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10건

  1. 2014.11.19 군의 ‘마지막 각오’는 믿을 만한가 (1)
  2. 2014.09.29 ‘법보다 계급이 위’ 군 사법체계 고치자
  3. 2014.09.25 샌드위치 신세 된 F-15K
  4. 2014.08.27 군 입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5. 2014.02.23 24개 종목 군인들의 올림픽도 있다
  6. 2014.02.14 키리졸브훈련에 '경기'(驚氣) 일으키는 북한
  7. 2014.01.03 예비군 저격수 시대 (1)
  8. 2013.12.27 북한 신군부 3인방
  9. 2013.12.15 북한 권력의 호위무사, 국가안전보위부 (2)
  10. 2013.11.26 NLL과 카디즈의 공통점
  11. 2013.11.25 한국 F-35와 일본 F-35의 차이
  12. 2013.11.03 송영근 전 기무사령관의 국감 발언 파문 (1)
  13. 2013.10.31 기무사에선 무슨일이?(기무사령관은 왜 짤렸나) (2)
  14. 2013.10.25 '별들의 잔치' 속살 보기(군 인사 관전평)
  15. 2013.10.24 남재준 국정원장과 골프
  16. 2013.10.15 장군의 일편단심 (1)
  17. 2013.10.13 미 항모의 아킬레스건 건드리는 중국군
  18. 2013.10.03 여군 브래지어는 국방색인가? (2)
  19. 2013.09.26 신임 해군총장이 추어탕을 마다한 사연은? (1)
  20. 2013.09.25 해군총장이 합참의장이 된 까닭 (6)
  21. 2013.04.08 전 국방장관의 국정원장 비판 (5)
  22. 2012.11.16 블랙이글, 기지로 돌아오라! (3)
  23. 2012.09.21 도끼 자루 썩는 지 몰랐던 군 취재 10년 (6)
  24. 2012.09.13 기무사와 도마뱀 (1)
  25. 2012.09.05 블랙이글과 나 (3)
  26. 2012.08.12 북한은 왜 '하드 타킷'인가? (2)
  27. 2012.08.02 펜타곤과 화장실의 공통점은? (5)
  28. 2012.07.01 '빨간명찰 1호' 여군 소령들 (5)
  29. 2012.06.12 쿠데타세력은 국립묘지 안장, 반대인사는? (3)
  30. 2012.06.02 해병대, 사상 최초 미 전지훈련 돌입

미 육군은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군구조 개혁 혁신안으로 군 부대를 모듈화하는 방안을 10년 전부터 추진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대단위 부대의 예하 부대를 하나씩 차출해 하나의 부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전투부대와 지원부대 등을 마치 장난감 블록인 레고 부품처럼 조립해 새로운 단위 부대를 구성하는 일종의 ‘편조(編組) 방식’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입각한 부대의 모듈화는 적은 인력으로 그때그때 목적에 따라 부대를 새로 ‘조립’할 수 있다.

한국군도 이라크 자이툰부대 등 해외 파병부대를 구성할 때 편조 개념을 적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군은 부대를 운영할 때보다는 군내 문제가 발생할 때 모듈화된 편조 개념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군내 대형 사건이나 악성 사고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대처방안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계적으로 척척 나오는 곳이 한국군이다. 한마디로 사고 유형에 따라 각종 대응 방안들이 만들어지고, 종합 대책이 필요하면 여러 대응 방안들을 레고식으로 조립해 대국민 발표를 하는 식이다. 워낙 유사 사건 사고 경험이 많아서 가능한 조치들이다.

육군 22사단 임모 병장 총기난사 사건에 이어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치사 사건 등을 비롯한 악성 사고들이 잇따르자 군 당국은 소나기식으로 병영문화 개선책들을 쏟아냈다. 짐작했듯이 대부분이 과거에 이미 수차례 써먹었던 발표용들을 레고 부품처럼 다시 조립한 종합대책이었다.

이런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군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등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국방부는 과거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와 유사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를 발빠르게 구성했다.

지난 8월 출범한 ‘병영혁신위’에는 학계와 종교계, 병사, 부모 등까지 참여시켰다. 전체 135명의 병영혁신위 위원 중 절반이 넘는 75명이 민간 인사로 채워졌다. 필자도 여기에 실무위원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군사법제도 개혁은 물론 군의 비밀주의, 폐쇄성을 제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혁신위에 참여했다.

병영문화혁신위 전체회의에서 병영문화혁신위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 둘째부터 오른쪽으로), 심대평 혁신위원장,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병영문화혁신위는 최근 국회의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별위원회에 25개의 병영문화 혁신 중점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국방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국방부 입맛에 맞는 혁신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수 복무자가 취업할 때 만점의 2% 이내로 가산점을 주겠다는 사실상 위헌소지가 있는 편법적인 군복무 가산점 제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것이나, 사단마다 설치된 탓에 민간 법원보다 숫자가 더 많은 보통군사법원의 폐지 등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핵심 개혁과제로 혁신안에 포함됐던 군 옴부즈맨 도입도 병영혁신위 보고서에는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되 군 본질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모호한 문구를 집어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노무현 정부는 503 GP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2005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국방부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보통군사법원 폐지 등의 군 사법제도 개선안을 내놓자 2007년 6월 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대장급 콘퍼런스’를 개최해 입장을 번복했다. 결국 군 사법제도 개혁 7개 법률안은 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의 지휘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주장에 부딪혀 군 사법개혁 논의는 물 건너간 것이다.

이번에도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추진한 여러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들은 군의 특수성 주장에 휘둘려 애매한 표현으로 정체성이 모호해지거나 장기 과제로 넘어가면서 단순한 단기 처방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몇몇 실무위원들을 중심으로 반발하는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병영문화혁신위 첫 회의에서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병영문화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10년 동안 ‘뼈를 깎는 자세로 이번이 마지막 각오’란 군 고위층의 다짐을 이미 3차례나 들었다”며 제발 더 이상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이 관계자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담긴 보고서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면서 과거 레고식 종합대책이 다시 나온다면 “뼈를 깎는 자세로 이번이 마지막 각오”라는 말이 반복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박성진 디지털뉴스편집장

Posted by 경향 박성진

군사범죄만 군사법원과 군검찰, 헌병대가 다룰 수 있도록 하고 비군사범죄는 일반 경찰과 검찰, 법원이 다룰 수 있게끔 군형법을 개정하자는 얘기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군 사법체계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치사 사건과 6사단 남모 상병 추행 및 폭행 사건 처리과정 등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난 게 계기가 됐다. 민주노총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5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는 “고 윤 일병 사망사건은 지난 4월에 발생했음에도 군 검찰과 군 법원은 철저히 사실을 은폐했다”며 “군의 내부 감찰과 외부 통제는 사실상 정지, 단절됐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하반기 주요 과제로 군 사법개혁 재추진을 꼽고 있다.




지난 8월 5일 경기도 양주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사건 시민감시단이 병영내 인권개선을 촉구하며 쪽지와 풍선을 붙이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군 사법체계에서 군사법원은 군인의 형사사건을 재판하는 특별법원이다. 1심의 경우 국방부와 사단장급, 함대급, 비행단급 이상 부대에 각각 보통군사법원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심의 경우 고등군사법원이 국방부에 설치돼 있다. 3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군 사법체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재판관과 관련해서다. 군사법원 재판관은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심판관의 경우 변호사 자격은 없지만 군사재판에 있어서 군의 특수성을 재판에 반영한다는 이유로 장교가 재판관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국방부와 육·해·공군에서 심판관으로 임명된 530명 가운데 397명(75%)이 과거 재판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 장교다.


사단장 이상 지휘관의 형량감경권 남용

관할권 확인조치권(형량감경권)도 논란의 대상이다. 확인조치권은 사단장 이상 지휘관(관할관)이 소속 부대원의 1심 판결에 한해 형량을 감경할 수 있는 권한으로, 군사법원에만 있는 제도이다. 본래 감경권은 군형법의 법정형이 일반 형법보다 높기 때문에 법적 형평성을 위해 마련된 권한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군형법 위반이 아닌 일반 범죄를 봐주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민간 사건의 경우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사면권을 사단장이나 함장, 전투비행단장 이상의 각급 부대 지휘관들이 매 재판마다 행사하는 셈이다. 이는 계급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혀 왔다.


게다가 사단장 이상 지휘관들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장교를 심판관으로 임명하고 확정판결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범죄 수사를 직할부대인 헌병대가 맡고 군 검찰 임명권도 갖고 있기 때문에 지휘관인 사단장 또는 군단장이 마음만 먹으면 군내 폭력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2009년 9월 지휘관의 감경 이유를 명시하도록 한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묻지 마’ 감경도 가능했다. 국방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4년 6월 말까지 2년 반 동안 총 105명이 감경권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형을 감경받은 범행을 살펴보면 교통범죄(도로교통법 위반), 폭력범죄(상해·폭행, 폭력처벌법 위반), 절도·강도, 사기·횡령·배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심지어 군에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했던 성군기 사건에 대해서도 지휘관의 감경권이 행사됐다.


작년 대법원이 처리한 군사법원 사건 104건 중 파기된 사건은 5건으로 파기율은 4.8%에 달했다. 이는 최근 수년간 2∼3%에 그친 민간법원 사건 파기율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군사법원의 원심 판결에 그만큼 오류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앞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국방부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지휘관의 형량감경권과 보통군사법원 폐지 등의 군 사법제도 개선안을 내놓자 2007년 6월 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2008년 8월 당시 이상희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대장급 콘퍼런스’에서 심판관 제도를 유지키로 입장을 번복했다. 결국 사개추위가 마련한 군 사법제도 개혁 관련 7개 관련 법률안은 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의 지휘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군내 반발에 부딪혀 군 사법개혁 논의는 물 건너간 것이다.




윤모 일병 사망사건 가해자들이 8월 5일 경기 양주시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군 사법체계를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국방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군 법무관들은 육·해·공군 다 합해 530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국방부 소속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소속으로 고등군사법원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권역별로 나눠서 지역 군사법원 5개를 만들면 군 판사들이 어느 군 소속이 아닌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되면서 각군 총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군사범죄만 군사법원과 군검찰, 헌병대가 다룰 수 있도록 하고 비군사범죄는 일반 경찰과 검찰, 법원이 다룰 수 있게끔 군형법을 개정하자는 얘기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군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총 3만2718건의 범죄 중 군형법범은 4937건으로 1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군인의 폭력범죄나 성범죄 등 대다수의 사건을 민간 법원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장 지휘 받는 헌병 기능 개혁도

군은 법원과 검찰이 분리된 민간 사법체계와 달리 지휘관 아래 검찰과 법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군사재판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내부적으로는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군 법무관으로 임용된 법무장교와 육사 출신 법무장교 사이에 미묘한 갈등관계가 빚어지기도 한다. 또 군인으로서 조직에 대한 충성, 즉 ‘로열’(Loyal)’이 우선이냐, 아니면 법조항을 앞세우는 ‘법률가’(Lawyer)로서의 입장이 우선이냐를 놓고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헌병 기능의 개혁도 군 사법개혁이 거론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군내 사고가 날 때마다 ‘헌병이 사건을 은폐·축소했다’는 의혹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군헌병은 경호와 교통정리를 주로 하는 작전기능과 수사기능이 통합돼 있어 작전헌병과 수사헌병으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수사헌병조차 육군의 경우 사단장 지휘를 받는 데다 진급문제 등이 걸려 있어 환경적으로 지휘관 편을 들지 않기가 힘들다. 심하게 말하면 지휘관이 사건을 덮으라면 덮어야 하는 것이다.


군 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국방부는 지난 8월 22일 ‘병영문화 혁신 고위급 간담회’를 열었다. 국방부는 당초 한민구 국방장관 주관으로 ‘군 사법제도 개선 고위급 토론회’를 비공개로 열어 군의 자체적인 군 사법제도 개선과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군 사법체계 개선 요구에 대한 군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토론회가 마치 군 사법제도를 바꾸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외부에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로 군 인권과 병영문화 혁신, 군 사법제도 등을 모두 점검하는 취지의 고위급 간담회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는 육·해·공군참모총장과 각군 본부 법무실장, 국방부 법무관리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국방부 검찰단장 등 군 사법체계의 주요 직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군은 여전히 군 사법체계가 지휘관의 지휘권 강화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만큼 고위급 간담회 개최의 배경도 국회에서 군 사법제도 개혁안을 내놓은 데 이어 28일 군사법원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일정이 예고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이 예봉을 피하기 위한 ‘방탄 간담회’라는 것이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KF-16D, 사상 처음으로 레드플래그 훈련 참가

 

 공군은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주관하는 ‘레드플래그 알래스카’ 훈련에 29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19일간 참가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합훈련은 전투기와 수송기 두 분야에 걸쳐 진행된다. 전투기 부문에 참가하는 우리 공군의 KF-16D 항공기 6대는 아일슨 미 공군기지에서, 수송기 부문에 참가하는 우리 공군의 C-130H 2대는 엘멘돌프 미 공군기지에서 각각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훈련에 참가하는 KF-16D 전투기 6대는 이날 새벽 2시40분 서산기지를 이륙해 미 공군의 공중급유를 받으며 알래스카주의 아일슨 공군기지로 이동했다. 공군 전투기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한반도를 벗어나 해외 연합훈련에 참가한 것은 지난해 F-15K에 이어 두 번째로 KF-16 기종으로는 처음이다.

 KF-16D 전투기 6대가 8100Km를 10시간 비행하는 동안 미 공군 공중급유기 KC-135 3대가 11차례에 걸쳐 공중급유를 지원했다.

 전투기 훈련은 항공차단, 방어제공, 공세제공, 긴급표적공격, 근접항공지원, 정밀유도폭탄 투하 등으로 구성된다. GBU-10, GBU-12, JDAM 등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는 훈련은 국내에선 주로 해상에서 실시되나 알래스카에는 내륙 사격장이 있어 이동표적에 대한 정밀공격훈련도 가능하다.

 공군은 레드플래그 알래스카 훈련을 통해 전투계획 능력, 공간관리 능력, 전술전기, 공격편대군 능력을 점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송기 훈련은 저고도 침투 및 화물투하, 비상활주로 이착륙 훈련 등으로 구성된다.

 

 ■KF-16의 높아진 위상

 

 레드플래그 훈련 참가로 태평양을 건너게 된 KF-16의 위상은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F-15K 6대가 대구기지를 이륙해 알래스카 미 공군 기지까지 갔다. F-15K는 알래스카 기지로 가는 동안 미 공군 공중급유기로부터 7차례 공중급유를 받았다.

 군 당국이 F-15K가 아닌 KF-16D의 레드 플래그 훈련 참가를 결정한 것은 향후 수십년 동안에도 성능개량 사업을 통해 KF-16이 공군의 주력기 역할을 하게 되는 한반도 전장 환경을 고려한 때문이다.

 


 KF-16D가 알래스카까지 비행할 수 있는 것은 비행중인 전투기에 연료를 보급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 덕분이다. 군의 계획대로라면 한국 공군은 2017~2019년 공중급유기 4대를 도입하게 된다. 1조원대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진 공중급유기 기종으로는 에어버스 밀리터리의 A330 MRTT와 보잉의 KC-46A 등이 꼽힌다.

 공중급유기의 도움이 있으면 KF-16의 작전시간이 한 시간 이상 늘어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불필요한 비상연료 대신 무장을 추가로 탑재할 수 있게 된다. 현재 KF-16 전투기에 연료를 가득 채우면 충주의 전투비행단에서 이륙하면 교전을 전제로 할 경우 독도에서는 10여분 이어도에서는 5분가량만 작전을 벌일 수 있다. 대구에서 이륙하는 F-15K가 175마일(324㎞) 떨어진 독도에서는 30여분, 285마일(527㎞) 떨어진 이어도에서는 20여분 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매우 열악한 작전 환경이다.

 하지만 공중급유기의 연료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면 KF-16의 작전 거리 능력은 F-15K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필요하다면 24시간 작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군은 현재 F-15K 60대와 KF-16(F-16 포함) 17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공중급유 지원을 받게 되면 군은 구태여 F-15K를 독도나 먼 지역 작전에 우선적으로 보낼 필요가 없게 된다. 공군은 유사시 AESA 레이더를 장착해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KF-16을 빨리 이륙시켜 발빠른 대응을 한 후 최대 무장 탑재량이 2만3000파운드에 달하는 F-15K로 전략 목표를 폭격하면 된다.

 

 ■샌드위치 신세 된 F-15K

 

 대신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예 전투기 F-15K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대당 1000억~1200억여원에 달하는 F-15K는 외견상으로만 보면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전투기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F-15K의 위상은 시간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오히려 하이급 F15-K의 전진 배치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할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KF-16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하는 KF-16 성능개량 및 정비 관리사업 때문이다.

 정부는 KF-16 개량사업을 통해 2020년쯤까지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KF-16 전투기 내부의 임무컴퓨터를 최신 장비로 교체하고, 레이더를 F-15K에도 장착되지 않은 다기능위상배열레이더(AESA)로 교체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70도에 불과한 레이더의 탐지각이 100~120도까지 넓어지는데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KF-16은 또 개량사업을 통해 전술 데이터 링크의 표준인 링크 16(Link-16)으로 연계돼 함정 및 지상군과 함께 거의 실시간으로 전술 사진을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지상군 및 해상 전력과의 합동작전 능력이 크게 확장되는 것이다. 가동률 역시 크게 향상된다.

 군은 또 한국형전투기(KF-X)의 형상을 2개의 엔진이 장착되는 C-103으로 최근 확정했다. KF-X 사업은 2025년부터 국산 전투기 120대를 만들어 노후 기종인 F-4, F-5를 대체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 20조 원의 국내 단일규모 최대의 무기 도입 사업이다. 쌍방 엔진 전투기이면 2000파운드(약 910kg) 이상 중무장을 할 수 없는 단발 엔진에 비해 무장 능력이 크게 높아진다. 이는 군의 유사시 작전에서 F-15K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F-15K는 60대 3개 대대 전력에서 더이상 늘어나지 못하고 KF-16을 보완하는 성격이 돼버린 감이 있다. 군이 차세대 전략기로 F-35 스텔스 전투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더 이상 주문 물량이 없어 F-15K는 앞으로 단종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부품 조달이 힘들어진다.

 

 

 4년 전에도 F-15K는 수리 부품이 모자라 10대 가운데 1.4대꼴로 ‘비행 열외’ 상태인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열외 사유는 수리 부품이 모자라서 같은 기종의 고장 난 전투기에서 필요한 부품을 빼내어 임시방편으로 돌려막기(동류 전용)를 하기도 했다. F-15K를 생산하는 보잉사는 생산이 중단될 경우를 전제로 향후 30년간 사용할 부품을 미리 주문할 것을 한국 공군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인 F-15K가 주력기의 위상을 KF-16에 다시 넘겨주고,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전투기에게는 전략 무기 지위를 넘겨줄 위기에 처하면서 F-15K 조종사들의 사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 시제기를 넘겨 받아 태평양을 넘어 비행했던 조종사 들 상당수는 이미 전역한 상태다.

