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회와 군의 관계란 어떤 것일까. 34년 전 얘기다. 1986년 3월21일 ‘국방위 회식사건’이라는 전대미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임시국회를 마치고 육군 수뇌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서울 회현동의 요정 ‘회림’으로 초청해 폭탄주 술자리를 가졌다. 참모총장을 비롯한 육군 참석자들 거의가 하나회 소속인 신군부 쿠데타 주역들이었고, 국방위원 상당수가 여야 중진이었다.
여야 원내총무가 약속 시간에 늦으면서 싸늘하게 시작된 폭탄주 술자리는 국회의원들과 군인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난투극으로 변질됐다. 말이 난투극이지 많이 다친 사람들은 국회의원이었다. 참석자들은 ‘술자리의 일이니 술자리에서 풀기’로 했으나 정치 사건으로 비화됐다. 이후 육군참모차장은 예편 조치됐지만 공천을 받고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인사참모부장은 좌천 형식을 취했지만 나중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이 사건은 군벌의 권력이 다른 권력보다 우세했던 시절의 한 단면이었다.
이후 회식사건 당시 술잔을 던졌던 의원은 한 신문 칼럼에서 국방위원장 출신 예비역 대장이 전방을 방문했을 때 발언을 소개했다. 한 장성이 “국회의원하고 장군하고 어느 쪽이 더 높습니까” 하고 묻자 “그것은 사과하고 배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은 과일인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은 거야. 장군은 장군 격이 있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격이 있는 것이지”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우문현답이다.
지금은 어떨까. 국방부엔 국방위원을 깍듯이 모시는 군 조직이 있다. 국회 본청에 사무실을 둔 국방부 국회협력단이다. 현역 육군 준장이 단장, 국방부 소속 중령이 총괄담당이다. 또 협력관이란 명칭의 육·해·공·합참·방사청·해병대 소속 대령들과 주무관, 위관 장교 등 10명이 사무실에 상주한다.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 및 국회와 국방정책 현안에 대한 연락협조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국회협력단은 1963년 ‘국방부 국회연락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군사 쿠데타 이후 군 출신이 국회 국방위를 장악하면서 편의를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비슷한 조직인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청 연락단은 1988년 모두 사라졌지만, 국회협력단은 수년 전부터 외려 규모가 커졌다. 영관급이던 단장 계급까지 장군으로 올라갔다. 군 간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국회협력단을 국방위 ‘민원창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휴가처리 과정에 갑자기 등장한 대위가 국회협력단의 연락을 받고 나타났다는 소문이 군 안팎에서는 파다했지만 군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국방위원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들인 김모 상병의 죽 배달 사건에도 국회협력관이 관련됐다는 말이 나왔지만, 군 수사기관은 파악 중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협력단이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협력단장이라는 직위도 공식적으로 없는 자리다. 입법기관인 국회와 행정부처인 국방부가 함께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가 국회협력단장을 국회 소속의 ‘정원 외’ 군 장성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은 더 웃기는 일이다. 장성 수를 줄이는 게 국방개혁의 한 축이라고 한 정부 설명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굳이 현역 장성을 국회 소속으로 하겠다면 법으로 그 근거를 만들고, 미국처럼 국회의장의 안보보좌관 역할이어야 하는 게 상식에 맞다. 지금처럼 군부의 ‘로비스트’라든지, 정치권의 ‘민원 해결사’로 인식돼서는 곤란하다.
국방위와 국회협력단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로 변질됐다. 국방위원들의 군부대 시찰 방문과 전투기 시승 안내 등을 잘 챙겨야 유능한 국회협력단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국방위원들이 타는 헬기 배치도 잘하고 나중 선거 홍보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진도 잘 나오도록 해야 한다. 거꾸로 일부 장성급 부대장이 국회협력단에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를 방문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급을 위해 정치인에게 ‘눈도장’ 찍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침 군 인사철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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