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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블랙이글과 나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 이글’이 국제에어쇼에서 잇따라 수상하는 등 성공적인 해외 데뷔를 마치고 지난 주말에는 성남 공군비행장에서 '금의환향'을 신고하는 에어쇼를 펼쳤다.

 

 블랙 이글의 T-50 8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편대비행을 연출하고, 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갖가지 무늬도 그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있다. 시속 740㎞로 비행하던 항공기들은 단 1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항공기가 지나간 자리엔 네 줄의 하얀 무지개가 나타난다. ‘칼립소 기동’이니 하는 전문적 용어를 몰라도 아찔한 묘기를 즐기다 보면 저절로 블랙 이글의 팬이 된다.

 블랙 이글의 고난이도 비행기술 30여개의 기동은 실제 전투기대대에서 쓰이는 전투기동을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서커스단의 곡예처럼 단순한 묘기를 보여 주는 곡예비행과는 다른 실전 비행기술이다.

 

 블랙 이글의 환상적인 에어쇼를 보자니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T-50을 블랙 이글의 기종으로 택하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2006년쯤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김성일 대장과 국방부 기자단의 점심식사를 겸한 간담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T-50을 블랙이글의 기종으로 선택하면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고 공군총장에게 건의했다. 최신형 기종을 선택함으로써 블랙 이글 조종사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T-50의 홍보 효과까지 거둘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공군총장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적극 추진하겠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의 제안을 따라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배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나의 바램은 이뤄졌다. T-50을 개량한 T-50B는 스모크 장치까지 기체에 내장한 블랙 이글의 기종이 됐고, 해외 에어쇼에서 기량을 맘껏 선보이며 멋진 홍보효과를 거뒀다. 이제 블랙 이글은 한국 공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T-50의 해외 수출을 위한 전략적 도구 역할까지 하고 있다.

 

 과거 T-50이 등장하기 전까지 블랙 이글은 해외 에어쇼에 참가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블랙 이글 조종사들은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도 해외 에어쇼에 가면 다른 나라 항공기 뒷자리에 앉아서 비행체험만 해야 했다. 과거 블랙 이글 기종으로 사용하던 ‘A-37B’는 미국산으로 허가 없이 분해나 조립을 할 수 없어 에어쇼 참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돈’ 문제도 해외 에어쇼 참가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항공기를 분해한 후 화물기로 실어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수송비와 조종사들의 현지 체류비 등으로 수십억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군이 국제 에어쇼 참가를 위해 예비용 1대를 포함해 총 9대의 항공기를 파견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 효과는 투자한 비용 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수출 전략 차원에서도 잘한 결정이었다.

 

 T-50 기종은 이미 인도네시아에 16대를 수출하기로 해 한국을 항공기 수출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제는 블랙 이글의 국제 에어쇼 무대 활약으로  T-50은 전세계 바이어들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블랙 이글의 전신은 ‘블루 사브레’다. 공군은 1962년 F-86 4대로 특수비행팀을 만들었다. 1967년에는 항공기를 F-5A로 바꾸면서 블랙 이글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블랙 이글'로 부른다. 이후 기종은 A-37로 교체됐고, 2009년 국산 초음속 훈련기인 T-50B로 다시 바뀌었다. 블랙 이글이 기량을 겨루는 경쟁자들은 미국 공군의 썬더버드와 해군의 블루엔젤스, 러시아 공군의 러시안나이츠 등 굴지의 비행팀들이다.

 

 ‘하늘의 예술가’로 불리는 블랙 이글의 조종사들은 공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블랙 이글과 같은 특수 비행팀의 기량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서 그 나라 공군력의 척도로 평가받는다. 이때문에 특수 비행팀의 구성원은 최고 조종사들로 이뤄지는 게 통례다.

 

 

 무한경쟁시대에 블랙 이글의 조종사들은 세일즈 맨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T-50의 해외수출 첨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속을 넘나드는 속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들을 아슬아슬하게 교차시키면서 생명을 담보로 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한다.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블랙 이글 조종사들은 목숨을 건 T-50 세일즈 맨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T-50은 1대당 수출단가가 250억원 정도로, 50만원 가격의 휴대폰 5만대, 중형 승용차 1250대를 수출하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최첨단의 과학기술제품으로서 T-50은 중량(㎏) 당 가격(만원)이 자동차의 440배에 달한다. 그런만큼 T-50은 경제적 부가가치와 새로운 수출상품으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문제는 국제 방위산업 시장에서 한국산 항공기 수출 경험이 일천하고 대외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현실의 벽’이다. 이 난관을 뚫으려면 대부분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는 방산시장에서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도 성공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을 노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T-50 고등훈련기 뿐만 아니라 F-5 전투기를 대체할 전투기 시장에 T-50을 공격형 전투기로 개발한 FA-50을 투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즉, 훈련기 시장과 경공격기 시장을 동시에 노리라는 것이다.

 

 이같은 T-50 수출을 위해서는 이미지 메이킹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 시장에서 한류를 앞세워 우리 상품의 수출을 확대하고 있듯이, 항공기 시장에서도 T-50이 자연스럽게 회자되면서 수출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군은 T-50 수출을 위해 해병대에서 복무 중인 현빈(본명 김태평)을 ‘방산수출 홍보특사’로 활용하기까지 했겠는가. 군은 한류스타가 군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T-50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현빈을 인도네시아 국군의 날 행사에 현빈을 파견해 나름 효과를 보기도 했다.

 

 올해는 블랙 이글이 우리 기술로 만든 날개를 달고 전세계 에어쇼 현장을 누비며 국산 초음속 항공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