는 이유로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미군 측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 항모강습단과 공동훈련은 대공방어, 해상감시, 해상보급, 기동 등이 포함돼 있다. 만약 한국 해군함정과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미 항모강습단과 함께 항모호송작전과 항공작전, 항공사격 등을 실시하는 모습이 미군의 포토 EX를 통해 전세계에 퍼진다면 한국 정부는 감당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한·미·일 해군이 북한을 넘어서 중국 해군을 견제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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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합동참모의장(2006년 11월)→이명박 정부 국방장관(2010년 12월)→박근혜 정부 국가안보실 실장(2014년 6월)→문재인 정부 구속(2017년 11월). 김관진 전 국방장관(68)의 지난 11년간 이력이다.

 

 

■무너진 ‘운장(運將)’ 신화

군에서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장(智將), 용장(勇將), 덕장(德將)이 모두 합쳐서 덤벼도 이기지 못하는 장수가 바로 운이 따르는 ‘운장’(運將)”이라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적어도 박근혜 정부때까지는 관운이 넘친다는 측면에서 운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육군본부 기참부장(소장)과 2군단장(중장), 합참 작전본부장(중장), 3군사령관(대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다 군서열 1위인 합참의장으로까지 발탁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국방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새로 내정했던 후임 국방장관 후보자 김병관 예비역 대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유임됐다. 2014년 6월엔 세월호 참사 이후 분위기 쇄신 등을 위해 사퇴한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뒤를 이었다.

 

그는 여러차례 낙마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살아 남았다. 국방장관 재임당시에는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등 악성 병영사고가 잇달아 발생했지만 육군참모총장이 책임지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에게까지는 불똥이 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 11일 이명박 정권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을 벌이도록 지시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로 구속됐다. 군의 정치개입이란 헌정유린 행위에 깊숙히 개입했던 책임을 지게됐다. 그는 2014년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받은 최초 시각이 조작됐다는 의혹 등과 관련해서도 수사 의뢰된 상태다. 국가안보 보다 정권안보 수호에 더 앞장섰다가 공직 은퇴 후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김 전 장관과 공교롭게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함께 추락한 원세훈 전 국장원장도 서울고 동문이다.

 

■독일육사 출신의 원칙주의자와 장세동 경호실장과의 만남

 

1969년에 서독 육사 유학을 한 김관진 전 장관은 선후배와 동료들한테 중령보다는 대령, 대령보다는 장군, 소장보다는 중장, 중장보다는 대장때 더 진화,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실천한 장교였다. 또 서독에서 실전 위주 군 교육을 받은, 후배들이 인정한 ’미래 육군의 희망’ 이었다.

 

그는 가치관이 뚜렷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독일 육사는 학사학위를 수여하지 않기 때문에 독일 육사로 유학을 갔다 온 후 임관한 장교들은 대학 위탁교육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마찬가지로 독일 유학을 마친 김 실장에게도 서울대 위탁교육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다. “군인이 되려고 육사를 갔지, 서울대 가려고 육사 간 게 아니다”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억지스러운 고집을 피운 때문에 그는 오랜 기간 공식 학력이 고졸이었다. 이후 그는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 대학 졸업 학력을 정식 인정받았다. 나중 그의 최종 학력은 대학원 졸업이다.

 

