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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법보다 계급이 위’ 군 사법체계 고치자

군사범죄만 군사법원과 군검찰, 헌병대가 다룰 수 있도록 하고 비군사범죄는 일반 경찰과 검찰, 법원이 다룰 수 있게끔 군형법을 개정하자는 얘기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군 사법체계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치사 사건과 6사단 남모 상병 추행 및 폭행 사건 처리과정 등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난 게 계기가 됐다. 민주노총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5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는 “고 윤 일병 사망사건은 지난 4월에 발생했음에도 군 검찰과 군 법원은 철저히 사실을 은폐했다”며 “군의 내부 감찰과 외부 통제는 사실상 정지, 단절됐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하반기 주요 과제로 군 사법개혁 재추진을 꼽고 있다.




지난 8월 5일 경기도 양주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사건 시민감시단이 병영내 인권개선을 촉구하며 쪽지와 풍선을 붙이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군 사법체계에서 군사법원은 군인의 형사사건을 재판하는 특별법원이다. 1심의 경우 국방부와 사단장급, 함대급, 비행단급 이상 부대에 각각 보통군사법원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심의 경우 고등군사법원이 국방부에 설치돼 있다. 3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군 사법체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재판관과 관련해서다. 군사법원 재판관은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심판관의 경우 변호사 자격은 없지만 군사재판에 있어서 군의 특수성을 재판에 반영한다는 이유로 장교가 재판관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국방부와 육·해·공군에서 심판관으로 임명된 530명 가운데 397명(75%)이 과거 재판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 장교다.


사단장 이상 지휘관의 형량감경권 남용

관할권 확인조치권(형량감경권)도 논란의 대상이다. 확인조치권은 사단장 이상 지휘관(관할관)이 소속 부대원의 1심 판결에 한해 형량을 감경할 수 있는 권한으로, 군사법원에만 있는 제도이다. 본래 감경권은 군형법의 법정형이 일반 형법보다 높기 때문에 법적 형평성을 위해 마련된 권한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군형법 위반이 아닌 일반 범죄를 봐주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민간 사건의 경우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사면권을 사단장이나 함장, 전투비행단장 이상의 각급 부대 지휘관들이 매 재판마다 행사하는 셈이다. 이는 계급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혀 왔다.


게다가 사단장 이상 지휘관들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장교를 심판관으로 임명하고 확정판결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범죄 수사를 직할부대인 헌병대가 맡고 군 검찰 임명권도 갖고 있기 때문에 지휘관인 사단장 또는 군단장이 마음만 먹으면 군내 폭력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2009년 9월 지휘관의 감경 이유를 명시하도록 한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묻지 마’ 감경도 가능했다. 국방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4년 6월 말까지 2년 반 동안 총 105명이 감경권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형을 감경받은 범행을 살펴보면 교통범죄(도로교통법 위반), 폭력범죄(상해·폭행, 폭력처벌법 위반), 절도·강도, 사기·횡령·배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심지어 군에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했던 성군기 사건에 대해서도 지휘관의 감경권이 행사됐다.


작년 대법원이 처리한 군사법원 사건 104건 중 파기된 사건은 5건으로 파기율은 4.8%에 달했다. 이는 최근 수년간 2∼3%에 그친 민간법원 사건 파기율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군사법원의 원심 판결에 그만큼 오류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앞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국방부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지휘관의 형량감경권과 보통군사법원 폐지 등의 군 사법제도 개선안을 내놓자 2007년 6월 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2008년 8월 당시 이상희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대장급 콘퍼런스’에서 심판관 제도를 유지키로 입장을 번복했다. 결국 사개추위가 마련한 군 사법제도 개혁 관련 7개 관련 법률안은 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의 지휘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군내 반발에 부딪혀 군 사법개혁 논의는 물 건너간 것이다.




윤모 일병 사망사건 가해자들이 8월 5일 경기 양주시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군 사법체계를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국방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군 법무관들은 육·해·공군 다 합해 530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국방부 소속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소속으로 고등군사법원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권역별로 나눠서 지역 군사법원 5개를 만들면 군 판사들이 어느 군 소속이 아닌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되면서 각군 총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군사범죄만 군사법원과 군검찰, 헌병대가 다룰 수 있도록 하고 비군사범죄는 일반 경찰과 검찰, 법원이 다룰 수 있게끔 군형법을 개정하자는 얘기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군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총 3만2718건의 범죄 중 군형법범은 4937건으로 1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군인의 폭력범죄나 성범죄 등 대다수의 사건을 민간 법원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장 지휘 받는 헌병 기능 개혁도

군은 법원과 검찰이 분리된 민간 사법체계와 달리 지휘관 아래 검찰과 법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군사재판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내부적으로는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군 법무관으로 임용된 법무장교와 육사 출신 법무장교 사이에 미묘한 갈등관계가 빚어지기도 한다. 또 군인으로서 조직에 대한 충성, 즉 ‘로열’(Loyal)’이 우선이냐, 아니면 법조항을 앞세우는 ‘법률가’(Lawyer)로서의 입장이 우선이냐를 놓고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헌병 기능의 개혁도 군 사법개혁이 거론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군내 사고가 날 때마다 ‘헌병이 사건을 은폐·축소했다’는 의혹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군헌병은 경호와 교통정리를 주로 하는 작전기능과 수사기능이 통합돼 있어 작전헌병과 수사헌병으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수사헌병조차 육군의 경우 사단장 지휘를 받는 데다 진급문제 등이 걸려 있어 환경적으로 지휘관 편을 들지 않기가 힘들다. 심하게 말하면 지휘관이 사건을 덮으라면 덮어야 하는 것이다.


군 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국방부는 지난 8월 22일 ‘병영문화 혁신 고위급 간담회’를 열었다. 국방부는 당초 한민구 국방장관 주관으로 ‘군 사법제도 개선 고위급 토론회’를 비공개로 열어 군의 자체적인 군 사법제도 개선과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군 사법체계 개선 요구에 대한 군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토론회가 마치 군 사법제도를 바꾸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외부에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로 군 인권과 병영문화 혁신, 군 사법제도 등을 모두 점검하는 취지의 고위급 간담회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는 육·해·공군참모총장과 각군 본부 법무실장, 국방부 법무관리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국방부 검찰단장 등 군 사법체계의 주요 직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군은 여전히 군 사법체계가 지휘관의 지휘권 강화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만큼 고위급 간담회 개최의 배경도 국회에서 군 사법제도 개혁안을 내놓은 데 이어 28일 군사법원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일정이 예고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이 예봉을 피하기 위한 ‘방탄 간담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