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기자수첩'에 해당되는 글 47건

  1. 2014.12.31 두 여인과 양들의 침묵
  2. 2014.01.09 차라리 제2의 싸이를 키워라 (2)
  3. 2013.12.14 김경희는 어디로 (1)
  4. 2013.12.05 이어도와 백두산 정계비의 공통점
  5. 2013.11.13 한국군 코멘터리 출간 (1)
  6. 2013.10.07 붉은 나폴레옹, 전설이 되다
  7. 2013.09.16 서울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8. 2013.08.05 리우 카니발과 진주 등축제
  9. 2013.05.01 남재준 국정원장의 인사 실험
  10. 2012.10.06 늘어나는 여군 (6)
  11. 2012.09.17 남북국방장관회담, 독도함에서 개최 (4)
  12. 2012.06.11 여론을 분열시킨 육사 분열행사
  13. 2012.06.08 삼성그룹 2인자와 참모총장
  14. 2012.01.26 대북 정보의 속살을 들여다 보니
  15. 2012.01.11 영웅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1)
  16. 2011.12.25 엄동설한에 '파리' 날리는 엄사리
  17. 2011.12.20 김정일 사망과 기자의 사생활 (3)
  18. 2011.06.17 군인과 기자, 그리고 고정관념 (2)
  19. 2011.06.01 군견의 노후생활 보장하라 (3)
  20. 2011.05.29 현빈 출연 금지령 (3)
  21. 2011.04.28 현빈과 송승헌의 신비주의 (7)
  22. 2011.04.20 애국전쟁과 유언비어 (2)
  23. 2011.03.14 대통령기 탄 북 VIP (4)
  24. 2011.03.02 AN-2기도 꼼짝 마라('피스 아이' 실전배치) (3)
  25. 2011.02.24 기무사와 국정원의 애증 (3)
  26. 2011.02.18 공군이 '레드 머플러'? (5)
  27. 2011.02.04 북 인민무력부장과 감귤 (8)
  28. 2011.01.27 사열이 지겨운 샤프 사령관 (8)
  29. 2011.01.26 해적과 장군의 위장발언 (4)
  30. 2011.01.17 소말리아 해적 피하는 법 (11)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30일 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남부구치소 이송을 위해 서울서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자기 잘난 맛’은 자존심의 변형이다. 자존심은 인생의 긴 항해에서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정신적 힘이다. 하지만 이 자존심을 잘못 발휘하면 자칫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그냥 대기업 회장의 딸로 살았더라면 우아하게 사람을 부리면서 ‘구속’이라는 굴욕도 겪지 않았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세밑을 시끄럽게 장식했다. 굴욕의 발단은 바로 자기 잘난 맛이었다.

가진 것이 많거나 힘이 센 권력자는 굳이 스스로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알아서 자존심을 챙겨준다. 가진 자는 겉으로 적당한 우아만 떨어도 주변에서 존중해 준다. 조 전 부사장은 적어도 대한항공 내에서는 권력자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이 여인에게는 자신을 꾸중할 정도의 권력이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폭발한 성질을 한껏 부린 것이 화근이 됐다. 과도하게 내세운 오만한 자존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도화선이 된 것이다. 자고로 권력은 세련되게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권력자의 힘이 크면 클수록 조용히 한마디만 해도 그 파급 효과는 일파만파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맞춰 검찰 수사는 방향을 찾아갔다. 권력은 큰 조직일수록 내부 구성을 공고하게 뭉치게 하는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조직은 속성상 바로 아랫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기업에서는 사장이 임원에게, 임원이 부장에게, 부장이 부원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정부 조직에서는 대통령이 국무위원에게, 국무위원이 실·국장에게, 실·국장이 부하 공무원들에게 가장 큰 압력이 된다.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 사무장과 승무원 대신 담당 임원에게 위세를 부렸다면 그 임원이 나중에 사무장을 질책하는 것으로 ‘땅콩 회항’ 사건은 묻혔을지도 모르겠다.

권력의 최고 경지는 상대가 알아서 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위 ‘심기 경호’가 가능해지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힘이 조직의 외부로 나가면 작동하지 않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중구난방식 비난이 그 예다. 대통령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반 국민들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권력(權力)이란 말에서의 ‘권(權)’은 권세와 힘을 뜻하지만 본래 저울을 뜻하는 글자다. 법과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가 저울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나라의 가장 큰 저울을 잡은 자가 대권자(大權者) 곧 대통령이다. ‘권력’ 속의 ‘저울(權)’이란 말은 의미심장하다. 권력은 원칙과 예외, 단호함과 따뜻함, 공동체와 개인, 공익과 사익, 상충하는 여러 이해관계를 빠짐없이 살피고 잘 저울질하여 균형 잡힌 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모름지기 평형을 잃은 저울은 존재 의미가 없다. 권력자는 천칭 저울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한 것과 같은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대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휘두르는 권력, 즉 저울은 이미 균형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의 우아한 질책 한마디로 검찰 수사의 방향이 정해진 것이 비근한 예다.

권력이 균형을 잃으면 반작용은 반드시 일어난다. 최근 세계 각국의 시위 현장에서는 ‘가이 포크스(Guy Fawkes)’가 활보하고 있다. 400여년 전 인물인 가이 포크스는 ‘권력에 맞선 혁명가’로 2006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부활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주인공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이후 국제적 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us)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누구나 가면을 쓰면 익명의 ‘가이 포크스’가 된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도 익명의 고발자들은 권력자인 재벌 2, 3세의 비행을 잇따라 고발했다.

국민들은 권력자가 균형 잡힌 권력을 발휘하면 순한 양과 같다. 그러나 그 균형추가 무너지면 언제든지 가이 포크스가 될 수 있다. 양들이 항상 침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 전 부사장의 경우에도 이번 기회에 깊이 반성한다면 경영자로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역시 문건 파문 등을 포함한 작금의 사태가 권력의 균형추가 무너지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2015년 청양의 해에는 청색의 의미처럼 청와대에서 불어오는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쐬고 싶다.


박성진 디지털뉴스편집장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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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병사 제도 폐지의 후유증

 

 ‘월드 스타’ 싸이를 배출한 연예병사제도가 폐지된 지 벌써 6개월이 다 돼간다. ‘연예병사’라 불렸던 홍보지원대원들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국방홍보원 소속의 홍보지원대는 많은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한때 몸담았던 곳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 이준기가 이곳에서 군생활을 했고, 배우 이동건(본명 이동곤) 유건(본명 조정익) 이완(본명 김형수) 김재원, 가수 비(본명 정지훈) 박효신 미쓰라진(본명 최진) 유승찬, 개그맨 이진호 양세찬 등도 이곳을 거쳐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가수 세븐과 상추 등 몇몇 연예사병의 ‘안마방 출입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는 연예병사제도를 폐지했다. 그룹 메이트의 멤버 정준일(30)이 지난해 10월 30일 전역하면서 마지막 연예병사로 기록됐다.

 

 그는 군법 위반 사실이 없어 연예병사제도 폐지 당시 남은 복무기간이 3개월 미만이었던 김경현, KCM과 함께 근무지원단에 남아 군생활을 했다. 김경현과 KCM은 정진일보다 한 달 앞서 전역했다.

 

 

 

                   <연예병사들의 군 복무 실태를 고발한 SBS 프로그램 ‘현장21’의 한 장면. | 경향신문 자료>

 

 연예병사제도는 연예인의 재능을 국방 홍보에 활용할 목적으로 국방 홍보지원대가 설립된 1997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지원대대 홍보지원중대 소속인 연예병사는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 가수, MC 등으로 활동한 현역병 중에서 선발됐다. 통상 경쟁률은 3대 1을 넘었다.

 

 연예병사들은 자유분방한 생활로 많은 잡음을 빚었던 것도 사실이다. 군 간부들이 연예병사들을 행사에 동원한 후에는 포상 차원에서 휴가와 외박을 남발해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연예병사들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들의 영내 생활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일반 병사들에게 연예병사 접촉 금지령을 내린 적도 있었다. 연예병사들을 아는 체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일반 병사들이 연예병사들에게 사인을 해달라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불필요한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예병사들은 20대 후반이나 나이 서른에 늦깎이 입대한 경우가 많아 일반 병사들이 이들을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다 군 간부들에게 혼나는 사례도 있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것 포기한 국방부

 

 그러나 국방부의 연예병사제도 폐지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는 속담과는 배치되는 것 같다. 연예병사제도가 빚어낸 문제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연예병사제도는 이들이 입대하지 않았다면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웠을 배우들을 한 무대에 올릴 수도 있게 했다. 국방부에서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생명의 항해>가 대표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진 <생명의 항해>의 출연진 명단에는 이준기와 주지훈, 김다현 등이 이름을 올렸다. 국방부가 2008년 첫 제작한 뮤지컬 <마인>에서는 연예병사 강타와 양동근이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이 뮤지컬들은 군 홍보와 함께 재미도 준 ‘일석이조’의 공연이었다.

 

 연예병사제도는 많은 연예인들이 전역 후 연예활동을 이어가는 데에도 지장이 없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군 복무를 하면서도 연기나 노래를 계속해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일부 연예기획사는 소속 스타 연예인에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연예병사가 아닌 일반 병사로 복무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무지하게 잘 나가는 배우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당장 군 입대에 따른 2년여의 공백으로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배우라면 연예병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게 마련이었다.

 

 배우뿐만이 아니다. 음악 프로듀서는 국방홍보원에 배속되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어 홍보원의 문을 두드렸다. 개그맨도 마찬가지다. 공백 없이 입담을 계속 갈고 닦기에는 연예병사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연예병사로 복무하면서 그릇이 커진 연예인도 있다. ‘월드 스타’ 싸이다. 싸이는 군 위문공연을 다니면서 무대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면서 군생활 동안의 공연이 국제 가수 싸이의 토양이었다고도 했다. 그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만큼이나 병사들도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과거 연예병사였던 싸이, 이동건, 이준기, 이진호. | 경향신문자료>

■직격탄 맞은 국군방송

 

 그러나 이제는 연예인들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은 연예활동의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연예병사들과 함께 군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위문공연을 진행했던 국방홍보원이 입은 타격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 1954년 9월 첫 전파를 탄 뒤 6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국군방송 국방FM(96.7㎒) 프로그램들이다.

 

 국군방송 FM은 DJ를 맡았던 연예병사들이 빠져나가면서 당장 청취율이 크게 떨어졌다. 웬만한 공중파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보다 높은 청취율을 보였던 프로그램들이 외부에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급전직하했다.

 

 연예병사는 방송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군 위문 프로그램인 ‘위문열차’에서 특히 크게 활약했다. 출연료를 받지 않는 연예병사들은 매주 전국의 각 부대를 돌며 신나는 무대를 선보였지만, 이제는 이들을 무대에 올릴 수도, 볼 수도 없게 됐다. 국방부는 연예병사 폐지에 따라 이들이 출연했던 국군방송 위문열차 공연에 외부 민간 출연자를 섭외하고 재능 있는 일반 병사들도 선발해 참여시키고 있다.

 

 ‘비더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위문열차 공연이 열리는 부대에서 춤과 노래, 연극 등에 ‘끼’가 있는 일반 병사를 오디션을 통해 선발, 투입하고 행사가 끝나면 원래 임무로 환원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연예병사제도가 있을 때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출연료 문제도 만만치 않아 그나마 평소 출연진의 절반 정도만 무대에 오르는 형편이다.

 

 국방홍보원 블로그인 어울림에서도 연예병사의 얘기가 모두 빠지면서 클릭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 블로그는 전역을 앞두거나 새로 전입한 연예병사의 인터뷰, 연예병사의 근황과 활동상을 전해 들을 수 있어 네티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방송은 출연자가 소위 ‘끼’가 있어야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 병사들까지 인터뷰를 통해 선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진짜 사나이 프로그램은 방송출연 의사가 있는 병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뒤 그 부대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병사들을 선발해 특별 생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아무리 리얼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TV 촬영에서 실감나는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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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근 2014.01.20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연예병사에는 반대합니다. 군인이 무슨 연예를 해요. 말이 되나요?
    차라리 연예인에게는 세금을 많이 내는 조건으로 병역면제를 해주는 것이 연예병사보다 낮다고 생각합니다.
    홍보 홍보하니 군대도 홍보로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은 재향군인회가 군인들에 기생하여 사는 것도 하등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2. Favicon of http://WWW.NAVER.COM BlogIcon 박근 2016.08.31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연예병사에는 반대합니다. 군인이 문슨 연예를 해요. 말이 되나요?
    차라리 연예인에게는 세금을 많이 내는 조건으로 병역면제를 해주는 것이 연예병사보다 낮다고 생각합니다.
    홍보 홍보하니 군대도 홍보로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은 재향군인회가 군인들에 기생하여 사는 것도 하등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김경희의 행방

 

 

 북한이 장성택 사형을 전격 집행한 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67)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김경희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론 매체들이 엇갈리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완전이 은퇴할 것이라는 설과 오히려 장성택의 제거에 앞장섰다는 설이 그것이다.

 

 여러 언론매체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분류해 보면  김경희 당비서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직계로서 ‘백두혈통’의 ‘대모(大母)’로서 역할을 강화할 것 ▲장성택의 여성 편력으로 갈등이 많았고, 2006년 무남독녀인 장금송이 프랑스에서 자살한 후 이미 결별했을 것(장금송은 애를 낳지 못한 김경희와 장성택이 입양한 딸이다) ▲김정일 2주기 행사에 나타나 남편 장성택의 처형을 정당화할 것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완전히 은퇴할 것 등으로 나뉘어진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김경희의 행방에 대해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김경희의 행방에 대해 남측이 이런저런 추청을 하고 있을 때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의 사망에 대한 국가장의위원 명단에 여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장성택이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처형되면서 부인인 김경희의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과거의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경희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분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자유북한방송은 14일 평양소식통을 인용해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가 심한 치매를 앓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경희가 지난 8월부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노망(치매) 상태라는 것이다.

 

 자유북한방송이 인용한 소식통은 "김경희가 7·27(정전협정 체결일) 전승절 행사에 참가할 때부터 주변 간부들은 이미 김경희의 병세가 깊어진 것을 직감했다"며 "이번 장성택 처형은 산송장이나 다름 없는 김경희에게 의논할 필요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지난 9월 이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김경희가 그동안 알콜중독 등 여러 질환으로 봉화진료소에서 입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양에 있는 봉화진료소는 북한에서 특수 진료시설을 갖춰 김일성 일족과 당 비서 등 중앙당 부장급 이상 고위 간부만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최고의 진료·휴양시설이다.

 

 정보당국은 장성택이 봉화진료소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관찰해 왔다. 이로 미뤄 볼 때 장성택이 김정일 사후 2인자였다기 보다는 김경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지병이 많은 김경희가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장성택의 보호막이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김씨 일가의 백두혈통과 '곁가지' 출신인 장성택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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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글프다 2014.01.19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금송은 참고로 장성택과 김경희의 친자식이 아니라는겁니다~! 왜냐하면 김경희가 자궁이상으로 아이를 낳지못해 외국에서 불임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자 할수없이 아이를 입양한거죠~!


 한국일보가 단독보도라면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내놓았네요. 한국 정부가 62년 전에 이어도 관할권 가질 기회를 스스로 철회했다는 내용인데요.

 

 한국일보는 1951년 美외교문서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62년 전 미국에 이어도의 관할권을 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외교관이 미국 측에 이어도가 울릉도 근처에 있다고 잘못 설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외교문서 ‘1951년 아시아태평양편’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7월 19일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는 존 덜레스 국무부 대일강화조약 특사를 방문, 일제 점령 영토의 반환 문제를 다룬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최종안과 관련한 한국 입장을 담은 서신을 전달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 서신에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와 파랑도(이어도)의 반환을 명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덜레스 특사가 독도와 이어도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양 대사와 한표욱 외교관은 “일본해에 있으며 울릉도 부근에 위치한 것으로 안다”고 잘못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미국 외교문서는 한국이 이후 이어도 반환 요구를 거둬들였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국무부는 “한국 대사관이 (추가 확인에서도) 독도와 이어도의 위치를 모른다고 했다”며 한국의 요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딘 러스크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는 1951년 8월 9일 덜레스 특사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러스크 서한’에 “이어도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으로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해야 하는 섬에 포함돼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요구는 철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적었다는 겁니다.

 

 러스크 서한은 또 독도에 대해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한 적이 없고 1905년쯤부터 일본 관할 아래 놓여 있다”며 한국 영토로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이는 결국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고 이어도를 자국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키는 한 단서가 됐다는 게 한국일보의 보도 내용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백두산 정계비가 생각났습니다.

 

 백두산 정계비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경계를 정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백두산 정계비’는 조선 숙종

 

38년인 1712년 백두산 정상 동남쪽 4km 지점에 설치됐으나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신 지금은 정계비의 탁본만 남아 있습니다.

 

 탁본에 남은 정계비의 내용에 따르면 조선과 청나라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양국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당시 국경 조사에서는 청나라 파견관 대표인 오자총관 목극동의 뜻대로 글자가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도 국경 조사에 관리들을 파견했으나 당시 조선 측 대표였던 접반사 박권과 함경감사 이선부가 노쇠함을 이유로 백두산 정상 등정을 포기하는 바람에 조선에서는 이의복 등 군관과 역관 6인만 정계비에 글을 새기는 데 참여했습니다.

 

결국 조선 파견단은 책임자가 없었던 탓에 청나라 목극동이 자신의 뜻대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후 청나라는 토문을 두만강으로 해석하고 간도가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하게 됩니다. 급기야는 1909년 일본이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고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신 이곳을 청에 넘겨 중국 영토로 간주하기에 이릅니다.

 

 만약 조선의 박권과 이선부가 청의 대표단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끝까지 올라 조선이 원하는 정확한 지명을 비에 새겨 넣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조선 고위 관료의 무책임한 행위가 아쉽기만 합니다.

 

 국방부는 국방백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수호 의지를 강력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서는 “우리 군은 서북 5개 도서와 마라도·울릉도·독도 등을 포함하는 동·서·남해안의 우리 영토를 확고히 수호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의지의 표현으로 독도 근해에서 실시한 ‘독도방어훈련’ 사진이나 아시아 최대 수송함 독도함의 훈련 모습까지 싣기도 합니다.

 

 국방부 출입기자 시절 ‘영토 수호’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면 반드시 나오는 것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우리 영토인 NLL을 수호하겠다”는 결의에 찬 발언들입니다.

 

 군이 존재하는 목적 자체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토를 지키는 것이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데 있어서 조금만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후유증이 엄청나게 커지게 됩니

 

다. 이어도를 둘러싼 논란이나 ‘백두산 정계비(白頭山 定界碑)’의 탁본이 그 증거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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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책을 한권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한국군 코멘터리>입니다.


 그런데 책 내용보다 출판사에 만든 보도자료가 훨씬 그럴듯한 것 같습니다. 후배기자가 쓴 서평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소련은 왜 펜타곤의 핫도그 가게를 노렸을까 …‘한국군 코멘터리’

 

 10년간 국방부를 출입한 베테랑 기자가 대한민국 군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아낸 책 ‘한국군 코멘터리’가 출간됐다.

