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10일부터 사실상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한다. 이번 훈련에 참가하는 한·미 병력은 전투참모단에 증원 인력을 편성하지 않는 등 전반기 훈련 때보다 대폭 쪼그라든 것으로 전해졌다. 군 내부에서는 “이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낫지 않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했다 치고’ 식의 ‘같기도 훈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예상대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한 뒤부터 남남 갈등은 표면화됐다. 훈련을 둘러싼 한·미 간 불협화음 얘기도 들린다. 김여정 발언 이후 통일부는 연합훈련 연기론을 띄웠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5일에는 여당 의원 74명이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연합연습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훈련 불가피론을 폈다. 그러면서 훈련의 방어적 성격, 실병력 기동 없는 지휘소 훈련, 전작권 회수를 위한 검증 필요성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야당에서는 집권여당이 북한 하명부를 자처하는 모습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이미 상당수 미군은 훈련을 위해 한반도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김여정도 한·미 연합훈련 취소가 가능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물리적 환경이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군부에 군사적 판단이 아닌 정무적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군 통수권자는 정무적 판단을 한 후 군부에 군사적 판단을 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통수권자가 정무적 결정에 따른 부담을 국방장관에게 지운 것이다.
그나마 물꼬는 질병관리청이 터줬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조치를 한·미 연합훈련에도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이 이뤄지는 지휘소 내부에서도 인원 간 2m 거리 두기를 엄격히 시행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 참가인원 축소 요구의 핑곗거리가 됐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훈련에 백신 접종을 마친 병력만이 참가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돌파감염’ 우려를 내세웠고, 이는 ‘같기도 훈련’으로 이어졌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정치이며 정치는 길 안내를 하는 지성”이라면서 군사적 관점을 정치적 관점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군사를 지도한다는 의미다. 군사가 정치의 수단이라는 위치에서 이탈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서욱 국방장관이 “지시대로 신중하게 판단한 결과,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강력한 동맹의 의지를 보이는 차원에서 이번 후반기 한·미 연합훈련은 정상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라고 했다면 문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을까. 가정이긴 하지만 “한번 더 신중하게 판단해보라”고 다시 지시했을 것이다. 군이 정치의 눈치를 보면서 정무적 판단을 하게 되면 망가진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이라는 말도 논리가 맞지 않는 이유다. 미국은 이미 전작권 전환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강대국과 약소국 관계에서 약소국의 침묵은 동의와 수용을 의미한다. 이해관계의 영역도 다르다. 지금 한·미 연합훈련은 미국 정부의 ‘군사 분야’이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정치 영역’이다. 미국의 군사 분야와 한국의 정치 영역을 ‘등가성’ 차원으로 해석하는 게 이해가 빠르다. 미국의 지엽적 군사 분야가 한국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빛 샐 틈 없는 한·미 동맹의 비대칭성이 갖는 현실이자 숙명이다.
그런 만큼 미국의 군사적 판단이 자칫 남북관계에 매달리는 한국 정부에는 치명적인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에 있어서 한·미 연합훈련은 군사적인 옵션이지만, 한국 정부에는 군사적 성격을 넘어 남북 간 평화 문제에 직결되는 최고 수준의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결단은 정치 지도자의 책무이자 숙명이다. 전략적 결단을 보여주는 대신 부하에게 “신중하게 판단하라”고만 말하는 군 통수권자는 비겁하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지시가 전략적 결단이었다면 할 말은 없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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