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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군대는 곤란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있는 군은 지금 ‘투서의 계절’이다. 군에서는 정기 인사철만 되면 비리를 폭로하는 투서가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난무한다. 그러다보니 이미 잊혀진 과거 사건까지 다시 들먹이는 경우가 있다. 투서가 군 지휘부나 군 수사기관, 감찰기관에 전달되는 비리 고발 성격이라면 제보는 군 밖 언론기관이나 인권단체 등에 전달되는 사건·사고들이다. 군 관련 제보는 군 내부 조사·수사가 이뤄졌거나 이미 조사 등이 진행 중인 사건·사고를 외부에 알려 사안을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 올해는 투서 못지않게 제보까지 봇물을 이루면서 군 ‘기강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통계적으로는 군내 사건·사고 발생에 따른 징계 건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재 전체적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5년 전과 비교하면 50% 정도로 줄었다”고 밝혔다. 군의 징계 건수는 2015년 6만2359건에서 2019년 4만2038건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매년 4000∼8000건가량 꾸준히 감소한 결과다. 혹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제보가 많아져 군내 사건·사고가 많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계상으로는 감소한 ‘하극상’ 사건의 경우, 형사사건화된 건수는 2015년 63건에서 2019년 217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 비행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육군에서는 상병이 상관인 여성 중대장을 야전삽으로 폭행하고, 부사관이 위관급 장교를 성추행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휘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휘관 의중을 파악한다며 군단 지휘통제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회의 내용을 엿듣다 수사를 받고 있는 대령의 사례가 언론에 제보됐다. 전방 부대에서 병사들이 3급 기밀인 암구호를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렸다가 적발된 사례도 마찬가지다. 전투력 유지보다 부대원 관리가 먼저고, 투서와 제보에 흔들리는 군대다.


정 장관은 국회에서 “젊은 장병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지금은 모든 것이 드러난다”면서 “법규에 따라 정확하게 지휘권을 보장해주고, 그러면서도 장병들 인권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선진화된 병역으로 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군은 최근 연일 ‘지휘관 대책 토의’를 열어 ‘기강’과 ‘소통’을 함께 확립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장 지휘관들은 부대의 전투력 유지보다 부하들 ‘모시기’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명확하게 일벌백계하는 미군을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주한미군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수칙을 어긴 상병을 훈련병으로 강등시키고 2개월 급여를 몰수했다. 승인 없이 기지 밖 술집에 가고, 기지 울타리 구멍을 통해 부대에 복귀한 일병 등 3명도 계급을 훈련병으로 강등하고, 역시 2개월간 급여를 몰수했다. 그러나 모병제로 입대한 지원병이 아닌 징집병인 한국군 병사에게 미군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 군대에서는 병사들 사이에 서로를 부르는 명확한 호칭도 없다. 같은 부대원이 아니라고 병장이 일병에게 “병사님”이라고 부른다. “아저씨” “저기요”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게 요새 군대다. 혹자는 장병들의 군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명령에 불복종하는 병사 1~2명만 즉결처분해도 군기는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가 되더라도 지휘관은 부하를 즉결처분할 수 없다. “돌격 앞으로!” 명령에 불복해 도망가더라도 군법회의에 넘겨 사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6·25전쟁 초기에 있었던 분대장급 이상 간부의 즉결처분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휘관에게는 평소에 기강과 소통을 확립해 유사시 죽음을 감수하고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차라리 휴대폰을 병사들 손에 쥐여주는 게 부대 관리가 수월해서 좋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간부들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하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으면 과거 일까지 들먹이며 상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일선 지휘관들도 면피성 상부 보고가 일상화돼 있다. 


자신이 책임지고 종료할 수 있는 사안도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하고 본다. 혹시라도 나중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동티가 날까 우려해서다. 군 고위층도 가벼운 경고조치면 될 만한 사안에 대해서까지 툭하면 감찰과 일벌백계를 강조한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탓이다.


군 부대 경계를 한번 보자. 육군 대대급 부대의 경우 주둔지가 보통 5000~1만평(33만㎡) 정도이며 외곽 울타리 둘레만 3~4㎞다. 100m 간격으로 경계병력 2명이 근무하는 초소를 둔다면 교대병력까지 감안해 200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30명 정도가 교대로 2~3㎞를 경계하는 게 현실이다. 해·공군 기지는 육군보다 수십~수백배 넓다.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철통같은 경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탄약고와 주요 군사장비 등 핵심 경계시설 위주의 3선 방어개념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투입하면 울타리 경계까지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경계 책임 한계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규정이 있어야 하지만, 일단 사건이 터지면 부대장은 희생양이 되는 게 현실이다. 군 최고위층이 지시한 ‘특단의 대책’은 주한미군처럼 기지 울타리를 높은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친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나올 수가 없다. 희생양 찾기를 하게 되면 군 인사가 지휘관의 능력과 관계없는 ‘복불복’ 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그런 탓에 나름 최선을 다하는 지휘관이 대다수겠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일어날까 두려워 훈련을 건성건성으로 하는 지휘관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군대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