 

 책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군대의 여러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냉전시대 구소련이 미국 펜타곤(국방부)의 핫도그 가게를 사령부 건물로 착각해 1급 표적으로 지목한 일, 북한이 소련보다 감시가 어려운 ‘하드 타킷’인 이유 등이 보는 이들에게 흥미를 준다. 책은 또 우리 육·해·공군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추려냈으며, 성생활 문제 등 여군들의 애로사항까지 충실히 담아냈다.

 

 책의 저자인 경향신문 박성진 기자는 2001년초부터 2011년말까지 국방부를 출입했으며 지금은 군 관련 블로그 ‘박성진의 군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은 군에 대한 막연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들에게 논문처럼 딱딱하게 군대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 단편적인 정보나 단상의 쪼가리들을 만들어 본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그려진 정보들을 모자이크하듯 짜 맞춰나가면 한국군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색다른 시각으로 눈에 그려진다. 저자는 “군입대를 앞둔 젊은이에게, 과거의 군과 현재의 군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한 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 軍 이야기]

 

 ―육해공 이야기에서 1번 어뢰의 비밀까지, 국방부 출입 10년의 베테랑 기자가 밝히는 한국군 비하인드 스토리.


 

 ‘남자 두 사람만 모여도 군대 이야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군에 관해 저마다의 생각을 늘어놓지만, 대개는 군 복무 시절의 일천한 경험에 의존하거나 정체모를 거부감이나 근거 없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미래를 논하고 현재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팩트’에 바탕을 둔 편견 없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안보상황에서는 말이다. 신간《 한국군 코멘터리》(도서출판 예문)는 국방부 출입 10여 년의 베테랑 기자가 현장 취재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군의 면모를 다각도로 살핀 책이다.


 한국전쟁 이후 특수한 안보 상황과 국민 개병제도로 말미암아 한국인의 일상 및 담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루고 파헤쳤다.

 

 군에 대한 딱딱한 논설식 접근이나 막연한 오해와 정치적 입장에 따른 호불호를 떠나, 저널리즘에 바탕을 두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시선과 평이한 글쓰기로 군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한국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군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언젠가 제대할 때가 온다는 뜻으로, 흔히‘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들 말한다. 과연 국방부에는‘ 국방부 시계’라고 부를 만한 상징적인 시계가 있을까? 저자는 의외로 이것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많았으나 그럴 만한 시계는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예전과는 병영문화가 많이 달라져서, 제대 날을 그리며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리던 시대에서 시간을 쪼개 가며 쓰기 바쁜 시대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요즘 군대라는 것이다.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여서 원거리 화상회의에 참석하며, 사단장을 하면서도 관할 지역 명소 한번 가보지 못하고 이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리지 않으면 후줄근해보이던 얼룩무늬 전투복 또한‘ 링클프리’의 신형 전투복으로 바뀌면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처럼 변화하는 병영문화와 여군, 다문화 군대, 해외파병 같은 군의 변화와 미래상, 그리고 우리나라만의 어쩔 수 없는 안보 환경과 군 문화가 빚어낸 여러 뒷이야기,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취재 후기 등을 담았다.

 

또한 육·해·공·해병대 각 군의 어제와 오늘, 무기 장비 현황, 남북의 엄중한 군사적 대치 상황과 맞물린 주한미군·북한군·중국군 문제, 국방 예산, 방위산업과 첨단 무기 수출입,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등 중대한 군사 현안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실려 있다. 군의 내일을 그려볼 수 있는 정보에서부터 일반인이 궁금해 할 만한 여담까지, 베테랑 국방부 출입기자의 내공이 오롯이 드러난다.

 

 군 입대를 앞둔 이들, 과거와 비교해 오늘날 한국군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한 이들, 한국군의 정체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 속으로]

 

 그런데 해군도 매년 탑건을 뽑는다. 해군의 탑건은 포술 최우수 전투함을 말한다. 해군은 지난 1년간 초계함 이상의 전투 함정을 대상으로 대공·대함 평가 사격을 실시해 최고의 점수를 얻은 함정에‘바다의 탑건 함’호칭을 부여한다. 잠수함은 어뢰 발사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25쪽

 

 6·25 전쟁에서는 장렬하게 공중에서 산화한‘하늘의 영웅’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고성 상공에서 유성처럼 사라졌다가 나중에 보라매의 요람인 공군사관학교 교정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임택순 중위(전사한 뒤 대위로 추서) 같은 이들도 있지만 일본 항공학교를 졸업한 조종사들이 꽤 있었다. ─38쪽

 

 다문화 출신 군인은 과거에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해귀’(海鬼)라는 존재가 왜군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경주성 공략을 앞두고 해귀에게 수많은 부하를 잃었다고한다. 해귀는 바다 건너에서 온 귀신을 뜻한다. 해귀는 파랑국(현재의 포르투갈) 출신 흑인 노예였다. 이전에 흑인을 본 적도 없는 왜군들은 그를 귀신으로 여겨 해귀로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해귀가‘무예가 뛰어나고, 조총과 칼을 자유자재로 다룬다’고 나와 있다. ─172쪽

 

 그가 남긴 한마디가“한자야”였다. 그가 말한‘ 한자’의 의미는 한글이 어뢰에‘ 한’ 글자 표기돼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정확한 대답이다. 왜냐하면 어뢰 추진체에는 아라비아 숫자‘ 1’과 한글‘ 번’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숫자도 한 자, 한글도 한 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 언론사의 국방부 출입 기자는 국방부 고위 인사의 대답을 한글‘ 한 글자’가 아닌 중국‘ 한자’(漢字)로 잘못 알아들었다. 그러고는 잘못된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224쪽

 

 

< 목차 >

 

■·머리말
 ·

■육군 이야기
 ·지상군 페스티벌 / 널문리 / JSA 부대원의 자격 / 러시아 훈련장 / DMZ의 힐링캠프

■해군·해병대 이야기
 ·한국 해군에도 탑건이 있다 / 해군의 계급장 /독도함의 숨은 1인치‘ 캣 워크’ / 해병대가 강한 이유

■공군 이야기
 ·공군 1호기 / 공군의 우주인 프로젝트 /공군의 영웅이 된 일본 항공학교 출신들 / 소음과 전투하는 군용기 /비상활주로 / 우주군 /공군에는‘ 릴리프 투수’가 아닌‘ 릴리프 백’이 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좌석의 비밀

■미군 이야기
 한국군과 미국군 / 펜타곤과 화장실의 공통점 / 한반도 단골손님‘ 조지 워싱턴’함 / 미군의 무기 개발 /미군 병장은‘ 6대 장성’ / 역할이 3개인 주한미군 사령관

■북한군 이야기
 북한은 왜 하드 타깃인가 / 대통령 전용기 탄 북한 VIP /북한군 인민무력부장과 감귤 /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진 /독도함 남북 국방장관 회담 / 통일 후 북한군 /북한군의 계급 / 북한군 특수부대

■여군의 세계
 한국 여군의 역사 / 최초의 여군 / 최초의 여성 조종사 /여군과 전투 / 미스 여군 선발대회 / 여군 브래지어는 국방색인가 / 세계의 여군 / 북한의 여군 / 해군과 여군 / 여군과 섹스

■잠수함의 세계
 한국 해군 잠수함에는 ○○가 있다 / 잠수함의 천적은 그물 / 잠수함에서 생활한다는 것 / 잠수함에서의 식사 / 잠수정 태운 잠수함 / 209급은 베스트셀러 / 35조 원대 국방 예산과 무기

■돈으로 본 첨단 무기

  질’보다‘ 양’을 내세우는 북한군 무기 /국군의 날에 등장한 한국군 무기 / 첨단 무기의 아킬레스건 / 일본은 왜 문제 많은 F-35를 선택했나 / 한국의 무기 개발 /한국군의 저격용 소총 / 한국 방위산업의 수준

■작전과 훈련, 그리고 말
 아덴만 여명 작전 ‘/ 키 리졸브’는 무슨 뜻 / 연어급의 유래 / 엄사리의 유래 / 전쟁이 만든 언어 / 흑룡사와 백골성당 / 연평도와 원탁의 기사 / 디데이와 C데이

■장군 이야기
 장군이 되는 길 / 장군은 뭐가 다른 걸까 / 장군의 종류 / 독일 육사 출신 장군들 / 장군의 배낭

■신세대 병영
 국방부 시계’는 없다 / 신세대 연예 병사와 신비주의 / 신세대 전투복의 로열티 / 군대와 돼지 / 신세대 병사와 외국어

■다문화 시대의 한국군
 한국군에 부는 다문화 물결 / 다문화는 오랜 역사 /한국군은 다문화 용광로 /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들 / 다문화 시대의 국적 문제 / 한국군의 문화·종교·스포츠

■군인과 군복
 군인 선생님을 아시나요 / 주스와 와인 / 사라지는‘ 군용 추억’들 / 국방부 컬렉션 / 군대와 스포츠맨 / 수류탄 던지기도 스포츠 / 한국군의 체력 / 한국군의 종교

■제3의 전쟁
 미디어 전쟁 / 담배와의 전쟁 / 기상 무기의 등장 / 세상을 바꾸는 군

■이런저런 군 이야기
 군가와 응원가의 공통점 / 전쟁과 트로트 / 군견의 노후 / 군 출신 국회의원 / 독도함과 백두산 정계비 / 한반도 비핵화 / 한국전쟁 비사 / 교전규칙

■국방부 취재기자
 북한의 이상 동향과 기자의 사생활 / 1번 어뢰의 비밀 / 중국군의 언론플레이 / 블랙이글과의 인연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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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blee 2013.11.13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재미있겠는데 말입니다.

 지난 4일 사망한 베트남 독립 영웅 보 구엔 지압(武元甲) 장군은 ‘20세기 최고의 명장’으로 불릴만 하다. 미국 타임지는 그를 ‘붉은 나폴레옹’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전설로 남게 됐다.

 

 지압 장군은 1950년대 프랑스와의 항불(抗佛) 전쟁, 그리고 1960~70년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고,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고,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3불 전략’으로 유명하다. 손자병법을 원용한 것 같은 이 병법은 현대 경영학에서도 자주 인용될 정도다.

 

 실제로 남베트남 전투의 80%는 미군이나 월맹군이 아닌 베크공이 선택해 벌어진 전투였다는 사실이 미 국방부의 분석 결과 밝혀졌다. 또 월맹군은 미군과 근접전을 펼쳤다. 그것은 미군이 공습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설날 명절에 이뤄진 구정 대공세 역시 적의 허를 찌르는 기습이었다. 구정 대공세로 미 베트남 대사관은 벽에 구멍이 뚫리는 수모를 맛봤다.

 

 닉슨 미 대통령이 미 합참의장으로부터 “베트공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겠다”는 확답까지 챙겨 받았던 케산 미 해병대 기지 공격 역시 성동격서 전략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시작해 10년간 지그재그로 뚫어 120㎞로 달했던 베트공 땅굴도 그의 지휘아래 만들어졌다. 이 땅굴은 지하 3~4층으로 이뤄져 미군이 찾아내 공격하는데 애를 먹었다. 미군은 당시 채구가 작은 편인 ‘굴쥐’로 불린 병사(주로 아일랜드 출신)가 45구경 권총과 손전등을 들고 땅굴로 들어가야 했다.

 

 지압 장군은 전쟁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결국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진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그는 생전에 “전투는 전략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는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지압 장군에게 중요 전투지역은 베트남이 아니라 미국 본토였다. 그는 여론전을 알았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반전 여론에 굴복해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를 “우리는 프랑스군과 미군을 정확히 파악했지만, 그들은 베트남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들지 않았다. 우월한 무기만으로 충분히 이길 것으로 오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첨단 무기로 무장했더라도 우수한 두뇌가 없으면 다 헛일”이라고도 했다.
 



 지압 장군이 서방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첫번째 계기는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 지배를 끝내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던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식민지 피지배 세력이 게릴라전에서 시작해 정규군으로 무장, 유럽 제국주의 군대와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월맹군은 3개월에 걸친 치밀한 준비로 압도적인 무기를 보유한 프랑스군을 55일 만에 퇴각시켰다. 전투가 시작되자 월맹군은 밀림 속에 숨겨뒀던 105mm 곡사포를 발사해 프랑스군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그는 1979년 2월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 땐 10만 명의 지역 예비군으로 약 20만 명의 중국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지압 장군은 쇼팽을 좋아하고 프랑스 역사에 심취했던 사학도였다. 알렉산더에서 손자에 이르기까지 명장들의 병법에 통달했다. 역사 교사와 신문기자를 지낸 그가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39년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인 호치민(胡志明·1890~1969)을 중국에서 만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압 장군의 탁월한 지략과 함께 베트남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마음가짐, 즉 정신상태였다. 북베트남군의 팔에는 ‘북에서 태어나 남에서 죽는다’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베트남에 도착하는 날부터 본국으로 돌아갈 날짜만 계산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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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뉴스가 핫 아이템이 되다 보니 TV를 켜면 어김없이 그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채 총장과 함께 낯익은 검찰 간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과거 검찰을 출입하던 시절 가끔 논쟁도 벌이고 했던 그들이다.

 

이들 중 한 명과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주장을 놓고 입씨름을 한 적이 있다. ‘수사는 생물’이라는 말은 검찰이 수사를 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안이 튀어나와 수사의 방향이 어떻게 갈지 모른다는 것을 빗대 하는 비유였다. 나는 “검찰이 당초 수사 대상으로 삼았던 사안이 아닌 것을 수사하는 ‘별건 수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사는 생물’이라는 주장으로 정당화한다”며 “차라리 ‘수사는 럭비공’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고 반박했던 기억이 난다.


검찰이 수사를 생물로 비유할 정도로 주변의 객체를 살아있는 생물인 유기체로 비유하는 사례는 이곳저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도시가 생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는 모습이 마치 생로병사를 거치는 유기체와 같다. 수사를 생물로 비유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도시는 생물과 같다는 비유에는 공감이 가는 이유다.

 

도시는 생물이라는 비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서울도 생물’이다. 서울은 태어난 지 600년이 넘는 장수 도시다. 서울은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고도성장 시대에는 개발을 앞세워 덩치를 불리기도 했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최근에는 도심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화장도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입맛’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 만들기’는 과거 고도성장 시대였으면 씨알이 먹히지 않았을 사업이다. 주민들은 기존 마을을 갈아엎는 재개발을 하면 ‘남는 장사’가 됐던 과거의 경험이 이제는 원주민이 갈 데가 없어지는 ‘밑지는 장사’가 된 현실을 인식하면서 ‘마을 만들기’ 사업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는 쇠락해 가던 동네가 다시 건강해지는 도시의 면역력을 키우는 사업으로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충신동 언덕길 주택들도 그 사례다.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 건축물은 1950~1960년대만 해도 LH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이 조성한 현대식 영단주택(문화주택)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최신 주택에서 노후 주택으로 낡아가던 이곳은 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며 쇠락의 속도가 더 가팔라졌으나 최근 재개발지구 해제와 함께 주택 리모델링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그린 예쁜 벽화로 화장도 하면서 동네가 다시 건강하게 살아나고 있다.

 

도심 노후 연립주택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혹시라도 슬럼화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염려됐던 연립주택들이 간단한 ‘성형수술’을 거쳐 모양을 바꾸고 있다. 종로구 부암동이나 옥인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기념품이나 옷, 차 등을 파는 예쁜 가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예품을 만드는 조그마한 수공예 교실도 있다. 모두가 연립주택 1층을 개조한 곳들이다.

 

아예 리모델링으로 예술공간이나 문학관으로 거듭난 도심의 철도나 상수도 시설물도 있다. 마치 정년퇴직으로 직장을 떠난 이들이 과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제2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모습과도 같다.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고지대 마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던 상수도 가압장이었다. 펌프가 돌아가던 기계실은 전시실로 탈바꿈했다.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던 마포구 염리동 일대 부지는 벼룩시장이 됐다.

 

 

서울 인왕산 수성동 계곡 (경향DB)


인왕산 수성동(水聲洞) 계곡의 변신도 눈부시다. 이곳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배경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옥인아파트가 있던 이곳에 소나무 등 나무 1만8477그루를 심어 겸재의 시선으로 계곡을 즐길 수 있도록 복원했다. 복원 사업에는 1060억원이 들었다. 토지 및 건물 보상 비용만 1005억원이 들었다. 녹지조성 및 수성동 계곡 복원에 투입된 예산이 55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지만 그 혜택은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당장 주거환경이 쾌적해지면서 수성동 계곡 인근 누상동 일대 땅값은 지난해 8.80%나 올랐다. 마을이 건강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지면서 몸값도 올라간 것이다.

 

수성동 계곡의 복원사업에서 읽을 수 있듯이 도시를 자칫 잘못 개발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데는 그 대가가 너무도 크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을 복원하기 위해 종로구 명륜동의 시장공관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종로구 연립주택의 주차장 벽으로 전락한 성곽의 복원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보상비가 걸림돌인 탓이다. 이제라도 서울의 ‘만수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기체는 면역력이 강해지면 복원력도 강해지게 마련이다. 서울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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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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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윗부분에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참가가 있다. 꼭 참가가 아니래도 좋다. 관람만 해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리우 카니발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놓쳤다. 두차례 브라질을 방문했는데 공교롭게도 한차례는 리우 카니발이 시작하는 날 브라질을 떠나야 했고, 또 한차례는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 도착하는 날이 라우 카니발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게 아쉬워서 카니발을 위한 학교인 삼바 학교 방문을 계획했었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대신 TV로 비춰주는 카니발의 하이라이트만 시청했는데도 마치 다른 우주의 세계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리우 카니발은 사순절을 앞두고 매년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의 나흘 동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축제다. 최강의 삼바 무용수를 가려내는 경연대회가 펼쳐지고, 전 세계의 관광객이 이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브라질로 향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8일 시작된 리우 카니발 행사. (AP연합)



삼바학교는 카니발을 위한 학교이다. 사람들은 삼바학교에 등록해 1년 동안 퍼레이드를 준비한다. 최초의 삼바학교는 1928년 리우데자네이루의 흑인 빈민가인 에스타시오데사에 설립됐다. 지금은 여러 개의 삼바학교가 생겨, 카니발이 열리면 학교의 명예를 걸고 퍼레이드를 준비한다. 리우데자네이루 시청에서는 주요 삼바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브라질의 카니발 축제는 리우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다. ‘국제 스타’ 싸이가 지난 2월 참가했던 살바도르 축제도 리우 축제와 유사한 카니발이다. 브라질에는 리우 축제나 살바도르 축제와 유사한 카니발이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리우 카니발의 핵심이 삼바 퍼레이드라고 한다면 군소도시에 열리는 카니발은 타악기를 연주하는 밴드 ‘바테리아’ 중심이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물론 규모는 리우 축제가 가장 크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에서 한 삼바스쿨의 여왕으로 뽑힌 비비안 아라우조.


카니발은 원래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건너온 사람들의 사순절 축제와 아프리카 노예들의 전통 타악기 연주와 춤이 합쳐져서 생겨났다.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20세기 초에 지금과 같은 형식의 카니발이 완성됐다.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의 카니발을 놓고 원조 논쟁이나 경쟁이 벌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도시 특색에 맞게, 주민 특성에 맞게 지역 카니발마다 제각각 특징을 갖고 있다.


