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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물 샐 틈 없는 철통경계 ‘도그마’는 이제 그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의 경계작전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고질병처럼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달 초 발생한 북한 주민의 탈북 당시 22사단 최전방 철책의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놓고 방위사업청과 육군이 진실공방을 펼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철책을 넘을 때 전방 GOP(일반 전초) 철책 그물형 광망의 윗부분에 설치된 ‘감지유발기’가 작동하지 않아 경고 센서가 울리지 않은 것이 누구 탓이냐는 것이다. ‘감지유발기’는 압력을 센서에 전달해주는 나사가 풀려 있는 바람에 작동하지 않았다. 군은 앞으로 나사가 풀렸는지 여부까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나섰지만, 155마일 철책선의 봉인된 리벳까지 일일이 뜯어 그 안에 있는 나사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게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군의 경계인력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이처럼 현실에서는 뚫려봐야 문제가 뭔지 드러나는 수준이다.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관리가 더 어렵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 이채익 의원에게 보고한 자료를 보면, 2015년 9월부터 5년간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장비 작동 오류 및 고장은 2749건이었다. 하루 평균 1.5건꼴이다. 경보음이 울린 것은 2016년 이후 총 1만2190여회로 집계됐다. 동물이 광망을 건드려 경보음이 울린 것은 2300여회(18.9%)였다. 철책마다 동물기피제 깡통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유다. 시스템 오류로 인한 것은 3290여회(27%)였다. 시스템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유지·보수 예산이 매년 늘고 있다.

 

22사단의 경계작전은 사실 ‘모범 사례’다. 비록 광망시스템이 장비 오류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열상감시장비(TOD)로 이중철책을 넘는 상황을 포착하고 수색 작전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포착 후 14시간이 지나서야 탈북자 신병을 확보했다면서 ‘늑장 대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지뢰밭까지 깔려 있는 가파른 산악 지형에서 섣부른 작전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장병들은 작전 매뉴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했지만, 철책이라는 ‘경계선’이 뚫렸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평균 1개 소대 병력으로 좌우 길이 5㎞ 정도의 휴전선 일대 경계를 맡는 상황에서 북한군 한 명도 철책을 뚫고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학화경계시스템도 만능이 아니다. 한국군의 휴전선 방어 태세의 본래 목적은 북한군 병사 한두명이나 탈북자를 찾아내는 개념이 아니다. 중대나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이 전면전을 위해 남하할 때 철책에서 시간을 끌도록 만든 방어 태세다. 적 동향 등을 파악하는 경계 태세가 먼저다.

 

휴전선 GP(감시초소) 경계작전도 선의 개념이 아닌 공간 개념이다. 이에 따라 ‘철책 전방’ ‘철책 선상’ ‘종심 지역에서의 차단 작전’ 등 3단계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이 뚫리면 군의 ‘기강 해이’와 ‘경계 허술’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전방보다 병력이 부족한 후방 지역 경계는 더욱 어렵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말들이 역설적으로 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맥아더 장군이 실제 한 말이 아니다. 맹목적인 ‘경계 도그마’를 합리화하기 위한 가짜 경구다. “물샐틈없는 경계태세로 (바다인) NLL을 지키겠다”는 말도 가당치 않은 표현이다.

 

한국군은 세계에서 경계 근무 비중이 가장 큰 군대다. 문제는 병역 자원 감소로 갈수록 인력 투입형 경계작전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라는 점이다. 물리적으로 실천이 불가능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소위 물샐틈없다는 식의 ‘경계 도그마’만 내세우면 병력의 피로와 전력 약화만 초래한다.

 

인식을 바꾸지 못하면 비슷한 사례는 언제든 되풀이된다. 군 수뇌부가 좋아하는 특단의 대책보다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합리적 대응을 말할 때다. 그것은 병사들의 훈련과 휴식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