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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서울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뉴스가 핫 아이템이 되다 보니 TV를 켜면 어김없이 그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채 총장과 함께 낯익은 검찰 간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과거 검찰을 출입하던 시절 가끔 논쟁도 벌이고 했던 그들이다.

 

이들 중 한 명과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주장을 놓고 입씨름을 한 적이 있다. ‘수사는 생물’이라는 말은 검찰이 수사를 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안이 튀어나와 수사의 방향이 어떻게 갈지 모른다는 것을 빗대 하는 비유였다. 나는 “검찰이 당초 수사 대상으로 삼았던 사안이 아닌 것을 수사하는 ‘별건 수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사는 생물’이라는 주장으로 정당화한다”며 “차라리 ‘수사는 럭비공’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고 반박했던 기억이 난다.


검찰이 수사를 생물로 비유할 정도로 주변의 객체를 살아있는 생물인 유기체로 비유하는 사례는 이곳저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도시가 생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는 모습이 마치 생로병사를 거치는 유기체와 같다. 수사를 생물로 비유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도시는 생물과 같다는 비유에는 공감이 가는 이유다.

 

도시는 생물이라는 비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서울도 생물’이다. 서울은 태어난 지 600년이 넘는 장수 도시다. 서울은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고도성장 시대에는 개발을 앞세워 덩치를 불리기도 했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최근에는 도심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화장도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입맛’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 만들기’는 과거 고도성장 시대였으면 씨알이 먹히지 않았을 사업이다. 주민들은 기존 마을을 갈아엎는 재개발을 하면 ‘남는 장사’가 됐던 과거의 경험이 이제는 원주민이 갈 데가 없어지는 ‘밑지는 장사’가 된 현실을 인식하면서 ‘마을 만들기’ 사업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는 쇠락해 가던 동네가 다시 건강해지는 도시의 면역력을 키우는 사업으로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충신동 언덕길 주택들도 그 사례다.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 건축물은 1950~1960년대만 해도 LH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이 조성한 현대식 영단주택(문화주택)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최신 주택에서 노후 주택으로 낡아가던 이곳은 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며 쇠락의 속도가 더 가팔라졌으나 최근 재개발지구 해제와 함께 주택 리모델링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그린 예쁜 벽화로 화장도 하면서 동네가 다시 건강하게 살아나고 있다.

 

도심 노후 연립주택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혹시라도 슬럼화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염려됐던 연립주택들이 간단한 ‘성형수술’을 거쳐 모양을 바꾸고 있다. 종로구 부암동이나 옥인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기념품이나 옷, 차 등을 파는 예쁜 가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예품을 만드는 조그마한 수공예 교실도 있다. 모두가 연립주택 1층을 개조한 곳들이다.

 

아예 리모델링으로 예술공간이나 문학관으로 거듭난 도심의 철도나 상수도 시설물도 있다. 마치 정년퇴직으로 직장을 떠난 이들이 과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제2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모습과도 같다.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고지대 마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던 상수도 가압장이었다. 펌프가 돌아가던 기계실은 전시실로 탈바꿈했다.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던 마포구 염리동 일대 부지는 벼룩시장이 됐다.

 

 

서울 인왕산 수성동 계곡 (경향DB)


인왕산 수성동(水聲洞) 계곡의 변신도 눈부시다. 이곳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배경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옥인아파트가 있던 이곳에 소나무 등 나무 1만8477그루를 심어 겸재의 시선으로 계곡을 즐길 수 있도록 복원했다. 복원 사업에는 1060억원이 들었다. 토지 및 건물 보상 비용만 1005억원이 들었다. 녹지조성 및 수성동 계곡 복원에 투입된 예산이 55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지만 그 혜택은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당장 주거환경이 쾌적해지면서 수성동 계곡 인근 누상동 일대 땅값은 지난해 8.80%나 올랐다. 마을이 건강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지면서 몸값도 올라간 것이다.

 

수성동 계곡의 복원사업에서 읽을 수 있듯이 도시를 자칫 잘못 개발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데는 그 대가가 너무도 크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을 복원하기 위해 종로구 명륜동의 시장공관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종로구 연립주택의 주차장 벽으로 전락한 성곽의 복원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보상비가 걸림돌인 탓이다. 이제라도 서울의 ‘만수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기체는 면역력이 강해지면 복원력도 강해지게 마련이다. 서울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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