 

 군 관계자는 "F-15K는 대구의 11전투비행단에서만 운영하다 보니 조종사들이 11전비 소속 3개 비행대대 내에서 다람쥐 쳇바퀴식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되버렸다"며 "게다가 이들이 갈 정책이나 사업부서도 마땅히 없다 보니 전역한 사례가 꽤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해군에서 전략무기인 잠수함을 도입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해군이 209급 잠수함을 처음으로 들여 왔을 때는 해군 내 최고 엘리트 장교들이 잠수함 근무를 지원했지만 나중에는 열악한 수중 근무환경과 낮은 장군 진출율과 겹쳐 지원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군은 F-15K를 공군 기지 여러 곳에 순환 배치하는 방식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등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응해 정부가 제주도 서남방 이어도 및 거제도 남방의 홍도 상공까지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확대 선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공중급유기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공군은 미확인 항공기가 이어도 남방 236㎞ 지점에 접근할 경우 탐지, 경고 절차를 거쳐 대응 출격해야 한다.

 

 현재 이어도 수역까지 작전 가능한 기종은 두 개의 엔진이 탑재돼 비행거리가 긴 F-15K뿐이다. 이제 마지막 4세대 전투기인 F-15K는 한국 공군의 '중추 전력'이라기 보다는 향후 KF-16과 F-35의 '틈새 전력'으로 분류되는게 아닌가 싶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국방부를 출입하던 10년쯤 전에 ‘육군 병사 중 자살 우려자가 약 1만명에 달한다’는 단독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군 당국은 그런 통계를 낸 적이 없다며 기사의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던 군이 최근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10년 전 기사 내용을 뒷받침하는 여러 통계자료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현역 입영자 32만2000명 중 심리이상자가 2만6000여명이었다는 수치도 그중 하나다. 그러면서 육군은 병역자원 부족으로 징병 대상자 대부분이 현역으로 입대함에 따라 심리이상자도 대거 야전부대에 배치되고, 매년 군 적응에 실패한 병사 7000명이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육군이 발표한 ‘군 복무환경’ 자료에 따르면 징병 대상자 현역 판정 비율은 1986년 51%에서 1993년 72%, 2003년 86%, 지난해 91%로 꾸준히 상승했다. 병역자원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2022년이 되면 현역 판정비율이 98%에 달할 것으로 병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사실 군 입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신체 건강한 자원만이 군복을 입어야 정상적인 군대다.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하려면 학력이 고졸 이상이어야 하고 영어, 수학, 과학, 인지능력 시험에서 99문제 중 3분의 1인 33문제 이상을 맞혀야 한다. 비만 또는 과체중도 안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자원 부족을 이유로 징집해서는 안되는 인력까지 군복을 입힌 후 마치 소고기처럼 편의적으로 A, B, C등급으로 분류해 관심병사를 양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군의 상비병력을 52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이 중 40% 이상을 간부로 편성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과도 배치되는 일이다.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 군의 상비병력은 현재 63만3000명에서 2022년까지 52만2000명으로 11만1000명이 줄어들도록 돼 있다. 특히 육군은 현재의 49만8000명에서 38만7000명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감축해야 하는 11만1000명 모두가 육군 몫인 것이다.

그럼에도 군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예산을 핑계로 병력감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10여개 사단, 1만여명이 맡던 경계근무를 수개 경비여단, 5000여명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운영되더라도 육군은 적 침투 등 비상시 투입인원과 시설 유지·보수 인력 등을 이유로 최전방 병력을 줄이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백승주 차관(오른쪽)과 박대섭 인사복지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 김유근 육군참모차장(세번째) 등이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병영문화 개선 관련 현안보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다. _ 연합뉴스


윤 일병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구성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에서도 병력 감축을 통해 병사들의 자질을 높이는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병영문화와 병력 감축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군에서 관심병사가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 자체가 육군의 병력 충원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방부 역시 두 사안의 연관성을 알면서도 병력 감축 문제는 장기과제로 병영문화 혁신위에서 다룰 성격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병역법을 개정해 상근예비역의 경우에는 현행 21개월의 군 복무기간을 공익근무요원들처럼 24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찌 보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떡 본 김에 제사지내겠다’는 식이다.

국방부는 또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 군인들로만 이뤄진 ‘작전기강 분과’를 제4분과로 추가해 설치했다. 국방부는 병영문화 개선책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제4분과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지만 여기서 1~3분과의 권고사안을 군사 작전적 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사실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2005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진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는 장병 기본권 증진을 위한 여러 가지 연구된 개선안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반복되고 있다. 국방부를 오래 출입한 기자들의 경우 군내 악성사고가 나면 군의 발표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군이 내놓을 대책에 관한 기사 며칠치를 눈감고도 미리 쓸 수 있을 정도이다.

근본적인 사고 발생의 토양을 제거하지 못하면 입에 발린 대책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병영문화뿐만이 아니라 병력 중심의 한국 지상군 전력에 대한 정밀 점검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성진 디지털뉴스편집장

Posted by 경향 박성진

 

 세계군인체육대회는 다른 민간인 스포츠 대회에서는 볼 수 없는 5개의 군사 종목이 있다. 철인 5종과 비슷한 개념의 육군 5종, 해군 5종, 공군 5종, 고공강하, 독도법(오리엔티어링) 등이 그것이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보느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금메달을 딴 선수의 기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싱그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만 봐도 국민들은 즐겁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국가의 스포츠 금메달리스트는 상황이 달랐다. 세월을 거슬러 일제 치하였던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으로 가보자. 마라토너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일본 국가가 연주되자 시상식에서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당사자의 심정이 그랬으니 국민들의 감정은 오죽했을까. 그런 정서를 담아 당시 동아일보는 시상식에 선 손기정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 신문을 만들었다.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손기정이 금메달을 목에 건 지 16일 뒤였다. 그런데 이 일장기 말소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챈 곳은 일본군이었다. 일제시대 당시 서울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20사단 사령부는 당일 오후 4시쯤 배달된 동아일보에 실린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가 지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조선총독부에 이 사실을 즉각 통보했다.

 세계군인체육대회 4년마다 열려

 이를 보고받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는 책상을 치면서 매우 격노했다. 하지만 신문은 이미 태반이 발송과 배달이 끝난 상태였다. 조선총독부는 그 분풀이를 신문사에 퍼부어 관련자 여러 명이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일장기 말소사건도 어찌 보면 일본 군부가 스포츠 보도에 개입한 사례였다.

 권투선수 홍수환은 4전5기의 주인공이다. 홍수환은 1974년 7월 15일 남아공에서 벌어진 WBA 밴텀급 타이틀 매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때 했던 유명한 말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였다. 그리고 나서 홍수환은 “첫째도 군인정신, 둘째도 군인정신 덕분입니다”라고 승리의 소감을 밝혔다.
 

                                                      <홍수환 전 권투선수>


 당시 홍수환은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인 국군수도경비사령부 제5헌병대대 본부중대 소속 현역 군인으로, 계급은 일병이었다. 홍수환의 군인정신 강조는 현역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나온 소감이었다.

 홍수환은 중년의 나이가 되고 나서도 군부대 강연에 자주 나서고 있다. 그때마다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누구에게나 한 방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라”며 자신의 현역시절 때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인기 강사다.

 군인들도 올림픽을 치른다. 매 4년마다 세계군인체육회(CISM)가 개최하는 세계군인체육대회가 그것이다. 국제군인스포츠연맹으로도 불리는 세계군인체육회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 군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세계 평화를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1948년 설립됐다. 

 무력을 사용하는 군이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룬다는 대목이 약간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세계군인체육회는 세계 133개국이 회원국이고, 한국은 1957년 가입했다.

 세계군인체육회의 조직도 국제스포츠위원회(IOC)처럼 스포츠, 연대(連帶), 재정, 홍보, 마케팅, 규율, 의료 등의 다양한 분과위원회를 거느리고 있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1995년 9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제2회 대회는 1999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제3회 대회는 2003년 이탈리아 카타니아, 제4회 대회는 2007년 인도 하이데라바드, 제5회 대회는 201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2015년 경북 문경대회 엠블럼 논란

 한국군은 1999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 참가해 5위를 했던 것이 그동안 거뒀던 가장 좋은 성적이다. 당시 한국 팀은 크로아티아 현지로 출국하기 한 달 전부터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고 낮 12시에 일어나는 시차적응 훈련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년에는 세계군인체육대회가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경북 문경에서 열린다. 주최측인 한국 국방부는 세계 100여개국에서 87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에서 문경으로 모여든 군인선수들은 24개 종목에서 경기를 펼치게 된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다른 민간인 스포츠 대회에서는 볼 수 없는 5개의 군사 종목이 있다. 철인 5종과 비슷한 개념의 육군 5종, 해군 5종, 공군 5종, 고공강하, 독도법(오리엔티어링) 등이 그것이다.

 육군 5종은 참가 선수가 수류탄 투척과 수영, 장애물, 사격, 야지 횡단 종목들을 차례로 해내야 한다. 해군 5종은 구명수영과 실용수영, 장애물, 수륙횡단, 함상기술 등으로 이뤄졌고, 공군 5종은 사격, 수영, 펜싱, 구기, 탈출 등으로 구성됐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구기’는 농구의 자유투로 정확도를 측정하는 종목이고, ‘탈출’은 독도법(오리엔티어링)을 활용해 장애물을 돌파하는 스포츠다. 여기서 독도법(오리엔티어링)은 말 그대로 지도를 보는 방법으로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내용을 해독하는 법을 말한다. 육군 5종 경기의 한 부분인 수류탄 던지기는 한때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의 체력측정에 사용됐던 종목이기도 하다.

         <경북 문경 시민들이 2011년 3월 2일 문경시청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 실사단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2015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상징물은 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검은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다. 이 삼족오를 놓고 찬반 의견이 만만치 않다. 

 삼족오는 고구려가 국기로 사용한 우리 고유 상징인 만큼 문경대회 상징물로 손색이 없다는 입장과, 삼족오는 일왕을 숭배하는 일본 내 우익단체와 일본축구협회가 사용하는 왜색 상징물이라는 비판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학계 일부에서는 삼족오가 고대 동북아시아의 태양숭배사상과 샤머니즘의 산물로 중구과 일본, 이집트 등의 고대신화에도 등장해 고구려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삼족오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엠블럼으로 외국에서는 일본을 연상하는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 우익단체의 상징 깃발에도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옛 고구려가 국기로 쓴 삼족오를 일본 우익단체와 축구협회가 사용하는 것은 그간 우리나라가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삼족오를 우리 것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북한은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면 마치 눌렸던 ‘용수철’이 튀는 것처럼 반발한다. 지난주 남북한이 합의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큰 난관에 봉착했던 것도 북한이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에 과도하리만큼 집착했던 탓이다.


 지휘소훈련(CPX)인 키 리졸브 훈련은 실제 한·미 전력이 참여하는 폴이글 훈련과 연계해 이뤄진다. 한반도에서 한·미연합군이 실시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단호한 결단’이라는 뜻이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의 원활한 전개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키 리졸브 훈련은 전시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병력의 ‘수용·대기·전개·통합’ 훈련을 의미하는 RSOI 훈련이 한·미간 전작권 전환 합의 이후 명칭이 바뀐 것이다.

 



 맞대응 훈련으로 인한 막대한 ‘소모전’


 

 한·미가 키 리졸브 훈련과 연계해 실시하고 있는 폴이글 훈련은 비정규전을 대비한 것이다. 영어로는 ‘Foal Eagle’인데 ‘Foal’은 ‘나귀의 새끼’라는 뜻으로 미 제1공수특전단의 별칭이다. ‘Eagle’은 독수리로, 우리나라 제1 공수특전여단의 별칭이다. 

 ‘Foal Eagle’이라는 명칭은 미군 1공수특전단과 한국군 1공수특전여단이 한·미 연합 특수전 훈련에 최초로 함께 참가하면서 비롯됐다. 일부에서는 폴이글 훈련을 독수리 연습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폴이글 훈련에는 군단급, 함대사령부급, 비행단급 부대의 한국군 20여만명과 주로 해외에서 증원된 미군 1만여명이 참가했다. 또 괌에서 B-52가, 미 본토에서 B-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전개되기도 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한·미가 훈련을 하기 시작하면 북한군의 ‘스트레스 지수’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간다. 어쩔 수 없이 한·미의 전력 수준에 맞춰 대응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RSOI 훈련’의 전신으로 1990년대 초까지 매년 실시됐던 팀스피리트 훈련 시기만 되면 사실상 준전시 상태로 돌입, 주민들이 비상식량을 챙겨 지하갱도에 들어가는 대응훈련을 하기도 했다. 북한은 ‘적 연합군’ 수십만명이 한반도에서 전쟁연습을 하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 훈련 상황이 생기면 북한은 이로 인해 막대한 인원과 물자를 동원하는 맞대응 성격의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소모전’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북한은 키 리졸브 훈련을 방어용이 아니라 ‘침공을 위한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미국이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과 관련한 궤변을 하고 있다”면서 “평양 타격을 노리는 전쟁연습을 어떻게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느냐”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군이 건설·어업·무역 등 다양한 경제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런만큼 키 리졸브와 같은 한·미 군사훈련이 벌어지면 그 기간동안 북한군이 경제적 부문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군사적으로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지금까지 북남관계는 남조선에서 해마다 거듭되는 전쟁연습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받아 왔다”고 밝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남측은 북한의 도발 등에 대해 응징적 차원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참가 전력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등의 ‘하이키’(high-key)로 훈련을 진행한다. 이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핵추진 항공모함과 B-2 또는 B-52 전략폭격기의 공개다.


 B-52 전략폭격기 등장에 강력 반발

 

 북한은 해마다 키 리졸브 훈련에 대한 비난을 거르지 않고 있다. 2009년에는 훈련을 빌미로 개성공단을 차단했고 2011년에는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며 남측을 협박했다. 2012년에는 “거족적인 성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반도 긴장을 높였다.

 

 

2013년 3월 키 리졸브 훈련 모습. | 서성일 기자


 지난해에도 미군의 B-52, B-2 전폭기와 핵잠수함 등 핵공격이 가능한 전력이 훈련에 앞서 한반도에 전개됐다. 그러자 북한은 “핵 전면 대결전의 선전포고”라면서 키 리졸브 훈련 하루 전날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했다. 나아가 남북간 전화선을 단절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개성공단 잠정 폐쇄의 꼬투리로 삼았다.

 일부에서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북한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을 줄 수 있는 제재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있을때마다 한·미가 이를 응징하는 조치로 합동군사훈련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가 북한 자극을 피하고자 할 때는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의 전력 공개를 피하거나 아예 항모나 전략폭격기를 보내지 않는 ‘로 키’(low-key)로 훈련을 진행하는 게 관행이다. 올해의 경우 한·미는 이산가족 상봉 등을 포함해 남북간 접촉에 걸림돌을 만들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훈련에 참가하는 미군의 전력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2014년 키 리졸브 훈련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바로 ‘하늘의 요새’로 불리는 B-52 전략폭격기의 등장 때문이었다. 당초 핵 항모와 B-2, B-52 전략 핵폭격기는 훈련에 참가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이 B-52 기동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B-52 폭격기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탑재된 핵추진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우산’ 전력의 하나다.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남측과 키 리졸브 훈련 일정이 일부 겹치는 ‘2월 20~25일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B-52가 한반도에 출현한 것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북한의 속내는 한·미가 연합훈련의 강도를 낮추면 이 과정을 통해 긴장 완화를 모색한 후 나름대로 경제 건설에 집중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었는데 이것이 어긋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B-52가 미 공군의 사격 훈련장인 군산 앞바다 직도에 등장했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부와 협의된 사항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부터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해 한·미가 공동으로 마련한 ‘맞춤형 억제전략’이 처음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미군의 핵우산 전력인 B-52 전략폭격기의 참가는 불가피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의 ‘맞춤형 억제전략’은 전시와 평시 북한이 핵과 WMD 사용을 위협하는 단계에서부터 직접 사용하는 단계까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이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신은 많은 병력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수의 편에 선다”는 말이 있다. 군 저격수의 중요성을 지적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이 저격수들이 사용하는 총이 바로 저격용 소총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군 저격수는 외국산 저격용 소총을 사용했으나 이제는 국산 소총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초정밀 7.62mm K-14 저격용 소총(Sniper)이 12월부터 우리 군에 본격 공급되면서 전력화된 것이다.

 

   <S&T모티브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 군에 공급한 K-14 저격용소총 사격모습./S&T 모티브 제공>

 

 유효사거리가 800m인 이 저격용 소총은 국내 유일의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인 ‘S&T모티브’가 독자 기술로 개발한 것으로 군은 특전사와 해병대 등 일부 특수부대에 먼저 보급하고 있다.


 

 저격용 소총은 100야드 거리에서 1인치 내에 탄착군을 형성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MOA·Minute of Arc)을 통과해야 하는 초정밀 기술을 요구한다. 이번에 전력화된 K-14 저격용 소총은 90여m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명중시킬 수 있는 성능이라고 방위사업청은 밝히고 있다.

 

 저격용 소총은 대테러전을 비롯한 현대전에서 필수적인 화기로 꼽히고 있다. 특히 특수부대와 보병부대 저격수들의 필수품이다. 한국군은 그동안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저격용 소총을 전량 수입해왔다. 이때문에 군에서는 한국 지형과 군의 특수성을 고려한 저격용 소총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S&T모티브를 중심으로 국산화 개발에 착수했고, 이번에 전력화에 성공했다.

 

 <S&T모티브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 군에 공급한 K-14 저격용소총./S&T 모티브 제공>

 

 K-14 소총은 필요할 경우 3~12배율의 주간 조준경이나 4배율의 야간 조준경을 장착할 수 있다. 탄약은 특수 탄약을 사용한다. 방사청은 주간 조준경과 탄약 국산화까지 마무리되면 약 26억 원의 수입대체효과와 함께 해외수출도 쉬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K-14 소총은 요르단에 이어 다른 중동국가에 수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군에서는 해외 귀빈이나 국회의원 등 VIP들이 특전사같은 특수부대를 방문하면 부대에서는 저격수팀의 사격 시범으로 이들을 환영하는 게 관례다. 길리수트라는 독특한 위장복을 입고 100m가 넘는 거리의 과녁에 총알을 한발한발 맞출 때마다 플래카드가 하나씩 펼쳐지면서 “OOOO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내용이 펼쳐진다.

 

 그런데 가끔 플래카드가 펼쳐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는 저격수의 총알이 빗나가서가 아니라 플래카드를 펼쳐지게 하는 장치가 고장났을 확률이 거의 100%다. 왜냐하면 과녁 가까운 곳에는 예비 저격수가 숨어 있다가 시범 저격수의 총알이 빗나갈 기미가 보이면 초탄과 시차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추가사격을 해 표적을 명중시키기 때문이다.

 잠깐 얘기가 엇나갔지만 저격용 소총의 중요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적군 1명을 사살하는 데 소비된 실탄은 무려 2만5000발에 달했지만 저격수는 같은 전과를 얻는 데 평균 1.3발을 사용했다.

