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은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담대한 발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만난다. 두 정상의 만남은 제2의 몰타 회담에 비견되고 있다. 1989년 12월3일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한다고 선언했다. 회담 직후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는 ‘냉전 이후’라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회담이 열린 곳은 지중해 몰타섬에 정박한 소련 여객선 막심고리키였다.

 

역사는 몰타 회담처럼 때때로 선상에서 이뤄졌다. 특히 배 위에서 결말을 본 경우가 많았다. 후일 유엔 공동선언의 기초가 된 대서양헌장도 1941년 8월 함정에서 만들어졌다. 캐나다 동해안 섬인 뉴펀들랜드 플레센티아만에 정박한 영국 해군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서였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해군 구축함 맥두걸을 타고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올랐다. 이 전함에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처칠 총리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정상은 북대서양에서 5일간 선상회의 끝에 공동선언인 대서양헌장을 발표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총리,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 등 세 연합국 수뇌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세계대전의 수행과 전후 처리 문제를 사전 협의했다. 한국 독립 문제가 처음 언급된 이 회담에서 정상들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는데, 한번은 미국 전함 아이오와 함상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 밖에 1842년 아편전쟁은 영국 군함 콘월리스에서 맺은 난징조약으로, 태평양전쟁은 1945년 9월2일 요코하마에 정박한 미 전함 미주리에서 일본이 공식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마무리됐다.

 

6·25전쟁 때는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가 휴전회담 장소가 될 뻔했다.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이 1951년 6월 공산군 측에 원산 앞바다의 덴마크 선박 위에서 휴전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공산군 측이 회담 장소를 수정제의해 함상 회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1994년에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대동강 요트에서 회담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선상 회담의 원조는 임진왜란 때 조선이 왜군과 벌인 선상 담판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예조판서 이덕형이 대동강에 배를 띄우고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돼 선조는 의주로 몽진했다.

 

유럽 국가들은 1985년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솅겐 인근 모젤강에 띄운 배 위에서 솅겐조약을 맺고 나라 간의 통행 제한을 풀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의 ‘빅3’ 정상은 2016년 8월 나폴리 인근 벤토테네섬에서 정상회의를 가진 뒤 항공모함 가리발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 해군도 정상회담과 같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함정을 갖고 있다. 독도함이다. 독도함은 1만4500t급 대형 수송함(LPX)이자 상륙함정이다.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억지 주장하는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한국 해군 함정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2005년 7월 미국과 영국·독일·중국 등 14개국 무관들이 참석한 독도함 진수식에도 일본 무관의 참석 거부를 지시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방위대의 해상자위대 예비 장교들에게 다른 함정의 견학은 허용하지만, 독도함만큼은 탑승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에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독도함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판문점에서 열리지만, 다음번에는 독도함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면 어떨까 싶다. 선상은 안전과 보안에도 유리하다. 해군이 매년 독도함에서 함상 토론회를 열어왔을 만큼 공간도 넓다. 2010년 10월에는 국회 국정감사가 독도함에서 열리기도 했다. 독도함이 머물 장소는 서해나 동해의 북방한계선(NLL)도 좋고, 원산만도 관계없다. 북한은 남측 대통령이 최고 존엄을 알현하러 원산까지 군함을 타고 왔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할지도 모른다. 거꾸로 남측 군함에서의 정상회담이라는 이유로 절대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도함에서의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북측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대신 남북 모두 실리를 챙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독도함은 회담 개최 장소로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다. 남북 정상이 독도함에서 머리를 맞대고 회담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전달되면 세계는 독도함이 연상시키는 독도에도 주목할 것이다. 당장 다음번이 힘들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독도함에서의 남북 정상 간 만남은 이뤄질 수 있다.

 

독도함에서의 정상회담은 몽상가의 생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몽상에서 시작해 현실로 이어진 역사도 많다. 군함 위에서의 정상회담은 어색하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4월28일 중앙선관위 초청 2차 토론 마무리발언에서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미 핵항모인) 칼빈슨호 함상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은 제3국에서 열리는 것이 상례다. 그런 면에서 이왕이면 남북 정상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나 몽골까지 갈 것도 없이 독도함에서 만나면 금상첨화다. 회담 당사국에 제3국의 선상은 통상적으로 중립지대로 간주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가 함상에서 그려질 수 있다. 불필요한 의전을 생략할 수 있고 실무적인 의견을 교환하기에도 적당하다. 다만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일본만은 반발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에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가 그려진 망고무스 디저트에 대해서도 항의하는 일본이니 말이다. 일본의 항의는 무시하자.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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