장황하게 브라질의 카니발을 들먹인 것은 ‘등’(燈)축제를 놓고 경남 진주시가 원조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진주 시장은 1인 시위까지 벌이며 서울시의 등축제가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모방했다고 비난했다.


서울시청으로 간 진주시장 (경향DB)


등축제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대게·송이·고추·무술과 같은 축제를 개최하면서 서로 원조를 주장하면서 다른 지역의 유사축제를 공격하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대게축제’를 놓고는 동해안 대게 주산지인 경북 영덕군과 울진군이 서로 ‘대게 원조 고장’을 자처하고 있다. 경북 울진군은 인근 봉화군과도 ‘송이축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충북 음성군과 괴산군은 고추축제를 놓고 10여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먹거리 축제만이 아니다. 지역을 연고로 한 스토리 텔링도 원조 경쟁이 치열하다. 전북 완주군과 김제시는 설화 ‘콩쥐팥쥐’의 고향이 서로 자기 지역에 있다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완주군은 1919년 출간된 박건회의 소설 <대서두서>에 콩쥐팥쥐의 고향이 ‘전주 서문 밖 30리’로 묘사돼 있는데, 이곳이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제시는 ‘전주 서문 밖 30리’는 김제시 금구면 둔산마을 일대라고 항변하고 있다.


충북도가 2015년 개최하는 ‘세계무술올림픽’도 기존 충북 충주시가 개최해 온 ‘충주세계무술축제’와 성격이 비슷하다.


한반도의 동서남북을 놓고 벌이는 지자체 간 주장도 낯간지럽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동해안 ‘정동진’이 뜨자 ‘정서진’을 놓고도 지자체들 간에 논쟁을 벌인 게 얼마 전이다. 인천 서구는 정동진은 ‘임금이 사는 광화문의 정동쪽에 있는 나루’에서 유래한 것으로 광화문의 정서쪽에 있는 인천터미널 주변이 정서진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반면 태안군에서는 한반도의 중심인 충북 중원 일대를 기점으로 했을 때 만리포가 진짜 정서진이라고 반박했다. 정남진을 놓고는 전남 장흥지역에서 관산읍 신동리와 용산면 남포리가 서로 자기 지역이 원조 정남진이라고 ‘집안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라고 했다. 음식점도 그 지역에서 처음 문을 연 집이 아무리 원조를 주장해도 더 맛있게 하는 집으로 손님은 몰리게 마련이다. 여름철의 대표 음식인 냉면만 해도 그렇다. 원조집을 주장하는 집은 많지만 냉면집마다 제각각 알게 모르게 특징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그 맛을 좇아 손님들은 입맛에 맞게 찾아간다.


등축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리우 카니발이 있다고 해서 살바도르 카니발이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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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인사, 육군의 3심제 도입

 

 남재준 원장을 선장으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듯이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의 색깔은 인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이뤄진 국정원 승진 인사는 육군 인사처럼 ‘3심제’로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아마도 인사 청탁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시도인 것 같습니다. 3심제를 하게 되면 승진 인사를 하는데 외부의 입김이 아무래도 차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목에서 3심제가 뭔지를 간략히 보겠습니다. 육군 인사는 갑(甲)·을(乙)·병(丙) 3개 추천위원회(위원장은 2~3단계 상급자, 위원은 1~2단계 상급자)가 동시에 심사하는 3심제로 실시됩니다. 각 위원회는 배수(倍數)로 추천된 대상자 들 가운데 진급 적격자를 고르는 방식입니다.

 진급이 당연히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장교는 갑, 을, 병 등 3개 위원회의 1차 심사에서 공통으로 추천이 됩니다. 그러면 그 후보자는 대상자를 최종선발하는 선발위원회에서 1순위로 진급이 됩니다. 그러면 다시 나머지 진급 대상자들을 놓고 3개 위원회가 진급자를 추리는 방식으로 진급 대상자 공석을 채우게 됩니다.

 

 이같은 육군의 3심제는 기본점수가 낮으면서도 심사위원 등과의 평소 친분관계로 진급이 되는 이른바 ‘진급부적격자’를 골라내 탈락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그러나 이 역시 갑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는 선발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이 편중 반영될 수 있고, 모든 의결을 비밀투표 및 비공개를 원칙으로 함으로써 공정성에 의혹이 종종 제기된다. 어떤 군 간부는 “3심제인 군의 진급심사 제도 때문에 발탁인사가 어렵고, 무인(武人)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자꾸 탈락하면서 군이 관료화돼 버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뭏든 모든 제도가 완벽할 수 없으니 3심제 인사에 대한 언급은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이대목에 중요한 것은 남재준 원장이 과거 정권에서 외부의 입김과 줄타기가 난무했던 국정원 인사에서 군 인사 시스템을 접목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국정원은 지난달에 이미 1급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에 이어 30여명에 달하는 1급 중 본부 핵심 실·국장과 11개 지부장 등 80~90%를 교체한 바 있습니다. 이후 중간 간부 후속인사에서 군 인사시스템을 도입한 것입니다.

 

 국정원측은 최근 실시한 인사결과에 대해 “탈정치, 능력 위주라는 기준에 따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사 후보자들에 대한 심층평판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히고 있다고 하더군요.

 

 

왜 해병대 장군 출신인가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인사 절차를 해병대 장군 출신이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국정원 내부 인사를 담당하는 총무실장에 해병대 준장 출신이 임명될 때부터 말들이 많기 했지요.

 

 이 해병대 출신 준장도 남재준 원장처럼 ‘원칙주의자’입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초에 인사 청탁을 하기엔 무리라는 얘기입니다. 남 원장이 예비역 해병대 장군을 인사 책임자로 앉힌 것도 다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 간부는 외부에 신원이 노출되면 안된다고 하니 그에 대한 소개는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국정원장 특보와 국방보좌관 등에도 대령 출신 인사가 각각 임명됐지만 이들 간부 역시 신상에 대한 언급은 대외비라고 하니 부연 설명 역시 생략하겠습니다.

 

국정원장과 3차장의 관계

 그러나 과학정보를 담당하는 3차장의 경우에는 외부에 공식적인 프로필을 제공하고 있기에 약간의 군 시절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됐다시피 사이버, 통신 등 과학 정보 담당인 3차장은 김규석 전 육군본부 지휘통신 참모부장(64·포항)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육사 29기인 김 3차장은 주스페인대사관 무관, 국군 지휘통신사령관, 육군정보통신학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2007년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국방안보 특보단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임명을 놓고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로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비한 대응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2002년 국군 지휘통신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해 ‘사이버대응센터’를 최초로 구축하기도 했으니 그런 평가가 나올만 합니다.

 

 

 그런데 김 3차장이 국정원의 ‘딸각발이’ 역할을 주목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육군 참모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2003∼2004년 지휘통신 참모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당시 그는 4성장군인 남재준 참모총장 앞에서 직언을 서슴치 않는 거의 유일한 참모였습니다. 한마디로 총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해야 할 말은 하는 성품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당시 ‘골초’였던 남 총장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된 장소에서 참모들을 모아놓고 흡연을 하면 바로 그자리에서 “총장님! 여기서 담배를 피우시면 어떡하십니까. 공공장소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되지 않습니까”라고 바로 발언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당시 남 총장이 김 소장을 지휘통신 참모부장으로 부른 것도 상명하복의 군에서 4성 장군인 총장 앞에서 면박성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쓴 소리’를 들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편의적인 해석도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국정원에서도 김 3차장이 남 원장에게 할 말은 할 것이라는 얘기는 나오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느 조직이 인사를 장악하면 조직을 쉽게 장악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은 이미 군 출신에게 접수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재준 원장의 2차 인사 개혁

 

 그런데 남재준 원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있으면서 육군의 인사를 개혁하려다 저항에 부딪혀 자리에 물러난 전력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정중부 무신난 발언’ 사건에 휘말려 기무사의 약식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무신난 발언은 직접 들은 사람은 없는데 “(육군총장이) 말했다더라”는 제보만 있었습니다. 음해성이 짙어 보이는 대목입니다.

 

 아뭏든 남재준 신임 원장은 과거 육군총장 때처럼 국정원 인사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향후 그 결

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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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가로 주변에 가부장적인 선배가 한 분 있다. 혹자는 그분을 두고 마초이스트라고 말한다. 그분이 사는 아파트 화장실에는 공중화장실도 아닌데 좌변기와 함께 서서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소변기가 나란히 마련돼 있다. “남자가 어찌 앉아서 계집애처럼 오줌을 눌 수가 있는가.” 집안에 소변기를 들여 놓은 데 대한 본인의 설명이다.

 

 이와는 대조적인 환경에 놓인 선배도 있다. 대기업체 고위 간부인 이분은 집안 화장실의 좌변기 이용 문제를 놓고 종종 처자식들과 다툰다. 다툼은 딸만 둘을 둔 이분이 소변을 본 후 변기의 엉덩이 받침대를 올려 놓는 데서 시작한다. 부인과 두 딸이 화장실을 나오면서 왜 받침대를 내려놓지 않느냐고 따지곤 한다. 사태는 결국 아버지가 “다음부터는 볼 일을 본 후 받침대를 내려놓겠다”고 사과한 후 수습된다.

 

 이분 왈(曰), “남자 신입사원 중에도 좌변기에 앉아서 여자처럼 소변을 보는 놈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며 “어렸을 적부터 엄마한테 훈련받은 결과”라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남녀의 역할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문화 등에서도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지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이 남자처럼 바지를 입는 유행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남성들이 무화과 잎새로 앞을 가리기 시작한 이래 남자들이 복식문화로 개발시킨 의복의 모든 장점을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디 남자 바지의 앞단추 또는 지퍼의 기능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입고 벗을 때 편하기 위한 이완(弛緩)의 기능이다. 두 번째는 생리작용을 위한 편리 기능이다. 남성들은 소변을 볼 때 ‘꽈배기’처럼 틀어져서 나오는 생식기를 연상하면서 여성들이 바지를 입더라도 지퍼만은 옆구리에 달려 있을지언정 절대로 정면으로는 옮겨오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청바지가 남녀 공용으로 애용되면서 이 같은 자신감은 한낱 잠꼬대에 지나지 않게 돼 버렸다. 이제는 중년 숙녀들의 슬랙스에도 지퍼는 45도 앞으로 이동했다.

 

 주역의 대가이신 대산 김석진 옹은 “지금은 정신보다 물질, 동양보다 서양, 남자보다 여자, 아버지보다 자식이 앞서는 ‘음(陰)’의 시대”라고 지적했다. 요즈음 세태와 잘 들어맞는 대가다운 해석이다. 우리나라도 여성 후보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다.

 

 김옹은 그러나 양(陽)과 음(陰)이 반복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며 음이 극에 달하면 다시 양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한복을 벗고 양복을 입듯) 수시변역(隨時變易·때에 따라 바꾸는 것)이 주역의 본 뜻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육·해·공군 사관학교가 모두 여학생을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3사관학교는 여학생을 뽑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여군 장교의 과다 배출로 인한 문제점을 이유로 제3사관학교의 여학생 입학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군에서는 여군이 남군보다 자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여군이 100% 역량을 발휘하는 데 신체적·환경적 제약을 받는 분야가 많다. 하지만 여성 단체에서는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시대의 흐름은 변화무쌍하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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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 2012.10.1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심란하신가 보군요.
    글을 보니 그런 분위기가... ^^

    • 장강 2012.10.10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많이 심란합니다~. 컥컥!(뭔가 이물질이 목구멍에 얹혀 있어서 나는 소리같은 것)

  2. GG 2012.10.23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알죠
    여군이 얼마나 효율적인 분들인지
    정말 까무러칠 정도여서 욕이 나옵니다.

  3. 여군꺼져 2013.08.29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받는지 의문이다 ㅎ

  4. 보라돌이 2013.10.07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양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조금도 떨어질게 없다고 본다.사관학교 수석 졸업두 항상 여성들이 차지하는 것만 봐도 알수있다.여성이 야전부대 사단장까지 됐으니 더이상 여성에 차별은 없어야한다....우리나라 인구수가 계속 줄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여성두 남성과 동등하게 병역의무를 져야 하며 군대에서는 미리 여성들을 군인으로써 어떻게 활용하구 훈련시켜야 하는지 연구가 필요하다...우리보다 선진국이 스웨덴두 남여 모두 병역의무를 지는 마당에 휴전 상황인 우리나라는 더 말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병역문제 때문에 남,여로 갈라져서 싸우는 모습두 안좋구 남자들한테만 공무원 가산점 적용하는것두 안 좋으니 남여 모두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되면 이런 문제들이 자연스레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5. 김대위 2013.11.07 0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전에서 10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볼때 여군이 100퍼센트 역량을 발휘한다는 말도 안되는 어불성설은 집어 치웠으면 좋겠다. 전투병과에서는 당연히 근무능력이 떨어지는데 전반적인 객관적인 평가가 이렇다 저렇다는 것은 야전실정을 모르는 너무 허위과장된 논리라고본다. 위에서 논하는 학교에서 수석졸업한 사람을 과거 야전에서 만났을때 빼어난 기회주위자였음을 상기해본다. 전쟁은 쓸대없는 탁상공론으로 하는게 아니다. 군이 강해지려면 인재를 적재적소 필요한 자리에 않히고 실력발휘하게 해야지 진급을 위해 성평등 논릴 따져서야 우리군이 강해질수가 없다. 군대는 일반직장이 아니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곳이다.

 각종 재해로 인한 북한의 식량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또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준동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 야근을 하면서 이런 저런 뉴스들과 관련해 상상력의 나래를 한번 펴봅니다.

 

 # 뉴스 1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북한 당국은 X일 남한이 제공한 쌀 등 구호품에 대한 대가로 사거리 500㎞인 스커드C 미사일 X기를 폐기하기로 남측 당국과 합의했다. 북한 당국이 군부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대칭 무기인 미사일 일부를 폐기키로 한 것은 국제 사회의 압력뿐만 아니라 남측과의 화해 무드 조성에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 뉴스 2
 남북 국방장관이 X일 동해상에서 해군의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 갑판에서 남북 간 군사 현안을 놓고 2박 3일간의 협상에 들어갔다. 양측 국방장관들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한반도 안전에 위험이 된다는 점을 공감하고 향후 공동 대책을 마련키로 잠정 합의했다고 AP 통신 등은 전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독도함에서 남북 국방장관이 만난 것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영속화하려는 의도라며 강력 비난했다.

 

 

<2000년 9월 제주에서 열린 남북 첫 국방장관 회담에서 조성태 전 국방장관과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악수하는 모습(위)과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2차 국방장관 회담에서 김장수 전 국방장관과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악수하는 모습(아래)>

 

‘뉴스1’과 ‘뉴스2’는 한밤중의 몽상으로만 끝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국론을 모으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머리를 짜내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불교에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지 않았습까.

 

 남북한 군 수뇌부가 독도함 갑판에서 머리를 맞대는 것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게다가 이를 통해 독도라는 단어가 전 세계 언론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과거 여러 국방장관에게 만약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재개하게 된다면 독도함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북한 입장에서는 독도함에서의 회담을 꺼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독도함은 남한 해군의 막강한 전력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국방장관회담은 남북에서 교대로 열리는 것이 통상 관례입니다. 그런만큼 남측에서는 독도함, 북측에서는 북측이 원하는 장소에서 회담이 교대로 열린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북한에서는 백두산에서 열리는 게 어떨까 싶네요)

 

 독도 앞바다에 독도함을 띄워 놓고 남북회담을 하면 효과가 더 클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전 세계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알리는 광고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보입니다.(아마도 수천억원, 아니 조 단위의 광고비를 투입하는 것 이상의 광고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이같은 쾌거의 전제 조건은 남북간의 화해입니다. 소모적인 남북간 군비경쟁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독

 

도함에서 남북 국방장관이 독도의 일출을 바라보면서 악수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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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츄츄트레인 2012.09.17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종 예약하셨습니다.
    언젠가 현실이 된다면 많은 기자들이 물 드시겠습니다.
    그 해의 기자상 수상. 미리 축하드립니다. 국장님.^^

    • 장광 2012.09.18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우! 츄츄트레인님. 역사의 현장을 취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렵니다~.

    • 어... 2012.09.21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김칫국물 드시고 속 챙기시고요~ ㅋㅋ

      암튼,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

  2. 장광 2012.09.2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왕이면 독도함에서 김칫국물 마셨으면 하네요~. ㅎㅎ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화랑의식(퍼레이드)를 참관한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네요. 

 '반란 및 내란죄로 무기징역까지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참관을 허용했다'며 군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1989년도에) 사면까지 받은 사람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반박하는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사건의 발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5공 핵심 인사들과 함께 지난 8일 육사를 방문해 생도들의 퍼레이드를 참관한데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육사 교장 옆자리에 서 있던 전 전 대통령은 생도들이 단상 앞에 이르러 "우로 봐!"라는 구호를 외치자 손뼉만 쳤던 참석자들과 달리 생도들에게 경례로 화답하면서 사실상 ’사열‘하는 장면이 연출됐다는거죠.

 

 그렇다면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국군의 수뇌부가 될 사람들이 내란수괴에게 경례를 했던 것일까요. 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에 발전기금을 낸 자격으로 초청받은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육군은 또 전 전 대통령의 육사 화랑식은 금요일마다 있는 일상적인 행사와 같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민간인들도 언제든지 볼수 있는 행사라는 거죠(육사는 매주 금요일마다 화랑연병장에서 생도들이 퍼레이드하는 자체 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사실 '우로 봐' 했을때는 직속 상관인 육사 교장과 관람석에 있는 참석자들에게 모두 경례를 했다고 볼 수 있겠죠. 특정인을 대상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논란이 있을 듯 합니다. 


전재산이 29만원이라고 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패러디물


 당시 육사발전기금을 500만원 이상씩 내 초청받은 대상자 가운데 한명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관람석에는 400여명이 있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분열하는 생도들에게 경례로 화답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박수를 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열이란 부대의 사기나 교육 정도 등에 관하여 검열하는 것으로 지휘관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하고 영예로운 일이라고 합니다. 

 군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열을 한 게 아니라 분열 행사의 현장에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육사 생도들 입장에서는 분열을 한 것이고,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은 사열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게 그것이긴 합니다. 참고로 일반시민들도 신청만 하면 매주 금요일 육사생도들의 분열 행사를 참관할 수 있습니다. 즉 넓은 의미에서 사열을 할 수 있는거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화랑연병장에서 경례를 하는 모습/경향신문 DB

 


 다른 얘기입니다만 군 통수권자의 해석을 놓고 한 현역 장성이 영관급 장교 시절 나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정치인 대통령'과는 분리해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즉 군 통수권자가 내리는 정당한 명령은 받아들이겠지만 정치인 대통령이 내리는 부당한 명령은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군 출신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이에 대한 견해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장교 자체가 정치 군인이라는 거였습니다. 즉, 대통령은 국민이 뽑아준 선출직이라면서 대통령의 명령을 어떻게 정치인 자격으로 한 것인지, 군 통수권자 자격으로 한 것인지를 자로 잰 듯 분리할 수 있느냐는거였습니다)

 

 그렇다면 육사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쿠데타로 내란죄를 저질렀던 당사자'라는 견해와 '학교발전기금을 낸 육사 선배'라는 견해로 분리해서 볼 수 있는 걸까요. 헷갈리네요.

