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바야흐로 ‘버전 업’ 시대다. 운동화까지 ‘2.0’이니 ‘3.0’이니 하면서 버전 업이 됐음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 국방개혁도 ‘버전 업’을 했다. 참여정부 ‘국방개혁 2020’은 군 구조·전력체계 및 3군 균형발전, 병영문화 발전, 문민화 등을 목표로 한 청사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선언했다. 국방개혁 2020을 기반으로 진화 발전시킨 ‘국방개혁 2.0’을 국민에게 내놓은 것이다.
이는 군 지휘구조 및 개편, 방산비리 척결, 상비병력 감축, 병사 복무기간 단축, 무기체계 개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이 국방개혁 2020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개혁이라고 공언했다. 현 정부 임기 내 완결을 목표로 하는 진화적 개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비병력을 줄이면서 병사 복무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은 전체 전력지수 강화 측면에서 보면 모순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활동 인구 증가 등 국가 경쟁력 강화의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병력 자원 문제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국방개혁 2.0의 핵심으로 다뤄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 중이던 1862년 9월17일에 시작된 북부연방과 남부동맹의 앤티텀 전투는 양쪽 모두 약 2만3000명의 전사상자 및 행방불명자가 발생해 미국 역사상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 이는 남군이 나폴레옹이 구사했던 결정적 순간에 적을 여러 방향에서 타격을 하는 ‘분진합격(分進合擊)’ 기동에 집착한 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기갑부대와 맞서다 전멸하는 모습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로 알려진 폴란드 기병부대는 최고 정예부대였다. 그들은 우연히 조우한 독일 기갑부대와 격전을 벌여 순식간에 100여명이 전사했다. 독일군 전차들에 포위당한 폴란드 기병대가 항복 대신 돌격을 선택한 결과였다. 현장에 있었던 이탈리아 기자는 ‘바보 같은 폴란드 기병들의 돌격’이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6·25 전쟁은 ‘고지전’이었다. 고지 점령을 위해 이동하는 수단도 대부분 걸어서였다. 이제는 보병이 10시간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산악 목표도 헬기로 이동하는 공중강습 병력은 불과 10분이면 갈 수 있다. 작전지역에서는 소형전술차량이나 신형 바퀴식 장갑차로 이동하는 시대가 됐다. 한정된 인적자원으로 전술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동력이 필수이기에 나온 결과다.
군사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초연결 지상전투 체계가 접목된 미래 전장 환경에서는 전투 현장에 인간 병사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지금도 정찰 정보 획득은 육안이나 쌍안경 수준에서 무인정찰 차량, 드론과 무인기, 중·고고도정찰기 등 각종 정찰자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참모는 적군의 규모와 위험가중치, 아군의 현재 상황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최적의 전투방안을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정보 수집과 분석, 판단, 결정 등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과거 수십시간에서 이제는 수분이면 끝나게 된다. 거의 실시간 상황 파악과 대응이 이뤄지게 된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과거처럼 전쟁을 하면 병사들의 피로 대가를 치른다. 현대전에서도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과거 전사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장군들이 새로운 전장 환경에 적응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병사들의 몫이다.
이제 군에서 가장 비싸고 소중한 자원은 사람이다. 오늘날 군대는 인해전술처럼 ‘사람을 가장 싼 자원’으로 투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미군의 예를 보면 20대 병사가 부상할 경우 국가가 부담하는 평생 치료비가 680만달러라고 한다. 해마다 들어가는 13만6000달러의 치료비를 50년 동안 더한 결과다. 여기에 다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서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비용까지 ‘+α’로 더하면 병사 한 명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부상 병사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주변의 아픔은 측량하기 힘든 부분이다. 결국 병사들의 생존성을 높이는 개인 방호 장비와 견마로봇, 드론 등이 비싼 것처럼 보이지만 전장에서의 인명 손실에 따른 손익계산과 견주어 보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병사의 ‘몸값’은 갈수록 뛰고 있다. 사상자 발생은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는 시대다. 게다가 한국군은 병력자원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장병 1인이 지켜야 할 국민의 수도 올해 106명에서 2022년이면 134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자녀 가정도 ‘1차 인구절벽’ 시대에 접어드는 2년 후면 전체 가구의 67%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누군가의 아들딸들이 군에서 다치거나 사망하면 그 후유증은 과거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국방개혁 2.0’이 인력동원 중심 군대에서 기계화·기동화, 나아가서 첨단지능형으로 나아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중국군도 400만명에서 최근 상비병력 200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병력 줄이기가 대세다. 그러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안보환경을 보면 아직까지는 인구 대비 대규모 병력 유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올해 국방예산이 50조원을 넘어서는 등 세계 10위권의 국방 예산이라고 하더라도 병력 전부를 첨단 전력으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탓이다. 게다가 첨단 전력 무장 또한 약점이 있다.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첨단전력을 만나면 손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방개혁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사람이 비싼 자원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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