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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통화기록 좀 봅시다

  오늘은 퀴즈를 하나 내볼까 합니다.

 (질문)북한군이 강원도 중부전선 아군의 최전방 GP에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 방송사는 이것을 합동참모본부가 공식발표하기 15분 전에 먼저 보도했습니다. 다음날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①군당국이 합참의 공식 발표 전에 사건 발생 사실을 보도한 것에 대해 기자에게 항의한다.
 ②이 사건을 첫 보도한 기자에게 총격 발생 사실을 알려준 당사자를 찾아내 처벌하려 한다.
 ③가장 먼저 사건을 보도한 기자의 민첩성을 칭찬한다.

 정답은 짐작하셨겠지만 ②번입니다.

 기무사령부 요원들은 총격사건 발생 당시 이 소식을 알았던 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무사가 조사에 나선 것은 상부의 명령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상부의 정체는 ‘국방장관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윗선의 요구로 국방장관이 조사시킨 것이다’ 등 말들이 많습니다. 정황적으로는 국방부 외부에서 요구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기무사는 관련자들이 해당 기자를 접촉했는 지를 가장 먼저 조사했겠지요.
 통상 1차 조사가 여의치 않으면 휴대폰 통화기록도 조사합니다. 그 결과 기자와의 통화 내역이 나오면 우선 조사 대상이 되는거죠.

 이번에는 통화기록 제출까지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실효성이 없어서 인 것 같습니다.

 일단 관련자가 너무 많습니다. 군에서는 GP 총격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소위 ‘동보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관련 군부서의 상황실에 사건 발생 사실이 동시에 전파되는 겁니다. 이번 GP건의 경우에도 육지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해군과 공군의 작전관련 부대의 상황실에까지 전달이 됐을 것입니다.

 조사요원들은 상부의 명령이니 만큼 그 결과에 관계없이 오늘도 ‘남대문에서 김서방 찾기’식 조사를 하고 있을 겁니다. 결국 이번 조사도 과거 예처럼 결과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최전방 GP 총격은 군이 사건 당시 1, 2, 3급 비밀로 지정한 것도 아닙니다. 대외비도 아니라고 합니다. 조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기분좋은 일이 아니겠지요. 조사하는 입장에서도 지시를 받아서 하지만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다른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천안함 침몰사고도 여러 군 간부들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언론에서 잇따라 군이 공식발표하지 않은 사실을 기사화하자 관계자들의 전화 통화 기록을 제출받아 모조리 뒤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무사나 국방부 조사본부(헌병조직) 뿐만 아니라 국정원까지 조사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언론 보도의 출처를 찾는 조사는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일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군 간부들에게 기자를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엄포효과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기자를 만나 특별한 얘기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조사를 받게 되는 간부들 입장에서는 떱떠름할 수밖에 없죠. 기자를 기피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결과를 낳기가 쉽상입니다. 기자를 피하는 것은 군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언론을 활용하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시간은 꽤 지났지만 웃기는 얘기가 있습니다. 안보부처에 출입하던 모 기자는 특종 기사를 회사에 보낸 후 평소에 기자 기피증이 있는 고위 간부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뚱단지 같은 핑게를 대면서 말이죠.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나간 후 기자와 전화통화를 한 자체가 빌미가 돼 그 고위 간부는 조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기자의 장난기 서린 ‘보복’(?)에 곤욕을 치른거죠.

 아마도 특종 욕심에 국가 안보를 위해할 만한 보도를 한다면 상식있는 국방부 출입기자는 아닐겁니다. 하지만 기자와 접촉한 사실을 조사하겠다며 툭하면 ‘투망던지기식’ 조사를 벌이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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