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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미군 사령관 ‘무단 출입’ 문제 삼은 유엔사…지나친 DMZ 관할권 집착

지난해 5월22일 시민들이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출입구를 군의 안내를 받으며 지나고 있다. 철원 구간은 15㎞이며, 차량과 도보로 이동하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현재 DMZ 출입 통제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남북 간 군사적 합의도 DMZ 관련 부분에서는 유엔사의 승인이 없으면 이행이 불가능하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엔군사령부(UNC)의 ‘군사분계선(MDL) 통과 허가권’과 ‘비무장지대(DMZ) 출입 허가권’ 문제 등 유엔사의 관할권이 여전히 한·미 군 당국 간 ‘뜨거운 감자’다. MDL 통과·DMZ 출입 허가권과 관련한 이슈가 잊혀질 만하면 다시 툭툭 불거지고 있어서다. 정부가 남북 협력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북한 개별관광도 제3국을 경유하지 않는 육로 관광일 경우 유엔사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유엔사는 지난달 29일 마치 ‘난수표’를 연상케 하는 입장 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인즉,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이행을 감독할 권한과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DMZ 출입에 관한 정책과 규정이 모든 인원에게 적용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DMZ 내 활동에 대해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에 상시 문의를 한다. 그 결과 문제가 발생했을 땐, 보통 낮은 수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 한 언론이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그동안 유엔사에 별도 사전통보 없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했던 한국군의 관행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 보도 내용의 진위를 묻는 질의에 대한 유엔사 답변이었다.


■ UNC 항의 미스터리


유엔사 입장 자료를 보면 도대체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인지, 안 했다는 것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에 대한 한국군 설명을 들어보면 더욱 헷갈린다. 통상적으로 유엔사는 DMZ 출입 이슈가 있을 경우 한국군 측에 관련 사항을 확인하는데, 이것이 일상업무 차원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5일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대장)은 케네스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과 함께 강원 철원군 3사단 감시초소(GP) 일대를 방문해 군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백골부대로 불리는 육군 3사단은 지작사 소속인 육군 5군단 예하 최전방 사단이다.


남 사령관 일행이 DMZ에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에 통보하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한국군에 출입규정 위반을 추후 통보했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군 당국은 부인했다. 남 사령관 일행의 DMZ 출입과 관련해 지작사는 미측으로부터 사실 확인만 있었을 뿐, 어떤 항의나 문제제기도 없었다고 3일 밝혔다. 지작사 상급 부대인 합동참모본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3사단을 관할하는 5군단도 유엔사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항의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DMZ 상비사단을 관할하는 군단 사령부는 유엔사로부터 MDL 통과·DMZ 출입 허가를 위임받아 DMZ 내 군사작전을 하고 있다. DMZ 출입과 관련해 유엔사의 소통 통로가 되는 군 당국이 모두 유엔사 측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은 김종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겸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육군 소장)에게 ‘12월5일 DMZ 무단 출입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6·25 후 정전협정에 권한 규정

합참의장·참모총장 예외 없이

48시간 전 통보·허락받게 해



이와 관련해 한국군 고위 관계자는 “최전방 군단의 작전을 지휘하는 지작사령관은 DMZ 상시 출입이 가능한 직위”라며 “유엔사가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의 DMZ 출입을 내부적으로 문제 삼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엔사 규정에 따르면 지작사령관의 동반자가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이라 하더라도 DMZ 내 GP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지작사 측이 DMZ에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에 통보하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사가 애매모호한 입장 자료를 낸 것도 규정 위반 대상이 미군 3성 장군인 미 7공군사령관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유엔사가 “문제가 발생했을 땐, 보통 낮은 수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미 7공군사령관의 출입까지 경위 조사를 지시한 것은 DMZ 관할권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현재 DMZ 출입 통제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한국군 대장이라도 유엔사에 48시간 전 통보해 승인을 받지 않고는 DMZ 출입이 불가능하다. 육·해·공군 3군 참모총장은 물론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평시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합참 작전본부장이나 작전부장 모두 마찬가지다.


■ UNC의 ‘딴지걸기’



정전협정 이행·감독 이유로

주요 남북교류 사업 수차례 딴지

지난해부터 JSA 관광도 금지

북한 개별관광·육로관광 추진도

미국 승인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


유엔사가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로서 정전협정을 이행·감독한다는 이유로 남북 교류와 도로·철도 연결 사업 등에 제동을 걸어왔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남북 군사적 합의도 DMZ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유엔사 승인이 없으면 이행이 불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남북 화해무드에서 유엔사가 남북 교류에 첫 제동을 건 사례가 발생한 것은 2002년 11월24일이었다. 남북은 DMZ 지뢰 제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단을 교환하기로 했으나, MDL 통과 승인권 고수를 고집한 유엔사 태도로 검증작업이 무산됐다. 당시 판문점 장성급 회담 유엔사 측 대표인 제임스 솔리건 주한미군 부참모장 겸 유엔사 부참모장(미 공군 소장)은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서 MDL 통과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도 유엔사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측이 유엔사의 승인을 계속 배제하려 든다면 금강산관광 등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18년 8월에는 유엔사가 남북 철도 연결을 승인하지 않아 정부 계획보다 석 달 넘게 지난 11월30일에야 가까스로 이뤄졌다. 2019년 6월에는 제9차 한·독 통일자문위원회에 참가한 독일 정부 대표단이 강원도 고성 GP를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안전상 이유’를 내세워 DMZ 출입 허가를 해주지 않아 불발됐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유엔군사령관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협조 요청까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9일에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DMZ 내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 했으나 유엔사가 동행 취재진의 방문을 불허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유엔사가 DMZ 출입을 불허하는 사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엔사는 지난해 10월부터 3일 현재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방문과 관광도 금지하고 있다. 방문 및 관광을 허가할 수 없는 이유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들고 있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 추진에 관해서도 개별관광객이 DMZ를 통과해 북으로 갈 경우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 승인이 필수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DMZ 육로를 통과하는 북한 개별관광 역시 미국 승인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17일에는 유엔사의 DMZ 출입·허가권과 관련한 ‘유엔사 비군사적 출입통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엔사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고스트 아미(ghost army)”(이해영 한신대 부총장)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민변 미군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종귀 변호사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조치는 정전협정 규율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 이행을 위해 출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엔사가 정전협정에 근거해 출입권을 발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현행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등 유엔사 문제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유엔 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유엔사 권한에 끝없는 의문 제기

정부 “제도 보완” 밝혔지만 답보



한국에서는 유엔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주한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게다가 유엔의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전협정에는 허가권이 군사적 성질에 속한 것으로 한정돼 있다”며 “환경 조사, 문화재 조사, 감시초소 방문 등 비군사적 성질에 대한 허가권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도적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와 유엔사의 DMZ 출입 허가권 문제 협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은 유엔사 재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