김 전 장관은 전주북중을 졸업한 호남 출신이다. 그는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로 임관했다. 이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경력이 하나 있다. 그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장세동 청와대 경호실장 밑에서 경호실 상황장교를 지냈다. 당시 호남 출신 장교는 지역차별로 수도경비사령부에도 근무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만큼 호남출신이었던 장세동 당시 경호실장의 특별한 배려로 같은 호남출신인 김 전 장관이 경호실 근무가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비역 장성은 “과거 행적때문에 진급이 어려웠던 ㄱ 장군이 진급한데는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부탁을 받은 김 전 장관의 입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김 전 장관은 댓글공작에 투입될 군 사이버 요원을 뽑는 과정에서 호남지역 출신 지원자를 원천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그가 실제로 그런 진술을 했는지는 정확한 팩트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김 전 장관이 호남출신이라는 점에서 비난은 더 크게 나오고 있다.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국방장관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과거 프로필을 보면 전형적인 ‘용장’이나 ‘강경파’ 이미지다. 그는 2010년 12월 4일 국방장관 취임 이후 지난 3년 6개월 동안의 장관 재임 기간 중 ‘도발원점 타격’ ‘지휘세력까지 타격’ 등 북한이 도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는 대북 강경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그는 신년사 격인 장관 지휘서신 1호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빌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 즉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에 많은 시민이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이를 놓고 “역시 김관진!”이라는 반응과 ‘말의 성찬에 불과할 뿐’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그는 국방장관 취임 직후 ‘선(先) 조치, 후(後) 보고’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해안포를 발사했을 때 이 지침은 지켜질 수 없었다. 이때문에 애초부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선 조치, 후 보고’ 지침은 현실을 무시한 지침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또 장관 집무실에 당시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김격식 4군단장 사진을 걸어놓았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장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짚어보는 차원에서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니폼(군복) 입은 장군도 아닌 반 정치인인 국무위원으로서 그런 사진을 걸어놓은 것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꽤 많았지만, 일부 시민들은 “과연 김관진”이라면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도 김 전 장관을 따라서 집무실에 북한군 수뇌부 사진을 붙였다.

 

김 장관이 재임시 일선 군 부대 몇곳에서는 국방장관에게 코드를 맞추듯 예비군 사격훈련장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을 사격 표적지로 사용하며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도 ‘특등 호전광’ ‘역도’ ‘괴뢰패당 우두머리’ ‘첫 벌초 대상’ 등의 원색적인 용어를 쓰면서 그를 비난했다. 심지어 북한군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얼굴을 사격 표지판으로 사용했는가 하면 군견이 ‘김관진’이라는 이름표를 단 마네킹을 물어뜯는 장면을 조선중앙TV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국방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전 장관이 2014년 6월 국가안보실장 임명되자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박근혜는 극악무도한 대결 광신자를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지명한 것으로 하여 초래되는 모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김관진 실장을 ‘친미사대 매국노’ ‘민족반역자’ ‘대결 광신자’ 등으로 표현했다.

 

■군부 권력투쟁에서 승리

김관진 전 장관은 재임시절 자신을 살해하기 위한 북한 암살조의 국내 잠입설까지 나돈다면서 전용 차량의 유리를 방탄으로 바꾸고, 출퇴근 때마다 출입문을 포함해 차량의 이동로를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 암살조의 국내 잠입’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추측성 언론보도”라고 답변했다. 당시 이를 놓고 김 장관이 언론에 일부러 보여주기식 행보를 한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트위터에 “저는 건재하고 임무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남겨 ‘미니 북풍’을 즐긴 셈이었다.

 

 

그는 국장장관 재임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자신을 영웅화하는 합성사진들을 몰래 만들어 뿌렸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의 포스터를 이용한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진이나 포스터는 “국방장관의 강력한 대응의지가 도발 억지에 도움이 됐다”거나 “북한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분이죠”라는 글들이 달려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당시 군내부에서는 김 장관이 나중에 국무총리는 물론 대통령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거치며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했다. 그의 첫번째 위기는 2013년 10월 군 장성 정기인사를 앞두고 발생했다.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이 김관진 국방장관의 인사업무를 비판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다. 기무사는 ‘장군 인사 절차 및 여망’이란 보고서에서 “김 장관이 미리 작성한 인사안대로 추천하도록 인사 추천위원들에게 지시하는 등 인사 독점을 한다”며 국방장관의 인사 전횡을 비판했다. 또 “김 장관이 ‘독일 육사’ 출신 등을 무리하게 진급시켜 장관 대 비장관 인맥 갈등을 초래한다”는 지적과 함께 “장관 교체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고했다. 공관병 갑질 사건을 야기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도 독일 육사출신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무사령관의 참패였다.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은 임명 6개월만에 전격 경질됐다. 장 사령관은 퇴임식조차 하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기무사령부 청사를 나가야 했다.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2013년 11월 국회에서 “(장경욱 기무사령관은) 능력이나 자질 등이 기무사를 계속 유지하고 개혁하고 발전시킬만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번째 위기는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부대 운영 의혹 사건이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댓글 부대를 운영하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이버사 의혹에 대해 2013년 10월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사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듬해 10월까지 1년간 이어진 조사 끝에 조사본부는 2014년 11월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을 관리책임 소홀로 불구속 기소하고, 이태하 전 530 심리전단장의 독단적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발표에는 “개인적 일탈이지 군 수뇌부 개입은 없었고, 국정원 예산 지원도 없었다”는 내용도 언급됐다. 군 안팎에서는 김 전 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말이 파다했다.

