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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국방부 시계


시계는 19세기만 해도 귀족 등 특수층만 가질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던 시계가 이제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몇천 원짜리에서부터 수억 원에 이르는 최고급 시계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흔한 시계를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고급 카지노에는 시계가 없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도록 하자는 의도다.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면 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반대로 힘들거나 지루한 상황이 닥치면 시계를 자주 보게 된다. 일종의 상대성 원리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시계가 있다. 특히나 젊은이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로 유명했던 그 ‘국방부 시계’다. 어떤 순진한 병사는 국방부 시계는 특수해서 거꾸로 매달려 움직이는 것으로 알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있다.

국방부 시계는 군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언젠가는 제대할 때가 온다는 의미로 병사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하나의 ‘상징’이었을 게다. 나중에야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끝없는 긴장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신병들은 ‘국방부 시계 바늘’ 돌아가는 소리를 마음속으로 들으며 위안을 삼았다.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국방부 시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상징적인 시계가 있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과거 군생활의 추억을 떠올리며 진짜로 국방부 시계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주변 사람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섭섭하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국방장관 접견실 시계가 그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나마 요즘의 신세대 병사들에게는 국방부 시계란 말 자체가 생소한 단어다. 이미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분초를 다투는 정보화 사회의 물결이 군대에도 밀어닥쳤다.
힘든 병영생활 속에서 국방부 시계를 머릿속에 그리며 시간만 빨리 가기를 기다리던 시대에서 시간을 쪼개가면서 쓰기 바쁜 시대로 점차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요즘 군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선 훈련 지휘관으로부터 화상 보고를 받고 있다>

 
지휘관들도 마찬가지다. 사단장을 하면서 관할 지역 명소 한번 가지 못하고 이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사단장의 관할 초소 순시 횟수도 늘어났고 업무량 자체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나 여유있는 시간을 빼내기가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툭하면 열리는 원거리 화상회의가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 아닌가 싶다. 화상회의 시간에 급하게 맞추다 보면 야전 지휘관들이 화면에 나오는 상체 부분에만 군복을 걸치는 웃지 못할 경우도 가끔 있다는 전언)

또 군도 인터넷 세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지휘관의 잘못은 과거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전파된다.

2000년대 초반 ‘선풍기 장군’이란 별명을 얻고 징계를 받은 사단장이 있었다. 사연인즉 테니스를 너무도 사랑(?)한 사단장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병사들에게 테니스 코트를 뽀송뽀송하게 말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한 때문이었다.

테니스장 말리기에 동원된 병사들은 급기야 선풍기 바람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결국 열받은 병사 한 명이 전역하자마자 PC방에서 군을 비롯한 관계기관 등의 홈페이지에 이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고, 해당 사단장은 징계를 받았다.

해군에서도 인터넷 고발로 이제는 ‘추억의 샷’이 돼버린 관행이 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먼 바다에 나가는 함정의 함상에서는 장거리 항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함장이 티 위에 골프공을 올려 놓고 바다를 향해 ‘나이스 샷’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주로 원양 항해를 나갈 때 헌 골프공을 가져 갔고, 물론 일부 함정의 경우였다. 또 바다에서는 골프공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소위 ‘가라 스윙’을 많이 했다나)



<1990년까지 활동하다 퇴역한 구소련의 골프급 잠수함. 본 사진은 글의 내용과 전혀 관계 없음>




이 역시 ‘함상 골프’가 아니꼬웠던 수병이 인터넷으로 고발, 즉각 ‘엄금 조치’가 내려졌다. 저녁 노을과 함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향해 드라이버 샷을 날리던 마도로스의 로망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물에 빠지면 분해되는 친환경 골프공도 있다던데···. 이런 말 하는 것도 비난받을 지 모르겠다)

아무튼 ‘시(時)테크’ 개념이 없으면 적응하기 힘들어지고 있는 곳이 요즘의 군대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에서는 간부들이 자신의 하루 업무 계획표까지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왠지 모를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고 각박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과거가 그리워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국방부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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