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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코로나19’ 군 1개 사단 규모 마비…‘비전통적 안보위협’ 남일 아니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 소속 제독차들이 2일 대구 중구 대구시청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염병이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급부상했다. 코로나19는 군 1개 사단 규모 병력을 사실상 마비시키기도 했다. 국방부는 이날 “확진자가 28명으로 보건당국 기준 격리자는 860여명이지만, 군 자체 기준 예방적 격리자까지 포함하면 8270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일 대비 1510여명이 줄어든 수치로, 군 당국의 ‘봉쇄 조치’로 격리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비전통적 군사 위협이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보평론가인 한설 순천대 초빙교수(예비역 육군준장)는 대한민국의 제1 안보 위협은 북한에 의한 전통적 안보 위협이지만, 비전통적 안보 위협이 전통적 안보 위협 못지않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는 심각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급속한 전파는 대한민국이 비전통적 안보 위협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군 “예방적 격리자 포함 8270명”

안보전략연구원 ‘2020 정세 전망’

“동북아 내 미세먼지·감염병 문제 

역내 갈등 유발·중요 의제 될 것”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지난해 말 ‘2020 정세 전망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와 감염병 문제도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는 중요한 글로벌 이슈로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에서는 미세먼지와 감염병 문제가 역내 국가 간 갈등을 유발함과 동시에 협력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코로나19는 한국인들의 입국을 통제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국가 간 외교갈등 요소가 됐다.


전염병 확산은 ‘전시(war time)’와 다름없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미사일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서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2018년 메르스 중앙방역대책본부 백서’는 해외 유입 감염병이 국가안보의 위협 요소로 작용함을 시사하고 있다.


■ ‘준전시 상황’


국방부 장관 “전시에 준한 상황” 

야외·대규모 연합훈련 모두 중지

 해군은 함정·육상 접촉 엄격 제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오전 화상으로 긴급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현시점을 전시에 준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자원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군이 감염병 사태를 ‘전시에 준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대응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군 대비태세는 비상이 걸렸다. 대구지역 부대의 경우 지난달 27일부터 1주일 동안 한시적 비상근무체제로 전환됐다. 지휘관 등 필수인력은 영내 대기 근무를 하도록 했고, 필수인력이 아닌 간부 군인과 군무원은 희망할 경우 재택근무를 허용하도록 했다. 사상 초유의 간부 재택근무 지침이다. 필수인력을 제외하고는 휴가 중 대기 상태나 다름없게 됐다.


국방부는 지난달 24일부터 야외 훈련을 전부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각 부대에선 계획된 훈련을 실내 정신전력교육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지만, 자칫 장병들의 전투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격리 병사들이 경계 근무 등에 투입되지 못하면서 격리되지 않은 인원들이 그 몫을 떠맡게 됐다. 2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예비군 동원훈련 및 지역 예비군 훈련도 다음달 17일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주한미군에서는 지난달 28일 기준으로 미군 병사와 미군 가족, 한국인 근로자 등 3명의 확인자가 나왔다. 주한미군은 사실상 ‘기지 봉쇄’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구·경북지역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위험 단계를 ‘낮음(Low)’에서 ‘중간(Moderate)’으로 높인 데 이어 지난달 25일에는 한반도 전역의 위험 단계를 ‘높음(High)’으로 격상했다. 기지 출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사실상 ‘준폐쇄’ 상태다. 필수적인 임무 수행자가 아닐 경우 미팅, 집회, 임시 파견 등도 제한했다.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자원의 사령부 산하 한국행을 모두 제한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단독 및 연합훈련 역시 중지됐다. 오는 9일부터 실시할 예정이던 한·미 연합훈련도 연기했으나, 사실상 취소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군 당국은 1954년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이 감염병으로 일정에 영향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군에서는 감염병 위기경보가 발령되면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단계마다 국방부와 육·해·공 각 군 본부, 국군의무사령부, 국군의학연구소 등이 각각 주어진 임무와 역할에 따라 행동에 나서고 있다.


각 군에는 과거 북한 도발 등으로 대비태세가 격상됐을 때 못지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질병과 감염병이 새로운 안보 위협 요인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군인 한 명의 감염으로 전 부서 및 부대가 마비되지 않도록 근무 방식도 분할 편성 등으로 조정됐다. 육군의 경우 GP·GOP 등 최전방 현행 작전 부대와 각 부대의 지휘통제실 근무자 및 핵심·긴요전력 운용요원 등이 대상이다. 해군은 함정과 함정, 함정과 육상 간 공간을 분리했다. 이에 따라 정박 함정의 타 지역 이동을 제한하고, 함정 간 접촉은 물론 함정과 육상 인원의 접촉도 최소화하고 있다. 공군 역시 기지 내 비행대대별 근무자의 이동 동선과 시간을 분리하고, 항공기의 다른 기지 전개를 중지했다. 또 중앙방공통제소(MCRC) 근무자들은 교대시간과 근무 공간을 분리했다.


중동부 전선 육군 모 사단은 비군사적 위협에 대한 ‘전쟁 이외 군사작전(MOOTW)’ 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ㄱ사단장(소장)은 “정체불명 테러집단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유포한 상황으로 가정해 사고 전환을 하면 부대 대응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테러집단이 포섭한 민간인을 통해 외출 나온 장병들에게 감염병을 퍼뜨리고 있다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부대 장병들의 외출·외박·면회 통제 등을 시행하면서 유사시 차단, 식별, 분리 등의 대응작전으로 이어갈 수 있다”며 “이런 관점에서 모든 부대 활동을 작전명령화해 하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방역 ‘최전선’


포괄 안보 차원 주도적 역할 전환

“뒤늦은 민관군 통합대응” 지적


감염병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과 관련해 군대와 정부, 비정부기구(NGO)와 민간 당국과의 다자협력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2017년 열린 ‘태평양지역 육군참모총장회의와 태평양 육군 관리세미나(PACC&PAMS)’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테러, 사이버공격, 감염병, 난민, 자연재해, 국제범죄 등 초국가적·비군사적 위협의 확산으로 안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데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은 비군사적이지만 초국가적 위협으로 등장했다.


국방부는 2일부터 본격적으로 군 자원을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군의관과 간호사 증원 투입은 물론 행정 지원병력까지 늘리고 있다. 군 당국은 군단, 사단, 연대, 대대에 군 의료공백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의무인력을 차출하기로 했다. 군 당국은 의료진이 지치고 피로해지면 감염되기 쉽다는 점에서 대구 의료진의 노동강도를 줄이고 감염 위험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군대는 국민의 공권력으로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가가 요구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군 당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포괄 안보 개념으로 간주하고 군 내 유입 차단 수준을 벗어나 민간병원 진료공백 최소화와 함께 대민 지원, 의무인력 지원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사태에 민관군 통합대응이 조기에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간호장교, 의무병, 특전사 의무특기 장병, 화생방 병과까지 일찌감치 동원해 국가의 대응 능력을 조기에 보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은 초기에 감염자 접촉을 피하기 위해 부대 문을 걸어 잠그고 피해를 줄이는 데 우선 주력했다가 나중에 적극적 방역 참여로 방향을 틀었다.


군이 정부, NGO 유관기관과도 신속한 통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리와 교범, 계획을 지속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민군 협력을 위한 소프트 파워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이 코로나19 사태를 생물학 방어작전에 준용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