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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국방부 앞마당은 스파이들의 ‘놀이터?’

“답변이 제한된다.”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열리는 정례 브리핑 시간에 매일 듣는 말이다. 이유는 “군사적 사항” “한·미 간 논의가 필요한 사항” “안보에 민감한 사항” “관례적으로 비공개” 등 가지가지다. 내용이 이미 알려진 사안에 대한 질문에도 이처럼 형식적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잦다.

 

또 있다. 북한군 동향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한·미 연합자산을 통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할 따름이다. 그러고 나서 북한의 도발이 현실화되면 “빛 샐 틈 없는 한·미 동맹을 통해 강력 응징할 것”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예의주시만 했을 뿐, 도발을 막지 못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나마 답변이 제한된다고 말하기 멋쩍은 경우에는 “검토 후 답변드리겠다”고 한다. 이것도 차후 답변이 ‘함흥차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핑계는 좋다. ‘답변이 제한’되는 것은 북한군이 알고 있더라도 군이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 자체가 북한군에게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대한민국 장군 숫자가 군사기밀인 시절도 있었다. 북한군에게는 장성 숫자도 중요한 정보라는 이유에서였다. 사실은 장군 숫자가 노출될 경우 “별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는 게 더 합리적 이유다.

 

군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인근에 주상복합 등 고층 건물이 줄줄이 들어서자, 인근 아파트 옥상에 공개적으로 대공포를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한낮 도심에서 UH-60 헬기가 대공포 여러 대를 공중으로 옮기는 모습을 시민들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도심 건물의 대공포 배치 상황은 군사 2급 기밀이다. 이론적으로는 시민이 목격한 아파트 옥상의 대공포 진지 위치를 외부에 발설하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군의 ‘꿩 대가리 숨기기’와 같은 인식과 태도를 지적하려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다. ‘꿩 대가리 숨기기’는 꿩이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 머리만 수풀에 처박고 몸통은 훤히 드러나게 두는 우스운 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군 당국이 군사기밀이나 보안이라고 하는 것들의 상당수는 ‘꿩 대가리 숨기기’와 다를 바 없다.

 

다시 국방부 청사로 돌아가 보자. 지금 국방부 청사는 고층 건물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 유명 기업체 사옥의 웬만한 층수에서는 국방부 청사 현관이 맨눈으로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옆의 고층 주상복합건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장비로도 국방부 청사 현관에 서는 자동차 번호판의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다. 국방부 장관의 출근시간부터 외부 회의 참석을 위한 외출, 퇴근시간까지 체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방부 청사를 들락거리는 군 고위간부들의 동선도 마찬가지다. 첩보영화에서처럼 망원렌즈를 이용하면 얼굴 사진도 얼마든지 촬영이 가능하다. 한·미 연합훈련 때는 국방부와 합참에 근무하는 군인과 직원들이 케이직스(합동지휘통제체계) 장비를 옮기기 위해 승합차에 실어나르며 부산을 떠는 모습도 다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등 우방국의 안보 책임자들이 오는 모습도 관찰이 가능하다. 움직임을 비밀로 하는 게 원칙이라는 미국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예외일 수 없다. 청사 안에서 누가 누구를 만나는지 추론도 가능하다.

 

좀 더 나가보자. 중국, 러시아는 물론 서방국가 정보기관까지 대리인을 내세워 국방부를 관찰할 수 있는 인근 고층 건물에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스파이 소설에서나 나오는 상상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북한의 시도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미국 방산업체 관계자 상당수는 국방부 인근 고층 주상복합빌딩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을 넘어 국방부 청사 도청은 불가능할까. 레이저 센서로 유리창 진동을 통해 실내 음성을 감청하는 것도 이미 수십년 전 기술인 시대다. 국가정보원의 도청 감지차량이 가끔 국방부 청사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원천적인 도청 방지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방부에 대책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사실 국방부는 옮길 때가 됐다. 국방부가 ‘꿩 대가리 숨기기’ 식으로 노출된 것도 문제지만, 전시작전 지휘의 비효율성 문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방부 이전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