 

 영어로 저격수는 스나이퍼(Sniper)다. 이는 매우 동작이 빨라 쏘아 맞추기가 지극히 힘든 도요새(snipe)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총을 잘 쏘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저격수들은 상당수가 어린 시절부터 총을 잡고 사냥으로 끼니를 해결해온 ‘생계형 총잡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비의 중요성이 커졌다. 고성능 장비가 곧 ‘원샷, 원킬’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저격수에게는 적의 지휘관이나 포병관측장교, 기관총 사수 등의 특정 역할을 하는 적군을 사살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어디서 날아드는지 모르는 총탄에 지휘관 등의 고급장교나 통신병, 의무병이 차례대로 픽픽 쓰러지면 전의를 상실하기 쉽다.

 

 본격적인 저격수의 역사는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과 함께 열렸다. 그러나 초기의 저격수는 암살자로 경멸받았다. 베트남전 때 미 해병의 저격수 부대는 ‘살인 주식회사’로 통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서의 전설적인 미군 저격수 카를로스가 전쟁이 끝난 지 30년 후에야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것도 저격수에 대한 미군의 인식과 무관치 않다.

 저격수는 희생도 컸다. 미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 투입된 미 제15야전군의 정찰 저격수는 80%의 사망률을 보였다. 베트남전에서도 저격수는 적군에게 붙잡이면 즉결 처형을 당했다.

 

 세계 최고의 사살기록을 가진 저격수는 핀란드 방위군의 시모 하이하(Simo Hayha·1925~2002)로 그는 소련과 핀란드의 분쟁인 겨울전쟁에서 542명의 사살기록을 세웠다. 가장 먼 거리를 저격한 기록 보유자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이다. 그는 2009년 11월 아프카니스탄에서 2475m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했다.

 이제는 저격수의 표적이 사람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무기의 발달로 적군의 차량까지 저격수의 한방으로 폭발하는 시대다. 그런만큼 대부분의 나라가 저격수 양성에 적극적이다. 한국군도 예외는 아니다. 육군이 사단별로 예하 수색·보병대대 저격수들을 대상으로 최고 저격수를 선발하는 사격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통상 사격대회에는 100여 명의 저격수들이 참가한다. 대회 참가자들은 축소사격 및 실거리 사격, 기능 고장 시 조치요령 등을 완벽히 숙달해야 한다. 이들은 각자가 표적을 향해 제한된 시간 내에 10발을 쏜 후 표적 중앙으로부터 탄착된 지점을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가른다.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장병에게는 ‘톱 스나이퍼(Top-sniper)’란 명예가 주어진다.

 

 저격수는 건물이 많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2차대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소련군 전설의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와 독일군 귀족 출신 저격수 에르빈 코니그가 맞대결을 펼치는 장소도 스탈린그라드의 도심이다.

 한국군도 유사시 시가전에 대비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예비군 저격수 양성에 나섰다. 서울 지역 예비군의 47%를 관리하는 육군 52사단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K-14 저격용 소총을 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북한 신군부 3인방

 

 장성택의 처형으로 북한 권력구도가 요동을 치면서 북 군부 인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사실상 병영국가임을 감안하면 군 수뇌부의 권력지도가 향후 북한의 움직임을 점치는데 청사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도하 언론보도들을 종합하면 50~60대 소장파들이 군 수뇌부에 입성하면서 북한군의 세대교체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 서열 1위인 최룡해 총정치국장(63)을 제외하면 리영길이 북한군 권력 서열 2위에 해당하는 총참모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리영길은 상장계급으로 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있다가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총참모장 자리를 꽤찬 것으로 보인다. 리영길은 2002년 4월13일 군장성급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한 바 있다. 북한군 총참모장은 우리 군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북한 육해공군을 통합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총참모장은 전쟁을 개시하고 지휘하는 임무도 수행해야 한다.

 

 리영길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중부전선의 강원도 철원을 맡고 있는 북한군 5군단장이었다. 그러니까 전방 지휘관인 5군단장에서 김명국 상장의 후임으로 전쟁지휘부의 핵심 포스트인 북한군 작전국장으로 발탁이 됐다가 10~11월쯤 군 서열 2위인 총참모장으로 서열이 뛴 셈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이미 마음속으로 리영길을 총참모장으로 내정한 후 총참모부 작전국장 자리에서 트레이닝 시킨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한군 총참모장은 3명이 교체됐다. 김정일이 임명한 총참모장 리영호를 시작으로 현영철(64) 김격식(75) 리영길 순서다.

 

 남측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1군단장에서 발탁 임명된 장정남이다. 인민무력부장은 김정각에서 김격식으로, 이어서 장정남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75세의 김격식에서 50대 소장파인 장정남으로 인민무력부장직이 넘어감에 따라 북한군 수뇌부에서 70대 노장파는 모두 퇴출됐다. 북한 인민무력부는 국방위원회 산하 군사집행기구로 대외적으로 북한군을 대표한다.

 

 리영길과 장정남의 군 수뇌부 배치로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시작된 북한군 세대교체 작업은 마무리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김정은은 당중앙 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등 정책 결정 회의를 정상화하고 군단장급 간부 70%를 새로 임명하며 강등과 복원을 반복하며 집권 초반부터 충성경쟁을 유도해 왔다.

 

 현재 북한군 수뇌부는 최룡해 장정남 리영길 처럼 젊고, 충성심이 높지만 정치색은 옅은 이른바 60대 소장파 그룹이 군을 이끌고 있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는 당비서를 지냈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이다. 북한군 지휘성원에 대한 인사권은 총정치국장이 가지고 있다. 이들이 북한에서 장성택 처형 이후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심으로 ‘신(新)군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노동신문을 보면 최룡해 리영길 장정남 등 서열 상위 ‘3인방’ 외에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수길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염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해 4월 최 총정치국장이 직위에 오른 후 약진한 신군부 인사들이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장성택을 체포한 후 재판하고 처형한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가 새삼 뉴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장성택에게 사형을 선고한 곳은 바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입니다. 국가안전보위부 법정에서도 보위부원 2명이 양손이 묶인 장성택의 목과 팔을 잡고 있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의 최고 정보수사조직인 비밀경찰기구입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거의 모두가 현역 군인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는 국방위원회 산하기구로 봐도 무방합니다.

 

 김정일체제에서도 국가안전보위부가 정치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인민보안성을(남한의 경찰청에 준하는 북한의 기관)과 더불어 국가의 양대 주민 사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인민보안성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안전보위가 처음 창설된 것은 1973년으로 정무원 산하 사회안전부에서 정치보위 부분만을 빼내 '국가정치보위부'라는 이름으로 출범했습니다. 당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기관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법적 절차 없이 용의자를 구속하고, 재판없이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조직의 구성은 국가안전보위부장 아래에 6명의 부부장이 있습니다. 이들은 조직, 선전, 인사, 감시, 후방지원, 보안 등 기능별로 관할하고 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장은 인민군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정치군관 출신인 김원홍(68·사진)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역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북한의 비밀경찰인 까닭에 인적 구성의 변동도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운 국가기관의 개편 내용을 발표할 때도 국가안전보위부는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국가안전보위가 구소련의 KGB를 능가하는 악명높은 기관으로 커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무자비한 장성택의 처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장성택의 처형을 선고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의 소장 등 간부들의 계급이 궁금했습니다. 이 계급을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이 조직의 계급구조를 추론할 수 있으니까요.(법정에서 장성택의 머리를 조아리도록 머리를 누르고 있던 국가안전보위부원의 계급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군인들의 계급장은 정복 견장에서 모두 별을 달고 있어 그 계급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급구분은 별의 숫자와 크기, 바탕무늬로 식별해야 하는데 보도된 장성택 재판장 사진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아마도 군 정보기관 등에서는 식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뭏든 결론적으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위상은 북한이 군대에 의한 국가통제를 하는 국가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다뤘던 기사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그에 견주면 그 횟수는 적었지만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기사는 주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감장에서의 질책을 전달한다든지 아니면 러시아 항공기의 카디즈 침범을 다루는 식으로 보도를 꽤 했다.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면 할수록 느낀 점은 NLL과 카디즈는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지뢰밭’이나 ‘시한폭탄’같은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 두가지 사안은 최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NLL은 정국 경색의 뇌관이 되었고, 카디즈는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여기서 일반인들이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 NLL이나 카디즈나 둘 다 우리 정부가 선포하거나 그린 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NLL과 카디즈는 모두 유엔군을 앞세운 미군이 일방적으로 그린 경계선들이다.

 

 ■북방한계선(NLL)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남·북한군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임으로 그었다.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결해 설정됐다. 그런만큼 서해상에는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분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NLL이 국제법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근거가 돼 왔다.

 

 당시, 클라크 사령관은 NLL 설정을 북한에 공식 통보하지 않았지만 한반도 바다가 유엔군과 국군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여서 북한은 NLL을 묵인했다. 실제로 1959년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중앙연감에는 NLL이 군사분계선으로 표시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해군력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1973년부터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차 연평해전을 일으키고 일방적으로 해상분계선을 선포한데 이어 2002년 2차 연평해전, 2009년 대청교전,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도발을 이어 왔다.

 

 군은 남측이 NLL을 실효적으로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법에 관계없이 NLL이 실질적 해상경계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1975년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은 “NLL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으로 국제법에 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방공식별구역(ADIZ)

 

 일본에 이어 중국이 발표한 방공식별구역(ADIZ)에도 이어도가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 정부만 60년 이상 이어도를 방공식별구역에서 빠트리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다른 나라 항공기 접근을 구별하도록 설정된 선이다.

 

 우리 군이 운용하는 한국방공식별구역, 카디즈는 1951년 6·25전쟁때 설정됐다. 동쪽으로는 독도와 울릉도가,

남쪽으로는 제주도와 마라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북한과 중국 항공기를 식별하려고 미군이 제주도 남방까지만 카디즈를 설정하는 바람에 이어도가 빠지게 됐다.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은 18년 뒤인 1969년 카디즈 주변에 설정됐지만, 이어도를 포함했다. 중국이 23일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도 이어도가 포함됐다.

 

 한국 정부는 1963년부터 미국과 일본에 카디즈에 이어도를 포함하도록 조정을 요구해왔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정작 카디즈 선을 그었던 미국은 한·일 양국간 해결할 문제라고 발을 뒤로 뺐다. 일본은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그 바람에 한국 정부는 이어도 해양기지에 헬기로 진입할 때마다 30분 전 일본에 통보를 해왔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관할권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통보없이 외국의 항공기가 들어오면 전투기 출격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우리 공군도 러시아나 일본 전투기가 독도 인접 상공으로 접근할 때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있다.

 

 ■무책임한 미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NLL이나 카디즈 모두 미군이 임의적이면서 편의적으로 그은 선들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NLL과 카디즈는 한반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러나 미국은 NLL로 야기된 남북간 충돌이나 불합리한 카디즈로 빚어진 한일 양국간 문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NLL의 경우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포함해 남북간 충돌이 수차례 빚어졌건만 주한미군사령관은 동맹군인 한미연합사령관 자격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마치 남북간 싸움의 심판인 것처럼 유엔군사령관의 자격으로 “한반도에서 긴장 사태가 악화되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미국이 비협조로 일관해온 카디즈와 관련해서는 급기야 중국까지 방공식별구역 문제에 끼어 들면서 카디즈의 오랜 방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왼쪽 사진은 클라크 사령관> 

Posted by 경향 박성진

 우리 군이 차기전투기(F-X)로 미국의 스텔스기인 F-35A 40대를 우선 구매하기로 한 데 대해서 말이 많다.

 

 

 

 ■ F-35 '블록 3' 도입

 

 F-35A 40대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전력화된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F-35A는 2016년 개발 완료되는 ‘블록3’로 결정됐다. ‘블록3’ 형은 공대공, 공대지 작전 능력과 내외부 무장장착이 가능한 기종이다. 국방부는 내년 중 사업추진 기본전략을 수립하고 협상과 시험평가 과정을 거쳐 F-35A 도입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F-35 프로그램은 개발 과정에서 많은 결함이 발생하고 있어 개발지연 및 비용 상승으로 대당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정부 간 계약인 FMS로 F-35A를 구매하면 기술이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군은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인 ▲항공전자 소프트웨어 및 무장 통합 ▲전자기 방어설계 ▲엔진 통합 ▲비행체 관리시스템 등을 차기전투기 선정업체로부터 이전받을 계획이나 미측이 난색을 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논란 많은 F-35

 

 

 미국에서도 몇 달 전 미국 차세대 주력 전투기인 F-35가 제작 과정의 품질관리에 많은 문제가 있어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미국 국방부의 평가가 나왔다. 미 국방부 감찰관은 보고서를 통해 이 기종의 설계와 제조 분야에서 363가지 문제점을 거론했다.

 

 감찰관  보고서는 이 기종의 생산을 주도하는 록히드마틴과 협력사 5곳의 부실한 품질경영을 비판하고, 그런 경영관리가 F-35의 신뢰성·성능·비용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소프트웨어 관리를 포함한 많은 단점이 앞으로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8개 국가와 컨소시엄을 꾸려 추진하는 F-35 사업은 3957억 달러(약 425조 원)가 투입되는 미국 사상 최대 프로젝트로, 일찌감치 F-35 전투기는 비싼 가격이 단점으로 꼽혀왔다.

 

 미군은 그동안 컴퓨터 작업으로 F-35가 혹시 가질 수 있는 기술적 장애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동시 운전 훈련’(concurrency)을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가져왔다. 성능 확인 등을 위한 완벽한 시험비행이 끝나기 이전에라도 생산을 개시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보고서는 동시 운전 훈련에 경고음을 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F-35는 계속되는 개발비용 상승과 인도지연 등으로 도입을 추진하려는 국가들도 도입 댓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외신들 역시 F-35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숱하게 보도해 왔다.

 

 ■ 일본은 왜 F-35를 택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일찌감치 차세대전투기로 스텔스 성능을 지닌 F-35기 42대를 향후 20년 동안 도입해 현재의 주력전투기인 F4기를 대체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 사업에는 예산만 1조6000억엔(약 23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일본은 처음 4대를 도입한 이후부터는 나머지 댓수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에서 최종 조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일본에서도 F-35는 1대당 99억엔(약 1475억원·부품 교체가격 포함)에 이를 정도로 고가이고 시험 비행 중 동체 균열 등 결함이 발견되는 등 완전히 개발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문제점으로 지적된 적이 있다.

 

 이런 한계를 잘 알면서 일본은 단 한번의 시승 테스트도 하지 않은 채 서류로 검토한 후 F-35를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이 무기수출 3원칙의 사실상 삭제를 그 댓가로 일본 정부에 허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일종의 미·일간 빅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밖에 일본이 F-35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더라도 자체 정밀 기술 바탕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일본이 수 년전 40여년만에 무기수출 금지를 해제했다. 안전보장회의를 열어 무기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대폭 완화해 일본 정부 스스로 무기수출 금지의 족쇄를 푼 것이다.

 

 일본은 1967년 이후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다. 그런데 이 원칙의 ‘예외조치’로 미국 등 우호국가와의 무기 공동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무기의 수출과 첨단무기의 해외 공동개발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차세대 전투기로 미 록히드마틴사의 F-35를 선정하면서 부품 40%를 미츠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이 생산하기로 한 데 따라 ‘부품 수출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기수출 3원칙의 대폭 완화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폈다. 즉, 미국 등과 차세대 전투기·미사일 등 첨단무기의 공동개발과 생산에 나서기 위해서는 일본이 무기수출 3원칙 규정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일본의 무기수출 3원칙의 대폭 완화는 미국의 용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빅 딜’을 했다는 설이 유력했다. 경제 위기로 돈이 없는 미국은 일본의 무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북아 세력의 균형을 꾀하려 했고, 일본은 이 기회에서 무기수출 3원칙이라는 스스로 채웠던 ‘발목의 족쇄’를 풀려고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F-35를 차기전투기 기종으로 선택하면서 자유롭게 무기를 개발하고 숙원이었던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었다. 이는 일본 군대에서 ‘자위대’라는 이름을 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개발 중인 스텔스 전투기 ‘젠(殲)-20’과 ‘T-50’을 2015~2016년 실전 배치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F-35를 선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찌됐든 일본은 F-35를 선택함으로써 미쓰비시(三菱)중공업, IHI, 미쓰비시전기 등 3사가 F-35의 날개, 엔진 등 부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또 스텔스 기술도 상당 부분 공유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16년 완성을 목표로 자체 추진 중인 스텔스 전투기 ‘신신(心神·AD-X)’ 개발도 수월해질 전망이다.

 

 ■걱정스러운 한국의 F-35 선택

 

 우리 정부가 이제 F-35를 선택한 이상 일본의 경우를 충분히 참고해야 한다. 안그래도 F-35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계약 조건처럼 스텔스 기술을 미측으로부터 획득하거나 공동개발 등의 유리한 조건을 넣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합참은 F-35A 도입시 기술이전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사업추진 방식이나 소요량 조정 등의 변동상황이 발생해도 KF-X 기술이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해 KF-X 사업 추진에 영향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며 “KF-X의 일부 항공전자와 무장통합 업무 참여의사, 개발비용 투자에 대한 협의를 미측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발표가 실제 우리 정부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지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형편이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지난달 25일 단행된 국군기무사령관 경질 파동이 점입가경이다.

 

■송영근 전 기무사령관의 국감 발언 파문

 

 

 

 이번 기무사 파동 과정에서 기무사령관 출신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지난 1일 국방위 국감에서 김관진 국방장관을 질책하면서 의미심장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가 “내가 자료를 갖고 있다. 이걸 읽을까”라고 하자 김관진 장관은 “그러는 게 좋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렸다.

 

 작금의 여러 정황을 이해하는 데 송영근 의원의 질의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 그 일부분을 소개하겠다.

 

 (송 의원) 다음에, 기무사 참모장으로 이번에 발탁된 K모 장군. 지난 4월, 장 전 사령관이 인사갔을 때, 참모장 시키라고 장관께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장관) 모든 인사는 건의를 받습니다. 건의 받아서 결심을 합니다.

 

 (송 의원) 있나 없나
 (장관) 그 문제도 대리근무체제였다. 마찬가지로 대리근무체제였다.

 

 (송 의원) 대리든 뭐든, 여하튼 장 전 사령관에게 K모 장군을 참모장 시키란 얘기를 한 적 이 있나 없나
 (장관) 저는 직접 지시한 적 없습니다. 건의를 받아서 한 거다.


 

 (송 의원) 없습니까. 장관님, 지금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K장군, 후배들에게 아주 모사꾼이라고 소문난 거 얘기 들었나
 (장관) 못 들었다.

 

 (송 의원) 당연히 못 들었겠지. 다음, 이번에 합참작전본부장으로 전격발탁된 S모 장군, 수방사령관 시절 부적절 처신한 것들 장 전 사령관에게 보고받은 적 있나 없나
 (장관) 어. 여러가지 사항을 보고를 다 받습니다. 제가. 특별히 수방사령관에 대해 보고받았거나 그런 건 잘 기억이 안나고.

 

 (송 의원) 더 자세히 갈까요?
 (장관) 개인의 인사사항에 대해서 사생활 문제까지 그렇게. 공적으로 거론하시는 것은 부적절하다.

