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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예비군 저격수 시대

 “신은 많은 병력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수의 편에 선다”는 말이 있다. 군 저격수의 중요성을 지적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이 저격수들이 사용하는 총이 바로 저격용 소총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군 저격수는 외국산 저격용 소총을 사용했으나 이제는 국산 소총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초정밀 7.62mm K-14 저격용 소총(Sniper)이 12월부터 우리 군에 본격 공급되면서 전력화된 것이다.

 

   <S&T모티브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 군에 공급한 K-14 저격용소총 사격모습./S&T 모티브 제공>

 

 유효사거리가 800m인 이 저격용 소총은 국내 유일의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인 ‘S&T모티브’가 독자 기술로 개발한 것으로 군은 특전사와 해병대 등 일부 특수부대에 먼저 보급하고 있다.


 

 저격용 소총은 100야드 거리에서 1인치 내에 탄착군을 형성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MOA·Minute of Arc)을 통과해야 하는 초정밀 기술을 요구한다. 이번에 전력화된 K-14 저격용 소총은 90여m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명중시킬 수 있는 성능이라고 방위사업청은 밝히고 있다.

 

 저격용 소총은 대테러전을 비롯한 현대전에서 필수적인 화기로 꼽히고 있다. 특히 특수부대와 보병부대 저격수들의 필수품이다. 한국군은 그동안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저격용 소총을 전량 수입해왔다. 이때문에 군에서는 한국 지형과 군의 특수성을 고려한 저격용 소총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S&T모티브를 중심으로 국산화 개발에 착수했고, 이번에 전력화에 성공했다.

 

 <S&T모티브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 군에 공급한 K-14 저격용소총./S&T 모티브 제공>

 

 K-14 소총은 필요할 경우 3~12배율의 주간 조준경이나 4배율의 야간 조준경을 장착할 수 있다. 탄약은 특수 탄약을 사용한다. 방사청은 주간 조준경과 탄약 국산화까지 마무리되면 약 26억 원의 수입대체효과와 함께 해외수출도 쉬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K-14 소총은 요르단에 이어 다른 중동국가에 수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군에서는 해외 귀빈이나 국회의원 등 VIP들이 특전사같은 특수부대를 방문하면 부대에서는 저격수팀의 사격 시범으로 이들을 환영하는 게 관례다. 길리수트라는 독특한 위장복을 입고 100m가 넘는 거리의 과녁에 총알을 한발한발 맞출 때마다 플래카드가 하나씩 펼쳐지면서 “OOOO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내용이 펼쳐진다.

 

 그런데 가끔 플래카드가 펼쳐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는 저격수의 총알이 빗나가서가 아니라 플래카드를 펼쳐지게 하는 장치가 고장났을 확률이 거의 100%다. 왜냐하면 과녁 가까운 곳에는 예비 저격수가 숨어 있다가 시범 저격수의 총알이 빗나갈 기미가 보이면 초탄과 시차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추가사격을 해 표적을 명중시키기 때문이다.

 잠깐 얘기가 엇나갔지만 저격용 소총의 중요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적군 1명을 사살하는 데 소비된 실탄은 무려 2만5000발에 달했지만 저격수는 같은 전과를 얻는 데 평균 1.3발을 사용했다.

 

 영어로 저격수는 스나이퍼(Sniper)다. 이는 매우 동작이 빨라 쏘아 맞추기가 지극히 힘든 도요새(snipe)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총을 잘 쏘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저격수들은 상당수가 어린 시절부터 총을 잡고 사냥으로 끼니를 해결해온 ‘생계형 총잡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비의 중요성이 커졌다. 고성능 장비가 곧 ‘원샷, 원킬’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저격수에게는 적의 지휘관이나 포병관측장교, 기관총 사수 등의 특정 역할을 하는 적군을 사살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어디서 날아드는지 모르는 총탄에 지휘관 등의 고급장교나 통신병, 의무병이 차례대로 픽픽 쓰러지면 전의를 상실하기 쉽다.

 

 본격적인 저격수의 역사는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과 함께 열렸다. 그러나 초기의 저격수는 암살자로 경멸받았다. 베트남전 때 미 해병의 저격수 부대는 ‘살인 주식회사’로 통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서의 전설적인 미군 저격수 카를로스가 전쟁이 끝난 지 30년 후에야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것도 저격수에 대한 미군의 인식과 무관치 않다.

 저격수는 희생도 컸다. 미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 투입된 미 제15야전군의 정찰 저격수는 80%의 사망률을 보였다. 베트남전에서도 저격수는 적군에게 붙잡이면 즉결 처형을 당했다.

 

 세계 최고의 사살기록을 가진 저격수는 핀란드 방위군의 시모 하이하(Simo Hayha·1925~2002)로 그는 소련과 핀란드의 분쟁인 겨울전쟁에서 542명의 사살기록을 세웠다. 가장 먼 거리를 저격한 기록 보유자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이다. 그는 2009년 11월 아프카니스탄에서 2475m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했다.

 이제는 저격수의 표적이 사람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무기의 발달로 적군의 차량까지 저격수의 한방으로 폭발하는 시대다. 그런만큼 대부분의 나라가 저격수 양성에 적극적이다. 한국군도 예외는 아니다. 육군이 사단별로 예하 수색·보병대대 저격수들을 대상으로 최고 저격수를 선발하는 사격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통상 사격대회에는 100여 명의 저격수들이 참가한다. 대회 참가자들은 축소사격 및 실거리 사격, 기능 고장 시 조치요령 등을 완벽히 숙달해야 한다. 이들은 각자가 표적을 향해 제한된 시간 내에 10발을 쏜 후 표적 중앙으로부터 탄착된 지점을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가른다.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장병에게는 ‘톱 스나이퍼(Top-sniper)’란 명예가 주어진다.

 

 저격수는 건물이 많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2차대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소련군 전설의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와 독일군 귀족 출신 저격수 에르빈 코니그가 맞대결을 펼치는 장소도 스탈린그라드의 도심이다.

 한국군도 유사시 시가전에 대비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예비군 저격수 양성에 나섰다. 서울 지역 예비군의 47%를 관리하는 육군 52사단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K-14 저격용 소총을 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