 

 또다른 얘기로 최근 군 검찰이 트위터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육군 대위를 ‘상관모욕죄’ 혐의로 기소한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사건을 놓고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군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상관’에 포함돼 군 검찰의 기소가 적법하다는 견해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인 대통령은 군형법상 ‘상관’이 아니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육군 대위가 대통령의 잘못된 정치적 행위를 비난한 것이지, 군통수권자를 비난한 게 아니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이번 퍼레이드 참관 사건을 놓고 무엇인가 무자르듯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결과는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횡설수설한 감이 있습니다.

 

 참고로, 육군 관계자들에게 "육사 생도들이 퍼레이드 행사에 전두환 전 대통령 일행이 참관하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대답은 "단상 가까운 줄쪽에서 행진하는 생도들 정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알아 보지 않았겠느냐"고 하더군요.

 

 과연 그 생도들은 80세가 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면서 쿠데타의 꿈을 키웠을까요, 아니면 '인생무상'을 느꼈을까요. 주제가 또 옆으로 샌 감이 있네요.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 법정에 서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경향신문 DB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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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의 모든 신문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최지성씨가 임명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삼성그룹 2인자가 교체됐다며 관련기사까지 안쪽 지면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자니 이제 사회의 헤게모니가 어디에 가 있는 지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문의 1면에 특정 직위에 임명됐다는 인사 기사가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유명인이라도 거취와 관련해 신문 1면에 기사가 게재되는 것은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처럼 신병이 구속된다든지, 아니면 장관직에서 전격적으로 짤린다든지 하는 유쾌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때가 아니면 쉽지가 않습니다)

 

 일개 기업집단의 2인자 임명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관련 기사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사회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재벌그룹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삼성이 말입니다.

 

 신문에서 특정 집단의 인물을 다루는 비중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의 주도권을 누가 잡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좀 옛날 얘기를 해볼까요. 군부 독재 시절에는 4성 장군들인 각군 참모총장은 물론, 3성 장군인 기무사령관과 특전사령관 인사 기사도 주요하게 다뤄졌습니다. 한 보수 신문은 김모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자 '말도 안되는' 과거 무용담까지 들먹이며 미화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참모총장이 바뀌어도 신문의 앞면에 나가기 힘듭니다. 하물며 일반 장성 인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때는 군 정기인사 기사가 신문 앞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요새는 뒷쪽 인물면 동정란 정도로 소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에는 지금도 사회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검찰집단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십수년 전만 해도 검찰 인사가 나면 도하 각 신문의 한면 전체가 바뀌는 검사장급(차관급) 프로필 기사가 차지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검사장급 프로필은 사라지고 고검장급 프로필만 나오더군요. 이것도 잠시였습니다. 수년 전부터는 검찰 고위층 프로필이 사라지고, 그나마 검찰총장 정도만 나오는 시대가 됐습니다.

 

 

 반면 경제면에서는 주요 그룹의 인사가 이뤄지면 주요 인사의 면면이 지면에 소개되더군요.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회의 균형추가 공무원 사회에서 재벌그룹이 이끄는 경제계 쪽으로 기울어 졌다는 얘기입니다.

 

 실례를 볼까요. 요즘 언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한마디 보다 오히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한마디가 훨씬 크고 무게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대통령은 임기제 권력자이고, 그룹의 오너이자 총수는 임기 제한 없는 무한 권력자처럼 군림하는 세상입니다.
 
 사양산업이라는 신문사 종사자 얘기를 해볼까요. 과거에는 정치부장 쯤 하고 나면 여야에서 콜이 왔습니다. 공천을 주겠다고 말이죠. 지금은 어떠나구요.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도 공천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언론을 '권력의 제4부'라고 칭해주고, 기자를 보고 '무관의 제왕'입네 해주던 시절은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 돼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시세없는' 직업이 된 것이죠.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시대의 흐름인걸요.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채워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이럴때일수록 동양의 고전인 유교와 주역에서 지적했듯이 '수시변혁(隨時變革)' 즉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유로존 위기라며 모든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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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아마도 오싹한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서기 2000년도에 벌어진 일입니다. 휴대전화의 벨이 울려 받았더니 상대방이 다짜고짜 욕설과 협박성 발언을 일방적으로 퍼붓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저는 기사를 통해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집단 휴진에 나선 의사 집단을 비판했습니다. 일방적인 전화 욕설은 이에 대한 일종의 ‘전화 테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모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저의 전화는 당시로서는 상용되지 않은 송신자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통신회사에서 연구원 등을 포함해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시험용으로 번호확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제 휴대전화는 시험용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한 후 바로 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점잖았습니다.
 
바로 전 전화기를 걸어 욕설을 퍼부은 사람의 목소리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화를 걸었을땐 은닉성을 무기로 자신의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른 ‘헐크’로 변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보세요. 방금 통화했던 아무개 기자입니다. 저에게 협박을 하시던데 한번 만납시다. 언제가 좋을까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즉시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져 왔습니다.

그는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했습니까”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내친김에 “(사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개업하고 있는지도 압니다”라고 눙쳐 말하자 그는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전의를 이미 상실하면서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연출한 힘은 다름 아닌 ‘정보’였습니다. 저는 사소한 것 같은 상대의 전화번호 하나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보가 마치 10개 이상 노출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것입니다.

정보의 힘은 그만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큽니다. 국가정보원이 ‘정보는 국력이다’를 원훈(院訓)으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남쪽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남측이 훨씬 많이 북쪽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함부로 준동하지 못합니다. 그 힘은 바로 정보자산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북한 정보에 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미 간에 이뤄지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의 핵심 역시 정보입니다. 미국은 수많은 군사위성을 통해 북한 내부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북한 정보의 많은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MB 정부는 정권 초기에만 해도 과도한 국방비를 투자하기보다 돈독한 한·미관계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호크 판매 제안을 거절했습니다.(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미국이 우리측의 글로벌 호크 판매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뒤늦게 고고도 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를 다시 사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호크의 가격이 두배로 껑충 뛰어 방위사업청은 대안으로 팬텀 아이나 글로벌옵저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MB 정부가 이처럼 고고도 정찰기와 같은 정보 자산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북한에 대한 휴민트(인적정보) 능력도 시원찮은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일각에서는 GDP가 남한의 42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북한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통계청에 따르면 북한 GDP는 남한의 42분의 1 수준인 24조5970억원입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남한이 2만759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1074달러에 불과해 19.3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알 수 있고, 북이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다중의 대비책이 있다면 남북간 교류도 자신있게 흔쾌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 수뇌부는 '북한군 특이 동향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연평 포격과 같은 북한군의 기습 도발 후에는 '북한군이 설마 그렇게까지 나올 지 몰랐다'는 대답을 국회에서 했습니다.
(앞서 수년 전 북한이 핵실험을 했던 날 아침에는 군 정보의 최고 책임자인 국방정보본부장(중장)이 군 골프장에 버젓히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거죠. 그는 나중에 별을 하나 더 달고 육군참모총장이 됩니다.)
 
그러면서 군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응징만이 최고의 해결책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바른 해법일까요.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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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지난해 여름 수해현장에서 주민을 구하다 숨진 조민수 수경의 사연 조작 의혹과 관련해 10일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원점에서 재조사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 수경의 옛 상관들인 의경 중대장과 경찰서장은 “사연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고 하네요.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 등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뛰어드는 직업군이 사망하면 곧잘 ‘영웅담’이 등장하곤 합니다.
 
 전투기나 헬기 추락사고가 발생하면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흔히 나오는 제목이 ‘살신성인’입니다. 기체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민가쪽이 아닌 야산으로 기수를 돌리려 조종사들이 안간힘을 썼다는 것죠.

 그런데 사실 조종사들이 실제로 기수를 민가가 아닌 쪽으로 돌리려고 했는지는 100%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종사가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있는 경우 민간인의 희생을 피하려고 애쓴 정황이 추정되지만 그렇다고 100%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통상적으로 기자들은 “조종사가 죽는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민가를 피했다”고 보도하면서 ‘살신성인’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기자들도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임무 수행 도중 순직한 이들에 대해서는 명예를 높여주는 게 도리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영웅 만들기’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언젠가 본인의 과실로 사고가 일어났지만 부하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중대장(대위)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살신성인’의 표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중대장이 만약 그 사고에서 살아 남았다면 지휘책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물론 부하들을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게 한 과실 치사상 혐의로 사법처리됐을 것입니다.(이 중대장의 유족은 언론 보도 내용 등을 거론하면서 군에 상당한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군 당국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면서 그의 책임 문제를 거론했고, 유족은 발길을 돌렸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꽤 된 얘기지만 해안가 군 휴양소에서 안전관리요원 병사가 수영객을 구하려다 물에 빠젼 숨진 적이 있습니다. 군에서는 이 병사를 일계급 특진 시키고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은 물론 그의 ‘살신성인’을 기리는 기념비까지 사고 현장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군 당국이 이 병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 병사는 나름대로 수영은 꽤 했지만 인명구호 자격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영객이 물에 빠지자 어떻게 구조해야 하는 지 절차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마음만 급한 상태에서 바다에 뛰어 들었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군에서 “수영 잘하는 병사 손들어 봐” 한 후 주먹구구식으로 안전관리 요원을 뽑았던 것입니다)

 훈련중 병사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통상 지휘관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일어납니다.

 사고가 나면 군 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것이 사망자의 국립묘지 안장입니다. 유족들도 왠만한 보상과 함께 국립묘지 안장을 보장하면 대부분 군 당국의 제안을 받아 들이곤 합니다.

 기자들도 ‘좋은 게 좋은 거’ 또는 괜히 ‘망자의 명예에 누가 될 수 있다’며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를 꺼려 했던 것이 이런 사례의 발생에 일조한 게 아니냐는 자책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번 의경의 사연 조작 논란을 계기로 언론도 이런 문제에 대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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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요... 2012.01.17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 가는 기사입니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블로그에 올렸듯이 육사출신이 정찰하다가 잘못해서 지뢰지대에 들어가서 사고를 당하고...결과적으로...인수인계 주고 받는 대대장들이 다 다리가 절단되고...한 분은 전역하고, 한 분은 남아 대령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죠. 그들은 영웅이 되었고요....그런데 얼마있다가 비슷한 경우를 당한 비육사출신분의 기사를 났는데요. 그분 왈, 당신은 육사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부상당하고 병원비도 당신이 부담했다라고 썼더라고요...그리고 하는 말이 만일 똑같은 일을 비육사출신이 당했으면 영웅은 커녕 당장 보직해임이었을거라요. 군대 출신차별 이거 죄악이고 불법입니다. 군사법에 신경을 씁시다. 육사는 똑같은 죄를 졌어도 집행유예지만 비육사는 콩밥을 먹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참 씁쓸한 기사들....오마이뉴스에서 한 번 읽어보세요. 군대가 이래가지고 과연 싸울 수 있는 군대일지 참 한심했죠. 출신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한 출신들이 다 해먹고, 한 출신들이 공고연하게 특혜를 받고, 자기들이 엘리트네 정예장교네 공언하고....인사는 자 주름잡고....제가 볼 때는 이거 다 하나같이 나라 망칠 놈들입니다. 장교는 장교라면 임관한 그날부터 출신에 관계없이 공펴한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그게 나라가 할 일입니다. 출신차별하면 군이 분열되고 싸울 수 없습니다. 군개혁은 군인사개혁이어야 하고, 한 출신의 전횡을 막아야 합니다. 왜냐면 유사시에 한 출신들로만 싸울 수 없기때문입니다. 다른 출신이 없다면 자기들이 엘리트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한 출신의 의미는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터지면 풍수와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꼭 풍수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와 연계해 해석하고 싶은 속성이 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천안함 소속 부대로 평택 원정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해군2함대사령부의 터를 놓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일부 동네 주민들은 지금의 부대 자리에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거슬린다며 천안함 침몰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해군2함대는 1990년대 들어 인천에서 원정리로 이사오면서 연고지 없는 묘지의 유골들은 다 화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걸 보면 이름 없는 묘지의 주인들이 고마워할 일이지 해코지 할 일이 아니다.
(학창 시절 다니던 학교가 공동묘지 터였다는 얘기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집 지을 자리가 줄어들면서 서울 시내 한복판에도 화장터에 아파트를 지은 곳도 있다.)

2005년에 연천 총기 난동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28사단 사령부가 경사진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라고 일부 군인들은 수근거렸다.

심지어 28사단이 ‘태풍 부대’인데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엉뚱한 태풍이 불었다는 견강부회식 얘기도 나왔다. 결과를 보고 그 원인으로 그럴듯한 무엇인가를 꿰맞추는 식이다.

(지명 이름도 이와 유사하다. 대표적인 곳이 영종도다. 영종(永宗)을 한자로 풀어보면 ‘긴 마루’다. 활주로를 ‘길다란 마루’로 해석하기에 적격이다. 게다가 영종도의 옛 이름은 자연도(紫燕島)다. 제비섬이라는 뜻이다. 영종도 공항을 오르내리는 항공기들을 제비로 해석하면 더더욱 그럴듯하다.

양양공항이 있는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리(鶴浦里)와 호남권 신공항이 자리 잡은 전남 무안군 망운면(望雲面)도 그럴듯하다. 학이 드나드는 항구와 구름을 바라보는 곳이니 공항을 연상시키기에 제격이다.

심지어는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고흥(高興) 나로우주센터에도 이를 적용한다. 높을 고, 흥할 흥이니 우주발사체가 높은 곳으로 발사된다면 높은 곳에서 흥하는 게 아니냐는 식이다.)

계룡대 3군 본부가 있는 엄사리도 원래는 ‘도깨비 터’로 알려져 있다. 엄사(奄寺)라는 지명도 과거 음절마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엄사리 주변에는 종교 관련 건물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도깨비도 무인(武人)의 기를 당해내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계룡대 터는 도깨비까지 제압하는 군인들이 생활하기에 제격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엄사리에 있는 음식점들이 요즘 엄동설한에 ‘파리’를 날린다고 한다. 김정일 사망으로 사실상 군내 ‘회식 금지’가 이뤄진 탓이다. 예년같으면 송년회다 환송회다 해서 북적북적해야 할 텐데 주요 단골들인 군인 손님들이 발길을 딱 끊었다.(군에서는 ‘대북 경계태세 강화’ 내지는 ‘대비태세 강화’ 얘기만 나오면 일단 회식 금지령으로 받아들인다.)

육·해·공군이 모여있는 계룡대에서는 연말 회식에 쓰려고 아끼고 아껴 모아둔 업무추진비를 반납할 처지에 놓여 있는 부서까지 있는 모양이다. 연말에 근무지를 옮기는 간부들을 위한 환송회식도 취소되고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환송 다과’ 행사로 갈음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도깨비 터’ 엄사리 음식점들의 매출은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마치 도깨비 장난처럼 들쭉날쭉이다.(지방 소도시에 가보면 ‘도깨비 시장’이라는 게 있다. 수시간 동안 북적북적한 장터처럼 장사를 하다가 어느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시장이 문을 닫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뭏든 상부에서 내려간 경계태세 강화는 역설적으로 군이 ‘김정일 애도기간’이라는 이유로 음주가무를 중단한 꼴이 됐다.
 
이는 엄사리 뿐만 아니라 군부대 주변 상인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졌다.(일부 군인들은 ‘김정일 사망’을 축하하는 회식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도깨비 놀음’을 빌려서라도 손님들이 북적거리기를 바랄 것이다. 지금 엄사리에는 송구영신을 위한 숨통이 필요한것 같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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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월 20일)은 다소 엉뚱한 얘기로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주제는 ‘국방부 출입기자의 결혼과 북한의 이상 동향’입니다.

한 국방부 당국자 왈(曰), “국방부 기자단에 국방부 출입기자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혼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야 할까보다”라고 농담을 하더군요.

왜냐구요. 묘하게도 최근 3연속 국방부 출입기자의 결혼시기와 맞물려 북한의 도발 내지는 이상동향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모 방송국의 국방부 출입기자가 결혼과 함께 동구라파에서 신혼 여행의 달콤함을 맛보고 있는 사이 김정일이 사망해 국방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작년 11월에는 국방부 출입기자 2명의 결혼식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함께 이뤄졌습니다. 물론 국방부는 초비상사태였죠.

지난해 3월에도 모 방송국의 김모 국방부 출입기자 결혼식 전날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김모 기자의 낭패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혼식 하루 전날 부랴 부랴 주례 선생님을 다시 구해야 했으니까요.

무슨 말이냐고요.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은 총각 기자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그의 주례 선생님으로 예약된 상태였습니다. 김 장관은 천안함이 침몰해 해군 장병 수십명이 희생당한 마당에 세월좋게 주례를 설 수는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김모 기자는 부랴부랴 ‘주례 대타’를 구해야 했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게 쉬울리 만무했고, 겨우겨우 현직에서 은퇴한 대선배 기자를 주례로 모시고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시작했지만 북한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은 안보부처 출입기자의 사생활로까지 불통이 튀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저 역시 이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의 불똥으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겨울 휴가 첫날, 첫 휴가지에 도착하자 마자 휴가가 전격 취소됐으니 말이죠.

모처럼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려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습니다. 왕복 기름값  뿐만 아니라 예약 취소 페널티까지 등등. 게다가 가족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통일부 출입하는 YTN의 모 기자 역시 휴가 첫날 출입처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김정일 사망의 불통은 각 언론사의 신년기획으로까지 튀었다고 합니다. 몇몇 언론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2011년’을 전망하기 위해 세계적인 전문가와 어렵게 인터뷰까지 했는데 모두 ‘헛발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언론사뿐만이 아닙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3차 북·미회담 취재를 준비했던 일본 언론사들은 금전적 피해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베이징행 비행기 표를 구매했는 데 바로 다음날 회담이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이들 언론사들은 베이징 현지 호텔도 다 예약하고 숙박료까지 이미 낸 상태였답니다. 그러나 호텔비는 환불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다른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상받는 방법밖에 없다는 후문입니다.(저의 금전적 피해는 이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셈입니다)

물론 해년마다 돌발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자들은 휴가와 관련한 우스개 소리를 많이 합니다. 개인적으로 2000년도에 겪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본인은 의약분업이 시작된 2000년 7월1일을 잊지 못합니다. 이날부터 대한민국 의사들의 집단파업이 시작되더니 예상을 뛰어 넘고 2개월이 넘게 진행됐죠. 정말 질기게도 오래 하더군요. 그바람에 두어달 동안 밤 12시 이전에 퇴근한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사이 저의 여름 휴가는 3차례가 연기됐습니다. 그때 데스크의 멘트는 “박성진씨 미안한데 한번만 더 휴가 연기해 주면 고맙겠다. 대신 상황이 끝나면 며칠 더 붙여서 길게 휴가 보내줄께.” 였습니다.

그후 찬바람이 불면서 사태는 진정기미가 보였고, 저는 당시 데스크에게 휴가 얘기를 꺼냈죠. 그러자 데스크 왈, “박성진씨 아직도 휴가 안갔었나.”라고 하더군요.

