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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요구받는 한·미 연합훈련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사용어에서 ‘훈련’과 ‘연습’의 정의는 다르다. ‘합참 훈령’을 보면 연습(Exercise)은 ‘연합·합동 작전 과정에서 작전술 제대의 작전 기획·준비·시행을 포함한 군사 기동 또는 모의된 전시작전 시행 절차 숙달 과정’이다. 연습은 최대한 실제처럼 실시해야 한다. 훈련(Training)은 ‘전술 제대의 개인 및 부대가 부여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식과 행동을 체득하는 조직적인 숙달 과정’으로 유격 훈련, 사격 훈련, 화생방 훈련 등을 말한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군에서 훈련과 연습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 18일 끝난 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CCPT)도 그렇다. 시대가 바뀌면 용어 사용 방법도 변하나 보다.

 

1954년 유엔군사령부 주관으로 실시한 포커스 렌즈 연습에서부터 시작한 한·미 연합훈련은 그 명칭과 방식이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포커스 렌즈는 포커스 레티나, 프리덤 볼트, 팀스피릿,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 키리졸브(KR) 및 프리덤가디언(FG) 연습 등 여러 명칭으로 이어졌다. 2019년에는 키리졸브를 대체해 ‘동맹 19-1’ 훈련이 처음 시행됐으나 이후 ‘동맹’이란 명칭도 사라졌다. 지금은 상반기 및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이란 이름으로 실시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한·미 연합훈련도 일종의 진화를 거듭한 셈이다. 반면 이를 두고 보수층에서는 북한 눈치를 보며 한·미 연합훈련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1년에 두 차례 실시해 온 정기적인 한·미 연합훈련은 태권도에서 말하는 일종의 ‘약속 대련’이다. 한·미 연합작전계획인 작계5015를 기반으로 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통상 2주에 걸쳐 진행된다. 북한의 남침을 1, 2차 저지선에서 막아낸 후 평양이나 개성까지 진격한다는 게 대체적인 기본 골격이다.

 

한·미 연합훈련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나 하와이·괌 등에서 증원되는 전력을 수용·대기·전장이동·통합(RSOI)하는 연습이다. 한때 한·미 연합훈련에 RSOI 연습이란 명칭을 붙였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한·미 연합훈련 RSOI의 전제는 대규모로 증원되는 미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실현 가능할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에는 미군이 최대 69만명의 증원 전력을 한반도로 보내게 돼 있다고 기술됐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 기술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미 연합작계는 북한의 핵공격 능력을 반영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한·미 연합훈련에 북한의 핵공격을 상정한 훈련은 없다. 현행 작전계획 시나리오대로 훈련을 한다면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의 남침을 격퇴하고 평양까지 탈환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이란 얘기다. 또 북한이 한반도 해역으로 향하는 미군 증원 병력의 접근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미국이 증원 전력을 보내겠는가. 북한의 핵공격 이후에는 그 자체가 파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핵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 보고문에서 전술핵무기 완료를 시사했다. 전략핵무기가 아닌 북한의 전술핵무기는 남한을 상대로 한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KN-23과 같은 단거리미사일이나 방사포 체계에 전술핵탄두를 실전 배치한다 해도 한·미 연합전력의 우선 선제타격 대상이기 때문에 위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0.1~0.2KT(킬로톤) 정도의 야포용 핵탄두까지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한반도를 둘러싼 다양한 변수의 상황을 대입해 풀어나가는 ‘정치·군사게임(Pol·Mil Game)’이 한·미 연합훈련에 더 유용한 시점이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론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했다. 천동설은 아무리 개선하고 발전시켜도 천체의 운행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은 한·미 연합훈련도 칸트처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