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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군 입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국방부를 출입하던 10년쯤 전에 ‘육군 병사 중 자살 우려자가 약 1만명에 달한다’는 단독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군 당국은 그런 통계를 낸 적이 없다며 기사의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던 군이 최근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10년 전 기사 내용을 뒷받침하는 여러 통계자료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현역 입영자 32만2000명 중 심리이상자가 2만6000여명이었다는 수치도 그중 하나다. 그러면서 육군은 병역자원 부족으로 징병 대상자 대부분이 현역으로 입대함에 따라 심리이상자도 대거 야전부대에 배치되고, 매년 군 적응에 실패한 병사 7000명이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육군이 발표한 ‘군 복무환경’ 자료에 따르면 징병 대상자 현역 판정 비율은 1986년 51%에서 1993년 72%, 2003년 86%, 지난해 91%로 꾸준히 상승했다. 병역자원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2022년이 되면 현역 판정비율이 98%에 달할 것으로 병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사실 군 입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신체 건강한 자원만이 군복을 입어야 정상적인 군대다.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하려면 학력이 고졸 이상이어야 하고 영어, 수학, 과학, 인지능력 시험에서 99문제 중 3분의 1인 33문제 이상을 맞혀야 한다. 비만 또는 과체중도 안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자원 부족을 이유로 징집해서는 안되는 인력까지 군복을 입힌 후 마치 소고기처럼 편의적으로 A, B, C등급으로 분류해 관심병사를 양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군의 상비병력을 52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이 중 40% 이상을 간부로 편성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과도 배치되는 일이다.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 군의 상비병력은 현재 63만3000명에서 2022년까지 52만2000명으로 11만1000명이 줄어들도록 돼 있다. 특히 육군은 현재의 49만8000명에서 38만7000명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감축해야 하는 11만1000명 모두가 육군 몫인 것이다.

그럼에도 군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예산을 핑계로 병력감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10여개 사단, 1만여명이 맡던 경계근무를 수개 경비여단, 5000여명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운영되더라도 육군은 적 침투 등 비상시 투입인원과 시설 유지·보수 인력 등을 이유로 최전방 병력을 줄이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백승주 차관(오른쪽)과 박대섭 인사복지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 김유근 육군참모차장(세번째) 등이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병영문화 개선 관련 현안보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다. _ 연합뉴스


윤 일병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구성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에서도 병력 감축을 통해 병사들의 자질을 높이는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병영문화와 병력 감축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군에서 관심병사가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 자체가 육군의 병력 충원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방부 역시 두 사안의 연관성을 알면서도 병력 감축 문제는 장기과제로 병영문화 혁신위에서 다룰 성격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병역법을 개정해 상근예비역의 경우에는 현행 21개월의 군 복무기간을 공익근무요원들처럼 24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찌 보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떡 본 김에 제사지내겠다’는 식이다.

국방부는 또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 군인들로만 이뤄진 ‘작전기강 분과’를 제4분과로 추가해 설치했다. 국방부는 병영문화 개선책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제4분과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지만 여기서 1~3분과의 권고사안을 군사 작전적 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사실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2005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진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는 장병 기본권 증진을 위한 여러 가지 연구된 개선안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반복되고 있다. 국방부를 오래 출입한 기자들의 경우 군내 악성사고가 나면 군의 발표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군이 내놓을 대책에 관한 기사 며칠치를 눈감고도 미리 쓸 수 있을 정도이다.

근본적인 사고 발생의 토양을 제거하지 못하면 입에 발린 대책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병영문화뿐만이 아니라 병력 중심의 한국 지상군 전력에 대한 정밀 점검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성진 디지털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