내 참! 좀 얘기가 길어졌지만 세상사 하도 변동이 심하다 보니, 기자들이 미리 계획한 날짜에 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행운입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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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cante 2011.12.22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선배ㅠ.ㅠ

  2. 혹시나... 2011.12.22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강님께서 (거의) 영구히 휴가를 못 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 일어나선 아니 되겠죠?
    흠...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은 사흘간 폭음하다 귀가한 뒤 1956년 3월 20일 저녁 “가슴이 답답하다. 생명수를 다오”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박인환 시인이 찾은 생명수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왠지 멋져 보인 ‘생명수’의 진실은 당시 많은 사람이 애용하던 소화제의 상표 이름이었다. 과음에 시달렸던 시인은 답답한 속을 풀어 줄 약을 찾았던 것이다.

청소년 시절 ‘생명수’라는 표현에 막연히 감동했던 나는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박인환 평전’을 읽고 그것이 상표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약간은 당황했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무조건 멋있을 것이라고 어설프게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한때 세간에 화제가 됐던 ‘린다 김’이라는 여성이 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는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의 고위 간부들을 쥐락펴락했던 여성 로비스트로 각인돼 있다. 검은 선글라스의 강인해 보이는 미모가 그런 인식에 한몫했을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도 그랬지만 사회의 시각은 군의 전력사업과 관련해 터진 사건을 여성 로비스트 스캔들로 포장한 측면이 다분히 있었다. 그를 로비스트로 부르기 보다 나름대로 능력 있는 무기중개업자로 보는 것이 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가 남성이었다면 사건은 그토록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저녁 자리에서 그가 털어놓은 에피소드를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당시 한 일간지 1면에 커튼을 살짝 열어보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자 그와 가족들은 창문 쪽을 지나칠 때면 모두가 ‘낮은 포복’을 한 채 무릎으로 이동했다고 했다.
 
기자들은 특수 장비를 사용해 커튼 뒤의 사람도 찍을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커튼 뒤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힐 리가 없다)

린다 김의 가족은 또 집 앞에서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자신들을 일주일 넘게 지키고 있던 젊은 기자들을 오히려 안쓰럽게 여기고 이불과 간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10년 전 기자를 끔찍이 싫어한 여성이 있었다. 남편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게이트에 연루돼 기자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린 탓이었다. 심지어 둘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분만실로 들어가는 그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는 기자가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나중에 그 여성은 그 기자를 이해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기자 세계의 애환을 알고 나서였다.

군을 출입하고 나서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있다. 상당수 군인들의 ‘기자 기피증’이다.
 
기자들도 군인 못지않게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기자는 군인의 ‘전략적 파트너’다.
 
그런면에서 누구든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자들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군사기밀도 아닌데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사의 출처를 조사해 유출자를 처벌하라고 지시하는 수뇌부가 가끔 있다. 참으로 옹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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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독자 2011.07.11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2. 이용백 2011.12.30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일도 죽기 직전 마지막 부탁이 "냉수 한사발!"이었다는군요. 인간은 죽기 직전 생명수에 대한 소망이 있는것 같습니다. 전날 밤 과음으로 타는 듯한 목마름에 깨어나서 찾는 것도 생명수!

미군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된 군견(軍犬)의 활약상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최근 미국에서는 ‘퇴역 군견’을 ‘입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300여 마리의 군견이 퇴역 후 민간에 입양되고 있습니다.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된 군견 ‘카이로’의 경우는 가치가 4만~5만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입양 열풍이 이해가 될만 합니다.



우리 군에도 ‘카이로’ 못지 않은 훌륭한 ‘견공’들이 많습니다. 다음달 오쉬노 부대 3진으로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될 예정인 폭발물 탐지견 ‘대덕산’과 ‘베이지’가 대표 선수들입니다.
 
마리노이즈 종 수컷으로 올해 만 7살인 대덕산(위쪽 사진)은 해외 파병만 4번째입니다. 다음달 아프간으로 재파병되면 5번째 해외 나들이가 됩니다.

레트리버 종 암컷인 베이지(아래 사진)는 대덕산 보다 한살 어린 만 6살로 역시 다음달 4번째 파병길에 나서게 됩니다.

군견은 통상 평균 수명이 2년 정도 남은 노견(老犬)이 되면 현직에서 퇴역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 군견과 한국 군견의 운명은 엇갈립니다.

미 군견은 국가에 헌신하고 폭발물을 탐지해 미군의 생명을 살리는 공을 세운 개들이라는 이유로 자식처럼 입양해 ‘행복한 마지막’을 선물하려는 사람들도 줄을 서고 있습니다.

억만장자인 토머스 분 피켄스의 아내 매들린도 지난해 이라크에서 활약한 군견 ‘치바’(아래 사진)를 입양했습니다. 치바는 요즘 나무 그늘에서 행복한 낮잠을 즐긴다고 AP는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군견의 사정은 어떨까요. 군견 후보견들은 적격 테스트를 통과해야 10개월의 강도높은 훈련을 받은 후 작전에 투입됩니다.

그러나 야생의 세계보다도 더 처절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군견의 세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테스트 합격율은 전체의 25%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탈락견 대부분은 안락사 조치되거나 수의과 대학에 임상실험용으로 기증됩니다.(일각에서는 임상실험 후 사체의 행방이 묘연하다며 식용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운이 좋아 살아 남아 경비 보조견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례적입니다. 탈락견을 사회로 배출할 경우 군견으로 둔갑해 ‘견(犬) 시장’ 질서를 문란하게 하면서 사기 등 부작용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비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은 군견을 매우 까다롭게 관리합니다. 군견 관리조항에는 ‘군견 막사 주위에 잡견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항목도 있습니다. 먹는 것도 과자류와 잔반은 일절 금지되며 전용 사료만 먹여야 합니다. 군견은 국내산 사료로 아침과 저녁 하루 2끼를 먹습니다.

군견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수색, 추적, 경계, 탐지 등 4가지 주특기 가운데 하나를 부여받습니다. 생후 9∼12개월이 되면 심사를 거쳐 6개월간 기본교육을 거친 뒤 주특기별로 7개월 동안 훈련을 거듭합니다.

군견은 훈련소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장애물 통과를 비롯해 폭탄탐지, 헬기레펠(헬리콥터에서 줄 타고 내려오기) 등 현역 군인 못지않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습니다.

임무를 마친 군견들은 평균 8살이 되면 전역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오랜 훈련과 군 작전의 스트레스로 후각이 둔해지거나 체력이 약해져 더 이상 임무 수행이 어렵기 때문에 8살을 기준으로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퇴역 군견은 군견훈련소에서 검사를 받고 상태가 양호하면 위병소를 지키는 역할이 부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오랜 군 생활의 후유증으로 관절염 등 고질병을 앓고 있어 고통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전역하면 안락사 후 화장처리됩니다.

군견은 특별한 견공(犬公)입니다. 핏속에 흐르고 있는 사냥 욕구를 주인이 아닌 국가를 위해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견은 계급이 없고 장비류로 취급됩니다.

대신 군견도 공을 세우면 훈장을 받는 사례가 있습니다. 1990년 강원 양구군 제4땅굴을 발견한 군견 ‘노도’는 훈장을 받은 것은 물론 죽어서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미국도 군견이 2000년 이전까지는 열 살쯤 퇴역하면 대부분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다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퇴역견 입양 허용 법안에 서명하면서 군견들의 ‘노후’가 달라졌습니다.

다행히 최근 군 당국과 경찰청, 관세청 등 특수목적 견(犬)들을 활용하고 있는 부처들이 퇴역 견들을 더이상 안락사시키지 않고 활용하는 방안을 토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부디 협의가 잘 돼 한국 군견들도 안락한 노후 생활을 지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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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보경 2011.06.02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재 발굴의 다양성에 박수갈채를 아니 보낼 수 없네요.ㅋㅋㅋ
    사실 확인은 안 됐지만, 카츄사들은 계급이 높은 군견들에게 경례를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당시의 극렬한 반미 정서를 반영한 썰 같기도 하고,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영리하고 귀한 동물들을 흔히 '영물'이라 하는데 3대 영물이 뭔지는 잘 모르더군요. 3대 영물이라고 해서 4대, 5대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영물로 꼽을 수 있는 동물이 딱 세 가지랍니다. 호랑이는 영물 아니고요, 소와 개 그리고....거북이랍니다. 소와 개는 사람들과 생활을 같이 하는 워낙 가까운 동물이라 인간들과 영적으로 통하지 않을까 싶고요. 거북이는 중국에서 卜辭의 재료(?)였을 정도이니 감이 잡히죠?
    어쩌면 인간들에게 그야말로 헌신하는 존재들이니 '영물'로 추켜세우면서 착취 내지 갈취한 것이 아닌가 싶은 유물론적 해석도 가능할 것 같고...

    그나 저나 견공들의 수난 계절이 코 앞으로 육박했네요.
    중국 사람들, 특히 광동사람들이 개고기(香肉이라 하죠.북한에서 '단고기'라 하는 것은 중국어의 향육을 순 우리말에서 바꾼 것인지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데 우리가 여름에 보신탕을 즐기는 데 비해 그들은 겨울에 많이 먹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이열치열 차원에서 화기 있는 개고기를 여름에 먹고, 중국은 추운 날씨에 따뜻한 성질의 개고기로 몸을 덥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미국인 선생님은 한국에서 처음 개고기를 먹은 뒤부터 마니아가 되셨던데...키우던 개 잡아먹는 것 아니니까 아무 문제 없다고 합디다. 개고기에 관한 한 '소승불교'의 입장이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세상에 먹을 것은 많고도 많으니 육식은 되도록 하지 않았으면 싶네요. 군견 이야기하다 글이 완전히 개판 5분전으로.ㅎㅎㅎ

  2. 기러기 2011.06.03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재도 재미있고 내용도 의미있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침 오늘 문화방송이 공군 10전비 군견반 취재를 간다는군요.

  3. 천병훈 2012.05.26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를 위해 봉사했다면 그 대상이 개라도 국가는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
    필요없다고 죽인다면 이것은 토사구팽과 다르지 않다.
    군견에 대한 대한민국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잔반을 먹이는 것은 금해야 하겠지만
    국산사료들은 저급사료에 해당하기 때문에
    미국군견들이 먹는 동일한 미국사료를 먹이고
    닭고기와 같은 육류는 공급해 주어야 한다.
    수의영양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사료는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다)
    군견을 저급한 국산사료로만 먹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알 것이다.
    개들에게도 오메가3나 기타 영양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국방부에 있는
    수의장교들도 알아야 하겠지만
    그들은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군에 가서 임상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많이 바뀌길 바란다


‘한류 스타’ 김태평 이병(29·현빈)을 보기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현빈은 5월26일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시크릿가든’으로 TV부문 대상을 수상했지만 영상으로만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사실 그 영상도 현빈이 백상예술대상 수상 후보자 자격으로 5월 23일 미리 찍어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주최측이 국방부에 간곡히 부탁해서 찍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올해 3월 입대한 현빈이 서해 북단 백령도에서 해병대원으로 군복무중이기 때문에 그를 보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일 수는 있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최근 ‘현빈 홍보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현빈이 등장하는 해병대 화보집 <해병의 탄생>이 ‘현빈 마케팅 논란’에 휩싸이자 아예 홍보 금지령을 해병대에 내린 것이지요.

사실 해병대는 화보집에 대해서 할 말이 많습니다. <해병의 탄생>은 현빈이 속한 해병 1137기와 앞의 두 기수 및 뒤의 한 기수 등 총 4기수의 해병 신병들이 민간인 청년에서 훈련을 받고 자대에 배치돼 적응하는 과정을 담은 책자로 현빈이 주인공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논란의 대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아뭏든 군대에서 ‘명령은 명령’. 해병대는 그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백령도 주민들의 눈에도 되도록이면 띄지 않게끔 하고 있습니다.(해병대의 공식 블로그 ‘날아라, 마린보이’에서 김태평 이병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은 지도 꽤 됐다)

앞서 해병대는 현빈을 ‘해병대 모병 홍보병’으로 활용하려고 했다가 김 장관이 언론사 초청 국방정책설명회에서 “개인적으로는 현빈이 전방부대에서 다른 병사처럼 평범하게 근무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해병대가 자체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밝히자 그를 백령도로 배치한 바 있습니다.

해병대 관계자는 “김태평 해병이 평범한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군의 정책”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김태평 이병은 상륙돌격형 머리에 팔각모를 쓰고 백령도 해병 6여단 흑룡부대 IBS(상륙용 고무보트)대대 소속으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열흘 전에는 중대 진지 구축작업에 동원됐습니다. 시쳇말로 말하자면 “노가다’를 뛴 것이지요.

군이 현빈을 평범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백령도 주민들의 눈에도 띄지않게끔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럴수록 그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해병대에서도 7~8년 나이 차이가 나는 조카벌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는 ‘스타’ 김태평 이병을 일반 병사처럼 다루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게다가 TV에서는 여전히 현빈이 등장하는 CF가 하루에도 수십번 방송되고 있다)

백령도 주민들은 군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백령도 용기도 선착장 부근에는 지금도 ‘현빈 백령도에

오신 것을 전 옹진군민이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백령도 주민들은 여전히 ‘현빈 특수’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백령도 관광객 수는 2009년 7만5983명에서 북의 연평도 포격도발 여파로 지난해 6만174명으로 줄었다. 올해의 경우 지난 4월까지 1만4021명으로 지난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백령도 주민들은 해병대가 현빈을 데리고 나와 대민 지원을 하면서 주민들이 주는 막걸리도 한잔 마시고, 덕분에 관광객도 좀 오고 하는 것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심지어 현빈을 보러 오는 한류 관광객들이 늘어나면 북한이 포격 도발 같은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중국인까지 포함된 한류 관광객들이 한명이라도 다치면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북한이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또 북한 황해남도에선 불과 10여㎞ 거리인 백령도에 한류 스타가 군복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것이 바로 한반도가 휴전중인 분단국가임을 보여주는 안보 관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


백령도 주민들은 해병 IBS부대에서 해안가 훈련을 여름내내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빈을 끝까지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그는 본격적인 여름철 훈련에 들어가면 뙤약볕 아래서 PT체조를 하고 100㎏이 넘는 고무보트를 동료들과 함께 들거나 이고 갯벌과 진창을 뛰어야 한다)

그렇다고 현빈이 훈련을 하다가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훈련장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훈련이 지장을 받을 것도 뻔합니다. 군이 솔로몬의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는 이유이지요.

여전히 군은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자체가 뉴스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입니다. “해병대가 김태평이 때문에 태평하지 못하다”고 한 해병대 관계자의 말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국방장관까지 나서 굳이 김태평 이병의 거취까지 시시콜콜이 간섭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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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성준 2011.05.30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지령이 있었군요

  2. 명재환 2011.05.31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서 우리는 장관의 뜻도 존중해야한다. 어차피 군대는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일. 다 알아서 잘 하시리라 생각한다.

  3. 흐미 2011.06.01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빈을 키운 이유가 연평도 포격 사태이후에 백령도에 해병대로 보내려고 키웠네요... 음모론 같은 느낌이...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 스캔들로 연예인들의 ‘신비주의’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연예계에서 신비주의는 이미 상업주의의 또다른 표현이 되버린지 오래입니다. 혹자는 신비주의가 본인만의 음악세계나 연기세계에 몰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합리화시켜주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위를 보면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젊은 남자 연예인들의 경우 아무리 신비주의를 유지하고 싶다 해도 군에 입대하게 되면 신비주의의 가면을 벗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이라는 집단 사회에서 고독을 수반해야 하는 신비주의자는 필요가 없을 뿐더러, 신비주의를 자처하다가는 영창가기 딱 좋기 때문이지요.

그런면에서 “이왕 하는 군 생활 화끈하게 하겠다”며 군기가 세다거나 근무환경이 녹록치 않은 최전방 부대의 수색대를 자원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통상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소위 ‘연예 병사’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것입니다.(연예병사는 국방홍보원에서 지원을 받아 모집한다)

해병대를 지원한 현빈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송승헌도 연예병사를 마다하고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강원도 지역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특히 송승헌의 경우에는 국방홍보원이 그를 연예병사로 뽑으려 했으나 본인이 지원하지 않아 무산됐습니다.(당시 국방홍보원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이 군인’이라며 그를 연예병사로 배속 명령을 내리는 것까지 한때 검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송승헌은 왜 연예병사를 거부했을까요. 물론 군인답게 군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다른 숨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연예병사로 선발되면 국방홍보원이 정해준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국군방송 DJ를 하라고 하면 해야 하고, 국군위문열차에 출연하라고 하면 나가야 합니다. 국군 홍보영화에 출연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배우 이준기는 국군방송 DJ를 하고 있고, 차인표는 홍보영화에 출연했다)

즉, 특A급 스타라도 꼼짝없이 B급 스타와 별반 다름없이 국군 홍보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특A급 스타라면 이미지 관리에 ‘독’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영화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광고도 가려서 하는 판에 소위 ‘싼마이’ 영화나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다 보면 이미지 관리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연예기획사가 스타들에게 연예병사가 아닌 일반병사로 입대하는 것을 권유하기도 합니다.(회사의 큰 자산인 스타의 이미지 관리차원에서다) 이것도 일종의 신비주의의 아류에 해당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것도 무지하게 잘나가는 배우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당장 군 입대로 2년여의 공백으로 팬들의 기억에 사라질 배우라면 연예병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게 마련입니다.

배우뿐만이 아니죠. 음악 프로듀서는 국방홍보원에 배속되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어 홍보원의 문을 두드립니다. 개그맨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백없이 입담을 계속 갈고 닦기에는 연예병사가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연예병사가 아니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으로 군악대의 문을 두드리는 연예인도 있습니다. 배우 조인성과 가수 성시경이 그랬습니다.(특히 조인성의 경우 공군이 매니지먼트를 매우 잘했다. 공군이 조인성의 언론 노출을 철저히 가려가면서 하는 등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을 썼다는 게 중평이다)


다시 얘기를 현빈과 송승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송승헌은 본인의 강력한 고사로 연예병사 역할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빈은 입대하자 마자 해병대가 모집홍보병으로 병행해 활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일종의 홍보대사격이지만 사실상 행사에 자주 동원되면서 어찌보면 연예병사의 역할을 일부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요. 아마도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현빈이 일반 병사로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하자 해병대는 그를 백령도에 배속시켰습니다. 어떤 면에서 현빈에게는 그같은 해병대의 결정이 더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위 ‘신비주의’를 위해서는 말이죠.

 어찌됐건 스타 병사는 동료 병사들의 관찰 대상입니다. 그래서 곧잘 병영 내에서 사인 요청이 쇄도하는 경우가 곧잘 있습니다. 지휘관도 자식들이나 조카들의 부탁으로 사인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래서 한때 국방부 근무지원단에서는 연예병사들에게 사인 요청하는 것을 금지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지휘관 입장에서도 스타 병사들은 상당한 부담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그 파장이 크기 때문이지요.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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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츄츄트레인 2011.04.28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오늘도 깨달음을 얻습니다.

