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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군 성추행 사건, 차라리 특검을 하라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공군 부대장을 지낸 예비역이 여성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보도를 보고 보낸 것이다. 그는 사건·사고 발생 후 은폐와 회유, 조직적 왜곡의 공군부대 문화를 고발했다. 그는 ‘말로는 재정비하고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지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글을 마쳤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감성’ 대책 먼저 내놓을 때부터 이상했다. 과거 정권이 군에서 대형사고만 일어나면 했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청와대는 공군참모총장부터 경질했다. 국방부는 대통령 지시라며 병영문화개선 민관군합동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2014년 4월 윤모 일병이 선임병 4명에게 구타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청와대는 육군참모총장부터 잘랐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민관군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7년 전 대책과 이번 사건 대책이 정확히 겹친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 총장이 경질되면, ‘진짜’ 책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참모총장 경질이라는 대형 폭풍이 오히려 보호막이다. 이들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도 계선상에서 책임질 일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이번에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이번 사건의 관건은 보고 누락과 늑장 수사 의혹을 밝히는 일이다. ‘지휘체계에 따른 보고’ ‘공군 양성평등센터를 통한 보고’ ‘군 수사단계 보고’ 등 세 가지가 다 작동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모두 ‘먹통’이었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누구누구는 정권 실세가 시켰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말이 나돈다. 그런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들은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와 인권나래센터에 대한 뒤늦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군본부 법무실 관계자들과 웃으며 안부를 주고받는 등 압수수색 분위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한 검찰단 수사관은 ‘친정집에 오는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라는 발언까지 해놓고 ‘피압수자의 저항감을 완화하려는 의도’라는 변명을 내놓았다. 2곳을 압수수색하는 데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일반 법무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번 사건의 양성평등센터를 통한 보고와 군 수사단계 보고의 정점은 공군본부 법무실이다. 이곳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이번 사건의 수사가 완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는 압수수색 대상에서 공군본부 법무실을 쏙 빼놓았다. 앞서 한 압수수색도 20비행단 군사경찰,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와 인권나래센터 등으로 시차를 두고 찔끔찔끔 했다. 수사 대상 기관의 ‘시간 벌기’를 도와준 압수수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압수수색은 수사 대상의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여러 곳을 동시에 전격적으로 실시해야 하는데 그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봐주기 수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게 현역 법무관(대령)의 말이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지난해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한 직무감찰을 실시했다. 내부 고발에 따른 감사였다. 여러 혐의 중 하나가 근무지 무단이탈과 함께 수사활동을 하지 않는 공군 법무실장(준장)의 군검찰 수사활동비 부정 수령이었다. 이에 대해 법무실장은 공군검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활동을 하기 때문에 부정 수령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국방부 직무감찰담당관실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법무실장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해선 ‘경고처분’으로 마무리해 ‘봐주기 감사’라는 말이 나왔다.

 

법무병과는 조사권, 징계권,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을 전부 관할하고 있다. 여성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공군검찰의 부실 수사와 사건 뭉개기, 늑장 보고 등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돼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국방부 감사관실도 자칫 이번 성추행 사건 조사로 그들의 지난해 부실 감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군에서는 국방부 감사관실이 봐주기식 ‘부실 감찰’ 등으로 형평성을 잃은 조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차라리 군 최초로 특검을 하라.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