 

 (송 의원) 제가 여기 내용들, 보고한 내용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사사항이라고 하니까 더 이상 밝히지 않겠습니다만은, 굉장히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이 장관에게 보고됐고, 장관님이 그 사람에게 전화건 것 얘기 듣고 있습니다. 굳이 수방사령관 한 지 일년만에 작전 본부장으로 발탁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군대에 작전본부장감이 없었습니까.
 (장관) 어, 특수하고 대단히 중요한 자리에 자질과 능력 갖춘 사람을 선발해서 보임하는 것은 다양한 것이다. 그 당연한 논리에 의해 조치한 거다.

 

 (송 의원) 다른사람, 그 분을 대체할 만한 인원이 잘 없었다?
 (장관) 네

 

 (송 의원) 우리 군대에 이른바 K고 학맥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되고 있다, 국방부 인사기획관 T모 예비역 장군,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장관님 보좌관 출신이죠, Y모 장군, 특히 이번에 기무사 참모장으로 발탁된 K모 장군. K고의 동기 내지 1년 선후배 관계죠
 (장관) 군대 내는 그런 학맥이나 인맥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능력과 품성과 자질, 리더십에 따라 인사발령 이뤄진다.

 

 (송 의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내에는 이들이 앞으로 인사를 전횡할 것이다,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다. 후배들이 굉장히 불안해하고, 이제 눈치보기가 시작되고 있다. 다음, 장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원, 제청 과정에서 다 보셨죠.
 (장관) 그 인사에 대한 사항을 여기서 공개할 수 없다.

 

 (송 의원) 내가 알기로는 참모장, K모 장군 추천된 거 바뀌었습니다. J모 대령, S모 대령 빠지고, 추천도 되지 않은 A모 대령이 됐습니다. 그 빠진 사람이 제청되지 못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장관) 어. 여러가지 인사는 그 조직에 맞는 사람을 선발하게 돼 있다. 정상 절차에 따라 선발했다.

 

 (송 의원) 추천도 되지 않은 사람을 그냥 제청할 수 있나
 (장관) 추천이 됐습니다.

 

 (송 의원) 됐어요? 누가? 전임사령관이 추천했나 후임 사령관이 추천했나
 (장관) 전임 사령관이 했다.

 

 (송 의원) 전임 사령관이? 제가 여기 분명히 밝혔습니다. 다음, 기무사 2부장 인사문제 담당이죠. P장군, 무슨 이유로 전방 부사령관 내보냈죠? 마찬가집니까?
 (장관) 여러가지 자질과 품성이 그 자리에 계속 있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송 의원) 그렇습니까? P장군은 그 인사에 승복하지 않고 전역지원서 냈죠
 (장관) 그 관계는, 전역지원서 냈다고 제가 보고는 받았습니다만, 그러나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송 의원) 기무사뿐 아니라 이번 인사 관련해서 후배들이 본 의원에게 참으로 많은 제보와 전화를 해오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지금 들끓고 있어요. 이런 적을 본 적이 없다. 제가 애정을 갖고 지휘했던 기무사가,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처연한 심정이다. 장 전 사령관은 저에게 무엇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국민들이 내가 무슨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이건 바로잡아야겠다고 하고 얘기를 해 왔다. 장관님, 이번 인사로 장관님의 위상은 추락했습니다. 재임 기간 중 큰 오점을 남기셨다. 대통께 누를 끼쳤다. 할 말씀 해보시죠.
 (장관) 기무사는 시대상황이 변하고, 또 군이 미래를 향해 가는 데 중요역할하는 조직이다. 기무사가 개혁돼야 한다. 개혁에 맞는 사람을 발탁하는 건 당연한 거다. 저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인사했고, 인사결과 합당한 사람 보임 시켰고 기무사를 발전시킬 거다. 그 어느때보다도 발전이 될 거다.

 

 (송 의원) 분명히 지금 후배들이 듣고 있습니다. 에, 마지막으로···,  말을 아끼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러나 송 의원의 발언에 대해 반론을 펴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종의 편견으로 일방적인 한쪽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 적절한 기회에 다뤄보겠다.

 

 

 

■기무사령관의 청와대 보고, 적절한가

 

 이번 파동의 발단은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의 인사 절차와 방식에 대한 비판 보고를 청와대에 하는 게 과연 맞는 가 여부에 서 사실상 비롯됐다.

 

 당사자인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소장·육사 36기)은 “장관의 독단 등을 견제하는 것은 기무사의 고유 임무”라며 “과거 사령관들도 그렇게 (청와대 보고를) 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관진 국방장관은 군령·군정권을 행사는 입장에서 볼때 장 전 기무사령관의 행위를 사실상 ‘항명’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군 기강의 생명인 지휘계통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기무사령관의 청와대 독대는 노무현 정부 때 ‘기무사령부는 국방장관을 보좌하는 직할 부대로 청와대 보고는 국방장관을 거쳐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지했다가 이명박 정부 때 부활했다.

 

 역대 기무사령관들도 엇갈린 발언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기무사령관을 지낸 허평환 예비역 중장(육사 30기)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장관에게 문제가 있으면 (기무사가) 청와대에 보고해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무사가 1차적으로 군내 문제를 국방장관에게 보고하고 바로 잡도록 조언해야 하나 그것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통령 혹은 청와대에 직접 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대중 정부 때 기무사령관을 지낸 문두식 예비역 중장(육사 27기)은 “기무사령관은 국방장관의 부하이기 때문에 우선 장관을 보좌해야 한다”며 “장관을 견제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쿠데타 등을 우려해 군내 동향을 기무사로부터 직접 보고받았지만 지금은 국방장관 보좌가 기무사의 최우선 임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군 관계자들은 군사 쿠테타 같은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기무사령관의 청와대 직보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기무사령관의 청와대 직보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도 과거보다는 덜하다고 해도 여전히 ‘무소불위’적인 기무사가 청와대까지 배경으로 갖게 되면 통제가 안 된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음성적 군동향보고 폐지될까

 

 국군기무사령부는 군내 광범위한 인적 정보망을 통해 수집해온 군내 동향보고 자료를 음성적으로 윗선에 보고하는 관행을 철폐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기무사에 대해 ‘동향보고 음성적 보고관행 철폐’ 등을 통해 본연의 임무를 재정립하는 등 고강도 개혁방안을 마련할 것을 재차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무사가 군사령부에서부터 말단 부대에까지 파견된 부대원들을 통해 군내 동향 정보를 수집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이를 지휘계통이 아닌 윗선에 직보해 온 관행을 철폐하라는 취지의 지시였다는 국방부의 설명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기무사는 조직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국방장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군 통수권자의 의지에 따라 기무사는 군내동향보고를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장군들

 

 이번 중장·대장급 군 인사를 국방장관의 독단으로 단행했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진급자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국방장관 계열, 청와대 안보실장 계열, 경호실장 계열, 국정원장 계열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고루 섞여 있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핵심은 이들 인사들이 진급할만한 자격이 있느냐 여부이다. 기무사가 비판한 인사들 상당수는 MB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 정권 수혜자 명부’라는 기무사의 살생부에 이름이 올려져 ‘변방’으로 내쫓겼다가 김관진 장관의 취임과 함께 ‘복권’됐다.(기무사는 ‘살생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군 내부에서는 MB 정권 기무사의 살생부에 따라 노무현 정권 당시 중요 직위자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숙청당했다고 여기고 있다)

 

 또 고명현 준장(육사 37기)의 경우 8차 진급자이다. 이는 국정원장의 몫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외에 청와대 경호실장이나 안보실장이 챙겼다고 해석될 수 있는 인사들이 진급자에 포함돼 있다.(심지어 군내에서는 진실 여부를 떠나 해군 출신 합참의장이 최초로 탄행한 것에 대해서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해군 출신이어서 가능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김 실장은 해군 법무관 출신이다)

 

 인사라는 게 통상 그렇듯이 결과를 놓고 인맥을 연결시키면 모두 그럴듯한 해석이 가능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청와대와 국방부는 적어도 군 인사를 하는데 한배를 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이 군 인사를 비판한 것은 청와대를 같이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김 국방장관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육사 생도 때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소위 ‘독일 육사’ 출신들을 챙기는 인사전횡을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독일 유학파 장성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파라는 군내 평가와 맞서는 부분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기무사의 ‘살생부’에 올랐던 김모 장군의 기무사령관설이 나돌자 위기의식을 느낀 기무사가 장경욱 전 사령관을 앞세워 ‘일’을 저질렀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육사 41기

 

 지난 25일 발표된 중장급 이하 장성 진급 인사에서도 진급 적기를 넘겨 진급한 군인이 30여명을 넘었다. 심지어 37기 8차 진급자까지 나왔다.(미군은 진급 적기를 심각하게 따지는 것 같지 않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 장군은 나이 47세가 될때까지 소령 생활만 16년을 하고 나중에 원수까지 됐다.‘먀셜 플랜’으로 유명한 미국의 조지 마셜 장군은 소위 임관 14년 뒤에야 소령 진급을 했고, 중위 계급장만 9년을 달았다)

 

 이에 대한 군내 반응은 엇갈린다. 능력이 있으면 기수에 관계없이 진급해야 한다는 측이 있는가 하면, 인사적체 현상을 낳아 군내 불만 요소로 작용한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진급 적기가 지나고도 진급이 이뤄지는 바람에 일선 부대에서 적기가 지난 인사들도 최대한 버텨보자는 풍조가 생겼다는 말도 있다”면서 “이 때문에 진급 적기에 든 군인들이 오히려 탈락하여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뭏든 김관진 국방장관의 등장과 함께 진급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 장교들이 있다. 바로 육사 41기생들이다. 이번 인사에서도 육사 41기 선두주자들이 ‘물’을 먹고 사단장 진출에 실패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단장 진출 ‘0순위’로 꼽히던 국방부와 합참 작전본부 특정부서 근무 후보자들이 사단장에 나가지 못한 것이다. 연합사에서도 대거 진급 잔치가 벌어졌는 데 정작 유력했던 41기생은 탈락했다. 군 장교들의 인사문제 담당 부서인 기무사 2부장으로 있다가 전방부대 부사단장으로 발령난데 반발해 전역지원서를 제출한  박모 부장도 41기생이다.

 

 41기생들은 이같은 인사의 배후에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최측근인 Y모 장군 등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경기고 출신들을 꼽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경기고 출신 챙기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런데 군내 경기고 출신 영관급 이상 장교들은 의외로 많다. 육사 입교생도 많았다는 얘기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과 김태영 전 국방장관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경기고 출신이다.)

 

 

■육사 37기

 

 전 기무사령관이 청와대 역린을 건드렸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육사 37기인데 그 동기들이 이번에 문제를 일으킬 소지 있으니 중책을 주지 말라고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식의 얘기다. 그 중심에는 수방사령관에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1년만에 자리를 옮긴 3성 장군이 있다.

 

 

 장 전 기무사령관은 이 3성 장군의 수방사령관 시절 잦은 저녁 외출에 대해 경고를 하고, 이를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정황은 송영근 위원의 국방위 국감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기무사는 이 3성 장군이 사적인 외출 후 누구를 만났는지도 다 체크했을 개연성이 크다.

 

 통상 수방사령관은 서울이 자신이 관할하는 위수지역이지만 사적인 용무로는 부대와 공관을 떠나지 않는 것이 상례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수방사령관 시절 사령관 공관을 '창살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가족들은 밖으로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지만 정작 사령관인 자신은 공적인 외출 외에는 나갈 수 없는 처지를 빗댄 말이었다. 


 

 아뭏든 기무사가 경고까지 한 이후 상황에서 이 3성 장군의 37기생 동기인 이재수 장군이 신임 기무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차기 국방장관

 

 군 외부에서는 이번 기무사 파동을 놓고 배후설이 흘러 나오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MB 정부에서 임명됐고, 현 정부에서 ‘지분’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교체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차기 국방장관 후보로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한민구 전 합참의장, 남재준 장군의 측근인 예비역 장군 등이 거론되고 있다.

 

 덩달아 청와대에 포진하고 있는 군 출신 인사들의 암투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은 누가 밀었고, 누구는 누가 밀었고 등 하는 얘기들이 그것이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기무사에선 무슨 일이?(기무사령관은 왜 짤렸나)

 

 

 국군 기무사령부 사령관이 6개월만에 전격 교체되고 참모장 등 주요 간부도 경질되는 등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이뤄진 데 대해 뒷말이 여전히 무성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절친한 고교·육사 동기인 이재수 중장(육사37기)이 군 정보기관의 수장 자리인 기무사령관으로 오면서 장경욱 전임 사령관(육사36기)은 취임 6개월만에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짐을 꾸려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장 전 사령관은 인사 제청이 이뤄질 때까지도 본인의 경질을 에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무사령부 직원들은 장군 인사 발표날 사령관과 참모장이 직무대리 꼬리표를 떼면서 별 하나씩을 더 달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축하 꽃다발과 함께 다과회까지 준비했다가 모두가 황망해 했다고 합니다.

 

 장 전 사령은 후임 보직도 받지 못해 전역하게 됐습니다. 김선일 전 참모장(육사40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수 신임 사령관은 주말인 26일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참모장과 국방부 기무부대장 등 주요 간부 인사 조치도 단행했습니다. 기무사의 기존 주요 간부 대부분은 이제 전역하거나 한직인 야전사단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됩니다. 기무사 부장 중 한명은 사단 부사단장으로 전출되는데 대해 반발해 전역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장 전 사령관이 경질된 데는 김관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와 인사에서 이견을 보인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대다수 언론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문제가 확대되는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과 관련해 기무사령부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인사 태풍’은 기무사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분석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기무사가 방첩 임무는 물론, 군내 정보를 수집하는 핵심 정보 기관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기무사를 다잡으면서 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란 해석도 등장했습니다. 기무사가 군 보안과 방첩(防諜) 관련 군내 정보를 수집하고, 내란·외환(外患)·반란죄에 대한 수사 권한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나 지난 다음에 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무사령관을 돌연 경질하고 간부들까지 대거 교체한 ‘인사 태풍’은 다분히 ‘꽤씸죄’ 성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무사령관이 취임 6개월 만에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교체된 경우는 1993년 3월 서완수 기무사령관이 회의 중 전화로 교체를 통보받는 형태로 전격 경질된 뒤 처음이라고 합니다.

 

 장 전 사령관은 중·대장급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에 군내 여론 동향을 보고하면서 “지난 정권에 이뤄졌던 군인사의 난맥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청와대의 코드와는 별로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에 대해서는 측근들을 중용한다는 식으로 인사를 잘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달해 장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 전 사령관은 역풍을 맞고 군복을 벗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장 전 사령관이 경질되자 과거 ‘찌라시’에서 언급됐던 기무사와 국방부 기자단과의 간담회까지 도마에 올랐습니다. 장 전 사령관이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여성 비하적 발언을 했다느니, 구태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느니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석 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찌라시의 내용은 상당부분이 부풀려지고 왜곡된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는 기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추석 선물을 보낸 것이 방송 뉴스로 보도된 것도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기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는 것은 오랜 관례입니다. 다만 집으로 보내지 않고 국회로 보내 TV 카메라에 찍혔던 것이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군 인사에 정통한 인사는 위의 모든 것들이 기무사령관을 경질하는데 쪼잔한 일부분으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핵심적인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즉 가장 핵심적인 경질 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알려지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방부를 10년 이상 출입한 경험을 종합해 보면 기무사령관이 경질된 이유는 청와대와 군 수뇌부에 ‘지휘 부담’을 준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청와대가 기무사령관의 보고를 긍정적으로 접수하고, 이를 군 인사에 반영하려면 국방장관부터 시작해 상당수 실세 장군들을 숙청해야 합니다.

 

 청와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기무사령관을 짤라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와대는 기무사령관과 기무사령관이 비판한 군 수뇌부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후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기무사령관 경질을 놓고 “힘쎈 놈이 이기는 거죠”라고 한 군 관계자의 말이 와닫는 대목입니다.

 

 결국 기무사 지휘부가 적절치 못한 판단으로 청와대와 군 수뇌부에 지휘부담을 줬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기무사 지휘부 간부들에게 ‘공동 책임’을 물었다고 해석이 됩니다. 마침 '예정된 기무사령관' 이재수 장군의 존재도 장경욱 건 사령관의 경질에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예정보다 일찍 임명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재수 장군이 기무사령관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은 대부분이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물론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은 결정적인 문제가 드러나 경질됐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역시 기무사 지휘부가 모두 물갈이된 것으로 봐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즉 청와대와 국방장관이 기무사 지휘부 모두의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지요.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과 김선일 전 기무사 참모장은 두사람 다 ‘튀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조용히 업무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기무사 수뇌부 라인업을 짠 이재수 신임 사령관과 김대열 신임 참모장(육사40기)은 색깔이 분명한 편입니다.

 

 이 대목에서 신임 참모장으로 부임한 김대열 장군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대열 장군은 전임자인 김선일 준장과 경기고 동문인데다 육사 40기 동기생입니다. 김선일 준장이 재수해 육사를 들어가 고교는 1년 선배입니다.

 

 김대열 장군은 MB정권 초기에 청와대 근무를 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김선일 준장이 기무사령부 참모장으로 치고 나오는 바람에 인사에서 ‘물’을 먹은 셈이 됐습니다. 그러다 이번 인사에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신임 사령관이 기무사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기무사에서 뼈가 굵은 신임 참모장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모장의 결재가 없다면 주요 보고 사안은 기무사령관에게 전달될 수도 없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군이 합참의장을 포함한 군 수뇌부 인사에 이어 25일 중장급 이하 군 장성 인사가 단행됐습니다.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재수(55·육사37기) 중장(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육군 특전사령관으로 임명된 전인범(55·육사37기), 해군 참모차장으로 임명된 엄현성(해사35기) 소장,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임명된 김용현(54·육사38기) 소장>

 

사 37기 전성시대

 

 진급자만 110명에 이르는 이번 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동기인 육사 37기가 군내 핵심 요직에 포진된 것도 특징입니다.

 

 중장으로 진급한 전인범·엄기학·조보근 소장 등 3명이 육사 37기입니다. 연합사 부참모장에서 특전사령관으로 임명된 전인범 소장은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꼽힙니다.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전임범 장군의 부인입니다. 전인범 중장은 또 군내 최다 훈·포장 수여 기록자인 것으로 기무사는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중 상당수가 미군이 수여한 것들입니다.

 

 엄기학 장군은 노크 귀순사건으로 견책유예 처분을 받았는데 6개월이 지나 진급을 시켰다고 합니다. 또 작전 분야에서의 적임성도 인정받아 진급한 케이스입니다. 조보근 장군은 정보 분야 전문가로 국방정보본부장직을 맡게 됩니다.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재수 중장도 37기입니다. 박지만 회장의 중앙고 동창이기도 한 이재수 장군은 지난 4월 상반기 인사 때 일찌감치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 인사사령관직을 수행하다 불과 6개월 만에 기무사령관직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장경욱 현 기무사령관은 이번에 진급하지 못해 올해 말 전역할 예정입니다. 군 안팎에서는 이재수 중장이 지난 인사 때 진급하자마자 기무사령관으로 바로 보낼 경우 구설수에 오를 것을 우려해 무색무취한 장경욱 소장을 임시로 기무사령관 직무대리로 임명했다는 설이 파다했는 데 결과적으로 맞는 해석이 됐습니다.

