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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엿장수’ 유엔사의 DMZ 조사결과 발표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엔군사령부(UNC)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놓고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보수정권에서 일어난 정전협정 위반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는 철저히 숨기고, 진보정권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 사건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엿장수 맘대로’식 발표다.


유엔사는 지난 3일 발생한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남북한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이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내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아온 관행에 크게 어긋난 사례다. 게다가 유엔사는 공보실장인 리 피터스 대령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터스 대령의 왼쪽 가슴에는 ‘U.S. ARMY’라는 군 식별 표지가 선명했다. 그는 주한미군 공보실장을 겸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군 식별 표지를 단 채 유엔사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어색하다. 한국군 선수와 미군 선수가 한편을 먹고 북한군을 상대로 축구경기를 하다 북한군의 도발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때 같이 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던 미군이 느닷없이 동료 선수인 한국군과 상대방 선수인 북한군에게 ‘레드카드’를 동시에 들이대는 것과 뭣이 다른가. 미군은 ‘선수가 아닌 심판’이라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즉각 “유감”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방부가 동맹군인 주한미군에 유감을 표시했다고 해석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엔사는 28일 현재까지도 페이스북을 통한 공개 외에는 한국군 측에 조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동맹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이번 유엔사의 조사결과 발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8월20일 일어난 국군과 북한군 포격사건에 대한 태도와는 정면 배치된다. 당시에는 언론의 조사결과 발표 요구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국방부를 자극하는 내용을 공식 공개했다. 두 사건에는 유엔사 조사결과 ‘한국군의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엔사의 이례적인 조사결과 발표에 한국군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유엔사는 민감한 대북 기술정보(감청 등 포함)까지 언급하며 북 GP의 총격을 우발적인 상황으로 판단한 한국군의 입장과 배치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례와 달리 유엔사는 2015년 8월20일 발생한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당시 합참은 “DMZ 포격은 북한군의 도발로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사 군사정전위는 북측이 아닌 남측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고도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 모두 유엔사가 한국군 주장과 다른 결과를 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유엔사는 보수정권 때는 침묵했고, 진보정권에서는 이례적 공개를 택했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부분이 여럿 있다. 먼저 5년 전에는 남측이 76.2㎜ 북한군 포탄 3발이 떨어졌다는 탄착지점도 확인하지 않고 155㎜ K55A1 자주포 29발을 북쪽으로 발사하는 대응 포격을 실시했다. 북한군 도발원점도 찾지 못했다. 당시 합참은 전군에 최고 수준 경계령을 내렸고, 북한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GP 부대원들이 북한군 14.5㎜ 고사총 탄흔을 확인한 후 절차에 따라 대응 사격했다.


유엔사는 5년 전 남북 간 포격 사건 조사결과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이번에는 GP 총격 사건 조사결과를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특히 5년 전에는 한·미 군 당국이 유엔사 1차 조사결과를 수정한 후 비공개하기로 사전 조율했다는 소위 ‘짬짜미’ 의혹까지 제기됐다. 당시 미 공군 소령을 팀장으로 군사정전위·중립국감독위·연락단으로 구성된 유엔사 특별조사팀(SIT)이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에 대해 ‘북한 포격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1차 조사결과를 작성했고, 이후 한국군 수뇌부 요구를 반영한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합참은 “한국군과 유엔사 군사정전위가 DMZ 포격 사건에 대해 서로가 일치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엔사 공보실장 겸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인 로버트 매닝 대령은 “유엔사는 (DMZ 포격 사건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 발생 1년 후 유엔사 중감위 스위스 대표인 우르스 게르브르 육군 소장이 판문점 중감위를 찾은 기자에게 “작년 8월 DMZ 포격 사건 때도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민감한 문제로)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지만 (DMZ 포격 사건에 대해) 남측과 미측, 중감위 결론이 동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군과 유엔사 군정위가 포격 사건에 대해 내린) 결론은 제각각이었고, 그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도 제각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 발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유엔사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소위 ‘유엔사 재활성화’와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GP 총격 사건 조사결과 발표는 유엔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엔사는 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사항에 대한 조사결과 공개에 대해 정권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유엔사는 5년 전 보수정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이번에는 공개 행보를 통해 진보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다. 이번 ‘한국군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발표는 군사조직인 주한미군이 유엔사를 통해 정치적 행보를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