 

결국 이는 거짓발표였다는 게 이번 국방부 재조사 TF와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그가 구속된 것도 이때문이다.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경질된 시기는 군 수사당국의 사이버사 의혹조사 시기와 겹친다. 이는 이미 김 전 장관이 당시 군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청와대에서조차 그를 함부로 내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개혁 실패 및 인사잡음 야기

김 전 장관은 ‘작지만 강한 군대’를 건설하기 위한 국방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국방장관 취임 이후 군령권(작전·정보)과 군정권(인사·군수)을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부 지휘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작권 전환도 마찬가지다. 김 전 장관은 2007년 12월 합참의장으로 재직 당시 청와대 오찬에서 “창군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방개혁과 전작권 환수만큼은 전군이 힘을 합쳐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건배사를 했다. 그러나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2010년 12월 인사청문회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논의가 됐을 시절 나를 포함한 군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이 전작권 전환에 맞지 않다고 했다”며 “(한미 간 전작권 전환 합의 당시) 나는 작전본부장이었던 시절이었다”고 빠져 나갔다.

 

그는 2011년 11월 장성 진급 및 보직 인사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노무현 정권에서 혜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았던 장교들을 대거 발탁했다. 군 내부에서는 “관 뚜껑 열고 나와 진급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부분 그가 합참의장 시절이나 작전본부장 때 챙겼거나 같은 독일육사 출신 장교들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아까운 인재들이 구제됐다”며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때 군내 사조직 하나회 출신 2명도 중장으로 진급한 것은 뒷말이 나왔다. 이중 한명은 나중에 여군 부사관을 성추행해 물의를 빚었다.

 

김 전 장관이 아꼈던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은 ‘새옹지마’의 길을 걷게 된 케이스다. 독일육사 출신으로 엘리트 장교였던 연제욱 대령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정권이 바뀐 후 장군 진급에서 잇따라 탈락했다가 김 전 장관이 부임 후 별을 달 수 있었다. 김 전 장관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부하였던 그를 사이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소장으로 진급해 청와대 국방비서관까지 지냈지만 댓글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장관은 또 2011년 6월 군 비리와 횡령을 내부 고발한 황모 중령(육사45기)를 오히려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며 징계해 비난을 받았다. 황 중령은 그의 결혼식 때 자신이 주례를 섰던 장교였다. 황 중령이 결혼할 당시 김 전 장관은 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의 비서실장(당시 준장)이었고, 황 중령은 육군총장 경호대장(당시 대위)이었다. 황 중령 입장에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었다. 이후 황 중령은 징계권자인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소송을 내 2013년 9월 상고심에서 승소하며 징계 취소가 확정되는 등 재판에서 이겼다. 하지만 적기가 지났다는 이유로 군은 그를 진급시키지 않았고,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는 황 중령을 진급시키자는 청원이 올랐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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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현관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의 대형 그림이다.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대작으로 제목은 ‘적영’(敵影·적의 그림자라는 뜻)이다. 베트남 638고지(일명 안케 고개) 전투를 묘사한 작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그림은 한국군의 정통성 훼손 논란까지 제기되는 등 10년 넘게 군 안팎에서 구설에 올랐다. 운보의 대표적인 친일 작품으로 분류되는 ‘적진육박’과 너무나 유사한 탓이다. ‘적진육박’은 운보가 일제강점기 당시 남양군도에서 적진을 향하고 있는 일본군을 묘사하면서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한 작품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반성과 고민 없이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을 물리치는 일본군을 묘사한 작품을 한국군의 베트남전 그림으로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것은 작가의 몰역사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광복군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국군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은 국방부에서 즉시 철거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방부’로 불리는 국방부는 오불관언이다. 역사의식이 부재한 탓이다.

