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면 마치 눌렸던 ‘용수철’이 튀는 것처럼 반발한다. 지난주 남북한이 합의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큰 난관에 봉착했던 것도 북한이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에 과도하리만큼 집착했던 탓이다.
지휘소훈련(CPX)인 키 리졸브 훈련은 실제 한·미 전력이 참여하는 폴이글 훈련과 연계해 이뤄진다. 한반도에서 한·미연합군이 실시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단호한 결단’이라는 뜻이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의 원활한 전개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키 리졸브 훈련은 전시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병력의 ‘수용·대기·전개·통합’ 훈련을 의미하는 RSOI 훈련이 한·미간 전작권 전환 합의 이후 명칭이 바뀐 것이다.
맞대응 훈련으로 인한 막대한 ‘소모전’
한·미가 키 리졸브 훈련과 연계해 실시하고 있는 폴이글 훈련은 비정규전을 대비한 것이다. 영어로는 ‘Foal Eagle’인데 ‘Foal’은 ‘나귀의 새끼’라는 뜻으로 미 제1공수특전단의 별칭이다. ‘Eagle’은 독수리로, 우리나라 제1 공수특전여단의 별칭이다.
‘Foal Eagle’이라는 명칭은 미군 1공수특전단과 한국군 1공수특전여단이 한·미 연합 특수전 훈련에 최초로 함께 참가하면서 비롯됐다. 일부에서는 폴이글 훈련을 독수리 연습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폴이글 훈련에는 군단급, 함대사령부급, 비행단급 부대의 한국군 20여만명과 주로 해외에서 증원된 미군 1만여명이 참가했다. 또 괌에서 B-52가, 미 본토에서 B-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전개되기도 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한·미가 훈련을 하기 시작하면 북한군의 ‘스트레스 지수’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간다. 어쩔 수 없이 한·미의 전력 수준에 맞춰 대응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RSOI 훈련’의 전신으로 1990년대 초까지 매년 실시됐던 팀스피리트 훈련 시기만 되면 사실상 준전시 상태로 돌입, 주민들이 비상식량을 챙겨 지하갱도에 들어가는 대응훈련을 하기도 했다. 북한은 ‘적 연합군’ 수십만명이 한반도에서 전쟁연습을 하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 훈련 상황이 생기면 북한은 이로 인해 막대한 인원과 물자를 동원하는 맞대응 성격의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소모전’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북한은 키 리졸브 훈련을 방어용이 아니라 ‘침공을 위한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미국이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과 관련한 궤변을 하고 있다”면서 “평양 타격을 노리는 전쟁연습을 어떻게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느냐”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군이 건설·어업·무역 등 다양한 경제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런만큼 키 리졸브와 같은 한·미 군사훈련이 벌어지면 그 기간동안 북한군이 경제적 부문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군사적으로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지금까지 북남관계는 남조선에서 해마다 거듭되는 전쟁연습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받아 왔다”고 밝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남측은 북한의 도발 등에 대해 응징적 차원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참가 전력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등의 ‘하이키’(high-key)로 훈련을 진행한다. 이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핵추진 항공모함과 B-2 또는 B-52 전략폭격기의 공개다.
B-52 전략폭격기 등장에 강력 반발
북한은 해마다 키 리졸브 훈련에 대한 비난을 거르지 않고 있다. 2009년에는 훈련을 빌미로 개성공단을 차단했고 2011년에는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며 남측을 협박했다. 2012년에는 “거족적인 성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반도 긴장을 높였다.
2013년 3월 키 리졸브 훈련 모습. | 서성일 기자
지난해에도 미군의 B-52, B-2 전폭기와 핵잠수함 등 핵공격이 가능한 전력이 훈련에 앞서 한반도에 전개됐다. 그러자 북한은 “핵 전면 대결전의 선전포고”라면서 키 리졸브 훈련 하루 전날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했다. 나아가 남북간 전화선을 단절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개성공단 잠정 폐쇄의 꼬투리로 삼았다.
일부에서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북한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을 줄 수 있는 제재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있을때마다 한·미가 이를 응징하는 조치로 합동군사훈련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가 북한 자극을 피하고자 할 때는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의 전력 공개를 피하거나 아예 항모나 전략폭격기를 보내지 않는 ‘로 키’(low-key)로 훈련을 진행하는 게 관행이다. 올해의 경우 한·미는 이산가족 상봉 등을 포함해 남북간 접촉에 걸림돌을 만들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훈련에 참가하는 미군의 전력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2014년 키 리졸브 훈련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바로 ‘하늘의 요새’로 불리는 B-52 전략폭격기의 등장 때문이었다. 당초 핵 항모와 B-2, B-52 전략 핵폭격기는 훈련에 참가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이 B-52 기동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B-52 폭격기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탑재된 핵추진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우산’ 전력의 하나다.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남측과 키 리졸브 훈련 일정이 일부 겹치는 ‘2월 20~25일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B-52가 한반도에 출현한 것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북한의 속내는 한·미가 연합훈련의 강도를 낮추면 이 과정을 통해 긴장 완화를 모색한 후 나름대로 경제 건설에 집중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었는데 이것이 어긋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B-52가 미 공군의 사격 훈련장인 군산 앞바다 직도에 등장했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부와 협의된 사항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부터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해 한·미가 공동으로 마련한 ‘맞춤형 억제전략’이 처음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미군의 핵우산 전력인 B-52 전략폭격기의 참가는 불가피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의 ‘맞춤형 억제전략’은 전시와 평시 북한이 핵과 WMD 사용을 위협하는 단계에서부터 직접 사용하는 단계까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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