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동부~중부~서부 전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횡단 5박6일 취재를 다녀왔다. 휴전선을 지키는 일반전초(GOP) 부대에서 많은 장병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남북 정상의 만남과 판문점선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살짝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흥분됐습니다” “통일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 복무기간이 짧아져 전역이 앞당겨진다면 모를까 관심없습니다” “떨떠름합니다. (북의) 위장 평화 아닙니까” 등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요즘 안보환경에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군은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로 대답이 한결같았다. 어찌 보면 틀에 박힌 듯한 교과서 답변이었지만, 국민이 군에 바라는 정답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한·미·일 블루 라이트닝 훈련을 놓고도 병사들 개인 의견처럼 제각각 뒷말들이 많다. 블루 라이트닝 훈련은 미국이 B-52 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해 주변국에 전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훈련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B-52는 핵 확산 억제 정책을 수행하는 미 전략자산의 하나다. 미군은 B-52를 가끔씩 한반도에 보내 미 전략자산의 출현이라는 메시지를 주변국에 알려왔다. 동시에 전략핵폭격기의 전시 절차 수행 훈련과 조종사의 임무 수행능력 향상을 함께 꾀해 왔다. 일각에서는 한반도 오른쪽에서 훈련을 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라이트닝이라는 명칭을 붙인 훈련을 여러 개 하고 있다. ‘코럴 라이트닝’은 남중국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겨냥한 훈련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또 인도양에서는 화이트 라이트닝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블루 라이트닝 훈련엔 한국 공군이 불참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미 한 달 전에 B-52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시키지 않을 것임을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B-52가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에 전개될 것처럼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다가 B-52가 맥스선더가 아닌 한·미·일 블루 라이트닝 훈련에 참가할 예정이었다가 한국 정부 요청으로 한반도 공역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내외신 보도로 바뀌었다. B-52를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은 것이 미측의 결심인지, 송 장관의 요청인지를 놓고도 오락가락 보도 등으로 혼동을 빚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치 한국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우와좌왕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이러는 사이에 북한은 맥스선더 훈련을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 구실로 삼았다. 아마 북한도 그토록 싫어하는 B-52가 맥스선더 훈련에 등장하는 것으로 혼동했던 듯싶다. 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저서 출간만을 시비 걸기에는 명분이 약해 맥스선더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든 맥스선더는 실질적으로 24일 종료됐다. 맥스선더 종료로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재개할 명분이 생겼다.
남북 대화 분위기 속에서 국방부의 ‘국방개혁 2.0안’도 사실상 표류 중이다. 공세적 신작전수행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 폐기에 들어간다고 해도 당장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굳이 한반도가 아니더라도 적 군사 위협에 대응하는 전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준비해야 하는 게 군 작전의 기본이다. 군축이 현실화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심지어 해군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 진수식에 대해서도 해상에서 펼쳐진 도발적인 군사적 움직임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북한 반응까지 일일이 고려해야 한다면 국방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북한 태도에 일희일비하면서 “맥스선더 훈련은 예정대로”라고 말한 송영무 국방장관에 대해 분위기를 모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남북 대화에도 도움이 안된다. 큰 틀에서 맥스선더 훈련 때문에 깨질 남북 대화라면 언젠가는 또 다른 사소한 이유로 깨지게 돼 있다.
분명한 것은 여러 혼동을 빚게 하는 정부 태도나 보도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측이 우왕좌왕한다고 판단하면 자신들의 페이스대로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다고 여긴다. 차라리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배석했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영철 부장은 본인 스스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김일성 주석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만났을 때 김 주석 뒤쪽에 서 있었다고 남측 인사들에게 주장한 바 있다. 사실이라면 46년째 대남 전문가다. 그는 1989년부터 남북 군사접촉과 대화에서 북측 대표를 해왔다.
그는 회담 전문가이자 대남 공작과 도발 전문가인 양면적인 인물이다. 남북 회담장에서는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측 인사에게 고함과 호통을 치고 모욕을 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상부 지시 수행을 위해서는 비굴하게 사정하고 변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금 북측이 맥스선더 훈련을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하는 구실로 삼고, 남측 기자들의 풍계리 핵실험장 현장 취재를 막판까지 가슴 졸이게 하다 허가해주는 방식도 김영철식 밀당(밀고 당기기) 연장선상이다.
남측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대화 국면을 계속 끌고 가기 위해서는 북측 의도를 알면서도 끌려가는 부분을 일정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무력집단인 군까지 알아서 눈치보기식으로 하라는 것은 오히려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국방부는 평화 국면에서도 무력을 준비해야 하는 유일한 정부 부처다. 오히려 군을 대북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레드 플래그 훈련을 벤치마킹해 맥스선더 훈련을 만들었듯이 김영철을 벤치마킹해서라도 남측이 북측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내 대화 주도권을 잡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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