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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유엔사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20일 강원 철원군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전방관측소(OP)를 찾아 전방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유엔군사령부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유엔사는 지난달 20일 전투복 상의를 입고 ‘헌병 MP’ 완장을 팔에 차고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전방관측소(OP)를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홈페이지에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진상 조사를 하겠다’는 보도자료를 올렸다.

유엔사가 민간인의 비무장지대(DMZ) 내 군복 착용 문제를 한국군에 제기해오긴 했지만, 유독 특정인을 지칭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해 논란을 일으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같은 날 육군 6사단 청성부대 전방관측소(청성 OP)를 방문한 박병석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정전협정 위반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유엔사는 ‘묵묵부답’이다. 유엔사가 윤 후보의 DMZ 방문만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방증이다. 청성 OP 역시 3사단 OP처럼 유엔사 관할이다.

유엔사는 대선 후보의 정전협정 위반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방식을 통해 DMZ 관할권 확인 차원을 넘어 그들의 존재감을 한국민들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DMZ에는 유엔사 허락이 없으면 한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물론 대통령도 들어갈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유엔사의 영향력 행사는 한국민 입장에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많다.

미국, 유엔사를 다국적군 전환 의혹

미국은 유엔사 임무를 정전협정 관리를 넘어 전반적인 한반도 위기 관리로 확장시키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에서도 속도조절과 개입 수단으로 유엔사를 활용하고 있다. 그만큼 유엔사의 DMZ 관할권 강화로 인해 한국의 주권과 충돌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유엔사를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고스트 아미’(ghost army)”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유엔사를 통한 미국의 한반도 위기 관리 확장 시도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나아가는 ‘살라미’ 방식이다. 그 시작은 2014년부터 시작한 유엔사 재활성화(강화) 프로그램이다. 미군이 맡았던 유엔사 부사령관도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3성 장군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이를 놓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유엔사를 다국적 군사기구로 바꾸려는 시도라는 시각이 있다. 미국이 유엔사 주도로 한반도에 다국적군 사령부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엔사의 법적 성격, 전작권 전환이나 종전선언 이후 유엔사 해체 여부 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미 양국은 한반도 유사시 전력을 제공하는 유엔군사령부 전력제공국의 개념을 놓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주한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유엔의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이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진보진영 단체들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되므로 정전체제 유지·관리를 담당해 온 유엔사는 당연히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사 해체는 유엔사가 창설될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되거나 미국 정부가 해체 결정을 내려야만 가능하다는 게 국제법적 시각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라도 그 내용에 평화협정 준수 감독 및 분쟁 발생 시 사실 조사 등을 유엔사의 새로운 기능 또는 역할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나아가 미국이 유엔사 체계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동북아 평화관리기구’로 변환해 존속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정부는 일회적인 대응에 급급

미국은 ‘최종 목적지’는 드러내지 않은 채 유엔사 활성화를 위해 하나씩 하나씩 살라미식으로 장기 플랜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번 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이례적인 정전협정 위반 비판도 유엔사가 치밀하게 검토해 내놓은 전략커뮤니케이션(SC)이다. 문제는 한국군, 나아가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면밀한 대응은커녕, 유엔사가 특정 조치를 내놓으면 일회적으로 대응하는 데 급급하는 모습이다. 유엔사가 대선 후보의 정전협정 위반을 문제 삼자, 군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육군에, 육군은 국방부에 사안을 떠넘겼다. 유엔사는 다 계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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