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방이야기

저격수 신학용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현역 장성 자제들의 부대 배정 특혜 의혹에 이어 천안함 사고 당일 군당국이 북한 잠수정의 출동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연이어 터뜨리며 일약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이번 국감에 임하고 있는 국방부 입장에서는 신 의원이 ‘저격수’ 역할을 했다.

신 의원의 지적으로 군당국은 곤혹을 치르고 있다. 급기야는 신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언론 보도자료까지 내놓았다. 그러면서 해외파병 선발과정에서 장군의 아들 7명이 탈락했다는 사실도 설명했다.

해군병사의 경우에는 모든 병사들이 병과에 관계 없이 6개월 이상 해상근무를 실시한 후 육상근무가 가능하다면서 현재 장군의 자제 5명(해군4, 해병1) 중 해군 4명은 전원 함정근무 경험 후 육상으로 보직된 인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미 ‘저격수 신학용’한테 난타를 당할만큼 당한 상태였다. 때늦은 보도자료는 ‘약발’을 보이지 못했다.


 

저격수의 역사

베트남전에서 적군 1명을 사살하는 데 소비된 실탄은 무려 2만5000발에 달했지만 저격수는 같은 전과를 얻는 데 평균 1.3발을 사용했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이토록 효과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저격수지만 이들이 미군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베트남전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지만 미군 저격수가 처음 명예 훈장을 받은 것은 1993년이었다.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추락한 미군 헬기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자원했다가 목숨을 잃은 두 명의 저격수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한 것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할리우드 영화 ‘블랙호크 다운’에서도 잘 나온다.

본격적인 저격수의 역사는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과 함께 열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초기의 저격수는 암살자로 경멸받았다. 베트남전 때 미 해병의 저격수 부대는 ‘살인 주식회사’로 통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서의 전설적인 미군 저격수 카를로스가 전쟁이 끝난 지 30년 후에야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것도 저격수에 대한 미군의 인식과 무관치 않다.

저격수는 희생도 컸다. 
미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 투입된 미 제15야전군의 정찰 저격수는 80%의 사망률을 보였다. 베트남전에서도 저격수는 적군에게 붙잡이면 즉결 처형을 당했다. 저격수에게는 현상금까지 붙었다.


전장 밖의 저격수들

어떤 의미에서 이제 저격수는 전장을 벗어났다. 정치권에도 신 의원처럼 저격수로 불리는 국회의원들이 곧잘 등장한다.

‘한방’의 기사로 고위 관료의 ‘목’을 날리는 기자들에게도 취재원들은 저격수라는 별칭을 붙이곤 한다. 이 역시 뉘앙스를 보면 해당 기자의 기분을 좋으라고 붙여준 별명은 아니다. 하지만 고위관료의 부적절한 행동은 저격수 기자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모든 기자가 저격수로 변신하게 된다.

저격수는 최첨단 조준경과 야간투시경까지 갖추고 1㎞ 밖에 떨어져 있는 표적까지 백발백중 명중시킨다.
저격수의 표적도 사람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무기의 발달로 적군의 차량까지 저격수의 한방으로 폭발하는 시대다. 그런 만큼 전장에서건 일반 사회에서건 비용 대 효과 면에서 탁월한 저격수는 활용하기 나름이다.

'국방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군 우주인 프로젝트 발표  (9) 2010.10.17
국적없는 훈련  (1) 2010.10.13
흑룡사와 백골 성당  (7) 2010.10.12
한국군과 미군의 차이  (3) 2010.10.12
공군 1호기  (0) 201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