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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훈장 수여와 전투 명칭, 왜 정권 따라 바뀌나

불타는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무공훈장이란 무엇인가. 그 허망함을 보여주는 <철십자 훈장>이라는 오래된 영화도 있지만, 무공훈장이 주는 상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군인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은 대부분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날인 지난 1일 해병대 김정수 소령과 천중규·김상혁 상사에게 각각 화랑무공훈장과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들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 포7중대 중대장과 부사관들이다. 김 소령 등은 북한의 무차별 포격에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 사격한 공을 인정받았다. 당시 K9 자주포와 철모 위장포에 불이 붙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응 사격에 나선 임준영 상병은 해병대 전투정신의 상징이다. 해병대 연평부대 전승기념관에는 임 상병의 불탄 철모를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들 해병에 대한 훈·포장 수여는 전투가 벌어진 지 11년 만에야 문재인 정권에서 결정됐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해안포 등을 동원해 170여발을 발사했고, 연평도를 지키던 해병대 연평부대가 K9 자주포로 80여발을 대응 사격한 사건이다. 당시 대포병탐지레이더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연평부대는 1차 대응 사격을 도발 원점이 아닌 북의 무도 기지를 향해 실시했고, 이후 적의 2차 사격 이후에야 탐지레이더가 정상으로 돌아와 도발 원점인 개머리 기지로 응사했다. 레이더가 제때 정상 작동되지 않은 것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한미연합사의 존 A 맥도널드 장군은 적의 기습 포격에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13분 만에 대응 사격을 한 것을 두고 연평부대 포대원들의 용기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이는 ‘파이트 투나잇’ 정신으로 평소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평부대 기록에 따르면 포7중대 대원들은 2010년 1월1일부터 포격전이 벌어진 11월23일까지 전투 배치훈련을 무려 455회나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군 수뇌부는 이들의 전공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합참은 전비태세 검열 결과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먼저, 연평부대 K9 자주포가 대응 사격했던 외부 포상(포를 배치하는 진지) 바닥이 콘크리트로 잘못 설계됐던 점을 문제 삼았다. 북한군 포탄이 외부 포상의 콘크리트 바닥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생긴 파편이 1번 자주포와 3번 자주포의 케이블을 손상시키면서 자주포를 작동 불량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훈련 중 남은 폐작약을 방치해 적 포탄에 불이 붙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폐작약 불똥이 튀는 바람에 자주포와 철모에도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부대 시험평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해병대의 훈장 요청도 거부했다.

 

이후 해병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연평부대가 ‘북한의 기습 포격에 맞서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 사격해 승리를 거둔 전투’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였다. 국방부는 이 요청 역시 거부했다. 이를 놓고 군 수뇌부가 ‘자위권적 대응과 응징’에 실패한 것과 해병대의 즉각적 대응이 대비되는 것을 의식한 조치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권이 바뀐 후 해병대 숙원이 풀렸다. 국방부는 지난 3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했다. 이어 제73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을 앞두고 연평도 포대원에 대한 훈·포장 수여안이 통과됐다.

 

정권 교체 후 남북의 군사적 충돌사건에 대한 명칭이 바뀐 사례는 여러 차례다. 2002년 일어난 제2 연평해전의 본래 명칭은 ‘서해교전’이었다. 해군은 서해교전에서 ‘NLL 수호’라는 임무를 완수해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서해교전을 ‘완패한 전투’로 규정했다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 ‘북한의 도발을 막아낸 승전’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그러면서 ‘서해교전’ 명칭도 ‘제2 연평해전’으로 격상했다. 그러다보니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불과 2분간 일어난 남북 해군 간 충돌조차 ‘대청해전’으로 높여 불러야 했다. 연평부대 포대원들의 목숨을 건 대응 사격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대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훈장 수여 기준과 기념일 명칭이 덩달아 바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