 

 육사 37기는 300여 명이 임관했는데 이중 8명이 중장급 직위를 맡게 됐네요.

 

■ '8차' 장군 진급자 등장

 

 이번 인사에서 진급 적기를 놓친 17명이 발탁됐습니다다. 군에서 통상 3차 시기를 지나면 발탁 기회가 없어지는 데 올해는 육군에서만 4차 이상자가 17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늦깎이로 별을 달게 된 지각 진급자 가운데 최대 하일라이트는 ‘8차 진급자’인 고명현 대령입니다. 8차 진급자라 함은 장군 진급 대상자로서 8년만에 진급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육사 37기인 그는 무려 7년 후배와 같이 장군반 교육을 받게 됐습니다. 1차로 장군에 진급한 동기생 가운데서는 벌써 군문을 떠난 전역자까지 있는 판이니 그이 이례적인 진급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의 지각 진급이 더 눈에 띄는 이유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그를 국정원으로 불러 국방보좌관으로 근무시키다가 다시 별을 달아 육군으로 복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정원에 갔을 때도 화제였습니다. 국정원장 국방보좌관은 지금까지 준장 또는 소장이 임명돼 왔던 자리로 대령이 임명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다.

 

 국방부는 “준장 진급의 경우 통상 3차 진급까지만 가능하던 관행에서 탈피하기 위해 4차 이상 준장 진급자를 작년 대비 20%나 늘어난 31명으로 늘렸다”고 친절하게 배경 설명까지 하고 있네요.

 

■ 여전한 ‘영남 편식’과 홀대받은 '3사'

 

 이번 인사에서 육군 소장 진급자는 13명입니다. 이가운데 6명이 영남 출신으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지역 편중’이라느니 ‘지역 차별’이라는 하는 얘기가 또 나올 것 같습니다.

 

 또 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한 3사 출신 가운데 사단장 진출자가 단 한명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출신별 안배로 3사 출신 사단장이 배출되는 게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 한·미연합사 출신의 대약진

 

 전인범 연합사 부참모장의 중장 진급을 포함해 이번 장군인사에서 한·미연합사령부가 7명의 진급자를 배출했습니다. 중장 진급이 1명, 소장 진급이 2명, 준장 진급이 4명 등 총 7명인거지요. 이같은 대량 진급 역시 과거 사례에서 찾기가 힘듭니다.

 

 일각에서는 전작권 전환시기 연기, 미국의 MD 편입 여부 등을 놓고 예민한 한·미간 현안이 많아서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전략이나 작전과는 큰 연관이 없는 수송 병과 진급자 등이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한·미간 군사적 논의 사항이 많아질 것을 대비한 인사라는 것이지요.

 

■ 그밖에

 

 교육사령관으로 임명된 김종배 장군(육사 36기)은 ‘양병 전문가’의 역량을 인정받아 중장으로 진급했습니다.

그는 원래 합참 작전본부 합작과장 출신으로 작전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참여정부에서 중책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이후 부사관학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군 교육 방식과 내용 등에서 그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합참차장에 작전 전문가인 김현집 중장(육사36기, 왼쪽 사진)이 임명됐습니다. 해군 출신인 최윤희 합참의장을 작전적 차원에서 보완하기 위한 인사로 해석됩니다. 하나회 출신인 김현집 중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입니다. 그는 이런 이력으로 인해 진급 심사 때마다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작전 분야에 정통한 그의 능력은 그런 애로사항을 항상 뛰어 넘었습니다.

 

 육사 37기인 신원식 중장이 군단장 보직인 수방사령관에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눈에 띕니다. 군단장은 통상 18개월 이상 근무하는데, 군단장의 법적 임기가 없다하더라도 3성장군 1차 보직에서 2차 보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만 1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뭐가 그리 급했는 지 곱씹어볼 대목같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군 골프 시리즈 ②>

 

 요즘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에서 최근 경질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지난 21일 서울고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지난 17일 (트위터 선거 개입 활동을 한)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해 조사하던 중 국정원 변호사들이 옆에 앉아서 ‘진술하면 고발될 수 있다’며 원장의 진술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장의 진술 거부 지시는 (직권남용이라는) 범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원칙주의자 남재준 국정원장의 직권남용이라~. 잘 연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검사가 헛튼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호방한 성격의 윤석열 검사는 나이 50이 넘어 결혼했다. 물론 초혼이다. 결혼이 늦은 것은 요즘에는 보기 힘든 두주불사형이란 점도 상당부분 작용했겠지만 천성이 검사라 ‘여자’ 보다 사회악을 처단하는 ‘수사’를 더 사랑했던 탓도 있다. 그와 폭탄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대한민국 검사 멋있네”란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는 ‘찌지리’처럼 권력 눈치보는 검사는 절대 아니다)

 

 글이 옆으로 빠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남재준 국정원장으로 가보자.

 

■국정원장의 골프 실력

 

 오늘 글에서 언급하려 하는 것은 남재준 국정원장의 골프실력이다. 남 원장의 실력은 ‘미들홀에 버디’다.

 무슨 말이냐고? 사실 ‘미들홀에 버디’는 골프 얘기가 아니라 폭탄주 얘기다. 그는 현역 시절 윗사람을 모시고 회식을 할 때 “미들홀에 버디를 하겠다”면서 폭탄주를 세모금으로 넘겼다.

 

 그러나 그는 필드에서의 골프는 치지 않는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시절에도 군인의 골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장교들이 회식하면서 골프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군 군대의 장교가 주중 내내 골프를 화제로 삼고 주말이면 골프장을 나갈 바이면 차라지 골프선수가 되지 왜 군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단일 직업군으로서는 군인들이 ‘홀인원’을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이는 군 골프장 벽을 장식하고 있는 ‘홀인원’ 기록자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만나본 장군들 가운데 골프를 치지 않는 군인은 남재준 국정원장이 유일했다. 대부분 장군들은 골프를 사랑한다.

 

■괴력을 발휘한 육군참모총장

 

 한 군 골프장의 언덕배기 이름은 ‘장군봉’이다. 이 언덕을 넘기면 장군이 될 수 있다고 붙인 이름이다. 대령들은 이 장군봉을 넘기기 위해 마치 도끼자루로 장작패듯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그러나 이 장군봉을 넘긴다고 모두 장군이 됐다면 대한민국 군대는 장군들로 넘쳐났을 것이다.(장군봉을 넘기면 장군이 된다는 것은 서울 용산구 삼각지 로터리에 있는 청국장이 맛있는 ‘장군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장군이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골프실력이 상당한 모 장군이 있었다. 그가 계룡대 골프장에서 때린 볼이 한번은 페어웨이 위에 있는 나무의 옹이에 박혀 버렸다.(정확히 몇번 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볼은 한동안 옹이에 박혀 있다가 나중에 굴러 떨어져 사라졌다.

 

 세월이 몇년 흘러 그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그러자 나무의 옹이에는 골프공이 다시 박혀 있었다. 철사줄로 고정이 된 채로. 당사자는 평소에도 과거 나무 옹이에 박혔던 골프공을 힘의 상징으로 자랑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리라. 물론 총장이 골프공을 옹이에 박아놓을 것을 지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총장의 심기를 좋게 해주고자 한 부하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골프공은 그가 참모총장직을 떠나 전역한 후 다시 사라졌다.

 

■추억의 함상 골프

 해군에서는 한때 함상 골프가 이뤄졌다. 군수지원함 같은 갑판이 넓은 군함 위에서 호쾌한 드라이버샷을 날리는 것이다. 순양훈련을 나갈 때면 헌 볼을 가마니채로 담아 가서는 넓은 대양에서 바다를 향해 때리는 일이 드물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은 군함의 함장이나 계급이 높은 사관이 아니면 힘들었다.

 

 함상골프는 전역한 수병이 인터넷에 올려 비판을 하면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남태평양 바다에서 골프공을 석양의 노을을 향해 날리는 맛은 굉장할 것 같다. 물론 공은 물속에 들어가면 분해되는 친환경 골프공이어야 하겠다.

 

■대통령은 왜 군 골프장에 나타났나

 

 역대 대통령들도 군 골프장을 자주 이용했다. 보안이 잘 지켜지고 경호가 용이한 것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에는 대통령이 태릉 골프장에 나타나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특전사 요원들이 불암산 일대에서 경호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인 등과 함께 대통령 전용열차편으로 계룡대 골프장을 찾아 라운딩을 즐긴 적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역시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계룡대 골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군 골프 시리즈 ①>

 

 

■장군들의 일편단심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등 6인은 군 골프장이 폐장하는 추석 명절에도 계룡대 군 골프장의 잔디를 밟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명절에도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사정을 헤아려 이들에게만은 골프장이 폐장한 날에도 ‘나이스 샷’을 외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최윤희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최 후보자의 골프 경력이 문제가 됐다. 야당 의원들은 최 후보자가 2009년부터 지난달까지 248회에 걸쳐 군 골프장을 찾았다고 지적했다. 일주일에 1회 넘게 골프장을 찾은 셈이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합참의장이 되면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사실 군의 골프 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장군들은 더하다. 그러다보니 국정감사의 계절만 되면 국방부 국감장에서 군을 질타하는 단골 메뉴로 군 골프가 등장한다.

 

 국회 국방위원들은 군의 과도한 골프 사랑을 질타하지만 골프를 향한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이동풍이다. 그러다 보니 군 골프를 비판하는 레파토리도 매년 대동소이하다.

 

■누가 치나

 

 군 골프장의 ‘단골 손님’은 ‘별’을 단 장군들이다. 군은 국방부 3곳, 육군 7곳, 해군 5곳, 공군 14곳을 비롯해 전국에서 군 골프장 29곳을 운영하고 있다. 총 320홀 규모다. 여기에다 새로 짓고 있는 골프장 3곳까지 합하면 곧 30곳이 넘을 예정이다.(참고로 전국에는 골프장이 410개 정도 있다)

 

 이용횟수를 보면 2011년과 2012년 육·해·공군 장군 450여 명이 2만2000번 넘게 군 골프장을 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명당 연평균 24.5회 정도니까 2주에 한 번씩 골프를 쳤다고 볼 수 있다.

 

 계급에 따라서는 대령이 연평균 16.9회, 중령이 9.9회, 소령이 4.1회 이용했다. 초급 간부급인 대위는 0.9회, 중위는 0.1회를 이용하는 등 계급이 낮은 군인은 거의 이용하지 못했다.

 

 군당국이 군 골프장은 이름 그대로 ‘체력 단련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논리라면 군의 체력단력도 장군 우선이라는 얘기가 된다. 일부에서는 군 골프장이 ‘별들의 사교장’이라고 비판한다.

 

 게다가 남북긴장 모드가 조성된다든지, 군내 사고가 잇따른다든지 하면 나오는 단골메뉴가 군의 골프 금지령이다. 군 골프장이 체력 단련장이라면 이런 금지령이 나올리 만무하다.

 

 군이 골프장을 체력증진을 위한 ‘체력단련장’이라면서 굳이 고수하는 이유는 각종 세금이 중과세되는 일반 골프장과는 다른 면세대접을 받는다는 점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면세 혜택으로 그린피 등이 싸 18홀 기준 정회원인 현역 군인과 예비역은 1만원대면 골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군 체력단련장 운영통제 훈령’은 군인의 체력단련 및 건전한 여가 선용을 통해 전투력 향상을 제고하고 예비역의 복지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골프장을 설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주말이면 군 골프장 주차장에는 장군들의 관용차량이 즐비하다. 몇년전 국감때만해도 국방부나 합참 등에 근무하는 군 장성들이 관용차를 타고 골프장을 다니는 것에 대해 사적 용도로 이용한 것이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광경을 보기가 힘들다. 군 골프장으로 향하는 관용차량 행렬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국회에서 요구하는 통계에는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군 간부들이 주말에도 ‘비상대기조’ 등 명목으로 관용차를 타고 골프장을 가기 때문에 관용차의 사적 용도로 집계되지 않는 것이다.

 

■군 골프장과 돈

 

 2014년 국방부 예산안 반영현황에 따르면, 2014년 국방부 군인복지기금 중 군 골프장(체력단련장) 관련 예산은 141억을 요구해 136억이 반영되어 96% 반영률로 대부분 반영되었다. 반면, 병사 선호도가 높은 풋살경기장 확대 설치를 위한 예산은 268억을 요구하였으나 140억원만 반영되어 52%의 반영률을 보였다.

 

 국방부는 현재 군인복지기금 290억원을 들여 오산에 골프장을 신설하는 것을 비롯해 처인, 39사단, 특전사 등 3곳에도 LH의 기부대양여방식으로 골프장을 새롭게 건설 중이라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4곳의 사업비 총액은 2,290억원이다.

 

 민주당 김광진의원은 “현재 진행 중인 군골프장 건설비용으로 병사들의 풋살경기장 1,526개를 건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체력단련이라는 취지와 무관한 군 골프장의 고가 승용식 카트구입보다는 병사들의 선호도가 높은 풋살경기장 확대 설치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국방부가 전국 29개 군 골프장을 운영하면서 승용식 전동카트 구입비용으로 157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은 전국 29개 골프장에서 157억원을 들여 전동카트 1579개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서울 태릉 군 골프장이 구입한 승용식 전동카트는 한 대당 가격이 1400만 원이었고, 최고가는 2008년 구입한 동여주클럽의 5인승 전동카(일본산 야마하로)로 1694만원을 들여 구입했다. 국방부는 전동카트 구입비용으로 평균 1000만원을 사용했다. 국방부는 이 전동카트를 관리하는 비용도 매년 4억6000만원을 지출했다. 또 잔디와 클럽하우스 관리 등 골프장의 시설유지 및 개선을 위한 군인복지기금으로 매년 평균 350억원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적자는 누가 메꾸나

 

 군 골프장(체력단련장)은 적자난에 허덕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2012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적자를 기록한 군 골프장은 모두 14곳으로 누적 순손실은 20억3700만원이다.

 특히 14곳 중 12곳이 공군 골프장으로 4년간 누적 순손실은 15억88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골프장 경영난에 대해 국방부는 시설공사비 증가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경영상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예비역 장성이나 영관장교만 군 골프장 사장으로 임용하는 제도를 고쳐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는 “골프장 경영성과는 군인복지기금 재원확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적자를 기록하는 골프장 수가 증가하고 있고 전체 골프장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문호 개방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각군 복지시설과 체육시설 통합 운영.관리를 위해 지난 2010년 1월 ‘국군복지단’이 만들었다. 하지만 골프장 29곳 중 26곳, 휴양시설 13곳 중 7곳은 여전히 육·해·공군이 따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예산정책처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예산정책처는 ‘사실상 위법 상태’라고 지적했다.

 

 시설 통합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이유는 각 군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실제 각 군은 시설 운영 수익을 별도로 보유하고 여유자금 운용 수익금 역시 지분에 따라 각각 배분받고 있다.

 

 한편 영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구지역의 경우 군부대 골프장을 이용한 민간인이 현역 군인의 3배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사설 골프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2011~2012년 2년간 대구시 수성구 무열대 체력단련장(육군)에서 골프를 친 이용자는 총 10만2165명이었다. 이 중 예비역과 민간인이 8만418명으로 전체 이용자의 78.7%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현역 군인은 2만1747명으로 21.2%에 불과했다.

 

 공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대구시 동구에 위치한 K2 체력단련장의 골프장 이용현황을 살펴보면, 같은 기간 골프장을 이용한 민간인은 6만5449명으로 전체(9만5767명)의 68.3%에 달했다. 현역 군인은 3만318명으로 31.6%였다.

 

 지난 2년간 무열대와 K2 체력단련장에서 골프를 친 군인은 5만여명인 데 반해, 민간인은 이보다 2.8배 많은 14만5867명에 달했다. 현역은 주로 주말에 군 골프장을 찾고, 주중에는 민간인이 많이 찾은 것이다. 이때문에 군 골프장의 적자를 민간인이 메워주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미 항모의 아킬레스건 건드리는 중국군


 최윤희 합참의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항공모함 확보를 위한 필요성 검토부터 착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군 최고위 당국자가 공식 석상에서 항공모함 확보 구상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때문에 매우 이례적인 발언으로 군 안팎에서는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공교롭게 조지워싱턴함이 한반도에서의 작전을 위해 방한한 가운데 조선일보가 북한이 우리 군의 능력으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최대 사거리 300㎞의 지대함 미사일을 개발중이어서 군 당국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보도했다.(하지만 군 당국은 '그런 정보가 입수된 적도 없고, 그런만큼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도 않다'면서 보도 내용에 대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곧바로 부인했다)

 

 대함 탄도미사일은 순항미사일 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 위협적이다. 미국이 수년 전부터 중국의 커다란 군사 위협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거리 1500㎞ 이상의 ‘항모 킬러’ 둥펑(東風·DF)-21D 대함 탄도미사일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면 유사시 대규모 상륙작전을 지원해야 하는 미 항모 전단에도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침 중화권 온라인 매체 중국평론통신사가 둥펑(東風·DF)-21D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화난 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10월11일 보도했다. 중국군 전략 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대가 최근 화난 지역 2곳에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부대를 신설했으며, 이 부대들에는 신형 DF-21C 또는 신형 DF-21D가 배치됐다는 것이다. 화난 지역은 중국 동남부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성 지역을 말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DF-21D은 사거리 1500㎞ 이상으로 최대 3000㎞까지 정밀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 항공모함이 정박중인 일본 요코스카 미군 기지도 사정거리 안이다. 이는 미 항모가 중국 작전해역권으로 진입할 경우 공격권 중국의 공격권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9만t이 넘는 ‘바다의 거인’ 항공모함의 약점은 탄도 미사일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다른 여러 요인이 과거에도 여러차례 지적됐다.


 2006년 10월 26 일 오키나와 인근 해상 미 해군 항모 키티호크는 발칵 뒤집혔다. 10여 척의 호위함에 둘러싸인 항모의 9㎞ 앞에 중국의 신형 디젤 추진 방식의 쑹(宋)급 잠수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디젤 잠수함이 항모전단의 촘촘한 잠수함 경계망을 뚫은 것이다.


 이보다 앞서 2004년 림팩 훈련에서는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CVN-74)을 비롯해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 2척이 어뢰를 맞았다. 어뢰를 발사한 주인공은 한국 해군의 209급 잠수함 장보고함이었다. 당시 장보고함은 훈련이 끝날때까지 단 한차례도 탐지되지 않아 미 해군을 경악케했다.


 당초 미국의 항모전단은 수중의 위협 세력으로 주로 소련의 대형 원자력 잠수함을 상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핵잠에 비해 소음이 적은 디젤 잠수함이 더 쉽게 항모에 접근할 수 있고 어뢰를 맞출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 증명됐다.


 사실 항공모함을 더욱 강력하게 하는 것은 항상 팀을 이뤄 작전하는 순양함과 구축함, 잠수함들이다. 항공모함은 항상 순양함 1척과 팀을 이루는 것이 기본이다. 조지워싱턴함과 통상적으로 팀을 이루는 순양함은 만재 배수량 9600t급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CG63 카우펜스함이다.