    • 장강 2011.04.30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츄츄트레인님이 현빈의 임시 매니지먼트 대표님인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겠지요~. ㅋㅋ

  2. 서울사는만두 2011.04.28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빈도 송승헌도 군대에서 배식 받아 먹을텐데, 먹는 양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일요일마다 종교행사도 갈텐데, 그 땐 초코파이와 콜라를 받아먹으면서 행복에 잠길까요? ㅋㅋㅋ~

  3. 1111 2011.04.28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승헌이 어떠케 군대갓는데..연예사병운운하는지..군대비리로 한때난리엿다가 어쩔수없이간걸로아는데--; 군대얘기에 송승헌을 언급하다니..신비주의??? 이런-_-

  4. Favicon of http://www.910815@sina.con BlogIcon dd 2011.04.29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玄彬 你最帅

  5. mmrz 2011.05.25 0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승헌과 장혁은 군대 비리로 15사단에 강제 입영된 사례인것 모르십니까? 송승헌씨는 강원도 화천 최전방부대 15사단 68포병 대대에서 2년간 어쩔수 없이 그곳에서 군생활을 마쳤음..송승헌과 장혁은 연애병사로 가고 싶어도 못가는 현실이였음.. 군번 얼마 않되는 04 군번이지만 동기이자 같은 포대라서 잘 알고 있음.. 신비주의는 개풀뜯어먹는 소설임.

    • 장강 2011.05.25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 국방홍보원장이 송승헌 일병을 연예병사로 차출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기자실 책꽂이를 정리하다 국방부가 지난달 발행한 ‘천안함 백서’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천안함 백서는 군이 반성문 성격으로 발간했다는 점에서 무척 이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서의 내용 가운데 군 공보 활동의 적절성 부문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대목도 눈에 띄었다.

합동참모본부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공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인식하고 지난해 9월 공보 워크숍을 연 적도 있다.

당시 합참은 필자에게 하나의 요청을 했다. 합참이 공보 워크숍을 하는데 국방부 기자단의 일원으로서 군에 하고 싶은 말을 한꼭지 해달라는 것이었다.

군은 공보 활동도 전투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에 거두절미하고 한가지만 말했다. “대 언론 작전의 최고 무기는 ‘진실’입니다”라고. 이처럼 말한 까닭은 ‘대 언론 (공보)작전’은 바로 ‘대 국민 (공보)작전’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한때 국방부 공보실에는 ‘공보는 전투’라는 글씨를 적은 액자가 걸린 적도 있다)

군은 전쟁의 승리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적을 상대로 한 선무공작, 흑색선전, 역 정보전 등도 전쟁 승리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다 참패한 소위 중국 고전에 나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각종 공작 수단을 자국의 국민들을 상대로 행사하는 것은 ‘송양지인’ 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일이다. 당장은 통할 지 모르나 국민을 속이는 것은 종국에 가서는 ‘부메랑’을 맞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무슨 상관이냐”며 군 당국이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하는 경우를 여러차례 목격했다. 그런 경우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결과가 대체로 좋지 않았다. 지난해 벌어진 천안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게다가 상당수 발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도 아닌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고의적인 거짓말이었다.(오죽하면 대통령까지 역정을 냈겠는가)

군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반성문 성격의 백서를 출간한 것이다.(그런면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공보 전투는 사실상 작전 실패에 따른 완전한 패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 툭하면 “언론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언론 탓을 하는 관계자들이 있다. 그러면서 혹자는 소위 ‘애국 전쟁’까지 거론한다.

전면전과 같은 ‘애국 전쟁’이 벌어지면 총 동원된 국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일시적으로 포기 내지는 유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즉 ‘진실의 보도원칙’ 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도하고 언론은 군과 정부의 통제에 협조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도 전면적인 전쟁위기 상황이었으면 비판적 보도가 나오기 힘들었을텐데, 전시가 아니어서 언론이 군의 통제를 벗어나 비판 보도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신문과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을 포함한 온갖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소위 ‘애국전쟁’에서도 정확하고 진실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그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설사 언론이 정부와 군의 통제를 따르며 사실 보도를 유보한다 하더라도 인터넷이나 트위터가 과거의 사발통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게다가 진실의 전달 통로가 막히면 정보의 ‘동맥경화’가 일어나고 이는 유언비어 형태로 터져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마련이다. 이는 정부나 군의 발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애국전쟁’을 패전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한마디로 애국전쟁 운운하는 언론관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은폐하려는 궤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안함 백서를 읽다가 국군 장병 여러분이 이런 궤변에 속지 않기를 바라면서 두서없이 이것저것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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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요 2011.04.20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짧지만 보기 힘든 명문이네요. '공보는 전투'와 '최고 무기는 진실' 짜릿합니다. 군은 기자는 물론 국민을 상대로 전투를 하는데, 살인무기가 없는 민간인 기자와 국민은 스스로 낸 세금으로 저질러지는 각종 의도적인 공보로 시달리네요. 군을 상대로 하는 기자들의 어려움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군 장교들의 수준이 빨리 높아져야겠습니다. 민주국가, 그것도 선진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의 장교들은 당연히 국제신사여야 하고, 문민통제를 받는, 문민권력(대통령, 국회, 문민국방장관)에 충성하는 지성인들이어야 합니다. 요즘 군개혁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대통령과 육군(사실상 육사세력들)과 해공군/국민이 상대세력인데, 천안함/연평포격사건 실패의 원인이 지휘체계냐 경계 및 작전실패냐 부터, 문민통제 정신을 위협하는 공룡합참의장, 육군 진급쿼터제 폐지 등등 다양합니다. 주목할 것은 지금까지 육군(육사출신들)이 주체가 되어 실행한 여러가지 행위(공보, 작전, 전투, 행정 등)들이 실패였고, 해공군,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만 자신들이 잘났다고 하고, 대통령만 둘러싸서 전횡하고, 군인사, 군사법 등 여러 면에서 공정성, 투명성, 다양성에서 낙제점 수준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군개혁의 방향은 저절로 확립될 것입니다. 육사출신들은 스스로 수준을 높여서 해공군, 현역/예비역, 국민들을 진정 설득할 수 있는 군개혁방안을 세우고 추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있고 육군이 있으며, 육군이 있고 육사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진리입니다. 육사는 이미 국민이 모르는 동안 통제할 수 없는 킹콩이 되었습니다. 킹콩은 한 손에 대통령을 쥐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우선 깨어나길 바랍니다. 킹콩은 육군대장 6자리 독식, 싹쓸이를 통해서 빌딩끝까지 올라갑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킹콩은 과거에도 여러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지만 반성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킹콩을 통제할 방법을 논의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2. 이성준 2011.04.20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실이 이깁니다


지난 3월 12일 수도권 일대에는 노탐(NOTAM)이 두차례나 걸렸다. 대통령전용기(공군 1호기)가 이례적으로 하루에 두차례나 이륙을 했기 때문이었다.
 (노탐은 안전운항을 위한 항공정보로 국가원수가 탑승한 전용기가 하늘에 있을 때 발령될 경우 해당 공역 내 모든 항공기는 이 구역을 벗어나야 하고, 인근 공항의 모든 비행기는 이륙이 금지된다.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국군기무사령부 파견대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관련 기관들과의 노탐 협의다)

이명박 대통령과 수행단을 태운 대통령전용기(공군 1호기)는 성남공항에서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향해 이륙한지 30여분 지난 오전 8시40분쯤 군산을 넘어 서해상에 접어들 시점부터 갑자기 소음과 함께 기체의 진동(떨림)이 감지됐다.

공군 1호기는 이후 몇십분간 서해 상에서 선회비행을 했다. 안전한 착륙을 위해 허공에 기름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엠뷸런스와 소방차가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전용기는 이륙 100분만인 오전 9시50분쯤 인천공항에 비상착륙해 긴급 점검에 들어갔고 점검을 마친 전용기는 재급유를 받은 뒤 오전 11시15분쯤 다시 UAE를 향해 출발했다.

이에 따라 UAE 파병부대인 아크부대 방문이 45분 정도 연기되는 등 이명박 대통령의 일정은 줄줄이 밀렸다.

                                   <대통령 전용기가 비상착륙을 위해 항공기 연료를 공중에서 배출하고 있다>

대통령 전용기의 회항은 어떤 의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대통령의 안위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타는 전용기는 우리의 경우 ‘공군 1호기’로 부른다. 일종의 콜 사인이다. 비행기 편명은 ‘KAF(Korean Air Force)001’이다. 1층 맨 앞부분에 있는 대통령 전용공간은 집무실과 회의실, 휴식시설 등으로 이뤄졌다. 비상 상황시에는 청와대 및 합동참모본부 등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각종 통신망과 보안 장비를 갖췄다.

현재 대통령 전용기는 보잉 747-400기종의 내부를 개조한 것으로 정부가 지난해 대한항공으로부터 5년간 장기 임차했다. 비행기 뿐만 아니라 승무원과 정비사까지 통째로 빌렸다.
 (그런면에서 콜 사인이기는 하지만 대통령 전용기를 ‘공군 1호기’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항공 1호기’가 더 적절해 보인다)

보잉 747-400 기종 이전의 대통령 전용기는 1985년에 구입한 보잉737기를 40인승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이 보잉737과 관련한 비사를 하나 소개하겠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언론에 보도된 적이 없고 정부가 공개한 적이 없는 사건이다.

이 보잉737 대통령 전용기(오른쪽 아래 사진)는 88올림픽 이전에 대통령이 아닌 다른 VIP들을 태운 적이 있었다. 그것도 북한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태웠다.

당시는 서슬이 퍼런 ‘군사 독재’ 시절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가 북한 고위층을 태우고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들은 남한 정부가 초청한 북한 고위층 인사들이었다. 초청의 목적은 8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북한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후 공군 1호기를 다시 타고 출국했다. 이들은 88올림픽을 방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종의 ‘보험료’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버마 아웅산 테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 이과정에서 정부 고위 인사 수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전국적으로 규탄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북한 집권층에 손을 내밀었다.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서였다.

당시는 한반도가 남북 모두 독재 정권으로 냉전이 심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간 ‘핫 라인’이 가동되고 있었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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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러기 2011.03.14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생각됩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그때는 그런일도 있을 수 있는 때였나 봅니다. 우리 전용기에 북한 특사들을 태웠다는 것이 아주 놀랍습니다.

  2. 수색대 2011.03.15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업시간이 지루해서 방문했음. 당시 그런 발상이 논의되었고 북이 동의해서 실행까지 되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네요. 국가고위층의 JAS 라고 하겠네요. 잘 읽고 수업들어갑니다.

  3. 수색대 2011.03.15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업시간이 지루해서 몰래 스맛뽄으로 방문했음. 당시 그런 발상이 논의되었고 북이 동의해서 실행까지 되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네요. 국가고위층의 JAS 라고 하겠네요. 잘 읽고 수업들어갑니다.

  4. 뭉치 2011.03.17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광고좀 하려고 왔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인학교는 지원이 없다고 합니다...

    일본에 대한 짝사랑은 그만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소중한 이들에게 눈길과 손길을 보냅시다.
    일본정부가 처다보지도 않는 우리 동포들 도와줍시다..

    지진피해 동포, 조선학교에 의연금보내기-총정리
    이쪽 사이틀에 들어가시면 마음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docuourschool/6185

    다음 아고라 청원 있습니다
    500분의 서명이 있어야 합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105036




                           <피스 아이 1호기의 비행 모습. 동체의 태극마크와 대한민국 공군 표식이 뚜렷하다>

“북한의 AN-2기 감시는 물론 레이더 출력을 높이면 중국 상공도 살필 수 있다”.

공군이 오는 7월 독자적인 정보수집과 정찰능력을 가진 공중조기경보기 ‘피스 아이’(peace eye) 1호기를 한반도에 전력 배치한다.

방사청과 미국 보잉사는 2일 “737-700기종을 개조한 공중 조기경보기(AEW&C) 4대 중 첫 번째 1대가 오는 4월까지 시애틀에서 임무 비행 테스트를 마친 뒤 5월 한국에서 성능 적응 테스트를 거쳐 6월 한국 공군에 정식 인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1호기는 공군의 평가가 끝나는 7월쯤이면 한반도 공중 감시 임무 활동에 본격 투입된다.

보잉사는 지난달 말 피스아이 1호기 본체를 처음으로 한국 언론에 공개했다. 2006년 11월 한국의 공중조기경보기 사업자로 선정된 지 4년 3개월 만이다.

‘피스 아이’ 2호기는 지난해 2월 한국 공군이 보잉사로부터 상용기 형태로 인도받아 경남 사천의 한국우주항공(KAI)에서 다기능 전자 주사배열(MESA) 레이더 등 내부 장비를 탑재하는 개조작업을 거치고 있다. 3, 4호기는 2호기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2011년, 2012년에 차례로 도입될 예정이다.

공군은 2006년 공중 조기경보기 사업에 16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보잉사로부터 4대의 737 AEW&C를 도입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대항속거리 7000㎞, 9시간 30분간 초계비행을 할 수 있는 조기경보기가 도입되면 공군은 한반도 상공의 24시간 감시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특수전 병력을 싣고 저공으로 침투 비행하는 북한의 AN-2기도 피스 아이의 레이더를 벗어날 수 없다.

그동안 지상레이더의 빔은 산악지역을 관통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지역의 저고도(150여m) 탐지거리가 휴전선 북방 인근으로 제한돼 유사시 침투하는 적기를 비무장지대(DMZ) 이북지역에서 요격하는데는 제한이 있어 왔다.

동체 위에 올린 중절모 모양의 다기능 전자 주사 배열(MESA) 레이더는 전천후 기상 조건에서 360도 전방위로 공중과 지상을 탐지·감시할 수 있다.

노드롭 그루먼사 제품인 MESA 레이더는 공중의 전투기나 헬리콥터, 미사일과 해상의 고속정, 호위함 등 각종 함정도 탐지할 수 있다. 10초 이내에 360도를 커버하고 탐지거리는 360㎞에 이른다. 540㎞ 거리의 항공기나 선박이 아군인지를 알아내는 피아식별장치(IFF)도 장착되어 있다.

랜디 프라이스 보잉 공중조기경보통제기(AEW&C) 사업 매니저는 “10㎞ 상공에서 운영되는 MESA 레이더는 지형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반도 공중 감시에 최적인 장비”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매니저는 “기존의 기계식 레이더는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360도가 돌아가고 이에 최소 10초 이상이 소요되지만, MESA는 동시에 전방위를 탐지할 수 있고 특정 부위만 주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스 아이의 표적 추적 능력은 기존의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큰 차이가 없지만 10㎞ 상공에서 운영되는 MESA 레이더는 지형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반도 공중 감시에 최적인 장비”라고 말했다.

피스 아이는 한 번에 사방으로 레이더 빔을 쏠 수 있어 임무수행시 사각지대가 없다. 레이더출력을 높이면 중국 등 주변국까지도 표적이 될 수 있다.

여기에다 조기경보기 상부에 장착된 3개의 레이더를 특정지역에 집중시키면 통신감청 등으로 고급 정보까지 수집할 수 있다.

피스 아이는 5t에 육박하는 MESA 레이더 설치에 따른 이착륙상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체 아래에 안테나를 겸한 2개의 보조 날개를 추가로 장착했다. 또 탑재량 증가에 따른 체공시간 감소 우려를 감안해 기체 뒤쪽에 보조 엔진과 연료탱크를 추가했다.

MESA 레이더는 비행 방식도 바꿔 놓았다. 일반 항공기는 체공 시 일직선으로 날아가지만 피스아이는 앞쪽으로 4도쯤 기울어 있는 MESA 레이더를 평평한 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해 기체 앞부분을 4도쯤 세워서 비행하게 된다. 내부에서 기체 벽에 붙어 있는 콘솔을 향해 돌아앉아 장시간 임무를 수행하는 승무원들에게는 척추에 무리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승무원석 역시 기체의 기울기에 상관없이 평평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뒀다.

737-700 기종을 개조한 ‘피스 아이’의 몸체는 다른 737 기종들과 비교해 작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공군 비행장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다.

피스 아이는 조종사 2명, 승무원 6~10명을 태우고 마하 0.78의 속력으로 9km~12.5km 상공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길이 33.6m, 높이 12.57m, 폭 34.77m다. 항속거리는 6670㎞, 최대 이륙중량 77t, 체공시간은 9시간이다. 공중급유 장치도 갖추고 있어 공중급유를 받으면 20시간 임무수행도 가능하다.


항공기 내부에는 탐지·분석·식별 등 10개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 지상으로 전달하는 10개의 임무 콘솔(컴퓨터를 제어하기 위한 계기반)과 6~10명의 승무원이 쉴 수 있는 8개의 휴게석, 조종실 등이 있다.

또 10개의 초단파(VHF)·극초단파(UHF) 채널, 위성통신 체계, 11~16개 채널의 링크가 가능한 통신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한편 737 AEW&C 기종은 우리 공군에 인도되기 전 호주와 터키가 6대, 4대씩 구매해 실전 임무 활동에 배치하고 있다.

다만 호주 공군에 인도됐던 737 AEW&C는 일부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그레그 렉스턴 보잉코리아 부사장은 “737 AEW&C에 장착된 250만개의 전자 코드 모두를 보잉이 개발한 게 아니어서 초기 오류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해소됐다”며 “호주 AEW&C 시스템은 전자지원책(ESM)과 지상지원 업무의 경우 보잉이 담당하지 않아 생긴 문제도 있지만 한국 AEW&C 시스템은 모두 보잉이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AEW&C의 시스템은 한국 공군뿐아니라 주한 미군과도 호환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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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러기 2011.03.03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그 달아놓으신 것을 보니 이젠 파워블로거의 면모가 엿보입니다. 사진 어디서 구하셨는지 잘 나왔군요.

  2. 추종자 2011.03.04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소 내용이 어렵지만, 넘 재미있네요. 사진도 시원시원하구요.




과거가 화려했던 사람일수록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소불위 조직의 ‘단 맛’을 봤던 일부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국정원이 내곡동으로 이사가지 않고 남산에 있었던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근처의 단골 음식점에서 술 한잔 마시고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 ‘무용담’을 늘어 놓는 나이먹은 직원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은 과거 힘쎘던 시절의 행위를 그리워 했지만 대신 당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20년 전 안기부 사람들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인도네시아 특사 사건을 놓고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알력이 사건 표면화에 한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 보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다.

10여년 전 국방부에 처음 출입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보안사 출신이 있었다. 그는 가끔 옛날 얘기를 하면서 권총 한자루 허리에 차고 정부 청사의 한 부처를 ‘접수’했던 무용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한 간부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접수’했던 시절의 경험담를 전했다.(이는 기무사 간부에게는 무용담이지만 국정원 직원들 입장에서는 총구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치욕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기무사, 참 묘한 관계인 것 같다. 기무사도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정권을 창출했던 조직이어서 더욱 그렇다.

1979년 10·26 이후 보안사(현 기무사)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접수하면서 많은 중정요원들이 수모를 당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두 기관 사이 관계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2000~2001년에 기무사 이전을 놓고 힘겨루기를 펼쳤다. 기무사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인근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려고 하자 국정원이 결사 반대했다.

