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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입맛대로’ 인사 탓에 기본 무너진 군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대가 알게 모르게 무너지고 있다. 군 기강이 훼손되고 기본이 무너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위아래가 따로 논다. 또 뚫린 최전방 경계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동해 최북단 해안으로 월남한 북한 남성은 폐쇄회로(CC)TV에 최소한 4차례 이상 포착됐는데도 감시병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설치한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가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근무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만 설치해주면 된다고 여긴 군 수뇌부 책임이 적지 않다.

 

한두 곳도 아니고 최소한 4곳 이상에서 경보음이 울렸는데도 아무도 녹화 화면을 되돌려 움직이는 물체를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관행적으로 경보를 무시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부대 관리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부대원이 새벽 운동을 한다며 감시구역을 달려 장비 경고음을 작동시키는 사례가 잦다는 제보도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작전군기 문란 행위다. 8군단의 대침투 경계령인 ‘진돗개 하나’의 늑장 발령도 비정상적이다. 지휘관의 책임의식 부재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일이 북한 통치자였을 때는 군내에서 ‘김정일이 한국군 장성 인사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천안함 사건처럼 북한 도발에 대한 부실 대응 등으로 군 수뇌부가 대폭 교체되는 사례가 왕왕 나오게 된 것을 두고 한 얘기였다. 역설적으로 북한 도발이 한국군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방증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 도발을 했어도 이전 정권처럼 국지도발은 별로 없었다. 9·19 군사합의 영향이 컸다. 대신 이번에는 탈북자가 한국군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군 인사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군 서열 1위인 합참 의장은 최소한 30년이 넘는 야전 생활에서 쌓은 노하우를 부하들에게 전수하면서 전군의 작전 지휘에 혼신의 전력을 쏟아내는 직위다. 언제부터인지 합참 의장이 ‘대령급 TF그룹’을 만들어 작전환경을 배워가면서 전군을 지휘한다거나, 4성 장군 계급에 걸맞지 않게 사단장 수준의 지침을 전군에 내리는 사례도 나타났다. 또 작전보다 워라밸을 우선하는 합참 의장도 등장했다. 경험과 경륜이 모자란 장군을 정권 입맛대로 임명하다보니 생긴 결과였다. 과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무능한 대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 인사를 놓고 이번 정권에서는 뒷말이 더 무성하다. 대선 캠프에 참여한 군부 인사들이 고위층과 관변 조직을 나눠먹고, 장군 인사는 원칙보다는 정권 줄서기처럼 비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군단이 능력보다는 정권과의 연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군내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그러다보니 전문성을 살린 인사가 되기 어렵고, 부하들이 지휘관을 존경할 리 만무하다. 군에서 전문성을 더 쌓기보다는 국회 국방위원들과 안면을 트거나, 권력기관으로 파견을 나가는 게 진급의 지름길이 됐다. 과거 정권보다 훨씬 더 그렇다. 경계가 뚫린 8군단과 22사단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경계수요가 가장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적재적소 인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군 간부들은 입을 모은다.

 

지휘관이 부하 눈치를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군대 내 ‘소원 수리함’과 같은 고발 창구가 된 지 오래다. 강철같은 규율과 기강을 앞세워 솔선수범하기보다는 ‘워라밸’을 강조하는 지휘관이 인기가 높다. 얼마 전에는 육군 원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육군참모총장이 ‘장교는 부사관에게 존칭을 쓸 수도 있고 반말을 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을 놓고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창군 이래 부사관의 육군참모총장 고발은 초유의 일인 것 같다. 인권위원회가 인격권 침해가 아니라고 기각하면서 이 문제는 흐지부지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군 내부 분위기는 싸늘하다. 육군참모총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군내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군 인사를 전문성보다는 정권의 ‘입맛’대로 한 탓이 크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