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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김재규 사진’ 못 걸고…장군 수에 목숨 거는 육군총장

헌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군 경찰이라는 본연의 업무와 관련한 이미지도 있지만, 아직도 장삼이사는 일제강점기 긴 칼을 옆에 차거나 권총을 들고 독립투사를 검거하려 혈안이 된 일본군 헌병 모습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영향도 크다.

 

<밀정>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헌병은 ‘경찰헌병’이다. 일제는 1910년대 우리의 국권을 뺏은 후 한민족을 위협하고 편의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군인인 헌병을 군사뿐만 아니라 일반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경찰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일제가 무단통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경찰헌병이다. 일제 헌병은 ‘무단통치’의 주역이었고, 한국인을 헌병 보조원이나 순사보로 임명하여 독립운동가 색출 및 체포, 고문을 일삼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제 헌병경찰 통치의 대표적인 ‘앞잡이’로 악명높은 인물이 바로 김창룡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그는 1941년 일본 관동군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하다 나중에 헌병 오장(伍長)으로 특진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배후로 거론됐고 특무부대장(현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냈다. 안양 사설 묘역에 있던 그의 묘는 1998년 기무사 노력으로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김창룡 예비역 중장 사진은 국군기무사령부에 5대 사령관 자격으로 역대 사령관 사진(존영)과 함께 걸려 있다. 기무사에는 부부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도 걸려 있다.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20대 사령관)·노태우(21대) 전 대통령의 사진도 나란히 내걸려 있다.

 

역대 사령관 사진 중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냈고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것은 없다. 기무사는 지난달 초 정치중립 준수를 선언하면서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부대 내에 다시 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프레스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해 국방부에 보냈다. 이 내용이 한 언론에 보도된 후 기무사 예비역 장성들의 시비성 전화가 잇따랐고, 기무사는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거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고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령부가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정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힘들다. 김창룡 전 특무대장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진으로 미뤄 기무사가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몇년 이상 금고형으로 처벌된 경우 역대 부대장 사진 대신 이름과 재임 시기만 적어 놓아 후배 장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만약 단순한 기록의 의미라면 군은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다.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에서도 그는 빠져 있다. 부대 역사 문서에서도 그의 이름을 ‘파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요즘 영관장교들조차 김 전 중정부장이 장군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인 줄 아는 경우가 태반이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도 김 전 중정부장 사진이 시사하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철저히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역시 신군부 반란이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선배 장군들을 의식한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마도 육군 수뇌부는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이 다시 내걸리면 ‘군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과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싶다.

 

육군은 개혁차원에서 아직도 일제강점기 헌병을 떠올리게 하는 ‘헌병’ 명칭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일본군 헌병으로 인해 사찰 등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는 ‘헌병’이라는 병과 명칭을 군경(軍警)·군경찰(軍警察)·경무(警務) 등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무’라는 명칭은 육군본부의 한 고위 장성이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경찰이라고 하면 일반인도 쉽게 그 고유 업무를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경무’를 선택하려 하는 것은 무언가 특수한 조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군기무사령부도 마찬가지다. ‘기무’라는 명칭은 조선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 당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가져온 용어다. 이 관청은 군국 기밀과 일반 정치를 총괄하던 관청으로, 그 장관을 총리대신으로 했다. 기무사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政務) 등의 의미’는 오히려 기무는 모든 업무를 다 관장한다는 의미로도 읽혀진다.

 

이처럼 육군은 과거 유산에서 온고지신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과거 영화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육군사관학교는 최근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연구실적 미흡을 이유로 교수를 해임했다. 육사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고, 군 개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육군은 이 같은 육사의 조치를 지지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요새 육군 기류는 국방개혁에 관한 사항은 참모총장 혼자만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읽혀진다. 아마도 육군 수뇌부는 국방개혁의 주요 핵심 사항이 해·공군보다는 육군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중구난방식으로 개혁 얘기가 나오면 불리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육군 개혁의 최종 타깃은 육군 장성 수 줄이기로 귀결된다고 여기는 듯싶다. 육군 내부에서는 육군 장성 숫자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은 육군 하드웨어를 바꾸기 위한 법제화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는 육군 간부들의 정신, 즉 소프트웨어가 변하지 않은 탓이 컸다. 육군이 군 역사 기록 차원에서 필요한 선배 장군 사진조차 내걸지 못하면서, 장군 숫자 지키기에 전념하는 한 국방개혁은 아직도 요원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