결국 이 힘겨루기는 기무사가 현재 사령부가 있는 과천쪽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국정원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발단은 기무사가 1999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맞은편에 위치한 사령부(옛 보안사령부)의 낡은 건물을 헐고 내곡동 국정원에서 직선거리로 12.5㎞떨어진 부지로 이전키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밀집은 적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등 안보상문제가 있다”는 논리로 기무사의 이전을 끈질기게 반대했고, 기무사는 정보기관끼리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논리 등을 내세웠다.

당시 국정원의 반대 이면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무사가 이웃이 될 경우 고도가 더 높아 국정원의 원장공관과 주요시설을 파악당할수 있다는 점과 과거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에 접수당했던 ‘피해의식’이 함께 얽힌 감정적 측면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가 사령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팔기를 꺼려하는 지주들을 회유하는 수법을 소개하면서 기무사를 비난했다.

당시 이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 직원들이 땅 주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군에 복무중인 자식들이나 친인척들까지 들먹이며 회유했다”고 전했다. 즉 “00 부대에 근무중인 아드님이 군복무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는 “아드님이 0월에 군 입대한다죠”라고 넌지시 말하는 식으로 땅 주인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기무사는 국정원 고위 간부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일부 땅 주인은 처음에 땅 팔기를 강력히 거부했다가 나중에 기무사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결국 기무사가 내곡동 인근이 아닌 과천 이전을 결정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한때 정권을 좌지우지했다’는 자존심이 묘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현재 두 기관의 위상으로 따지자면 기무사는 제도적으로 국정원에 예속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은 기무사의 정보 활동비를 일부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보안 감사 등의 명분으로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정보예산은 국정원법 제3조2항(기획·조정 업무의 범위·대상·절차)과 대통령령인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 규정’에 따라, 국정원장이 편성·감사 권한을 갖고 있는 예산이다.

국정원은 이처럼 모든 정보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이때문에 기무사가 공작사업을 위해 하는 것 역시 세목별로 국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국정원이 기무사 예산 승인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무사는 예산을 타서 쓰기 때문에 국정원의 감사도 받아야 한다. 그런만큼 국정원은 기무사 정기 사업예산 감사를 통해 기무사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 숙소 침입사건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로 국정원과 국방부간의 불신과 반목이 꼽힌다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국방부와 기무사가 T-50 등 방산물자 수출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국정원이 정보 획득을 위해 독자적으로 ‘잠입 작전’을 벌이는 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보도다.

국정원도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으나 “국방부 소속 대령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국방부에 책임을 돌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번 사건 뿐만이 아니라 국정원 요원들의 행위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소속 직원의 ‘기무사 직원 사칭 사건’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2009년 9월 국정원 직원은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진보 성향의 민간 문화단체인 ‘5인조 노래패’를 사찰하면서 정체가 드러나자 국군기무사령부 요원을 사칭했다. 사진촬영을 하다 붙잡힌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인 노래패 ‘우리나라’의 일본 체류 일정과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긴 ‘3급 비밀문서’(2장)를 소지하고 있던 사실도 들통냈다.

하지만 당시 실상을 몰랐던 민주노동당과 진보단체 등에서는 기무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기무사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자 기무사는 “억울하다”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에게 ‘노래패 사건은 기무사와 전혀 상관없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면서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후 유야무야됐다.
 
법적 대응을 하다보면 정보기관의 ‘아우’격인 기무사가 ‘형님’격인 국정원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초 국회 정보위에서 ‘북측이 서해 5도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8월 감청을 통해 파악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면피성 행위라는 게 국방부와 합참의 시각이다. 당시 ‘SI 첩보’(감청정보)의 해석을 놓고 국정원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 간부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아뭏든 진실 여부를 떠나 기무사 요원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 사례의 예를 보면 멀쩡한 신사복 차림으로 호텔 방을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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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러기 2011.02.24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2. 황보경 2011.02.24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이 재미있네요. '증'은 있는데 '애'는 전혀 없네요??? 직원의 평균적 질은 그래도 국정원이 한수 위 아닐런지.
    국정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있는데 기무사에 관한 영화가 없음은?
    기무사 직원의 국정원 사칭은 마치 우리가 해외에서 X팔리는 짓 하고 '스미마셍'하는 것 같지 않나요?

    친구 남편이 그 옛날에 외시 출신으로 보안사에서 노 아무개의 테니스 파트너였다가 덕을 많이 봤죠.
    작년까지 기세등등하더니 꺾입디다. 이혼하라고 등을 떠밀 정도로 형편무인지경의 인간이었는데...

    봄색 완연한데 스테미너 좋아지는 맛있는 것 많이 들고 건필!

  3. 이정용 2011.02.27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보기관 국정원과 기무사에 대한 기사가 왜이렇게 과거를 되집게하는지 과거 그러니까 1968년경 보아사시절 보안사 정보요원으로 그때 오직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활동했든 사실의 이간적으로는 도저히 해서는 않될 여러가지 사실때문에 지금은 죄책감에 사료잡혀 ....오직 지금까지 한세상을 살아오면서 보안사요원으로 있으면서 죄없는 민간인들을 그토록 권력을 남용해서 그들에게 하엿든행위에 대한 용서는 구할길없이 그냥가슴에 품고세상을 하직할것같네요 그당시에 저질렸든 죄악은 글로서는도저히 표현할수가 멊겠네요 참으로 씻을수 없는 악당행위를 하였다고 항상마음에 새기고 살고있네요 참권력남용 상상할수없을 정도였으니....





‘빨간 마후라’는 파일럿을 지칭하는 공군의 상징이다. 그 빨간 마후라(공군 조종사)를 주제로 하는 영화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곧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전쟁액션 영화로 출연진도 화려하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음한 비와 여배우 신세경 등이 출연한다.

이 영화는 신영균과 최무룡이 등장했던 신상옥 감독의 1964년도 작품 ‘빨간 마후라’와 비견할만 하다.

당시 영화 ‘빨간 마후라’는 공군 전투기의 하늘을 나는 장면과 시원한 활주로가 당시 귀했던 컬러필름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욱 생생히 전달됐다. 빨간 마후라는 일본에 최초로 수출된 국산영화로 아시아 영화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다.

빨간 마후라는 6·25 전쟁 당시 강릉 전진기지를 배경으로 용감하고 터프한 나관중 대위(신영균)와 그의 동료 배대봉 대위(최무룡)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배 대위가 술집 마담 지선(최은희)과 결혼하지만 그는 전사하고 절친한 친구가 지선을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애절한 로맨스를 가미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올해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는 현대 공군이 배경으로 주제는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전투 비행을 펼치는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목숨을 건 작전과 그들의 삶과 사랑이다. 한마디로 국내 톱스타들이 참가하는 현대전의 공중 액션 블록버스터다.

기둥 줄거리는 에어쇼에서 금지하는 기동인 ‘제로 노트’를 시도했다가 눈밖에 나 지방 전투비행단으로 좌천된 블랙이글스 최연소 조종사 정태훈 대위(비)와 그곳에서 만난 깐깐한 정비사 유세영 중사(신세경)의 러브스토리로 하고 있다.

빨간 마후라에 등장하는 전투기가 F-86 세이버였다면 올해 찍는 공군 영화에서는 F-15K 전폭기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한국과 북한의 대표 전투기인 F-15K와 미그 29기의 아찔한 공중전과 휴전선 근처에 떨어져 고립된 전투기 조종사를 구출해오는 긴박한 이야기도 펼쳐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제목이 이상하다. 가칭 ‘레드 머플러’다. 빨간 마후라의 영어식 표현이다.

아무리 가칭이라고는 해도 왜 굳이 빨간 마후라가 아닌 레드 머플러를 제목으로 택했을까. 옛날 영화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리메이크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도 많은데 말이다.

사연인즉 빨간 마후라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세대들은 60년대 영화인 빨간 마후라에 대한 추억이나 애착 같은게 없다.

게다가 신세대들에게 빨간 마후라는 전쟁 영화가 아닌 포르로그라피로 더 친숙하다. 원래 제목이 ‘비디로를 보다’인 이 자작 포르노그라피는 1996년과 1997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유포돼 유명세를 탔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화면에서 남고생들과 성행위를 하는 여중생이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어 ‘빨간 마후라’라는 제목으로 통했다.(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이 포르노그라피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컴팩트 디스크로 복제돼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일보 정진황 기자의 특종 취재로 세상에 알려졌다)

즉 요즘 세대들에게는 빨간 마후라 하면 ‘창공의 사나이’ 파일럿을 연상하기 보다는 ‘야동’이 먼저 떠오른다고 하니 '쩝' 할말이 없다.

아뭏든 ‘빨간 마후라’가 됐든 ‘레드 머플러’가 됐든 영화가 감동적이라면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은 지대하기 짝이 없다.
(왼쪽 사진은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공군 조종사용 빨간 마후라)

실제로 1964년 빨간 마후라가 개봉된 후 공사 경쟁률은 치솟았다. 지원자들 역시 자질이 매우 우수한 고교생들이었다. 그 가운데 2000년대 이후 공군 후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첫손가락을 꼽는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공사 17기로 현재 공사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이한호 예비역 대장은 MB 정부 초기 강력한 국방장관 후보였지만 정부의 ‘제2 롯데월드’ 고도제한 완화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소신있는 장군으로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

그가 공사에 입교한 것은 1965년이었다. 그는 창공을 주름잡는 빨간 마후라를 대구 영화관에서 본 후 소위 ‘감격’을 먹고 ‘파일럿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레드 머플러 역시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 영화를 통해 이한호 장군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미래의 조종사를 꿈꾸었으면 싶다. 보고 들은 게 너무나 많은 요즘 세대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하기란 과거에 비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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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러기 2011.03.03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박성진 부장님 글은 맛이 있어....

  2. 가을하늘 2011.03.08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하시군요. 박부장님 브랜드를 달고 나온 글들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자주 들르지 못하네요...여전히 쌀쌀하군요...항상 건강하시구여...꾸벅*^^*

  3. 공군사랑 2011.07.21 0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간 마후라를 영어로 Red Muffler라고 한 모양인데.. 완전 엉터리 영어입니다.

    red scarf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기자님께서 영화사 관계자들한테 좀 알려주세요..

  4. 000 2011.07.22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방된지 70년이 다돼오는 지금도 마후라라는 일본의 엉터리단어를 쓰는 한국과 한국공군은 바보 얼간이 집단이다. 친일파들이창설하여 기합 매질 마후라등의 추악한 일본제국주의군대의 악습과 용어를 버리지 않는 한국군은 정말로 바보 얼간이 집단이다.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은 남한의 국방장관 격이다. 오늘의 글은 북 인민무력부장과 관련된 이야기다.

2000년 9월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김일철 차수였다. 그는 제주도를 방문했다. 2박3일간 제주에서 열린 남북 첫 국방장관 회담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회담 파트너는 조성태 전 국방장관이었다.

당시 조성태 국방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제주공항에서 숙소 겸 회담장인 제주 서귀포 중문단지 내 호텔 롯데까지 같은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

5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를 이들은 일부러 제주도 해안도로를 돌며 75분간 여유있는 대화시간을 가졌다.(언론은 이를 파격적인 승용차 밀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두사람은 시드니올림픽 남북한 공동입장을 화제삼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로 살아가는 얘기와 제주도의 풍광을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한가지 비화를 소개하자면 승용차 안에서 김 부장은 제주도의 감귤 농장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아마도 이북에서는 보기 힘든 감귤이 지천으로 깔린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자 이를 눈치 챈 조 장관이 “요즘 남한에서는 귤이 쓰레기가 됐다”며 “우리 군에서는 감귤 쓰레기까지 처리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부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이에 조 장관은 “제주지사가 귤을 공짜로 줄테니 군에서 제발 가져가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2000년 당시 제주도에서는 예상 외의 귤 풍년이 들었다. 이바람에 귤 가격이 폭락했고, 농장주들은 육지까지 운반하는 운송비도 안나온다는 이유로 귤을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조 장관은 “해군 LST까지 동원해 귤을 육지로 실어 나르고 있다”며 “그렇게 해서 전군에 귤을 배급하고 있는 데 우리 군이 버린 귤 처리까지 떠맡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상당히 놀란 듯 했으나 했으나 이를 애써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일종의 ‘속상함’으로 보일 수 있는 표정이 스쳐갔다. 그리고 한동안 창밖만 뚫어져라 쳐다봤다.(북에서는 인민이 굶주리는 판국에 남쪽에서는 귀한 귤이 쓰레기 취급받고, 게다가 군대가 이를 병사들 간식으로 마지못해 처리해 준다고 하니 그럴만도 했다)

결국 조 장관은 귤 얘기를 슬쩍 하면서 체제의 우월성과 남쪽의 풍족함을 간접적으로 북의 인민무력부장에게 자랑한 셈이 됐다.

이후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국방장관 회담에도 참가했다. 이때 그의 상대는 김장수 전 국방장관(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그때 70대 후반의 고령이었던 그는 김 전 장관에게 자신의 건강관리법으로 하루에 30분씩 탁구를 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올해 김일철의 나이는 81세다)

김일철은 지금의 인민무력부장인 김영춘 보다는 유연한 편이었다. 해군 출신인 그는 1982년 해군사령관에 임명된 지 10년 만에 대장으로 승진했고, 97년 차수로 진급하면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에 기용됐다.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한 98년 9월에는 국방위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에 올랐다. 이후 11년 동안 같은 직책을 유지하다 2009년 2월 김영춘에게 인민무력부장을 내주고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으로 강등됐다.

김일철은 지난해 이 자리에서도 해임됐다. 그의 해임을 놓고 북한의 발표대로 고령 때문이란 설도 있고, 김일철 개인의 과오 때문이라는 설, 남북대화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다 그 결과를 놓고 문책을 받았다는 설 등이 엇갈리고 있다.

아뭏든 북한이 지난달 남북고위급군사회담을 제의하면서 제3차 국방장관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군사 대화가 궤도에 오르면 남북대화의 본격 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남북 군 고위층들이 설사 이견을 보이고 말다툼을 하더라도 만나야지 서로의 의중을 읽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도 제주도에서 귤때문에 맘이 상했을지라도 그 경험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나름대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런 측면에서 2월 8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군사 실무회담부터 첫 단추가 잘 꿰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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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독자 2011.02.07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북한도 이제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습니다.

  2. zoro 2011.02.07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강님 글 잘읽었습니다. 이제 어느덧 장강님의 글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군요.
    앞으로도 계속 주옥 같은 글 부탁드려요.

    • 장강 2011.02.08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 글 올리는 데 자꾸 게을러지는 저에게 정신이 버쩍 들게 하시는군요. 감사 감사~.

  3. 유단 2011.02.08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일화네요^^
    그런일도 있었군요~무려11년전일이네요~
    그때보다 지금의 북한은 상황이 더 악화됐죠..
    음식물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큰 남한과는 반대로 배를 곪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생각이듭니다.

  4. 유단 2011.02.08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일화네요^^
    그런일도 있었군요~무려11년전일이네요~
    그때보다 지금의 북한은 상황이 더 악화됐죠..
    음식물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큰 남한과는 반대로 배를 곪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생각이듭니다.

  5. 이성준 2011.02.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귤 풍년이 올해는 안 났나 봅니다.
    다시한번 풍년이 들었으면. 풍년...

    • 장강 2011.02.09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말이에요. 한 해군 부대의 경우 3사람당 귤 2박스 꼴로 나눠줘서 먹었다고 하데요.

  6. 나그네 2011.02.1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 받아쓰기’ 보도에 국민은 속았다...어느 인터넷 뉴스 제목입니다. 국방부기자들이 초등학교 수준의 받아쓰기 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인데...좀 과한 비유이긴 하지만, 새겨 들을 대목도 없지는 않군요. 오늘 점심 해장국은 물텀벙이 탕으로 할래요.첨벙첨벙...

김관진 국방장관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1월 25일 오전 서울 용산에 위치한 한·미연합군사령부를 방문했다. 연합사는 김 장관 취임을 축하하는 의장행사를 열었다.

김 장관이 의장행사 중 월터 샤프 한·미연합군사령관과 함께 경례하는 사진(왼쪽)을 보고 있자니 우리 군의 현실이 오버랩됐다.

샤프 사령관이 취힘한 것은 2008년 6월이었다. 그는 약 2년 6개월간을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 사령관 직을 수행하고 있다.

샤프 사령관은 그동안 한국군 수뇌부가 바뀔 때마다 이들을 초청하거나 또는 직접 가서 사열을 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샤프 사령관의 사열 사진만 봐도 우리 군 수뇌부가 어떻게 바뀌었는 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샤프 사령관이 처음 취임했을 당시 국방장관은 이상희 장관(육사26기)이었다. 이후 김태영 장관(육사29기)으로 바뀌었다가 경질되고, 최근 김관진 장관이 취임했다. 그는 무려 3명의 한국 국방장관에게 의장 행사를 열어 준 것이다.

샤프 사령관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대장)의 경우를 봐도 유사하다. 샤프 사령관이 취임한 이후 지난 2년 6개월 동안 연합사 부사령관은 이성출 대장(육사30기), 황의돈 대장(육사31기), 정승조 대장(육사32기) 순으로 바뀌었다. 역시 3명이다.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처음 취임했을 때 합참의장은 김태영 육군 대장이었다. 이후 이상의 육군 대장(육사30기), 한민구 육군 대장(육사31기)으로 ‘카운터 파트’가 변경됐다.

시선을 육·해·공군 참모총장으로 돌려도 비슷하다. 한국군의 경우 합참의장이나 육·해·공군 총장 임기가 2년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군 수뇌부의 변화는 심하다.

게다가 지난 2년간 한국군 수뇌부 인사는 사실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정 부분 개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여파로 수뇌부가 경질됐기 때문이다.(어떤 의미에서 ‘한국군 장성 인사는 김정일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조크가 틀린 말도 아니다. 북한의 김정일은 툭 하면 ‘도발 사고’를 쳐 결과적으로 고위 장성 인사에 개입(?)한 꼴이 됐다)

김태영 장관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 논란에 휘말리면서 일종의 ‘꽤씸죄’로 경질됐다.(크게 기분이 상한 김태영 장관은 이임식 없이 떠나려 했다가 김관진 신임 장관의 만류와 설득으로 이·취임식에 참석했다)

이상의 합참의장은 천안함 사건으로 경질됐다. 한민구 합참의장도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소극적 대응 논란에 휩싸이면서 교체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기사회생, 이번 삼호주얼리호 인질구출 사건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면서 체면을 지켰다.

이처럼 한국군 수뇌부가 자주 바뀌다 보니 그때마다 사열을 해야 하는 샤프 사령관 입장에서는 이제 사열이 지겨워질만도 하다.

아뭏든 샤프 사령관과 견주면 우리 군 수뇌부는 무척이나 단명하다.(이와 관련해 샤프 사령관은 자신의 파트너들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에 대해 짜증을 낸 적도 있다. 겨우 상대방과 호흡을 맞출만 하면 바뀌니 그럴만도 하다. 미 육사를 1974년에 졸업한 샤프 사령관은 한국군 육사 30기와 동기격이다)

게다가 ‘한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는 말은 우리 군 수뇌부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으로 작전 분야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인 황중선 전 합참 작전본부장(육사32기)이 낙마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관학교 기수별로 우루루 진급했다가 전역할 때도 한꺼번에 하다 보니 한국군에서는 샤프 사령관과 같은 장수하는 장군이 나오기 힘들다. 여기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 인사가 새로 등장한 실세들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되다 보니 능력있는 장군들도 ‘인사 태풍’을 피하기 힘들다.

