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유튜브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는 무속인 유튜버가 갑자기 늘어났다. 자극적 제목으로 클릭수를 늘리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정감록>을 인용해 10월 전쟁설을 주장하는 유튜버까지 있다.
현실도 만만치 않다. 남북의 군사적 ‘팃포탯’(맞받아치기)으로 일촉즉발 대치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북한의 최근 도발 행태는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과 달리 북한 군부가 ‘물기(포격) 전에 요란하게 짖었던’ 과거 연평도 포격전 당시와 닮았다. 이종섭 국방장관은 북한의 노골적인 9·19 군사합의 위반이 의도된 도발 시나리오의 시작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동격서와 같은 직접적 도발에는 단호한 초기대응을 지시했다. ‘행동 대 행동’이 확대되면서 치킨게임으로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의 고조되는 도발과 핵 위협에 편승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치킨호크들도 설친다. 미국식 정치 속어인 ‘치킨호크’는 전쟁이나 군 복무 경험이 없으면서 극단적 군사 활동에 적극 찬성하는 호전적인 정치가, 관료, 평론가 등을 말한다. 여권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공유 같은 핵무장 논리를 명확한 개념 정리도 없이 말하고 있다. 전술핵, 핵공유, 확장억제는 핵우산의 방법론 차이일 뿐 실효성 면에선 본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 미국 핵무기는 배치된 곳이 남한이든, 괌이든, 미 본토든 북한 타격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핵사용 결정권은 어차피 미국에 있다. 미국이 ‘전술핵’ 대신 ‘저위력 핵’이란 용어를 쓴 지도 이미 오래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어
일어날 수 있는 한반도 전쟁의 양상이 변했다. 핵을 작전배치한 북한을 상대로 과거의 한·미 연합작계와 같은 전쟁문법은 유용하지 않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으로 스스로 결정권을 갖지 않는 한 어떠한 방식의 핵우산도 결코 완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북핵에 대비해 추진해온 한국형 3축체계를 중단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다. 탄두 중량 8t이 넘는 괴물 탄도미사일인 ‘현무-5’(가칭)는 몇발이면 저위력 핵에 맞먹는 파괴력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때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핵가방처럼 ‘현무-5 발사가방’을 지니고 다니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단 1발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지휘부를 궤멸할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였다. ‘핵에는 핵’이라는 문법에 밀려 채택되진 않았지만, 이는 김정은 본인의 목숨을 담보로 핵을 사용하지 말라는 남측의 경고이기도 하다.
북한도 거꾸로 보면 자신들이 전술, 전략을 노골적으로 내놓은 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사인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군 일각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하책이다. 정부는 4년 전 9·19 군사합의 당시 ‘북이 합의를 위반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대북 방송을 재개하면 북한 도발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최전방 북한군 지휘관들이 ‘최고 존엄’ 김정은에 대한 막말을 듣고도 대응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다.
북한은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는 곧바로 국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악화되면 북은 준전시 상태를 선언한 후 핵으로 파괴하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지금은 주도면밀하게 북한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전망하면서 남측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대북 관계의 구축과 유지를 위해 대화의 끈을 찾아나가는 게 순리다. 우선 북에 군사정전위원회 소집을 요구해 9·19 군사합의 위반을 따져 묻고 군사적 무력 대결 억제책을 얘기해야 한다. 북한이 응하지 않을 개연성이 거의 100%라 하더라도 남측의 평화 노력을 대내외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남북대화는 ‘남북관계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해왔다. 대화의 문은 항상 두들겨야 한다. 다만 문재인 정권처럼 섣부른 결과를 얻으려고 집착할 필요는 없다. 대화는 북한 당국의 관심사와 우선순위, 이해관계의 구조와 정보 등을 파악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제2의 연평도 포격 사건’은 곤란
연평도 포격은 이명박 정권이 ‘서해5도 도발’ 첩보를 입수하고도 당한 사건이었다. ‘(MB 때) 실패한 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말을 듣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어설픈 대응으로 제2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는 것은 곤란하다.
<박성진 안보전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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