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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뇌사 상태’ 북한 비핵화, 전략자산이 해법 아니다

북한은 지난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새 법령을 채택했다. 선제 핵공격도 불사하겠다고 대내외에 선언하면서 ‘핵무장에 대한 모호성’을 벗어던졌다. 마침 한·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4년8개월 만에 외교·국방당국자들의 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열었다. 한·미는 이 자리에서 북한 핵 위협에 대해 “전례 없이 압도적이고 결정적으로 대응”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핵(무기)에 대해 핵(무기)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양측 발표를 뜯어보면 대조적이다.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놓고 ‘전략적 명확성’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미 발표는 ‘전략적 모호성’이 두드러진다.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선제적인 해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저 한국 보수층이 좋아하는 상투적인 ‘기-승-전-전략자산 전개’로 들린다. 북핵 해법이라기보다는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더욱 의존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미의 대응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으며,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이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미가 이번에도 북한의 핵공격 수준에 비례하는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미국의 핵 보복에 대해 또다시 합의하지 못하고, 미국이 현실적으로 지킬 수도 없으며 지킨다면 남북과 북·미 간의 전면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공약(空約)한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이 북한의 미 본토에 대한 핵 보복을 감수하고 기꺼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해 미 본토 역시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돼 있는 탓이다. 핵무기 속성상 99%를 파괴하더라도 미 본토가 한 발이라도 맞으면 미국은 정권은 물론 패권국가 지위마저 무너진다. 자위권 차원에서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는 ‘선제타격’ 역시 한반도에서는 공멸을 의미한다.

국방부는 미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한 신범철 차관이 B-52 전략폭격기의 핵무기 탑재부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미측이 전략자산을 확인할 수 있도록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이는 ‘꿈보다 해몽’이다. 과거 이순진 전 합참의장도 B-52를 바라보는 사진을 찍었다. 전략폭격기의 공개와 사진 촬영은 한국 고위층이 방문할 때 등장하는 미측의 서비스다.

미국의 핵억제력은 지금이 최상의 상태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를 말의 성찬으로 더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만큼 북핵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할 때이다. 남북이 ‘서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보다 ‘서로가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란 차원에서 북핵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해답을 찾지 못하면 한반도는 경제적으로 중국에 흡수된 북한과 군사적으로 중국에 위협받는 남한이 될 수도 있다.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뇌사’ 상태다. 그런 만큼 북한 비핵화 이외의 다른 옵션에 대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비현실적이다. 미국의 호의를 믿고 핵을 포기한 후 최후를 맞은 리비아의 카다피와 집행이 불가능한 안전보장과 핵을 바꿨다가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보고도 평양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도그마에 불과하다.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게 됐다.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를 비핵화에서 군축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이유다.

한국민들은 미국의 핵우산이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의심 속에서 북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 됐다. 핵무기가 한 발이라도 한반도에 터진다면 남북 모두 공멸이기 때문에 군사적 대책은 하책이다. 정치와 외교가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의존하는 방식은 또 다른 하책이었다는 게 지난 세월은 증명하고 있다. 결국 남북 간 적대감을 해소하고 공존 번영의 길을 찾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이론적으로 중국 역시 북핵의 사정권에 들게 된다.

사족으로, 그나마 한국군이 전술핵급 위력을 지닌 ‘괴물 탄도탄’으로 나름 북한 전술핵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게 위안거리다. 군이 비닉사업으로 개발한 괴물 폭탄은 한반도처럼 한정된 면적의 전장에서는 전술핵의 대칭 전력 역할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진 안보전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연재 | 박성진의 한국군 코멘터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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