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참골단(肉斬骨斷). 자신의 살을 베어 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는 말이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취한다는 전략이다. 2018년 용역 보고서 형태로 군 당국에 보고됐다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전술핵을 통한 전자기파(EMP) 공격’은 육참골단 전략이다. 보고서는 북한이 자국 영공인 개성이나 원산 앞바다 일대의 고고도 상공에서 저위력 전술 핵무기를 터뜨리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첨단 무기와 장비는 순식간에 먹통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미국이 한국에 약속한 자국 본토가 공격받는 수준으로 지원하고 대응한다는 ‘확장억제’가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자국 영공에서 터뜨린 것을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 전술핵은 한반도의 게임체인저
한·미는 북한이 남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핵공격을 하면 북한 최고 수뇌부가 있는 평양을 핵으로 보복 타격하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해사기구에 통보한 후 포항 먼바다 공해상 길목에 전술핵을 터뜨릴 수도 있다. 이때도 미국이 북한의 ‘세컨드 스트라이크’ 보복능력을 무시하고 평양을 핵무기로 타격할 것인가. 북한이 서해 5도 가운데 한 곳을 기습점령한 후 남측이 반격에 나서면 전술핵 사용 가능성으로 위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오래전에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국가 근본이익 침탈 시 핵 사용’을 언급했다. 체제유지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행위가 핵무기 사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핵 사용에 대한 모호성을 증가시킨 위협의 극대화다. 그 전주곡은 20~50Kt 위력의 전술핵 개발을 목표로 한 북한의 7차 핵실험이 될 것이다. 이후 북핵 문제는 예전의 패턴으로는 다룰 수 없는 전혀 다른 단계로 진입하게 됨은 불문가지다.
북한의 핵 위협지수가 높아지면서 더욱 강력한 대북 제재 주장은 물론 한국의 독자 핵무장까지 포함한 논쟁이 백가쟁명식으로 퍼지고 있다. 미국통인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은 “우리의 안전만 보장되면 북·미관계 정상화 및 북·미 경제교류를 지지해야 한다”며 “남북이 핵무장을 하면 북한은 미국이 아닌 남한을 군축의 상대로 봐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핵화로 갈 수 있는 길임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북한의 대미관계가 정상화되고 적대관계가 완화되면 북한의 핵무력이 오히려 중국에 부담이 된다고 주장한다.
남, 북핵 해결 집단지성 찾는 게 낫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핵무장 주장에 대해 “(핵무장을 하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해야 하고 국제적 제재를 받게 되고 남북은 핵 경쟁을 하게 되고 한·미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넘어서서 어처구니없는 주장, 기본이 안 된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한국군의 군사력을 세계 6위로 끌어올렸지만, 북의 ‘핵 올가미’는 더욱 조여졌다. 북은 재래식무기 열세를 핵 투발수단 다양화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북·미 간 문제지만, 북한 전술핵은 한반도 안보에서 게임체인저이다. 북의 전술핵 배치가 완료되면 남한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서 볼 수 있듯이 자주국방이라는 명목 아래 재래식 군비를 아무리 늘려도 북핵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윤석열 차기 정부는 미국과 핵 사용 절차를 공유하는 ‘확장억제의 구체화’ 등을 동맹 강화의 성과로 내세우고, 북핵 대응 ‘한·미 워 게임’도 실시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지만 실제 상황에서의 실행 여부는 미국 정치의 유동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대신 미국은 사드 등 미국산 무기 배치와 ‘미국 MD 체계’ 참여,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핵 위협을 빌미로 한국군에게 독자적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포기하고 ‘미국의 일꾼(Servant of the USA)’으로 중국을 견제하라는 요구와도 같다. 차라리 일본도 하고 있는 핵 폐연료 재처리 요구라도 미측에 하는 게 현실적이다. 이제는 북한 비핵화를 말하기 이전에 현실적인 다른 옵션에 대해서도 발언이 필요하다. 미국은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대우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도 백가쟁명을 통해서라도 북핵 문제 해결의 집단 지성을 찾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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