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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기무사 감청과 ‘왝더독’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면 시사잡지에 군부 동향에 대한 기사가 곧잘 오르내렸다. 야당 등 정치권에서 정세 분석을 할 때도 군부 동향을 눈여겨봤다. 군사독재정권이 종지부를 찍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은 군부가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으로 꼽혔다. 그랬던 한국 군부는 이제 쿠데타와는 거리가 멀고 군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하는 안보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데타(coup d’Etat)는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당연히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군대와 쿠데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군에는 쿠데타를 막기 위한 장치가 여러겹 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법적·제도적으로 군부에 대한 감시 울타리를 여러겹 쳐놓았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감청도 이 중 하나다.

 

기무사의 핵심 임무는 대전복(對顚覆) 활동이다. 쿠데타 방지 활동이라는 의미다. 기무사의 대전복 임무수행은 전복 위협을 찾아서 제거하는 차원보다는 전복 징후를 포착해 미리 제거하는 개념에 가깝다. 미리 관리해 전복 위협요소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기무사가 군 주요 지휘관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의 동향을 일일이 챙기는 배경으로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의 감청은 신군부의 1979년 12·12 군사반란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쿠데타를 막아야 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쿠데타 수괴로 변신한 것은 보안사 감청의 결과였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내보내려던 계획이 보안사 감청을 통해 새나가면서 위기를 느낀 전두환 사령관이 쿠데타를 주도해 12·12가 일어난 것이다.

 

1993년 3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하나회를 정리했다. 취임 11일 만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12·12 군사반란 연루자의 군복도 벗겼다. 만약 감청 등을 통해 관련 정보가 새나갔다면 군부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문민정부 관계자들은 보안사 감청으로 12·12가 일어났던 것을 감안한 전격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 군부의 쿠데타는 과거완료형 상태다.

 

최근 기무사가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 포스(TF)’를 감청해 수사 정보를 미리 파악한 사실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무사는 지난 11월 말 TF의 유선전화를 감청해 국방부 TF가 기무사에 압수수색을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기무사령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기무사는 국방부 TF가 압수수색을 위해 수사관들을 여러 곳에서 차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전화를 감청했다고 한다. 기무사가 군 기관 여기저기를 무작위로 감청한다는 것은 군에서는 하나의 상식처럼 통한다. 군내 감청은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하는 일반 감청과 달리 4개월마다 한번씩 대통령의 포괄적 승인을 받아 이뤄질 수 있는 것을 빌미로 기무사가 사실상 무제한 감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기무사의 국방부 TF 감청 역시 일상적 업무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에서 수사팀이 기무사 압수수색과 관련한 사항을 유선전화로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수사 기밀을 노출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각에서는 비판한다. 한마디로 아마추어 수사라는 것이다.

 

여하튼 문제는 국방부 TF가 기무사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 수행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실무진이 이를 특이동향으로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TF 관계자는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보는데 위법사항이 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과정에서 기무사령관에게 보내는 보고서 외에 국방부 TF의 다른 정상적인 활동내용도 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후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면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무사의 국방부 TF 감청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비교했을 때 군 댓글 공작에 대한 군의 수사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터졌다. 2008년 창설된 기무사 스파르타 부대는 사이버사 창설 전 댓글부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방부 TF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언론에서 이미 보도한 사안들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군 외부에서는 국방부가 지금껏 자체조사를 통해 검찰 등에 제대로 된 수사의뢰를 한 적도 없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던 터였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김관진 전 장관의 석방에 대해 “참 다행이다”라고 말한 것을 놓고도 송 장관이 사실상 부하들에게 김관진 전 장관의 연루에 대한 수사는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송 장관 측은 “단지 인간적인 소회를 얘기한 것으로 국방부 TF에도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적폐청산 수사를 소신껏 할 것을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군 외부에서는 군이 정치개입 의혹 규명에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방부 TF 구성원들이 과거 동료들을 조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방부 TF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덮었던 사건을 포렌식을 통해 일일이 복원해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외부의 수사미진 운운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하소연했다. 나아가서 관련 PC를 폐기처분했으면 국방부 TF의 수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관진 전 장관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자 외부에서 엉뚱하게 군에 화살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군 댓글사건 수사가 결정적인 ‘한방’이 나오지 않자 수사 물꼬를 엉뚱한 쪽으로 돌리는 게 아니냐는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자칫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 같은 논란 속에서 TF 활동 기간을 3개월 연장했다. 수사결과가 왝더독이 될지 본질의 핵심을 꿰뚫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