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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걱정했어요, 마침내 왜곡됐을까 봐”

감사원이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보고·처리 과정을 들여다보고자 국가안보실, 국방부, 해양경찰청 등 9개 기관을 실지감사하는 중이다. 실지감사는 사전 자료를 모은 감사원이 대상 기관·현장에 직접 방문해 감사를 실시하는 단계이다. 감사원 조사의 핵심은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 관련 업무처리 과정이 적법·적정했는지 여부라고 한다. 이를 보고 생뚱맞지만 박찬욱 감독의 최신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여주인공 탕웨이의 모호한 대사가 떠올랐다. “(남편이)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고 했던 탕웨이의 말을 “(정권이 바뀌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왜곡됐을까 봐”로 바꿔봤다. 헷갈리는 진실을 표현하기에는 한국말이 서툰 탕웨이식 표현이 더 어울린다. 법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재판관이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고 말하겠는가.

누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일까. 전 정권일까, 현 정권일까. 아니면 둘 다인가. 문재인 정권은 사건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발표를 했다. 이씨가 월북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월북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언론 발표 과정에서 이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몇몇 여당 의원들의 주장대로 문재인 정권이 감청정보(SI)를 조작해 월북 프레임을 짰을까. 이 역시 근거는 부족하고 왜곡된 과장이 다분한 일방적인 주장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는 정치적 고려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건은 ‘마침내 왜곡’된다.

감사로 군 안팎의 의문점 풀리길

오히려 이번 감사는 군 안팎에서 제기하는 의문점이 풀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 첫번째가 이씨 실종 다음날인 9월22일 밤 국방부(합참) 정보본부 보고라인이 사실상 ‘먹통 상태’였다는 의혹이다. 당시 정황을 종합해보면 이씨 피살을 비상사태로 인식한 것은 서욱 국방장관보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청와대가 먼저였다. 합참 정보본부와 SI 첩보를 공유하는 국정원이 이씨 피살의 심각성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사이, 서욱 국방장관은 정작 SI 첩보를 생산하는 합참 정보본부의 최고책임자인 이영철 본부장(중장)으로부터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이 본부장이 사건이 벌어진 날 정부 정보관계관 만찬을 주재하는 자리에서의 음주로 인해 장관 보고를 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군 안팎에서 돌았다. 이 본부장이 만찬을 하고 있을 당시 이씨는 표류하며 생존해 있었다. 나중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SI 과다 노출을 구실로 이 본부장에 대한 징계를 국방부에 지시한 배경도 의문이다.

두번째는 사건 당시 군 서열 1위이자 군령권자인 합참의장의 역할이다. 이씨 피살 이후 사건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9월22일 자정은 합참의장의 권한이 박한기 육군대장에게서 원인철 공군대장한테 법적으로 이양되는 시점이었다. 22일 오후부터 자정까지 박 의장이 이씨 사건을 보고받고 대응을 지시하다가 자정 이후부터는 작전 지휘 권한을 신임 원 의장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의미다. 상식적 관점에서는 전임 의장과 신임 의장이 공동대응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평소 ‘무사고 100일 작전’ 구호를 합참 사무실 벽마다 붙이도록 했던 박 의장이 정작 이씨 사건을 보고받고 대응했다는 정황은 찾기 힘들다. 신임 원 의장은 23일에 열린 합참의장 이·취임식 이후 공식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피살된 시점에서 합참의장 공백과 군 정보 보고라인 먹통이 겹쳤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당시 서욱 국방장관 역시 취임한 지 불과 닷새째였다.

국방부 업보로 감사 후유증 클 것

세번째는 군사기밀 누출이다. 감사원은 이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군 정보 유통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기밀 정보가 삭제된 정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정보 병과 외에는 일반 장교 상당수가 명칭조차 잘 몰랐던 밈스의 존재와 밈스 정보의 전파 과정이 최근 여권발로 노출된 경위와 과정도 조사해야 한다. 밈스의 전파체계는 2급 군사기밀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씨 사건을 월북 조작 프레임으로 몰고 가기 위해 누군가가 밈스를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MB 정권 시절 발생한 천안함 사건 때 국방부와 합참은 감사원 감사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에도 감사 후유증은 꽤 클 것이다. 군의 특수성 뒤에 숨어 내부에서는 표적·봐주기 감사를 일삼던 국방부의 업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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