 항모는 대개 이지스 순양함, 구축함 등 수상함의 지원과 함께 수중의 공격 원자력잠수함까지 패키지 개념으로 작전을 펼친다. 항모 혼자서는 자체 함재기들을 고려한다 해도 대공 방어능력이나 대잠 능력에 취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항모를 호위하는 이지스함의 전투체계는 동시에 1000여개의 표적 탐지·추적이 가능하고 그중 20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모함과 호위함들의 이지스전투체계가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미 항모전단의 방공체계를 무력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90대 이상의 저가의 무인기를 한꺼번에 띄우거나 값싼 크루즈 미사일을 무더기로 쏟아 부어 이지스전투체계의 방공능력을 초과시키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호위 함정들의 대항력이 떨어지면서 항모의 대공능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미 항모의 대함유도탄 방어가 음속을 넘지 못하는 아음속 유도탄 공격에 맞춰진 체제라는 것도 부담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중국과 러시아가 초음속 유도탄을 배치하고 있어 항모 방어체계의 완벽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랑인 스텔스 기술의 발전 역시 항모의 큰 적이다. 미국은 완벽한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와 이에 버금가는 F-35 전투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나섰고, 러시아는 개발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항모에서 발진하는 전투기가 F/A-18E/F 슈퍼호넷이라 하더라도 그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가 스텔스 기능이 완벽한 5세대 전투기로 맞대응에 나설 경우 공대공 전력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 해군이 함재기로 사용할 예정인 F-35C 라이트닝이 F-22와 같은 완전한 스텔스 전투기는 아니라는 점도 부담이다.


 

다. 분명한 것은 미 항공모함이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지만 5~10년이 지나면 냉전 당시처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 해군도 이같은 항모의 ‘아킬레스 건’을 잘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미 항모의 약점 부각은 미 국방부가 의회의 해군 예산 축소 움직임에 대한 반박 논리로 실체보다 과장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

다. 만약 중국과 미국이 군사적 경쟁관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중국 대함탄도탄의 주요 목표는 미 항모가 될 것이다. 이는 미 항모의 먼 바다 출현 횟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 해군도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초음속 유도탄에 대한 방어능력을 높이는 한편 대잠, 대함 능력을 강화한 슈퍼 항모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F-35C 전투기의 항모 탑재를 재촉하고 있다. 특히 대잠 방어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설치와 수거가 가능한 기동형 수중 음파탐지시설의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이처럼 항공모함과 같은 천문학적 가격의 첨단무기라도 자세히 뜯어보면 헛점은 있기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스텔스 전투기를 두고서 조만간 스텔스 기술을 무력화시키는 레이더가 개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여군 브래지어는 국방색인가?

 

 여군 브래지어도 국방색일까? 가끔 주변에서 뚱단지처럼 물어 오는 질문이다. 배우 김영호도 언젠가 한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현해 훈련병 시절 여군의 속옷 색깔도 남성 군인 속옷처럼 국방색일까가 너무 궁금해 여군 장교에게 “여군 브래지어, 팬티 속옷도 국방생이냐”고 물어봤다가 성희롱죄로 영창에 갈 뻔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이스라엘 여군들이 총을 들고 춤을 추는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 여군들의 브래지어와 팬티는 국방색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실제 여군의 브래지어 색깔은 무엇일까. 정답은 ‘국방색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이다.

 왜냐면 한국군 여군은 국방부로부터 피복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아 속옷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한다면 국방색 브래지어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여군들도 한국군 여군처럼 피복피를 대부분 지급받고 있다. ‘남녀평등’의 나라 스웨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스웨덴 여군들은 군 당국에 전투용 브래지어의 지급을 요구했던 적이 있다.

 

 스웨덴 모병위원회(The Swedish Conscript Council)는 2009년 군 최고사령관에게 브래지어 고리가 약해 여군들의 전투 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건의했다. 여군들이 훈련 도중 브래지어가 흘러내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옷을 다시 갖춰 입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물론 브래지어가 가연성 소재여서 총을 쏠 때 불똥이 튀면 브래지어가 녹아내려 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웨덴 군 당국은 “군용 브래지어 개발을 추진해 지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보급됐는 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스웨덴군의 여군 비율은 5% 정도이다.

 

 당시 호기심 차원에서 한국군 여군의 경우가 궁금해 친한 여군 장교에게 살짝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답이 “컵 사이즈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였다.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해석이었던 것 같다.


 이와는 별도로 스웨덴 여군은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등 북유럽 5개국의 연합군인 북유럽전투단의 사자 문장(紋章)이 생식기를 드러내고 포효하고 있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고 2007년 유럽재판소에 제소해 문장 속 사자의 성기를 지워버린 전력도 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대한민국의 별넷, 4성장군(대장)은 총 8명입니다.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육군 1·2·3군 사령관 등입니다. 이가운데 4명의 대장이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모처럼 군 인사 결과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환영받는 모양세입니다. 여야는 모두 그동안 육군이 사실상 ‘독식’해오던 합참의장에 해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을 발탁한 데 대해 군의 합동성 강화와 3군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환영을 표시했습니다.

 

 새로 군 수뇌부에 입성한 이들의 면면을 공식적인 프로필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내정자(56·해사32기)는 2011년 1월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전력이 있습니다. 당시 일주일간 작전을 하면서 작전사령부 참모진 중 한명이 식사 메뉴로 추어탕을 제안하자 황 내정자는 이를 말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인질 구출 작전의 특성상 특수요원들이 배를 타고 기어 올라야 하는데, 추어탕의 재료인 미꾸라지가 미끄러지는 것을 연상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신경을 인질구출작전에 몰입한 끝에 작전에 성공했다고 후배 장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내정자(58·육사34기)는 육군본부 계획편제처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합참 작전본부장, 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요직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확’ 눈에 띄는 화끈한 족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도 검증받아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토론을 좋아하는 장군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윗사람에게 할말은 하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속파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육군총장으로 대장 2차 보직을 맡았지만 내심 야전군 사령관은 못해본 아쉬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권 내정자는 군내 최고 재산가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관보에 게재된 공직자 재산변동 현황을 보면 권오성 대장은 재산총액이 42억7천996만원에 달합니다. 토지가 14억6천865만원, 예금이 27억8천930만원 등입니다. 신고액 가운데 상속 재산이 상당액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신현돈 제1야전군사령관 내정자(58·육사35기)는 작년 북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뚫고 귀순한 일명 ‘노크귀순’ 사건의 여파로 합참작전본부장에서 물러났지만 이번 인사에서 화려하게 재기했습니다. 1군사령관 자리를 놓고 동기생인 황인무 중장과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하도 많아 붙여진 신 내정자의 별명은 ‘하회탈’입니다. 그러나 탈 속에 감춰진 ‘내공’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전사령관을 역임한 그는 보안사(기무사)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소령때 보안부대를 떠나 야전장교의 길로 복귀한 그는 김장수 전 국방장관(청와대 안보실장)에 이어 기무사 출신으로 별 넷을 달게 됐습니다.

 

 

 

 

 

 

 

 

 

 

 

 

 

 

 박선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내정자(56·육사35기)는 사단장만 3번을 역임한 진기록의 보유자입니다. 그는 육군 26사단장과 37사단장, 그리고 이라크평화재건부대인 자이툰사단의 마지막 지휘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아마

도 6·25 전쟁 이후 한국군에서 사단장을 3번씩이나 거친 군인은 그가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 출신 합동참모회의 의장이 탄생했습니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59·해사31기)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는 정승조 합참의장의 뒤를 잇게 된 것이죠.


 과거 이양호 공군총장이 합참의장에 발탁된 적은 있지만 해군총장이 수직으로 상승한 것은 창군이래 처음이라면서 군 안팎이 술렁거리는 모양입니다.

 

 이번 군 수뇌부 인사의 하이라이트가 된 해군참모총장의 합참의장 임명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인사청문회의 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간단히 말하면 이번 인사 전에 가장 유력한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육사33기)의 경우 청문회 통과가 힘들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군 통수권자는 그 부담을 지기 싫었을 것입니다.

 조정환 장군의 경우 정권 초기 국방장관 후보로 내정됐다 탈락한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의 사단장 시절 참모장이었습니다. 김병관 당시 국방장관 후보자는 2사단장 재직시절 부대경비를 개인통장에 넣어 횡령했다는 의혹에 대해 ‘통장을 당시 참모장(조정환장군)에게 전달했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지요.

 

 조 장군은 김병관 후보자가 사단장 시절 부대경비 통장을 위탁 관리한 것(일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인사권자는 이정도로는 야당의원이나 국민들에게 클리어하게 설명이 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그는 22사단장이던 2005년 민간인이 부대 탄약고에서 수류탄을 탈취하는 일도 벌어지는 등 그간 크고 작은 군내 사고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또 합참의장 내정설이 나돌면서 부인의 재개발 지역 부동산 구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상당부분 해명이 됐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 총장은 합참에서 근무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점 역시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MB정권 시절 청와대가 합참 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이상의 대장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했다가 천안함 사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숱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조 총장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특정 보수언론사의 기자들을 초청해 만찬 자리까지 마련하기도 했는데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군요.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하는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출처 : 연합뉴스)


 여기에다 이번에는 해군 출신이 합참의장이 돼야 한다는 야당측의 주장이 먹혀들어간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군출신 여당 국방위원이 적극 가세해 인사 막판에 해군 합참의장에 힘이 실렸다고 합니다.

 최윤희 합참의장 내정자도 조정환 장군처럼 합참에 근무한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평시 합참 작전의 상당부분이 해군이 맡고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합니다.

 

 또 청와대 안보라인을 육사출신이 장악하고 있고, 국정원장 역시 육사출신 예비역 대장이 맡어 ‘육사 독식’이라는 세간의 비판도 피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겠지요. 거꾸로 보면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외곽에서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육사 출신들의 자신감의 표시일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이번 군 수뇌부 인사를 보니 과거 천안함 사건의 후폭풍으로 이뤄졌던 대장급 인사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에도 합참의장의 강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황의돈 대장(당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의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자 인사청문회가 필요없는 육군참모총장으로 보내고, 대신 독립운동가의 손자인 한민구 대장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하는 편법 인사가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대장 돌려막기’였습니다.

 

 이밖에 해군참모총장에 방사청 근무 경력이 있는 황기철 해군사관학교장(해사32기)이 임명된 것이 눈에 띕니다. 황기철 장군은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을 지냈습니다. 해군은 방사청의 중요성을 일찌기 간파하고, 해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우수 인력을 방사청으로 파견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공군은 방사청으로 가는 것을 방출 개념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해군과 공군의 차이가 공군의 차기전투기(FX) 사업에서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또 육군대장 승진 후보 1순위로 꼽혔던 황인무 육군참모차장(육사35기)의 탈락도 눈에 띕니다.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의 ‘복심’으로 소문난 황 장군은 이번에 1군 사령관으로 나간 후 그 다음에는 육군총장이라는 소문까지 무성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소문들이 이번 인사에 오히려 ‘부메랑’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한국전략문제연구소는 예비역 장성들이 주축으로 만든 국가안보분야의 싱크탱크입니다. 현재 연구소의 소장

으로는 이상희 전 국방장관이 역임하고 있습니다.


2009년 국방장관 재직당시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는 이상희 전 국방장관. /경향신문 DB

 

이 한국전략문제연구소는 정기적으로 ‘국가안보전략’이라는 간행물을 발간합니다. 발행인은 이상희 전 국방장관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간된 ‘국가안보전략 3월호’를 보니 재미있는 논평이 있네요.

 

논평의 제목이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라는 글입니다. 아마도 연구소장인 이상희 전 장관이 직접 쓴 걸로 보입니다.
 
이 칼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명은 적시돼 있지 않지만, 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 속의 등장인물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게 묘사돼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교전규칙과 관련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마도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인 듯 싶습니다. 이들은 칼럼에서 무책임한 지휘관들로 비판받고 있군요. 아마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넓은 의미에서 이 칼럼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칼럼의 필자는 또 노무현 정부 당시 육군 장성 진급 문제를 놓고 육군 최고책임자(육군참모총장)가 ‘밑에서 한 일이라 자신은 모른다’고 한 부분과 노크귀순이 발생했을 때 합참의 최고 책임자(합참의장)가 한 발언 등을 놓고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칼럼에서 비판받은 이들은 모두 박근혜 정부와 관련이 깊은 인물들입니다. 



합참의 최고책임자는 정승조 현 합참의장입니다.

 

또 육군 최고책임자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남재준 현 국정원장이고, 한민구 전 합참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나름 역할을 한 인물로 차기 국방장관 후보 중 한명으로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결국 이상희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군부 출신 인사들에 대해 자신이 발행인인 간행물의 칼럼을 통해 매우 박한 평가를 내린 셈이 됐네요. 이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또다른 군 관련 인사들의 몫이겠지요.

 

다음은 논평 칼럼 전문입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다큐소설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의 작가인 차인숙씨가 불의의 사고로 지난 15일 순직한 김완희

대위(32·공사 51기)를 추모하는 글을 16일 발표했다.

 

 공군 애호문인단 ‘창공클럽’의 총무를 맡고 있는 차인숙씨는 소설 <리턴 투 베이스>를 통해 공군 조종사들의 충성심과 공군 조종사 양성과정, 사관생도의 생활 모습 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바 있다. ‘리턴 투 베이스’는 조종사들이 공중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할 때 사용하는 비행용어다.

 

 

 <추모 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영웅들

 

                                                                                          차인숙(소설가)

 

                             

                                                                                                                 <차인숙 작가>

 

 “동기생의 첫 단독비행을 견학할 때, 이륙하던 기체가 그대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날 밤 내내, 우리들은 군가 ‘성난 독수리’를 부르며 동기와 작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았을 때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종간을 잡았습니다. 그것은 조종사의 길을 택한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나는 소설『리턴 투 베이스』를 쓰며, 조종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때 당시, 생과 사를 초월한 조종사의 담담한 어조를 잊을 수 없다. 조종사들은 추락사고가 나면 육신 없이 치러야 하는 장례를 위해 미리 머리카락과 손톱을 보관해 놓는다. 하늘에서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기에 ‘귀천’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현에서 산화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왜 유독 조종사의 순직을 ‘산화’라고 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육신과 영혼, 그 모든 것을 불태워 조국에 바치기

때문이다. 하늘에 떠 있는 기체가 불가항력의 위기에서 추락했을 때, 충격으로 인해 육신은 온전히 남아있기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조종사들은 이륙함에 망설임이 없다. 그들에게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 우리는 또 한 명의 탁월한 조종사를 잃었다. 故 김완희 대위는 특수비행팀의 타고난 베테랑 조종사였다. 올해 영국 국제에어쇼에 출전해 당당히 1등을 수상했던 블랙이글 멤버였고, 아홉 차례 에어쇼에 참가해 갈채를 받았던 조종사였다.

 

 

 어제 나는 대한민국 공군 인터넷 홈페이지에 마련된 그의 추모관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국민들의 진지한 애도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비행기와 함께 산화한 그의 넋에 대한 깊은 슬픔이 수많은 추모글로 담아졌다. 하늘을 지키는 그들 모두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그것은 바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다.

 

 

안개가 깔린 활주로로 나가기 전에 故 김완희 대위는 갓 8개월 된 딸아이의 복사꽃 같은 볼을 쓰다듬었을 것이며, 27세의 영산홍 꽃잎처럼 여린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을 것이다. 후일 딸아이는 아버지의 넉넉하고 따스했던 품을 기억 못할지도 모른다. 자랄수록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땅을 딛고 힘차게 날아올라 하늘을 지키다 순직한 분들과 오늘도 묵묵히 조종간을 잡는 조종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공군이 전우를 잃은 슬픔을 딛고 故 김완희 대위의 꿈을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며, 『리턴 투 베이스』의 한 구절을 전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택한 길이었다. 찬란한 출세와 엄청난 보상이 기약된 길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늘 이 시각 현재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투조종사로서의 길을 택한다.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 하는 길. 그러나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내가 간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그들만이 그 길을 간다.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보아야 한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오늘은 <육군>지에 실린 원고를 옮겨봤습니다.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에서>

 

 속담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기자란 직업을 선택한 후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 줄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속담과 다른 것은 신선놀음처럼 우아한 데 빠져 세월을 잊은 게 아니라 사건을 정신없이 쫓다 보니 가정을 제대로 돌 볼 새도 없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상당 기간 동안 외교·안보 분야를 담당했던 기자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내 나이 먹은 것도 모르다가 군문에 들어선 친구들이 이제는 별을 달고 장군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끼고 있다.
기자 생활 중 군 관련 기사를 가장 많이 써왔다는 것도 올해 초 김관진 국방장관의 집무실에서 감사패를 전달받고 알았다.

 

 감사패에 적힌 기간을 보니 2001년 초부터 2011년 말까지 군을 출입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중간에 공백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청을 출입했고, 한때는 국회도 출입하다 다시 국방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공보장교들이 흔히 말하는 국방부 ‘재수생 기자’였다. 그러다가 올해 초부터는 신문사의 전국부장을 맡고 있다. 그러던 중 <육군>지의 원고 청탁을 받았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동안 겪었던 군, 특히 육군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주문과 함께였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군 취재를 하면서 일반인이라면 가기 힘든 장소를 참으로 많이 돌아 다녔다. 판문점을 비롯한 최전방은 물론 웬만한 군부대는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다. 백령도 군 부대는 물론 해군의 전략 무기인 잠수함 안으로도 들어가 봤다.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의 후방기지인 일본의 군사기지 여러곳도 방문했다. 몇 달 전에는 미 정부의 초청으로 펜타곤(미 국방성)과 하와이의 미 태평양사령부를 다녀오기도 했다.

 

 

 많은 곳을 다니고 경험하다 보면 군 출입기자로서 에피소드가 많지 않을 수가 없다. 더 나아가 군 간부들과
특정한 이슈를 놓고 격론을 벌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처럼 군 간부들과 논쟁을 많이 벌인 기자도 없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기자이다 보니 특정 사안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도 군을 출입하는 동안 군을 사랑하는 마음이 뒤지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다. 얘기가 곁다리로 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 에피소드 한두 개만 소개하려고 한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테러가 일어나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가 희생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한적이 있다. 크나큰 비극이었지만 추가테러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윤 하사의 시신을 운구하는 작전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미 항모 탑재기 앞에서>

 

 그러던 중 기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됐다. 군이 윤 하사의 시신 운구작전에 관여한 간부들을 포상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작전을 잘 마무리했다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군의 계획은 유족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참으로 군사적 차원만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나니 역풍이 우려됐다. 군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지금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근태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을 찾아 갔다. 오랜 교분이 있었던 터라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김 본부장에게 정 포상을 하고 싶으면 아프간 테러사건의 파장이 가라앉고 시간이 흐른 뒤에 줘도 늦지 않다고 내 뜻을 전했다. 김 장군도 내 말뜻을 알아듣고 포상을 취소했다. 대신 관계자들은 나중에 포상을 받았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목적은 잘못된 사안을 고치거나 개선하는 것이지 누군가를 욕되게 하려는 게 아니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쓰지 않아도 소기의 목적이 이뤄졌다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잠수함 앞에서. 사진을 찍자 마자 일본 자위대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시치미를 딱 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수년 전 6월, 회사에서 호국보훈의 달인 만큼 이와 관련한 기사를 주문했다. 마침 기자라면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제보를 받았던 터였다. 육군이 주력 사업으로‘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훈장을 택배로 배달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제보를 받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영예로운 훈장을 택배로 보낸다니….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6·25 참전용사인 시골 노인이 훈장을 택배로 배달받고는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당장 다음날 신문의 기사 제목이‘ 택배로 받은 훈장에 분노한 참전용사’가 될 판이었다.

