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 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전선 앞장을 서리(2절은 ‘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나가리’)….”
요새 ‘촛불 계엄 문건’으로 시끄러운 국군기무사령부 부대가 일부분이다. 부대가만 보면 은밀하게 일하는 보안·방첩부대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명령만 내리면 (설사 그것이 정권을 찬탈하는 일일지라도 ‘역사’를 앞세운 사령관의 명령이라면)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나가 임무를 완수했던 충성스러운 부대였다는 이미지는 와닿는다.
역대 기무사 위상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던 기무사령관 대통령 독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무사령관 독대는 이뤄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 보고는 배석자가 없으면 ‘독대’가 된다. 과거 정부에서는 배석자가 있다 하더라도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 대면보고는 사실상 ‘독대’로 간주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지금까지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는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 보고를 예외적으로 일부 허용하는 기무사 개혁위의 검토안과 거리가 있어, 청와대가 향후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극히 예외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대통령 직접 보고가 이뤄지면서, 국방부 장관도 기무사령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군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기무사령관 역시 국방장관 부하로서 역할보다는 아무래도 견제하는 역할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기무사에서는 월요일이면 기무사령관 책상 위에 국방장관 주말 골프 스코어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군 고위층이 외부 인사와 회식을 가지면 기무요원이 상부 보고를 위해 ‘폭탄주는 몇 잔이나 마셨나’까지 알아보고 다녔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역대 정권마다 집권 초 기무개혁을 검토했지만 대통령 통수에 대한 보좌 기능이라는 논리에 순응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말이 통수기능 보좌이지, 이는 군의 쿠데타 방지 또는 군 수뇌부 부패 방지라는 명목으로 장교들의 동향을 관찰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김대중 정부 당시 “이제 기무사도 정부 햇볕정책에 어떤 도움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고 부하들에게 설파했던 한 기무사 영관 장교가 이명박 정부에서 장군이 된 뒤 “군내에서 ‘햇볕정책’ 운운하는 종북세력을 뿌리 뽑는 게 기무사 역할”이라고 부대원들에게 역설하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기무사 보고는 달콤할 뿐만 아니라 유용하다”며 “기무사 개혁의 핵심은 대통령과 기무사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무사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 반지’에 비유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 힘을 갖고 있는 반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막상 반지를 끼고 난 뒤에는 반지의 힘에 휘둘리는 것처럼 정권은 기무사를 활용하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로 군에서 기무사 보고서는 중독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잘 훈련된 에이스 요원들이 작성하는 기무사 보고서는 일목요연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기무사 촛불 계엄 문건의 보고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이번 계엄 문건 사건의 발단은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16일 오전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이 문건을 보고한 것이다. 당시 송 장관은 국방연구소(ADD) 이사회 참석 때문에 이 사령관 보고를 자세히 듣지 못하고 “(문건을) 놓고 가라”고 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대목에서 의아스러운 점은 문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 사령관은 “중요한 문건이므로, 차후에라도 자세한 설명을 드려야 하니 다시 시간을 내주십시오”라고 했어야 했다. 송 장관 역시 나중에 이 문건을 정독한 후에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기무사령관을 다시 불러 추가 보고와 후속 절차를 지시했어야 상식적이다. 이런 절차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령관의 촛불 계엄 문건 보고에 대해서도 평소의 기무사답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사령관이 ‘문건 성격에 관한 기무사 내부의 확인 검토 및 향후 대응방안’까지 함께 마련해 보고했어야 했다”는 말이 기무사 예비역들 사이에 거론되고 있다. 이 사령관은 ‘이런 문건이 나왔으니 장관께서 알아서 하세요’로 끝내버린 셈이다.
송 장관도 마찬가지다. 나중에라도 보고자인 이 사령관을 다시 불러 의견을 교환하는 게 상식이지 않나 싶다. 국방부의 첫 보고 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시 정황 등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다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국방부가 문건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순 보고했다는 의미다. 더 거슬러가면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에게 무성의한 보고를 했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군대에서 최고위층에게 보고할 때 핵심은 단순한 문건의 전달이 아니라 문건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파급력 및 그 대응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보고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게 상식인 점에 비춰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군대에서는 ‘끼워넣기 보고’라는 말이 있다.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껄끄러운 사안을 여러 보고 문건에 슬쩍 끼워넣어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또 지휘관이 시간이 촉박해 가장 바쁠 때 보고시간을 잡은 후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도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문건 파문의 출발점은 기무사의 5분 보고였다. 이것이 국방부의 청와대 부실 보고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책임 떠넘기기식 설명을 해 파문을 키웠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진 이번 파동의 책임은 이들 기관 모두에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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