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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더스트 오프’와 한국군 군진의학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탈북한 북한군은 주한 미8군 더스트 오프팀의 신속한 이송과 응급조치 덕분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아주대 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밝혔다. 당시 알려지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주한미군 의무항공대 더스트 오프팀의 블랙호크 헬기가 JSA에 착륙한 지 2분 후 한국군 의무헬기도 현장에 도착했던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만약 한국군 의무헬기가 미군 헬기보다 먼저 도착해 중상을 입은 탈북 북한군을 이송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더스트 오프 구급대원들은 헬기 안에서 흉관 삽입술을 실시했다. 이 교수는 “헬기가 상승하면서 기압이 낮아지면 찢어진 폐에서 나온 공기로 인해 압박성 기흉(氣胸) 문제가 발생한다”며 “더스트 오프팀이 헬기 안에서 흉관 삽입술을 실시해 폐에서 나온 기체를 다 뽑아냈다”고 말했다. 찢긴 폐에서 빠져나온 공기가 폐와 심장을 눌러 쪼그라뜨리는 압박성 기흉 문제를 헬기 안에서 완벽하게 해결했기에 1차 응급 수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국군 의무헬기에서도 이 같은 응급처치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응급처치할 수 있는 의무헬기 내 장비는 차치하고라도 헬기 안에서 이 같은 시술을 할 수 있는 의무인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더스트 오프 대원들은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 응급의료 및 이송 작전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군 의료체계는 탈북 북한군조차 아주대 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수술해야 할 만큼 허술한 게 현실이다. 탈북 북한군이 국군병원이 아닌 판문점에서 거리도 먼 수원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된 것은 총상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만한 군 의료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이는 군의료 체계가 전쟁과 같은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수개월 전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 부상 장병 상당수도 민간 병원에서 수술 및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군의료에 총상치료 능력은 꼭 필요하지만, 이를 갖추는 건 쉽지 않다. 해외에서도 수년 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 실습이 어렵다 보니 영국 군의관들이 일부러 총상을 입힌 돼지를 대상으로 치료 실습을 하다 동물보호단체의 극렬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다.

 

군인의 보건·위생이나 전장에서 다친 장병의 진료와 방역을 연구하는 군인 대상의 의학을 군진의학이라고 한다. 생화학무기 연구나 군 특수의학 연구, 전시와 평시 의무체계를 연계한 진료시스템 구축 등도 군진의학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군 군진의학은 군 내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논란이 되곤 했다. 2005년 군에서 위암이 발병했으나 엉터리 초동진료로 인해 전역 후 보름 만에 사망한 노충국 병장 사건을 계기로 군은 의무발전 추진 계획을 내세웠다. 군 병원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고 이송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중견 의료 인력 확보 차원에서 장기 군의관 확보를 위해 단기 군의관의 장기전환, 민간 계약직 의사의 고용도 추진했다.

 

미국 국방의과대학과 일본 방위의과대학을 본뜬 국방의학전문대학원도 설립하겠다고 나섰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이는 포기했다. 그 대신 육군사관생도의 서울대 의대 위탁교육이 시작됐다.

 

이제는 위탁교육을 통해 양성된 육사 출신 군의관이 국군의무사령관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군이 육사 생도를 서울대 의대로 보내 양성한 군의관으로는 응급의학 전문의도 있지만, 피부과 전문의와 성형외과 전문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등도 상당수다. 아마도 총상이나 화상 등의 후유증 치료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인 듯싶다.

 

문제는 육사 출신 군의관이 배출되면서 국군의무사령관 자리가 육사 출신의 전유물이 돼버린 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청와대 의무실장, 국군서울지구병원장, 의무사령부 처장, 육군본부 의무실장, 의무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소위 군의관 로열코스를 독식하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야전 의무부대 중대장조차 거치지 않고 의무사령부 고위 간부에 임명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발생한, 군의관이 에탄올 주사를 놓아 병사의 왼팔이 마비된 의료사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군 관계자는 “군 병원을 관리하는 의무사령부 책임자가 의무중대장을 경험하지도 않았으니, 야전병원의 실태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며 “이런 것이 의무사고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부 육사 출신 군의관의 경우 본인이 현역복무 부적합 신청을 통해 의무복무 기간 전에 전역한 후 개업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조기 전역 후 강남에 성형외과를 개업한 육사 출신 군의관도 있다. 국가가 비싼 의대 학비를 대주고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군의료 체계 개혁을 위해 선택한 육사 출신 군의관 배출이 군 의무병과의 골품제 논란으로 변질되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 가려고 육사에 지원한 수험생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다시 탈북 북한군 사건으로 돌아가서 군에도 이국종 교수와 같은 중증외상치료 전문의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군에서는 총상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과 사고 시 이를 치료할 중증외상치료 전문의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군이 이를 염두에 둔다면 외상센터가 특화된 아주대로도 위탁교육을 보내 중증외상치료 전문의를 양성하는 게 상식에 맞다고 여겨진다.

 

특화된 의료분야뿐만이 아니다. 전반적인 군 의료 수준에 대한 장병들의 신뢰는 낮다. 군이 의료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본인이 원할 경우 민간병원 이용이 가능하게 한 이후 장병들은 군 병원보다 민간병원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고위간부들도 마찬가지다. 일선 사단장을 거친 한 장군은 “부대장으로 있으면서 병사들에게 민간병원 이용을 오히려 권했다”며 “군 병원으로 보내면 절차를 따지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인 데다, 제대로 진료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JSA 북한군 탈북사건이 한국군의 군진의학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노충국 병장 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군 의료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게 현실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