 

 육군 관계자에게 “1년에 몇 건이나 택배로 훈장을 배달 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그는 “그럴 리가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정작 육군본부에 확인하고 나서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관련 부서에서 인력부족을 이유로 상당한 기간 동안 택배로 훈장을 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육군 관계자는 “당장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기로 했다”면서 “앞으로는 근처 군부대에서 훈장 수여식 행사를 갖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기사화를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이라크 아르빌 자이툰 부대 성당 앞에서>

 

 부탁을 들어주자니 기자 입장에서는 사회면 톱기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군에 대한 이미지와 사기를 고려했다. 굳이 기사화하지 않더라도 나의 취재 덕분에 참전용사들이 군악대의 연주 속에 훈장을 가슴에 달면 족하다고 여겼다.

 

 이 밖에도 연초에 감사패를 전달받는 자리에서 육군 장병들이 군내 사이버지식정보방(PC방) 이용을 규정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장관이‘ 전투형 부대’를 강조하다 보니 어떤 대대급 부대에서는 아예 사이버지식정보방의 문을 자물쇠로 잠궈 버린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장관은 일부 예하부대에서 자신의 전투력 강화 의도를 잘못 해석한 것 같다면서 당장 시정하도록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잘 이뤄졌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잠긴 문은 다시 열렸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찌하다 보니 군과 함께했던 일화가 자화자찬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몇 년 전 국방부를 같이 출입했던 동료기자 한 명이 <육군>지가 양복바지를 치켜 올린 배바지 차림의 40·50대 아저씨처럼 답답하고 완고한 느낌이라면, 다른 군의 월간지는 면바지나 청바지 차림의 날렵한 청년 이미지라고 빗댄 글을 읽었다. 웃음도 났지만 무릎을 칠 만큼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올해 발간되는 <육군>지를 보니 과거와 달리 많이 세련되어지고 읽을거리가 풍부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육군>지도 싸이의‘ 강남스타일’ 같은 파격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든다. 소위‘ 육군스타일’을 기대해 본다.

 

 하긴 군 출입기자 시절 까칠한‘ 야당’ 역할을 주로 했던 본인에게도 원고 청탁을 하는 것을 보니 <육군>지도 바뀌어 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퀴즈 하나. 국군기무사령부와 도마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꼬리자르기에 능하다”입니다.




 

기무사는 최근 부대내 간부들의 횡령, 성매매, 음주운전 사고 등을 적발하고도 군 수사기관에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기무사 측은 “이들에 대해 별도 징계를 내리지 않았지만 기무사령부에서 방출했다”면서 “해당 간부들에게는 기무사에서 내보낸 것만으로도 징계”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기무사에서 다른 부대로 방출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에게는 큰 불이익”이라며 “이것도 하나의 징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기무사가 고위 간부를 포함한 간부들의 위법 사실을 적발해놓고도 최소한의 징계를 내리거나 군 사법기관에 통보하지 않고 은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다른 버전의 해석을 하나 내놓겠습니다. 방출된 당사자들로서는 ‘힘센’ 기관인 기무사에서 쫓겨난 것은 기무사 측 설명대로 하나의 징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무사가 물의를 빚은 간부들을 사령부에서 방출한 것은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입니다.

 

무슨말이냐고요. 대한민국 군대에서 가장 청렴하고 군기가 엄정한 부대는 공식적인 자료로만 본다면 ‘기무사령부’일 것입니다. 바로 기무사의 꼬리자르기 덕분입니다.

 

기무사는 사고를 저지른 부대원은 즉시 원대복귀시킵니다. 기무사는 육·해·공·해병대 장병들이 합동으로 근무하는 부대입니다. 당연히 기무부대원들은 소속 (육·해·공)군이 있고, 소속 병과도 따로 있습니다. 방출된 기무부대원은 소속 군의 병과에서 다시 재분류해 근무지를 정해주게 됩니다.

 

문제는 기무부대원이 기무사 소속으로 사고를 쳤다 하더라도 정작 행정적인 징계나 사법처리는 원대복귀한 소속 군에서 이뤄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의 행위가 기무사의 군기 사고 통계에는 잡히지 않게 됩니다.

 

대신 애꿏게도 이들을 다시 받아들인 부대의 사고 통계에 잡히게 됩니다. 대신 기무사는 여전히 사고치는 군인이 없는 모범 부대가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기무사의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국군기무사령부

                    

기무사에는 다른 군 부대에 비해 군의 우수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힘센 기관이기도 하거니와 기무사 자체적으로도 군내 우수 자원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지요.

 

그런만큼 기무사 출신 군 간부들은 기무사를 떠나더라도 군내에서 고위직에 오르는 사례가 꽤 있습니다.(통상 기무사를 떠나 원대복귀하는 경우는 두가지입니다. 사고를 쳐 방출되는 경우와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원대복귀하는 경우입니다. 군내 고위직에 오르는 기무사 출신 간부는 후자의 경우입니다)

 

‘꼿꼿장수’로 잘 알려진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대표적입니다. 김 전 장관은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 시절 대위로 근무했습니다. 이후 기무사를 떠나 작전 장교로 두각을 나타내 육군참모총장에 이어 국방장관까지 역임했지요.


김 장관 외에도 3성 장군 이상을 지낸 기무출신 간부들이 몇사람 더 있습니다. 현역 3성 장군에도 있습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무사 시절이 군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기무사(보안사) 시절이 잠시나마 유니폼 대신 사복을 입고 근무하면서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합니다. 군복을 입고 근무하다 보면 자칫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분야만 파는 외골수로 흐를 수 있는데 사복을 입고 근무하면서 군내 사안을 여러모로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웠다는 것이지요.

 

얘기가 옆으로 잠시 흘렀습니다만 기무사령부가 문제를 일으킨 간부들을 방출하는 데 그친 데 대해서는 군내 여론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무사와 국가정보원은 자체 감찰 기능이 강한 기관들로 소문나 있습니다. 두 기관 모두 외부에 잘 노출이 되지 않은 조직이기 때문에 자정 기능이 강하지 않으면 조직의 기능이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지요. 이는 툭하면 자기 식구 감싸기에 나서는 검찰이나 경찰, 국세청 등 다른 힘센 기관과 다른 특성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무사 수뇌부가 당시 횡령, 성매매,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지시를 내렸는지 궁금하네요.

Posted by 경향 박성진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 이글’이 국제에어쇼에서 잇따라 수상하는 등 성공적인 해외 데뷔를 마치고 지난 주말에는 성남 공군비행장에서 '금의환향'을 신고하는 에어쇼를 펼쳤다.

 

 블랙 이글의 T-50 8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편대비행을 연출하고, 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갖가지 무늬도 그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있다. 시속 740㎞로 비행하던 항공기들은 단 1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항공기가 지나간 자리엔 네 줄의 하얀 무지개가 나타난다. ‘칼립소 기동’이니 하는 전문적 용어를 몰라도 아찔한 묘기를 즐기다 보면 저절로 블랙 이글의 팬이 된다.

 블랙 이글의 고난이도 비행기술 30여개의 기동은 실제 전투기대대에서 쓰이는 전투기동을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서커스단의 곡예처럼 단순한 묘기를 보여 주는 곡예비행과는 다른 실전 비행기술이다.

 

 블랙 이글의 환상적인 에어쇼를 보자니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T-50을 블랙 이글의 기종으로 택하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2006년쯤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김성일 대장과 국방부 기자단의 점심식사를 겸한 간담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T-50을 블랙이글의 기종으로 선택하면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고 공군총장에게 건의했다. 최신형 기종을 선택함으로써 블랙 이글 조종사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T-50의 홍보 효과까지 거둘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공군총장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적극 추진하겠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의 제안을 따라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배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나의 바램은 이뤄졌다. T-50을 개량한 T-50B는 스모크 장치까지 기체에 내장한 블랙 이글의 기종이 됐고, 해외 에어쇼에서 기량을 맘껏 선보이며 멋진 홍보효과를 거뒀다. 이제 블랙 이글은 한국 공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T-50의 해외 수출을 위한 전략적 도구 역할까지 하고 있다.

 

 과거 T-50이 등장하기 전까지 블랙 이글은 해외 에어쇼에 참가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블랙 이글 조종사들은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도 해외 에어쇼에 가면 다른 나라 항공기 뒷자리에 앉아서 비행체험만 해야 했다. 과거 블랙 이글 기종으로 사용하던 ‘A-37B’는 미국산으로 허가 없이 분해나 조립을 할 수 없어 에어쇼 참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돈’ 문제도 해외 에어쇼 참가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항공기를 분해한 후 화물기로 실어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수송비와 조종사들의 현지 체류비 등으로 수십억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군이 국제 에어쇼 참가를 위해 예비용 1대를 포함해 총 9대의 항공기를 파견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 효과는 투자한 비용 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수출 전략 차원에서도 잘한 결정이었다.

 

 T-50 기종은 이미 인도네시아에 16대를 수출하기로 해 한국을 항공기 수출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제는 블랙 이글의 국제 에어쇼 무대 활약으로  T-50은 전세계 바이어들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블랙 이글의 전신은 ‘블루 사브레’다. 공군은 1962년 F-86 4대로 특수비행팀을 만들었다. 1967년에는 항공기를 F-5A로 바꾸면서 블랙 이글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블랙 이글'로 부른다. 이후 기종은 A-37로 교체됐고, 2009년 국산 초음속 훈련기인 T-50B로 다시 바뀌었다. 블랙 이글이 기량을 겨루는 경쟁자들은 미국 공군의 썬더버드와 해군의 블루엔젤스, 러시아 공군의 러시안나이츠 등 굴지의 비행팀들이다.

 

 ‘하늘의 예술가’로 불리는 블랙 이글의 조종사들은 공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블랙 이글과 같은 특수 비행팀의 기량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서 그 나라 공군력의 척도로 평가받는다. 이때문에 특수 비행팀의 구성원은 최고 조종사들로 이뤄지는 게 통례다.

 

 

 무한경쟁시대에 블랙 이글의 조종사들은 세일즈 맨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T-50의 해외수출 첨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속을 넘나드는 속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들을 아슬아슬하게 교차시키면서 생명을 담보로 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한다.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블랙 이글 조종사들은 목숨을 건 T-50 세일즈 맨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T-50은 1대당 수출단가가 250억원 정도로, 50만원 가격의 휴대폰 5만대, 중형 승용차 1250대를 수출하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최첨단의 과학기술제품으로서 T-50은 중량(㎏) 당 가격(만원)이 자동차의 440배에 달한다. 그런만큼 T-50은 경제적 부가가치와 새로운 수출상품으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문제는 국제 방위산업 시장에서 한국산 항공기 수출 경험이 일천하고 대외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현실의 벽’이다. 이 난관을 뚫으려면 대부분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는 방산시장에서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도 성공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을 노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T-50 고등훈련기 뿐만 아니라 F-5 전투기를 대체할 전투기 시장에 T-50을 공격형 전투기로 개발한 FA-50을 투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즉, 훈련기 시장과 경공격기 시장을 동시에 노리라는 것이다.

 

 이같은 T-50 수출을 위해서는 이미지 메이킹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 시장에서 한류를 앞세워 우리 상품의 수출을 확대하고 있듯이, 항공기 시장에서도 T-50이 자연스럽게 회자되면서 수출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군은 T-50 수출을 위해 해병대에서 복무 중인 현빈(본명 김태평)을 ‘방산수출 홍보특사’로 활용하기까지 했겠는가. 군은 한류스타가 군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T-50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현빈을 인도네시아 국군의 날 행사에 현빈을 파견해 나름 효과를 보기도 했다.

 

 올해는 블랙 이글이 우리 기술로 만든 날개를 달고 전세계 에어쇼 현장을 누비며 국산 초음속 항공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하드 타킷’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통상 하드 타깃은 ICBM 기지나 군사기지·시설물 등 견고한 대응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는 전략 공격 목표라는 뜻으로 통합니다.


 또다른 의미로는 첩보 활동의 중요 목표나 국제 분쟁 예상 지역이 있습니다. 특히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같이 감시하기 어려운 국가를 특정해서 언급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지난달 미국에서 전직 CIA 간부를 만났더니 북한은 ‘하드 타킷’ 중의 ‘하드 타깃’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의 설명이 재미있더군요.(그는 과거 이란과 이라크, 러시아도 담당했던 전문가입니다. 물론 북한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전직 CIA 간부는 북한에 대해 전략적 측면에서는 잘 알고 있지만, 적은 범주로 들어가면 잘 알 수도 없고, 예상하기도 힘든 곳이 북한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스포츠 경기 승패를 맞히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CIA에 근무했을 당시 ‘철의 장막’이었던 구소련 관측이 북한 감시 보다 더 쉬웠다고 덧붙이더군요.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경향신문DB)



 북한은 특히 이미지 정보를 얻기가 무척 힘들다고 합니다. 주요 목표점이 산악지역 깊숙이 숨어있기 때문이지요. 평평한 지역은 군사 정찰위성을 통해 몇번 반복해서 감시하면 원하는 정보가 걸려 들지만 산악 지역에서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습니다.(북한은 미국의 군사위성이 한반도 상공위를 지나가는 시간대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 군사 장비을 이동하는 경우에는 이 시간대를 피하는 수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북한은 ‘신호 정보’를 얻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 전직 CIA 간부는 북한이 ‘특수 코드’를 사용한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전문가는 이런 환경을 이용해 북한이 일부로 신호 정보를 조작해 역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워낙 ‘하드 타킷’이다 보니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서도 한국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은 북한이 실제 실험을 할때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북한이 2009년 2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에는 군의 대북 군사 최고책임자인 합참 정보본부장이 아침 일찍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날 북이 핵실험을 실시할 기미가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아챘다면 정보본부장이 골프장에 나타났을리가 만무했겠지요.


 최근 외신에서 북한이 2주 정도 내에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 역량을 갖추고 있으나 핵실험에 따른 정치적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현재 핵실험에 필요한 갱도 굴착 등도 사실상 마무리했다는거지요.

 

 하지만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그들이 실제 실험을 실시해 지진계에 진동이 잡히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핵 실험을 준비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 정도는 관측할 수 있는 게 전부입니다.


 

 과거 중국을 ‘죽의 장막’, 구 소련을 ‘철의 장막’이라고 불렀다면 이런 북한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부르는게 가장 잘 어울릴까요.


Posted by 경향 박성진

펜타곤(미 국방부)과 화장실은 공통점(?)이 있다. ‘볼 일’을 보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풀어야 한다는 점이다.

 

 

보름 전 펜타곤을 다녀왔다. 국방부 출입기자 시절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취재차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단체 방문이었다.(기자회견에서 본인이 미 국방장관에 질문하는 장면이 CNN에 라이브로 나온 적도 있다)

 

  이번에는 미 국무부 초청을 받아 간 개인자격 방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펜타곤 역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단체 방문 보다 오히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신 ‘볼 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서는 것처럼 허리띠를 풀어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놈의 보안 검색 절차가 워낙 까다로운 탓이었다.

 

 게다가 펜타곤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한장 찍는 것도 막았다. 대신 실내 브리핑룸에서 펜타곤 로고를 배경으로 찍은 ‘개폼’ 잡는 사진 한장(아랫쪽)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 국무부에서 파견나온 파견관이 마중나와 펜타곤 곳곳을 안내하면서 친절한 설명을 해줬다. 덕분에 단체 방문때는 전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곳들도 살펴 볼 수 있었다.

 

 가장 재미 있는 장소는 ‘Court Yard’였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궁전 안뜰’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Court Yard는 오각형인 펜타곤 건물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 5에이커 면적의 공터다.

 

 Court Yard 한 가운데에는 역시 오각형 모양의 조그만 건물이 하나 있다. 과거 냉전 시대 구 소련의 미사일이 이 건물을 타격 목표로 삼아 24시간 겨냥하고 있었다고 국무부 파견관이 설명해 줬다. 그 이유인즉 구 소련이 군사 정찰위성을 통해 집중 감시한 결과, 이 건물을 펜타곤에서도 핵심중의 핵심인 ‘커맨더 센터’(사령부)로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펜타곤 한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단층 건물로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보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Court Yard에 있는 조그마한 건물의 실제 정체는 핫도그 가게이다. 펜타곤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배가

  출출할 때마다 찾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본인이 방문한 날에도 이 핫도그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결론적으로 구 소련은 펜타곤 구내 핫도그 가게를 전쟁 발발시 가장 먼저 파괴해야 하는 1급 표적으로 간주했던 셈이다.

 

 펜타곤에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2만5000여명쯤 된다. 펜타곤이 착공된 날짜는 1941년 9월 11일이다. 공교롭게도 9·11 테러가 일어난 날과 겹친다.

 

 2001년 9·11테러로 비행기가 펜타곤의 4번 코리도(corridor)에 충돌했을 당시 12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4번 코리도의 경우, 펜타곤은 낡은 건물을 헐고 만든 새건물이 입주 전이었다. 이때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지 않아 그나마 희생자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했다고 한다. 만약 입주가 끝났다면 이곳에는 4000~5000명이 근무하고 있어 희생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펜타곤 건물 주변에는 9·11 테러로 숨진 희생자의 이름이 벤치마다 한명씩 새겨져 있다.(아래 사진) 끝 부분이 펜타곤쪽을 향하고 있으면 펜타곤 건물 안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경우이다. 벤치 끝 부분이 바같쪽을 향하고 있으면 그 희생자는 펜타곤 건물에 충돌했던 비행기에 탑승했던 사람이다.

 

  당시 희생자 가운데는 Hebert Homer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펜타곤 직원이었는데 휴가를 떠났다가 변을 당한 경우다.

 

 그는 공교롭게도 자신이 근무하던 펜타곤에 충돌한 사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숨졌다.

 

 펜타곤은 미국의 국방부를 말한다. 정식 명칭은 ‘Department of National Defence’이다. 미합중국의 육·해·공 3군을 통합 관장하는 최고군사기관이다.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주 알링턴 포토맥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 군 신경계의 중심이기도 한 펜타곤은 5층 오각형 건물이다. 펜타곤(pentagon)은 오각형이라는 뜻이다.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 있다. 층마다 다섯 개의 링 복도가 있다. 건물 내 복도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28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무실도 무지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령 사무실의 표식이 ‘2C949’라고 하면 펜타곤 2층에 있는 C9(링)의 49호실이라는 식이다. 그러니 사무실의 표식 넘버만 알면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이한 것은 펜타곤이 관광코스 중 한곳이라는 점이다. 이날도 사전 예약을 한 미국 시민들이 줄줄이 펜타곤을 관광하기 위해 입구에서 허리띠를 풀고 보안 검색을 받고 있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해병대에서도 드디어 여군 영관장교가 나왔군요. 해병대 창설 이후 63년 만에 처음입니다,

 

 

 김윤전(36ㆍ보병), 한경아(34ㆍ보병), 조윤정(35ㆍ헌병) 소령 등 사관후보생 96기 3명이 1일 해병 소령으로 진급했습니다.

