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매우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동양인과 서양인 간 사고방식의 차이를 비교하고 그 이유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가령 원숭이와 판다·바나나가 있다.
이들 셋 가운데 둘을 묶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TV에서 한·미·일 3국의 동양인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엮었다. 동양인의 경우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 같은 조합을 선택했다.
그러나 서양인은 원숭이와 판다를 선택했다. 둘 다 ‘동물’이라는 개체의 속성에서 공통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TV에 등장하는 심리학자를 포함한 과학자들은 이 같은 차이가 개인적 성향에서 오는 게 아니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즉, 동양인은 사물을 볼 때 전체 속의 조화를 중시하고 서양인은 각 사물의 개별성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동료들 사이에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동료들은 잔뜩 골난 표정으로 있는데 가운데 서서 혼자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해 동양인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양인은 행복해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마디로 동양인은 주변 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분석했으나, 서양인은 웃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주변인들과 별개로 간주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실제로 서양인들과 만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미 관계를 취재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다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갈등과 오해를 많이 지켜봤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미선·효순양 사건’이 대표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고 촛불시위까지 벌어졌을 때 한·미 간의 심각한 이슈가 될 것으로 직감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미군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단지 국도에서 일어난 하나의 교통사고가 왜 국가적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수년 전 버지니아 총기난사 사건처럼 해외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범인이 한국계 이민자라는 이유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리고 대통령이 세 차례나 미국 정부에 위로 전문을 보내는 것을 정작 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동양인은 또 힘이 없더라도 무시를 당하면 기분 나빠한다. 그러나 서양인은 힘이 없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래서일까. 미군과 얘기하다 보면 한국인들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은연중 무시한다는 데 대해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국력 수준으로 보면 한국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군들은 또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용산 미군기지를 가보면 한국군과 미군이 한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부서가 있는 가 하면 한국군과 미군이 같은 소속이면서도 사무실을 따로 쓰는 부서가 있다.
당사자들은 조금 기분 나쁠 지 모르지만 미군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한국군들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군들은 비밀업무라든지 상대적으로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면 한국군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월터 샤프 등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에 대한 해석에서도 국내 언론은 그 배경에 대해 갖가지 해석을 내리곤 한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 측은 왜 단순한 사안들을 다른 사안과 묶어서 보도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얼마 전에는 샤프 사령관의 국방부 기자단 사이에 간담회 개최를 놓고 신경전 아닌 신경전이 벌어졌다. 샤프 사령관이 수차례나 간담회 일정을 잡은 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대해 기자들이 심히 유감스럽다는 의견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샤프 사령관은 공식 일정 등의 변화로 어쩔 수 없었는 데 한국 기자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단 한차례의 사과도 없이 일방적인 일정 통보는 한국 사회 통념상 받아 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역시 동양인은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는 반면 서양인은 사물을 분리·분석해서 본다는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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