 

육군 야전부대는 역대 부대장 사진을 부대 현관에 걸어놓는 게 관례다. 단 한 사람만 예외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그가 거쳐간 어떤 부대에서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은 그들이 거쳐간 부대에 봉황문양 표지와 함께 걸려 있다.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멤버들의 사진도 다 걸려 있다. 육군이 역사를 인식하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다.

 

공군은 얼마 전 공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는 글을 공식 블로그 ‘공감’에 올렸다. 공군은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한 주역들은 광복군의 독립투쟁을 계승했다”며 “대한민국 공군에는 광복군의 숭고한 조국애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군은 ‘공군의 아버지’로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창석 최용덕 장군을 꼽고 있다. 그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출신이다. 해군은 초대 참모총장으로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손원일 제독을 ‘해군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육군은 ‘육군의 아버지’로 추앙할 수 있는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1~16대 육군 참모총장 13명 가운데 최영희 12대 참모총장을 뺀 12명 전원이 일본군(학도병 포함)이나 만주군 출신인 탓이다. 이 중 5명은 정부가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공식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도 포함됐다.

 

육군 창군 주역들 상당수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군국주의와 맥이 닿다 보니, 육군에는 유난히 조작되거나 날조된 육탄용사가 많다. 육탄 10용사와 육탄 5용사가 대표적이다. 북한군 토치카를 폭파한 후 전사했다고 알려진 육탄 10용사의 핵심들이 북한군에 귀순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육군이 심일 소령과 함께 북한군 자주포를 화염병으로 폭파시켰다고 미화한 육탄 5용사는 조작된 ‘유령용사’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례다. 육군의 가짜 영웅 대부분은 일본 군국주의를 모방한 과거 친일파 출신 군부의 작품이다. 일본 군국주의 선동의 도구를 빌려와 호국 영웅의 아이콘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조차 이미 ‘(관동군) 육탄 3용사’와 같은 군국주의 가짜 영웅을 반성하고 있지만, 육군은 군 역사 바로 세우기 얘기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광복군 역사 찾기나 국군의날 변경에 소극적인 배경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육군은 이제 미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용사 대신 영웅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여기서 나아가 악성사건이 터지면 지휘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희생자를 미담의 주인공으로 미화했다. 부하들을 사망케 하고 죽은 중대장을, 본인이 생존했으면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살신성인의 표상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지휘관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억울하게 숨진 병사에 대해 충혼비를 세워주며 유족들의 반발을 막은 사례 등이 그것이다. 육군은 이런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육군은 지난 9월 전투중대장 14명에 대해 심일상을 몰래 수여했다. 공개적으로 상을 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파문을 우려해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은 것이다. 앞서 군 당국은 ‘가짜 신화’ 논란을 빚은 심일 소령의 북한군 자주포 파괴 전공을 기정사실화하는 ‘알박기’ 발표를 한 바 있다. 이를 놓고 심일 소령 논란이 가짜 영웅 파문으로 이어지면서 군 역사 바로잡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군 당국이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에 ‘알박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서영교 의원은 심일 소령의 ‘가짜 영웅’ 논란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촉구했다.

 

게다가 육군이 심일 소령의 군인 정신을 기린다며 시상하는 심일상 2종류는 근거가 없는 ‘유령상’이다. 육사 우수 생도 3명에게 주는 심일상은 물론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수여하는 심일상 모두 상의 제정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회의조차 한번 열리지 않았다. 상이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불법적이어서 오히려 누가 밀실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한 군의 적폐청산 대상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가짜 영웅 논란의 중심에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있다. 이 군사편찬연구소가 독립군·광복군 역사를 한국군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 출신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년 넘게 자문위원장으로 있는 군사편찬연구소의 과거 행태를 보면 왜곡된 연구결과를 내놓을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독립군·광복군 역사 연구는 국가보훈처가 더 정통하다. 그런 점에서 독립군·광복군을 한국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연구는 보훈처가 하는 게 타당하다. 매일 아침 일본군복 위에 한국군 군복을 덧칠한 듯 보이는 그림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는 ‘육방부’에 군 역사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게 난망해서 하는 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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