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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군의 ‘마지막 각오’는 믿을 만한가

미 육군은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군구조 개혁 혁신안으로 군 부대를 모듈화하는 방안을 10년 전부터 추진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대단위 부대의 예하 부대를 하나씩 차출해 하나의 부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전투부대와 지원부대 등을 마치 장난감 블록인 레고 부품처럼 조립해 새로운 단위 부대를 구성하는 일종의 ‘편조(編組) 방식’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입각한 부대의 모듈화는 적은 인력으로 그때그때 목적에 따라 부대를 새로 ‘조립’할 수 있다.

한국군도 이라크 자이툰부대 등 해외 파병부대를 구성할 때 편조 개념을 적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군은 부대를 운영할 때보다는 군내 문제가 발생할 때 모듈화된 편조 개념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군내 대형 사건이나 악성 사고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대처방안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계적으로 척척 나오는 곳이 한국군이다. 한마디로 사고 유형에 따라 각종 대응 방안들이 만들어지고, 종합 대책이 필요하면 여러 대응 방안들을 레고식으로 조립해 대국민 발표를 하는 식이다. 워낙 유사 사건 사고 경험이 많아서 가능한 조치들이다.

육군 22사단 임모 병장 총기난사 사건에 이어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치사 사건 등을 비롯한 악성 사고들이 잇따르자 군 당국은 소나기식으로 병영문화 개선책들을 쏟아냈다. 짐작했듯이 대부분이 과거에 이미 수차례 써먹었던 발표용들을 레고 부품처럼 다시 조립한 종합대책이었다.

이런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군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등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국방부는 과거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와 유사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를 발빠르게 구성했다.

지난 8월 출범한 ‘병영혁신위’에는 학계와 종교계, 병사, 부모 등까지 참여시켰다. 전체 135명의 병영혁신위 위원 중 절반이 넘는 75명이 민간 인사로 채워졌다. 필자도 여기에 실무위원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군사법제도 개혁은 물론 군의 비밀주의, 폐쇄성을 제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혁신위에 참여했다.

병영문화혁신위 전체회의에서 병영문화혁신위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 둘째부터 오른쪽으로), 심대평 혁신위원장,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병영문화혁신위는 최근 국회의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별위원회에 25개의 병영문화 혁신 중점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국방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국방부 입맛에 맞는 혁신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수 복무자가 취업할 때 만점의 2% 이내로 가산점을 주겠다는 사실상 위헌소지가 있는 편법적인 군복무 가산점 제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것이나, 사단마다 설치된 탓에 민간 법원보다 숫자가 더 많은 보통군사법원의 폐지 등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핵심 개혁과제로 혁신안에 포함됐던 군 옴부즈맨 도입도 병영혁신위 보고서에는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되 군 본질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모호한 문구를 집어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노무현 정부는 503 GP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2005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국방부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보통군사법원 폐지 등의 군 사법제도 개선안을 내놓자 2007년 6월 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대장급 콘퍼런스’를 개최해 입장을 번복했다. 결국 군 사법제도 개혁 7개 법률안은 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의 지휘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주장에 부딪혀 군 사법개혁 논의는 물 건너간 것이다.

이번에도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추진한 여러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들은 군의 특수성 주장에 휘둘려 애매한 표현으로 정체성이 모호해지거나 장기 과제로 넘어가면서 단순한 단기 처방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몇몇 실무위원들을 중심으로 반발하는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병영문화혁신위 첫 회의에서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병영문화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10년 동안 ‘뼈를 깎는 자세로 이번이 마지막 각오’란 군 고위층의 다짐을 이미 3차례나 들었다”며 제발 더 이상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이 관계자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담긴 보고서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면서 과거 레고식 종합대책이 다시 나온다면 “뼈를 깎는 자세로 이번이 마지막 각오”라는 말이 반복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박성진 디지털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