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이야기

한국이 처음으로 주관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이 우리 해군의 작전수역인 부산 동남방 27㎞ 해역에서 벌어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호주, 프랑스, 캐나다 등 15여개 국가가 참여하는 이번 훈련의 명칭은 ‘동방의 노력 10’(Eastern Endeavor 10).

그러나 당초 국방부가 발표한 이번 훈련의 명칭은 한국어는 없이 영문으로만 된 ‘Eastern Endeavor 10’이었다. 당장 기자들은 “한반도 해역에서 열리는 훈련의 명칭이 달랑 영어 이름 하나인가”라고 항의했고, 국방부는 부랴부랴 ‘Eastern Endeavor 10’을 한글로 번역한 ‘동방의 노력’이란 명칭을 내놓았다.





군의 훈련이나 작전의 명칭은 아무렇게나 짓는 것이 아니다. 다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숀 코너리, 앤소니 홉킨스, 진 해크먼, 로버트 레드포드 등과 같은 초호화 배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를 소재로 했던 전쟁 액션 영화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를 통해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머나먼 다리’는 1944년 9월 17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됐던 연합군의 ‘마켓 가든’ 작전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마켓 가든’ 작전은 당시 승리에 도취돼 있던 연합군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작전이었다.

몽고메리 장군이 이끌었던 이 작전은 라인 강에 위치한 아른험 다리 확보에 실패하고 영국 1공수사단이 괴멸하면서 연합군의 참패로 끝났다. 이로 인해 몽고메리의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던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마켓 가든’의 ‘마켓’은 낙하산 공정부대, ‘가든’은 지상군을 의미했다. 결국 ‘마켓‘은 고립되고 ‘가든’은 독일군의 반격으로 무너졌다.
결과로만 보면 라인강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는 점에서 작전 명은 영화 제목처럼 ‘머나먼 다리’가 더 어울렸다.

이같은 군사 작전명은 군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신중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산물이다.
명칭은 작전의 성격을 잘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1990년 8월부터 1991년 2월까지 이라크에서 벌인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사막은 중동이고 폭풍은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

한국 자이툰 사단이 2004년 9월 쿠웨이트의 미군 버지니아캠프에서 이라크 북부 아르빌까지 18일동안 1115㎞의 육로구간을 이동했던 작전의 명칭인 ‘파발마’도 이름을 잘 지은 작품이었다. 파발마(擺撥馬)의 원래 뜻은 공무로 급히 가는 사람이 타는 말이다.




 
그러나 작전과 관련한 정보 유출을 피하기 위해 작전의 성격을 상징하는 용어 대신 작전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사용한 작전명 ‘절대군주작전’(Operation overlord)이 그 예다.

작전명을 지을 때는 혐오감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용어는 빼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2001년 10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 사용한 작전명은 원래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이었다. 그러나 ‘무한 정의’는 알라신만이 유일하게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이슬람권의 정서를 건드리는 용어라는 이의가 제기돼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으로 바뀌었다.


훈련도 넓은 의미에서 작전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명칭에서 그 의미가 잘 드러나야 한다.

1981년부터 태국에서 열리는 ‘코브라 골드’ 훈련은 유엔의 위임을 받은 다국적군이 합동으로 무력분쟁 발생 지역에 투입되는 연합훈련이다. 아마도 코브라 뱀으로 유명한 태국에서 벌어지는 훈련이어서 붙은 명칭인 듯 싶다.

실제로 우리 해병대가 처음으로 참가한 지난 2월 훈련에서는 태국군 장교가 정글에서 생존하는 훈련의 일환으로 코브라를 생식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미군도 덩달아 코브라 생피를 마시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인근 미 넬리스 공군기지에서는 매년 미 414전투훈련 비행대대 주관하에 레드플래그(Red Flag·붉은 깃발) 작전 훈련이 펼쳐진다. 한국 공군도 참가하는 이 훈련에서는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 같은 잠재적 적군을 상정한 가상 적기부대, 즉 ‘레드 포스’에 대항해 미군 및 연합군의 항공전력인 ‘블루 포스’가 치열한 가상 공중전을 벌인다.

 
시선을 한반도 쪽으로 돌려보자.

한국군 단독 훈련 명칭으로는 합참이 주도하는 전구급 지휘소 연습(CPX)인 ‘태극 훈련’이 대표적이다. 당초 명칭은 ‘압록강 훈련’이었지만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한다며 2004년부터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호국훈련’과 ‘화랑훈련’이 있고, 해병대도 해병대의 상징 중 하나인 천자봉의 이름을 넣은 ‘천자봉’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군 훈련 명칭은 그 유래를 익히 알기에 쉽게 받아들여진다.

천안함 침몰사고 이후 실시한 연합훈련의 이름인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는 한·미 연합군의 강한 의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자 붙인 명칭이었다.




또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의 원활한 전개를 위한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단호한 결단’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는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상징성을 담은 게 아닌가 싶다.

키 리졸브 훈련과 연계해 실시하는 ‘Foal Eagle’ 비정규전 훈련의 명칭은 참가한 한·미 부대들의 별칭에서 유래했다. ‘Foal’ 은 ‘나귀의 새끼’라는 뜻의 단어이지만 미 제1공수특전단(미국은 연대급이므로 단이라고 부름)의 별칭이다. 또 ‘Eagle’은 독수리인데 이는 우리나라 제1 공수특전여단의 별칭이다.

즉 ‘Foal Eagle’이라는 몇칭은 최초 미 1공수특전단과 한 1공수특전여단이 한·미연합 특수전 훈련에 참가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에 훈련 참가 부대의 명칭이나 규모 및 방법이 바뀌었어도 ‘Foal Eagle’은 처음 사용하였던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한반도에서는 키 리졸브 훈련 뿐 아니라 매년 8월에는 프리덤가디언(Freedom Guardian) 훈련도 실시된다. 프리덤가디언을 한국말로 굳이 번역하면 ‘자유 수호자’쯤 될 듯 싶다.

키 리졸브와 프리덤가디언은 전시작전권 전환을 계기로 명칭이 변경된 훈련들이다. 키 리졸브 훈련은 전시 ‘수용·대기·전개·통합’을 의미하는 RSOI가 한·미간 전작권 전환 합의 이후 명칭이 바뀐 것이고, 프리덤가디언의 그전 이름은 포커스렌즈(FL)였다.

그러나 ‘키 리졸브’와 ‘포커스렌즈’는 ‘한국군 주도, 미군 지원’의 전쟁 수행을 전제로 바뀐 명칭들이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한국군이 아닌 미군 주도적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만의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펼쳐지는 작전의 명칭은 우리 국민들은 잘 이해하기 힘든 영어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후세 전쟁사가들은 한반도 전쟁은 미군이 승리로 이끈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면에서 부산 앞바다에서 하는 PSI 훈련의 명칭조차 우리식으로 붙이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옛 속담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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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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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리킴 2010.10.1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 그런데 이번에 PSI 훈련 15개국이 아니라 14개국이래요~ 원래는 15개국이였는데, 이딸리아~가 빠지기로 해서, 결국 14개국이 참여했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