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군 코멘터리

‘확증편향’ 안보와 갈대처럼 눕는 군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1월23일 북한군은 연평도를 기습포격했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와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서해5도에 대한 도발 징후를 이미 3개월 전에 SI(Special Intelligence)를 통해 포착했다. 북한군의 통신에서 서해5도 지역을 의미하는 ‘턱’이라는 음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포격도발 이후 ‘서해5도 지역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라’는 북한군 내부 통신내용을 감청하고도 군이 민간인 지역 포격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군이 북한 공격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문제였다. 군은 감청 사실 여부에 대해 얼버무렸지만 SI가 갖는 민감성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넘어갔다.

통상 감청정보를 의미하는 SI는 넓게 보면 신호나 통신 주파수 등의 감청, 위성 촬영, 공작원 등을 비롯한 특수한 방법으로 수집된 첩보와 이를 분석·평가한 정보다. SI는 그 출처와 내용이 반드시 은폐돼야 한다. 적에게 누설될 경우 군사작전 및 군사정보 활동에 치명적인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I는 군에서조차 ‘알지만 (존재조차) 말해서는 안 되는’ 소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취급받았다.

그랬던 SI가 이제는 2020년 9월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강아지 이름’처럼 불리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입만 열면 SI를 경쟁적으로 떠들고, 언론은 이를 받아 쓰고 있다. 당초 발단은 사건 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군 고위 관계자들이 SI를 통해 취득한 내용을 마구잡이식으로 공개하면서 일어났다. 군 고위 관계자들이 SI를 과다 노출시킨 이유는 이씨 사건의 진상 규명과도 연관된 문제로 반드시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정권 바뀌면 SI 해석도 바뀌나

대북 사안이라면 보도자료의 소소한 표현까지 시비를 걸고 간섭했던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이 어떤 지침을 줬는지도 살펴봐야 할 문제다. 당초 국방부는 이씨가 북한군에 피격당한 것을 알고도 실종 사건으로 공지했다. 이후에는 북한의 대남통지문에 맞춰 ‘시신 소각’이라는 표현을 ‘시신 훼손 추정’으로 바꿨다. 이씨 사건을 보는 여야의 관점은 극명하게 갈린다. 민주당은 ‘SI를 통해 월북으로 판단된 사안’이라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SI를 의도적으로 왜곡해 월북으로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제2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사태가 재현될 공산이 커 보인다. 국방부 태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국방부는 피살된 서해 공무원 사건을 놓고 “ ‘월북 추정’ 판단을 번복했지만, 추가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첩보와 정보 판단도 번복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군의 이 같은 무소신은 정치권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을 부추기고 있다. 한마디로 바람 부는 방향이 바뀌니 알아서 눕는 갈대와 같은 군부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정권을 잡으면 군 수뇌부를 ‘싹쓸이’하듯 숙청을 해대니 군은 알아서 갈대가 된다. 심지어 문재인 정권은 육군대장까지 여러 혐의로 구속시켰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진보정권이 장군들을 겁주려 한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승전과 패전조차 정권 입맛대로 바뀐다. 대표적인 것이 제2 연평해전이다. 제2 연평해전의 본래 명칭은 ‘서해교전’이다. 해군은 서해교전을 ‘NLL 수호’ 임무를 완수해낸 전투로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서해교전을 ‘완패한 전투’ ‘햇볕정책이 빚은 참화’로 표현했다가 MB 정권이 출범하자 ‘북한의 도발을 막아낸 승전’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명칭도 ‘해전’으로 격상했다. 보수정권만이 군을 예우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쇼다.

군 무소신이 낳은 ‘제2 NLL 사태’

언제부터인가 군 정보당국의 북한 동향에 대한 분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이 넘쳐난다. 책임지거나 정권에 찍히기 싫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결정적일 때 정권의 확증편향에 편승한다. SI도 정권 입맛대로 해석된다. 북한 도발에 속수무책 당했던 과거 사례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오는 법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박성진의 한국군 코멘터리]최신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