 

 김 소령은 해병대사령부 군수참모처, 한 소령은 정보참모처, 조 소령은 1사단 헌병대 수사과에 각각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001년 3월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사관후보생 96기로 입소, 같은 해 7월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당시 이들 세명은 17대 1의 경쟁률을 뚫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무엇을 하든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김 소령은 2006년 해병대 여군 최초로 전투부대 중대장직을 수행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소령은 복무 중 위탁교육생으로 선발돼 국내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해병대 정보훈련센터에서 4개월간 군사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번 진급으로 해당 부대에서 헌병대장직을 맡게 된 조 소령은 ‘최초의 여성 헌병대장’이라는 경력을 또 하나 추가하게 됐다고 합니다.

 

 김윤전 소령은 “해병대 영관장교라는 막중한 위치에 서게 된 만큼 완벽함과 전문성, 노련함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여군 소령’이 아닌 ‘소령’으로서 해병대에 자랑스러운 장교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1949년 창설된 해병대의 여군은 1950년 8월31일 6·25전쟁으로 위태롭던 조국을 구하고자 지원입대한 해병 여자 의용군에서 출발했습니다. 1955년 1월17일 여자 의용군이 모두 전역하면서 2001년 7명의 여군 학사장교가 임관할 때까지 46년 동안 해병대에는 남군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해병대는 2001년 7명의 여군 학사장교를 임관시킨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사관학교 출신 여군 장교와 부사관을 선발했습니다. 2006년에는 해병대 최초로 여군 국외파병(이라크 자이툰부대)과 전투부대 중대장 보직이 생겼습니다.

 

 현재 장교 90여명, 부사관 120여명 등 모두 210여명의 여군이 포병과 기갑 병과를 제외한 해병대의 모든 병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여군의 평균 지원율은 평균 10대1 수준이라고 해병대는 밝혔습니다.

 

  오늘 등장한 여군 소령님들, 겉보기에는 다정한 옆집 누나들같은 이미지인데 실제 만나면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미 해병대에서는 훈련소 여자 교관이 가장 무섭다고 하던데.

 

Posted by 경향 박성진

 오늘은 국가보훈처의 '고무줄 잣대'를 소개하겠습니다.

 

 보훈처는 지난해 고(故)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국립묘지에 안장토록 결정해 놓고도, 2006년 숨진 고(故)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의 안장은 거부했습니다. 두사람 다 사면복권됐고, 이후 훈장은 강 전 사령관이 더 많이 받았습니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대상심의위원회(위원장 정양성)는 지난 8일 강 전 사령관의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했습니다. 보훈처는 안장 거부 이유에 대해 “강 전 사령관이 1981년 해운항만청장으로 재직 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며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안장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심의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강 전 사령관이 1988년 사면복권됐다”며 관련 서류를 제출했지만 보훈처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보훈처의 이같은 처사는 지난해 8월 5공화국 인사들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고 복역한 안 전 실장의 안장을 허가한 것과는 형평성이 어긋나는 것입니다. 

 당시 보훈처는 “안씨가 사면복권됐고,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는 등 국가안보에 기여했다”고 안장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국립묘지안장심사위원들에게 부적절한 영향을 행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강 전 사령관의 유족들은 줄기차게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 재심의를 요구해 왔습니다. 

 유족들은 “신군부 세력에 반대하다 수형 생활은 물론 순화 교육까지 받는 등 고초를 당한 고인은 국립묘지 안장을 못하게 하고, 신군부 세력의 핵심은 국립묘지 안장을 허가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강 전 사령관의 감옥살이의 배경으로는 해운항만청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국민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신군부에 협력을 거부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어찌됐든, 제3자가 봐도 보훈처의 처사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보훈처는 신군부 독재정권에 참여했던 인사의 경우 보훈처장까지 부당하게 심사에 개입해 국립묘지에 안장시키고, 신군부에 반대했던 군 인사에 대해서는 국립묘지 안장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강 전 사령관 유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후사정을 살펴봤습니다. 유족이 밝힌 경과는 이렇습니다. 

 

 강 전 사령관의 안장건에서 보훈처가 여러 실수한것이 드러났는데도 계속 책임회피를 하기에 유족들은 국민권익위에 제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민권익위(김영란 위원장)에서는 보훈처의 잘못을 인정해 재심을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안현태장군건에 대해선 보훈처가 심하게 통과시키는 쪽으로 몰고가 사회적 문제를 만들더니 강 전 사령관의 경우에는 보훈처의 실수때문에 국민권익위의 강권에 못이겨 재심하게 됐다고 처음부터 (안장을) 방해하는 쪽으로 몰더니 결국 부결시켰습니다.

 

 그동안 보훈처가 강 전 사령관의 안장을 거부한 이유로 사면복권이 안된 것을 얘기하다가, 유족이 사면복권 기록을 보이니 동명이인일 수있다는 헛소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보훈처에 국가기록원에서 발행한 사면복권기록을 보여주니 당시 보훈선양국장이 “장군시절 받은 을지무공훈장(두번째 등급, 강창성수여)보다 위관시절 받은 화랑무공훈장(세번째 등급, 안현태 수여)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강창성 장군은 6.25 중 화랑무공훈장 2번이나 받았습니다.

 

 이제 이의제기, 상급기관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으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유가족 진술서


 존경하는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 위원님들,

 

 고(故) 강창성 장군은 2006년 2월 14일 9시 반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하자마자 6.25가 발발, 3년간 소,중,대대장으로 참전했고, 보병연대장을 거쳐 동기 중 최초로 육군준장으로 진급과 함께 초대 중앙정보학교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보병 5사단장 및 보안사령관등을 역임하고 3관구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했습니다. 군에서 을지무공훈장등 10여개의 훈장을 수훈하였으며, 저서 <한국/일본 군벌정치사>는 한국과 일본의 군맥과 사조직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리고 1976년 3월부터 1980년 2월 까지 4년간 현 해양수산부의 전신인 해운항만청의 초대 청장으로 재임하며 우리나라 해운산업 발전과 현 해양수산부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1980년 7월 신군부에 의해 체포되어 2년 반에 걸친 수형생활을 했습니다. 고인은 “어차피 보복 받는 것 3심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하며 대법원 항소를 포기하고 3년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혹독한 정치보복이었다는 것은 여러 역사서와 언론에 자세히 그리고 수없이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투옥기간 중 혹독한 ‘순화교육’이라는 청와대 특별지시에 의한 ‘정치보복’을 받아 체중 80kg(키 175cm)의 체격이 57kg으로 왜소화됐습니다. 

 “강씨에게 순화교육을 시키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보고하라고 청와대에서 지시했다”고 당시 교도관들이 증언한 언론보도들이 나갔습니다. 고인은 1982년 말 2년 5개월의 수형을 마치고 가석방됐습니다.

 

 고인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16대에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해서 생긴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두 당에서 부총재와 총재권한대행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고인은 고령에도 정력적인 의정활동으로 최우수 의정활동의원으로 여러 번 선정됐습니다.

 

 사망 시 고인은 본인이 당연히 국립묘지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고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안장 거부가 됐고, 시간이 지난 지금 고 안현태 장군님의 안장과 더불어 야기된 언론과 국회의 이의제기에 결부해, 유가족들은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당시의 고 강창성 장군의 안장거부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런 유가족의 민원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재심 권고를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고인의 사면복권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정부기록보존의 미비 때문에 기록이 제대로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고 사면복권사실을 알렸으나 정부기관이 그 기록을 찾지 못해 유가족이 직접 나서서 당시 언론보도와 국가기록원의 기록(1988년 2월 27일)을 찾아냈습니다.

 

 또한 이 과정 중 알게 된 몇 가지 문제들과 더불어 고 김용대 장군님의 안장 경우도 알게 됐고,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2006년 1월 30일 국립묘지법이 처음 시행되었고, 2006년 2월 14일 돌아가신 강창성 전의원이 첫 번째 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의위원회가 구성조차 되지 않았고, 심의기준도 없었습니다.

 

 2006년 3월 14일 첫 심의가 열린 날, 심의위원들은 안장심의를 위해 급하게 기준을 만들었고 그것이 금고3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자는 안장을 거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이후 몇 차례 심의기준이 변경되었고, 최근에는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은 자는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안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시 심의위원회는 금고 3년 이상을 안장심의 기준으로 정했지만 같은 해 6월, 그러니까 강 전의원보다 3개월 뒤인 2006년 6월 14일에 심의한 고 김용배 장군님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사면복권도 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안장이 결정되었습니다. 

 

 고 강창성장군의 유해는 언젠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전의 자택에 임시 안치됐다가 지금은 현재 고인의 고향인 경기도 포천에 가매장된 상태입니다.

 

 고 강창성 장군은 생전에 ‘일중독’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책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군인과 행정가, 정치인으로서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고 평생을 국가에 충성했습니다.

 

 요번에 탄원서 서명을 받는 과정 중에 군의 최고원로 중 한분인 채명신 장군님(육사  5기,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은 “강창성 장군은 나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 중 하나다. 그런 사람이 국립묘지에 못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준엄히 말씀하셨고, 

 대한민국의 마지막 주월공사로서 교민들 탈출을 끝까지 지휘하다가 월맹군에 잡혀서 5년간 억류생활 끝에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온 이대용 장군님(육사7기, 현 육사총동창회 명예회장, 전 육사총동창회장)은 “세상에 강창성 장군이 국립묘지에 못 들어가면 누가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격한 감정을 토로 하셨습니다. 

 두 분은 고 강창성 장군의 군 선배로서 6.25전쟁을 같이 치룬 전우들입니다.

 

 전직 3부 최고 수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 남덕우 전 국무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님. 박세환 현 재향군인회 회장, 이상희·이준 전 국방장관, 도일규 전 참모총장님 등 군 원로들. 원유철 현 국회국방위원장,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전 해운항만청장·현 여수 엑스포 조직위원장,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 이인호 전 주 러시아 대사님 등 사회지도층 인사분들 여러분이 이런 의견에 동의해 주셔서 탄원서에 자발적으로 기꺼이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고 강창성 장군의 유족들은 고 안현태 장군님과 고 김용배 장군님의 국립묘지안장에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 분들도 국가에 충성을 한 분들이고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충분한 분들입니다.

 

 위원님들!  6.25 전쟁 전 기간 동안을 포함하여 평생을 국가에 봉사한 고 강창성 장군도 국립묘지에 안장되도록 도와주십시오. 

 고인은 대전이 사령부 본부였고 충남북을 관할했던 제3관구사령관 재직 시 제2국군묘지(현 대전 현충원)의 터를 잡았던 장본인으로 대전에 안장되길 바랐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고인이 평생 국가에 봉사한데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인 국립묘지 안장만 바랄 뿐입니다.
 
 심의위원회의 현명한 판단과 조치를 머리 숙여 앙망합니다.

 

고 강창성 장군 유족 일동.  2012. 5. 10.


 ■국민권익위 결정문 요지

 

“망인에 대한 국립묘지 안장 심의 시, 관련 법 적용 및 사면복권 사실 확인 등에 있어서 안장이 결정된 故 김용배 장군, 故 안현태 장군의 안장 심의 시와 형평성에 위배되니 망인에 대하여 국립묘지 안장 심의”해 달라는 건에 대해

 

“망인이 2006. 2. 14. 사망하자 2006. 3. 14.부터 같은 해 5. 28.까지 적용된 심의기준인 금고 3년 이상 제외규정에 따라 망인에 대한 안장을 거부한 반면, 

 故 김용배 장군은 2006. 3. 13. 사망하였음에도 망인에게 적용한 위 심의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지 아니하고, 위 심의기준의 운영과정상 미비점을 개선, 보완하여 2006. 5. 29. 제정된 이 운영규정의 새로운 심의기준에 따라 2006. 6. 14. 뒤늦게 故 김용배 장군에 대한 안장을 결정하였는데, 

 이때 이 운영규정의 새로운 기준이란 망인에게 적용된 금고 3년 이상 제외규정이 삭제되고,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자는 심의결과에 따라 안장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고

 

“故 김용배 장군, 故 안현태 장군의 경우, 국립묘지의 영예성 훼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이들이 각 ‘살인 음모’로 징역 5년 형을, ‘뇌물죄’로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고는 하나, 각 감형 석방, 사면·복권된 사실이 있어 이를 정상 참작하였고, 재향군인회 등의 건의서 등을 통해 이들이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이들의 안장 여부를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망인의 경우, 국가보훈처가 망인의 특별복권 사실을 최근에서야 뒤늦게 확인함에 따라 2006. 3. 14. 망인에 대한 안장심의 시, 당시 심의위원들에게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여 당시 심의위원들이 이를 간과하고 불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망인에 대한 국립묘지의 영예성 훼손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판단.

 

 또한 “사면·복권이 되었다고 하여 당연히 국립묘지의 안장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수형사실이 있는 안장 신청자의 경우, 국가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정도,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국립묘지법의 설립 취지, 국민 정서 등을 감안하여 제한적으로 안장이 가능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피신청인1이 그 내부에서 정한 재량권 행사의 심의기준에 따라 망인의 특별복권 사실 등 정상참작 사유와 망인이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정도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아니한 채 망인에 대한 안장 심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이므로 망인의 특별복권 사실 등을 검토하여 망인의 안장 여부 판단을 위한 심사 절차를 다시 진행”할 것을 권고.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대한민국 해병대 최초 전지훈련’

 

 

- 한ㆍ미 및 다국적군 연합 지상훈련에 이어 ’12년 환태평양 훈련 참가

 

 

 해병대는 창설 이후 최초로 미국 하와이에 소대급 전투부대를 파견해 한ㆍ미 연합 및 다국적군 연합훈련, ’12년 환태평양훈련(RIMPAC : Rim of the Pacific)에 참가했다.

 

지난 5월 31일에 출전 신고를 마친 훈련참가 장병들은 1일 포항에서 미 해병대 헬기(MH-53)를 이용해 해상에 대기하고 있는 미 상륙함 뉴 올리언즈(New Orleans)에 편승, 하와이로 이동한 후 6월 10일(일)부터 8월 3일(금)까지 55일간의 훈련일정에 돌입했다.

 

현지에 전개한 해병대 장병들은 먼저 미 해병대와 함께 하와이주 오아후섬(Oahu Island)에 위치한 해병대 훈련장에서 수색ㆍ정찰 및 기계화전투, 방어전투, 안정화작전 등 도시지역 전투훈련과 정글지역에서의 수색정찰 훈련을 6월 26일(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 이어 6. 27일(수)부터 7월 7일(토)까지는 다국적군 연합훈련으로 미국ㆍ뉴질랜드멕시코 해병대와 함께 한 개 중대를 이뤄 중대급 전술훈련, 도시지역 전투, 헬기상륙돌격 장갑차(AAV : Amphibious Assault Vehicle) 조난시 탈출훈련, 개인 및 공용화기 사격을 실시하고 7월 8일(일) 미 상륙함에 편승, 하와이 제도의 섬 중에 하나인 빅 아일랜드(Big Island)에 있는 미 훈련장으로 이동한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호주ㆍ캐나다ㆍ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통가의 해병들은 미 해병대와 다른 중대를 편조하여 한국 해병대와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훈련을 하게 된다

 

 2,000미터가 넘는 고지에서 다국적군은 야외에서 숙영과 식사를 하면서 소대기동훈련, 기동사격 등 전술훈련을 7월 23일(월)까지 실시한다.

 

다국적군은 7월 24일(화) 미 상륙함정에 다시 편승하여 8월 2일(목)까지 림팩훈련에 참가한다.

 

 태평양 연안국 22개국이 참가하여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번 림팩훈련은 녹색국과 황색국의 분쟁이 발생함에 따라 UN의 의결로 림팩군이 개입해 분쟁을 해소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로 진행될 예정이다. 훈련간 한국 해병대 장병들은 림팩군의 일원으로서 상륙작전과 함께 비전투원 후송작전(NEO : 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정글일대 수색 작전을 진행한다.

 

 모든 훈련을 마친 해병대는 8월 7일(화)부터 23일(금)까지 우리 해군 최영함을 이용해 귀국할 예정이다.

 

 해병대는 지난 2000년부터 참관인 자격으로 림팩훈련에 동참해 왔고, 실제 훈련병력 참가에 대한 필요성 제기와 미 태평양 해병대사령부(MFP : Marine Forces in Pacific)측의 훈련참가 요청에 따라 올해 최초로 소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해 미국에서의 전지훈련을 하게 됐다.

 

 한편 해병대는 이번 훈련이 대한민국 해병대 최초의 미국 전지훈련인 만큼 훈련성과를 높이기 위해 지난 5월 11일부터 훈련 참가 장병들을 대상으로 전투사격 및 분ㆍ소대 기동사격술, 도시지역 전투, 수색ㆍ정찰훈련 등 현지 임무수행에 필요한 과목을 선정, 집중 숙달해왔다.

 

 해병대는 이번 훈련을 통해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연합작전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 보이며 대한민국 해병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각국 해병대의 전투기술과 전술 경험을 축적하는 기회로 삼을 예정이다.

 

 이번 훈련의 지휘관인 김정훈(해사 56기) 대위는 “이번 전지훈련에서 우리 군과 해병대의 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엄정한 군기를 유지한 가운데 솔선수범하겠다.”라며 “또한 한국 해병대의 우수성과 강인함을 유감없이 선보이겠다.”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해병대 최초 전지훈련 참고 자료

 

훈련기간 : '12. 6. 1.(금) ~ 8. 23.(금) / 84일간

◦ 포항 출발(6.1.) → 하와이입항/출항(6.9./8.7.) → 부산 입항(8.23.)

훈련장소 : 미국 하와이(K-BAY, BIG ISLAND 등)

해병대 참가병력 : 1개 소대(35명)

□ 주요 훈련일정

◦ 부대전개 : 6.1.~6.9.(9일간) / New Orleans함

◦ 한ㆍ미 연합훈련 : 6.10(일) ~ 26(화) / K-Bay(Oahu)

◦ 다국적군 연합훈련 : 6.27(수) ~ 7.7(토) / K-Bay(Oahu)

◦ 다국적군 야외전술훈련 : 7.8(일) ~ 7.23(월) / Big Island

◦ 상륙훈련(림팩훈련) : 7.24(화)~8.2(목) / Oahu

◦ 복귀 : 8.3(금)~23(목) / 최영함

□ 해병대 참가국 현황

미국

호주

캐나다

멕시코

대대(850명)

중대(160명)

중대(135명)

소대(35명)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퉁가

소대(30명)

소대(30명)

소대(35명)

소대(40명)

□ 환태평양훈련(RIMPAC)

◦ '71년 최초 실시, '74년 이후 격년제로 '12년 훈련이 23회

◦ 해병대는 '00년부터 '08년까지 참모 및 훈련참관자 파견

참고 1 - 1

◦ '12년 림팩 : 역대최대 22개국 참가(기존15개국 + 최초참가 7개국)

 

Posted by 경향 박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