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더 포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 정부가 30년간 숨겨온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다. 미국 여성 최초로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을 지냈던 캐서린 그레이엄과 편집국장을 지냈던 벤 브래들리가 등장하면서 기자들의 세계가 나오고, 정부의 취재 방해가 나오고, 특종이 나오는 영화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등 명대사도 많이 등장한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기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영화다. 직업이 기자인 데다 흥미를 끄는 요소가 많아 영화를 두 번 봤다.


영화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닉슨 대통령 시대가 배경이다. 그 유명한 통킹만 조작 사건 등 당시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담긴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타임스 특종 보도로 세상에 폭로되면서 미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법원에서 공표금지 명령을 얻어내고 뉴욕타임스를 국가반역죄로 기소하겠다고 윽박질러 관련 보도를 금지시킨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후속 보도를 못하게 되지만, 경쟁지 워싱턴포스트는 베트남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입수에 사활을 건다. 결국 4000장에 달하는 기밀문서를 손에 쥔 여성 발행인과 편집국장이 “그들(정부)의 거짓말을 이제 끝내야 한다”면서 신문사의 모든 것을 걸고 보도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추가 폭로로 뉴욕타임스와 함께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받게 되고 대법원은 6 대 3으로 언론의 손을 들어준다. 결과적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고 실태를 알리는 ‘위대한 폭로’라고 불릴 만한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펜타곤 리포트라고도 불리는 펜타곤 페이퍼는 1967년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국방장관의 책임 아래 18개월에 걸쳐 작성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의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1967년’이다. 맥나마라는 비록 국민들에게는 거짓말을 했지만, 베트남전쟁의 실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그랬기 때문에 펜타곤 페이퍼는 베트남전쟁의 정확한 사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정부가 한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나마 외교문서는 본국과 주재국 대사관이 주고받은 게 있어 나름 정확하게 사실이 기록되고, 시간이 지나면 공개된다. 외교부가 지난달 31일 작성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24만여쪽을 원문해제한 게 대표적이다. 일반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일이나 아키히토 당시 일왕의 방한 관련 사항 등 노태우 정부 초기의 주요 이슈들이 흥미롭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2만8000여권(약 391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외교안보 부서인 국방부는 어떠한가. 


기자가 출입하면서 겪은 큰 사건만 열거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당장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슈만 해도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침몰사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미군기지 이전 등이다. 그렇다면 이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한 군당국의 기록은 얼마나 있는가. 또 얼마나 정확한가.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나마 백서를 만든 천안함 사건은 일반 국민들에게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결과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하지만 그 기록이 100% 정확한가에 대해서는 논란거리다. 99%의 과학적 뒷받침이 있다 하더라도 1%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의지로 대신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과학적으로 풀지 못한 미진한 부분조차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백서를 제작했다. 그러다보니 1%의 부족한 부분 탓에 99%의 사실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천안함 사건은 백서라도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백서는커녕 나중에라도 교훈이 될 만한 기록을 남겼는지 의문이다. 중국의 경제보복을 초래하고 국론을 분열시킨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과 관련 인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군부의 허술한 대처 과정도 당시 상황을 아는 관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달될 뿐 정확한 기록이 없다.


과거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맺은 군사 양해각서는 밀실처리됐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한국이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는 UAE를 포함해 사실상 2개국”이라는 말까지 했다. 군 안팎에서 나돌았던 한국과 UAE의 상호방위조약설은 언제 다시 활화산이 돼 문제가 될지 모른다.


군은 군사기밀이라는 방패 뒤에서 대부분의 정책 사안을 밀실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예민한 정책 사안을 담당하는 인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기록은 잘 남기려 하지 않는다. 단순한 팩트 체크를 위해 기자들이 정보공개 요청을 해도 ‘군사적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개가 제한된다는 답변을 받기가 일쑤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다룬 펜타곤 페이퍼 작성을 지시했다. 기록은 상황을 정확히 읽게 하고 나중에라도 유사한 경우에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국방부는 늦었지만 우선 ‘사드 페이퍼’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