반면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군 수뇌부는 물론 정무직인 국방장관조차 바뀌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다.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다. 게이츠 장관은 공화당 정부의 부시 대통령 시절 임명됐으나 지금도 민주당 정부의 오마바 대통령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진 첫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언제쯤 그만두느냐, 그만 두면 뭘 할 것인가”라고 나름대로 덕담을 건넸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진 회담 에피소드가 있다. 이 전 장관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게이츠 장관도 바뀔 것이라고 한국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샤프 사령관의 사열 행사 등을 보면서 우리 군도 정권의 부침에 관계없이, 북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고 일관성 있게, 군을 지휘하는 ‘장수(長壽)하는 장수(將帥)’가 나왔으면 싶다. 주어진 임기도 채우기 힘든 것이 작금의 현실이긴 하지만.


<정승조 연합사부사령관이 6월 24일 취임 의장행사’에서 샤프 사령관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샤프 사령관이 2008년 6월 김태영 전 합참의장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샤프사령관이 2008년 10월 임충빈 전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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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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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운전병전역자 2011.01.28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왔습니다. 국방부 출입기자이신가 봐요? 군대시절 뵙던 인물들이 지금 군수뇌부에 계셔서, 쓰신 글들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자료사진도 적절하게 쓰시고 쎈스있는 기자님이신 것 같아요.ㅋ
    이 글도 완전 공감이네요. 제가 있던 부대는 미국의 여러기관들이랑 교류하던 곳이었는데, 그 기관장들 중 일부가 '카운터파트가 지나치게 자주 바뀐다. 이번에는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처장님이 부대장님께 보고하더라구요.(앞에서 운전하다 들었어요.^^) 제 군생활동안 부대장이 거의 6개월마다 한 번 씩 바뀌었으니 그럴만 했죠. 제 생각에는 일단 첫째, 우리나라 장군님들 수가 너무 많고, 둘째 계급정년이 짧은 것이 잦은 진급, 보직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장군인사가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제가 봤던 미국부대장들은 1년6개월 이내에 바뀌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 장강 2011.01.28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베리베리 환영합니다. 저번처럼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의도를 오늘도 120% 이해해 주셔서 베리베리 감사합니다~.

  2. 5132 2011.01.29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보니
    사진마다 지겨움돋는 미국 4성장군의 표정이

  3. 검은별 2011.01.30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 속에 이런 블로그가 있는지 지금 알았습니다.
    군대 앞뒷 얘기로 유명한 곳이 조선일보 유용원의 군사세계이지요.
    유씨 블로그의 사진과 자료는 밀리에 빠지고 좋아하는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주고 있습니다. 왠만한 밀리 사진과 정보는 다 저기서 가저오고 복사질 할 정도 입니다.

    박기자님도 질 좋은 고급 밀리 정보와 컨텐츠를을 많이 올리셔서 많은 호응을 받기를 기원 합니다.

    • 장강 2011.01.30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패달고 글 올리기 시작한 지 3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직은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으면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맛난 글 올려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나그네 2011.01.31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이야기를 신문에 실을 생각은 왜들 안하시는지, 궁금! 경향에도 가끔 보면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이 없지는 않던데, 기사 교통정리관을 둬야할 판인가요!

  5. 기러기 2011.01.31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쉬 빅성진

  6. 경향댓글자.. 2011.02.06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 블로그도 있네요....글도 좋네요.... 쓰시는김에 원인분석과 해결책을 감군추세와 맞물려서 같이 쓰셨으면 더 고급 요리가 되었을꺼란 생각도 해봅니다... 사병과 장군의 비율, 탱크1대당 육군장군의 비율,,,이런것을 한미간 남북간 비교해보면 흥미로울것 같습니다...


지난 24일 KTX편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던 중 조간신문 하나를 펼쳐 들었다.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었다.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인 ‘아덴만 여명작전’ 책임자인 군 고위 장성과의 인터뷰 기사였다.

재미있게 읽어 내려 나갔다. 그러다가 한 곳에서 막혔다. 고위 장성은 1차 구출작전에 관해 설명하면서 “접근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선원들의 신호를 투항으로 잘못 이해하고 다가가다 요원 3명이 다쳤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군이 애초에 소개했던 내용과 달랐다. 당초 ‘팩트’는 최영함의 링스 헬기가 해적선 자선에 탑승하고 있던 해적들을 향해 사격을 하자 해적 4명은 바다에 뛰어들었다.(합참은 당초 바다에 뛰어든 4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중에 물에서 나와 삼호주얼리호로 다시 올라갔다)

이와 동시에 고속단정에 탑승한 검문검색팀은 구출작전을 준비했다. 그때 해적들이 투항하는 것처럼 백기를 들었고, 고속단정 2척이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자 태도를 바꿔 기습공격을 했다. 이로 인해 검문검색대장을 포함한 대원 3명이 다쳤다. 엄밀히 말해 해적들의 유인작전에 결과적으로 당한 것이다.

해적들의 백기에 속은 것과 선원들의 신호를 잘못 해석한 것은 분명히 다른 '팩트'다.

사실 국방부가 지난 18일 1차 인질구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 후 출입기자들에게 엠바고(보도시점 유예)의 계속 유지 요청을 할 때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당시 국방부 고위 간부가 엠바고 유지를 요청하기 전에 기자는 두가지 얘기를 들었다. 하나는 ‘제 3국 선박의 등장으로 작전이 엉켰다’것과 다른 하나는 ‘청해부대 작전팀이 해적들에게 당해 부상했다’는 것이었다.(결과적으로 제3국 선박인 몽골 선박의 등장과 청해부대원 작전팀의 부상은 시차별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고위 간부는 “엠바고 유지를 전제로 청해부대의 우발 상황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는 “대원들이 다치고 초기 작전이 실패해 나중 작전을 펼칠 때까지 시간벌기에 기자들이 동참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런 것 아니다. 그런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엠바고 유지를 수용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난 후 이 간부는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1차 구출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가 물었던 것처럼 대원들이 다치고 1차 작전이 실패한 게 맞았다.(하지만 이 간부는 1차 작전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구출 작전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여길 뿐이기 때문에 기자의 질문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자신의 답변이 틀린 게 아닌 것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아뭏든 기자는 사람 목숨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데 보탬이 된다면 엠바고 유지를 수용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언론의 경쟁적 보도는 작전 상황 노출 등 해적들에게 유리한 정보 제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또 은밀한 1차 구출작전이 실패해 해적들과 청해부대가 대치상태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보도되면 해적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인질들에게 보다 강한 물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출입기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바람대로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보여준 정부와 군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저는 어제 오후 5시 12분 국방부 장관에게 인질구출작전을 명령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마치 대통령이 인질들을 구출한 것처럼 국민들에게 말하는 이 부분은 없는 게 나았다. 차라리 인질 구출작전의 주역인 청해부대원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과 안병주 소령, 김원인 상사, 강준 하사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빠른 쾌유를 빌었어야 했다.

하긴 ‘해적들과 무선 교신을 할 때 영어 대화 가운데 한국어를 암호처럼 섞어 쓴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낸 아이디어’였다는 '작전 뒷얘기' 보도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5공시절 축구광인 전두환 대통령이 국가대표 축구팀의 국제경기 하프 타임 때 감독에게 작전 지시를 했다는 ‘경기 뒷얘기’가 생각났다)

앞서 청와대는 작전 성공을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 ‘1보’를 하겠다며 엠바고 해제 시점까지 조절하려고 시도해 빈축을 샀다.(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예정과 달리 대통령의 담화 발표 시간를 앞당기는 바람에 일부 방송사는 큰 곤욕을 치렀다)

군도 ‘아덴만 여명작전’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군 고위 장성이 TV에 출현해 상당 시간 동안 작전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하면 넘치는 법’. 홍보 과잉은 국회에서 군 작전의 과다 노출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제기한 비판의 화살은 엉뚱한 데로 꽂혔다.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한 해군 공보장교들이 줄줄이 국군기무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만만한게 홍어X’라는 말이 떠올랐다. 넘치기는 했지만 해군이 내놓은 자료 중에 군사기밀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보장교들의 잘못이라면 ‘이번 작전의 성공을 적극 홍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너무 적극적으로 따른 것 뿐이 아닌가 싶다.

기자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국방부의 뭔가 ‘화장실 갈 때 틀리고, 나올 때 틀린’ 것 같은 분위기도 그렇고, 기자가 마치 앞장서서 청와대와 군의 생색내기에 ‘들러리’를 선 것 같은 기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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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성기 2011.01.26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의 모토는 "잘 되면 '전격공개' 잘 못되면 '철저은폐'" 인거죠.
    천안함때 TOD영상 제때, 제대로 공개 안할땐 군 기밀 운운하더니 이번엔 전격적으로 작전 영상 내보내고..
    만약 선장이 위독한 상태가 되면, 다시 아덴만 여명 작전 '너무 위험했다' 기사 나갈 수 있을까요? 기자단이 초기에 너무 호의적으로, 군이 원한대로 넘어가준건 아닌지 아쉽네요. 기자실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으니까 전보다 더 많이 보입니다. 문제점들이..

  2. 이성준 2011.01.26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3. 아미 2011.01.28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4. 나그네 2011.01.31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지만, 기자는 모름지기 기사로 말해야지요.
    요즘은 블로그로 말하는 기자가 대세긴 하지만...
    비슷한 기사가 경향에 실리긴 했군요.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다 청해부대의 구출작전으로 풀려났다. 소말리아 해적이 우리나라 선박을 납치한 사례는 삼호주얼리호가 아홉번째였다. 어떤 의미에서 선박 피랍은 해적에게 우리 영토가 일시 억류된 상황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 소말리아 해적들의 테러와 위협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적과 장소를 불문하고 발생하는 초국가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은 매년 선박 3만3000여척 통항하고 세계 물동량의 20%, 유류 수송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청해부대가 민간 선박을 호송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의 변천사를 보면 1990년대만 해도 이들의 활동은 일종의 자구책에서 비롯됐다. 소말리아 어부들이 외국 불법어선에 대응해 해상 민병대를 결성해 입어료를 징수한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외국 불법어선을 나포하고 금전을 강탈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4~2008년에는 해적 조직이 결성되고, 연안중심으로 해적활동을 펼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적은 생계형, 떠돌이형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2008년 이후부터는 대양으로 활동 해역을 확대하고 기업형, 집적형. 네트워크화 조직으로 커졌다. 그러면서 인질들의 몸값마저 급상승하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원 어스 퓨처’ 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인질 석방 위해 지급한 평균 몸값이 전년에 비해 60% 증가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해상 납치로 지불한 비용은 70억~120억달러였고, 평균 몸값은 2009년의 340만달러에서 540만달러로 올랐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의 삼호드림호는 선원들의 몸값으로 950만달러를 지급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광역화, 첨단화를 통해 국제테러 및 폭력조직과 연합화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선박들도 자구책으로 배 옆쪽에 철조망이나 무인 소화호스까지 설치하고 있다.




또 강화문을 갖춘 안전대비시설인 ‘선원 피난처’를 마련해 그 안에 비상식량과 위성전화가 가능한 비상전화를 설치, 국제연합군이 도착할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한 선박도 있다.
선원 피난처는 일종의 안전대비실로 선박 안에 설치된 특수 신변보호구역으로 기본적인 식량과 식수, 통신수단을 갖추게 된다. 이에 따라 해적들이 나타날 경우 선원들은 일단 피난처로 몸을 숨긴 뒤 하루 이틀 버티며 군의 구출작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당수의 대형 선사들이 선원 피난처를 설치하고 있으나 중소형 선사들은 자금문제를 이유로 이를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난처 설치비용은 2∼3억원에 달한다.


일부 선박은 해적들이 활동하는 해역을 지날 때면 1회당 4만~6만달러를 지불하고 사설보안요원들을 승선시키고 있다. 그동안 보안요원들이 승선한 선박에 대해서는 해적이 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보험회사는 소말리아 해적 피해로 선박의 보험료가 폭등함에 따라 순시선과 무장병력을 갖춘 ‘사설 해군’의 창설을 계획중이라고 한다. 보험업계 입장에서는 석방금 지불로 인한 손해 보다 사설 해군 운영에 따른 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판단해서다.


국제사회도 국제연합해군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한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20개국 30여척 군함을 파견, 호송작전을 펼치면서 해적들은 아덴만을 피해 인도양 등 원거리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마저 나타나고 있다.

해적들은 이제 근해를 벗어나 인도양 원해로까지 그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들은 인도양 해류를 이용해 원해까지 무동력으로 이동해 활동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소말리아 동부 1700NM 원해까지 해적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해적은 소말리아에서 최고 인기 직업이다. 심지어 처녀들이 해적과 결혼하면 ‘팔자 고친다’고 하니 너도나도 해적이 되겠다고 할 만하다. 최근에는 해적들이 유럽의 유명 변호사까지 고용해 몸값 흥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 해적은 나포 선박을 다양한 형태의 모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 중세 해적들도 약탈한 무역선을 새로운 해적선으로 삼은 사례가 많다.

또 RPG-7과 같은 중화기를 이용해 선박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하고 위성전화를 이용한 육상 해적 지휘부와 정보를 교환한다.

그러나 이들 해적들을 처벌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과거 해적들은 서양에서는 교수형, 동양에서는 참수형을 당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국적 해군에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

복잡한 국제법 때문에 청해부대가 해적선을 나포해도 무기 및 도구를 압류하고 해적은 현장에서 훈방조치 하는 수준이다. 단 우리 국민이 다쳤을 때만 국내법에 따라 해적을 구금하고 국내로 압송할 수 있을 뿐이다.

해적들도 국제사회의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미성년자를 가담시켜 해적선 자선에 탑승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몸값을 받지 못한 일부 납치 선원을 노예로 억류하는 사례까지 있다.

최근에는 테러 단체 등이 해적들에게 선박 이동정보 제공. 무기구입 알선, 군사훈련, 식량 및 원유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피랍자 석방금 일부를 수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적들은 또 선박들의 해적피해방지대응요령(BMP)까지 알아내 습격 수법을 고도화하고 있다.

정부도 이제는 해적출몰시 배 안에 몸을 은닉할 수 있는 ‘선원 피난처’(Citadel)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입법화하고 위험해역 항해시에 민간 보안요원들을 반드시 탑승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선박회사가 특수부대 출신들을 고용해 선박에 승선시키면 약 1000여명의 보안업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제항해 선박 및 항만시설의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안은 소말리아 내전이 종식되고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확립되는 길이지만 지금 전망으로는 요원한 것 같다.

 

□ 현재 억류중인 선박(총 25척,선원 약 519명) : 2010.11.8 현재

연번

피랍일

피랍장소

선박명

국적/소유

승무원

1

1.27

소말리아 랜드 연안

Layla-S(화물선)

캄보디아

소말리아 등 약 20 명

2

3.1

아덴만

al Nisr al Saudi(유조선)

사우디

그리스, 스리랑카 등 14명

3

3.27

소말리아 연안

Al Izaj(다우선)

인도

인도  약 11명

4

3.29

아덴항 10마일밖

MV Iceberg1(RoRo선)

파나마

24명

5

3.31

모가디슈 연안

Al-Barari(화물선)

두바이

인도 11명

6

4.1

소말리아 해역

지춘차이68호(어선)

대만

약 11명

7

4.11

세이셀 서쪽 280마일

MV Rak Afrikana(화물선)

St.빈센트그레나딘

인도, 파키스탄 등 26명

8

4.18

소말리아 동쪽 1200마일

MV Prantalay 11(Dhow선)

대만

대만 26

9

4.18

MV Prantalay 12(Dhow선)

대만

대만 26

10

4.18

MV Prantalay 14(Dhow선)

대만

대만 26

11

4월경

미상

AL-ASSA(Dhow선)

예멘

약 11명

12

5.6

인도양

Tai Yuan 227(어선)

대만

중국, 베트남, 케냐 등 24

13

5.6

미상

AL-DHAFI(Dhow선)

예멘

약 11명

14

5.8

살랄라 120마일 남쪽

Marida Marguerite(케미칼)

독일

인도, 우크라이나 등 23명

15

5.12

살랄라 동방 370마일

Eleni P(Bulker)

라이베리아/그리스

24명

16

5.18

미상

SHUVAL(Dhow선)

예멘

약 11명

17

7.4

홍해

Motivator

마샬군도

필리핀 18명

18

8.2

아덴만

Suez(시멘트운반선)

파나마

파키스탄 등 23명

19

9.8

아덴만

Olib G

(화물선)

몰타/그리스

그루지아 등 18명

20

9.30

소말리아 동안 100마일

Asphalt Venture

(화물선)

파나마

인도 15명

21

10.10

모가디슈 남쪽 161마일

IZUMI

(화물선)

일본

필리핀 20

22

10. 8

케냐 근해

금미 305호

(어선)

한국

한국2, 중국 등 43

23

10.23

몸바사 동쪽 50마일

MV YORK

(유조선)

싱가폴

필리핀 등 19

24

10.30

소말리아 동안 600마일

POLAR

(유조선)

파나마

필리핀 등 16

25

11.3

탄자니아 해역

Aly Zoulfecar

(여객선)

코모르

탄자니아, 코모르 등 29명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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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성준 2011.01.18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당하십니다.
    요원.

    그러나 완전작전을....하면 좋은데.

  2. 해적소탕 2011.01.18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적소탕이 어렵다면

    당연히 위험지역을 넘나드는 화물 선박에는 보안요원이 탑승해야 한다..

    이게 얼른 입법화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선원피난처도 강제사항으로 만들어라..

    솔까말로 그 먼거리 운항하는 배가 소형배도 아니고

    당연히 있어야지...

    소말리아 해적보면 그냥 사살해야지 청해부대는 가서 뭐하는거냐..

    그냥 쫒아가다 돌아오고..하여간

    하는 거보면 좀 찌질해..

  3. 우리아리 2011.01.18 1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망망대해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선원들을 생각하니...
    선배님! 블로거들의 방문이 30만을 이미 돌파했네요.
    조만간 50만, 100만을 달성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리고 건승을 기원드립니다.

  4. 기러기 2011.01.19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미롭고 자세한 설명에 감사. 그나저나 억류선원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하는데...

    • 장강 2011.01.2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러기님의 뜨거운 관심으로 조만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네요~.

  5. 정성기 2011.01.20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잘 지내시죠?
    소말리아 기사 엠바고 건 때문에 시끌시끌 하겠네요.. ㅎㅎ
    조만간 2차 연합사 회동 한번 하시죠..

    • 장강 2011.01.2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아시네. 오늘도 엠바고 때문에 해프닝 만발이었슴다. 연합사 회동 굿 아이디어!

  6. 김독자 2011.01.20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이번 사건도 해피엔딩으로 마감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7. 김독자 2011.01.21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장님. 오늘은 눈물이 날만큼 기쁩니다.

    부장님을 비롯해서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굳게 엠바고를 지킨 국방부 출입기자 분들에게 상이라도 드려야되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