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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주한미군사령관, 미국 이익 대변하며 ‘반 정치인’ 영향력

ㆍ독특한 위상 배경에…한국 대통령에게 면담 요청도 가능

ㆍ전직 사령관들도 GSOMIA·방위비 분담 등에 발언 쏟아내

ㆍ친미단체·보수언론의 과도한 ‘띄워주기’가 영향력 더 키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21일 청와대에서 한·미 군 고위 관계자들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간담회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오른쪽)이 취임 후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청해 이뤄진 자리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 전·현직 주한미군사령관들의 목소리와 행동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개월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북핵 등에 대한 진단을 놓고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의 발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국내 보수단체들은 이들을 각종 토론회나 세미나 등에 앞다퉈 부르고 있다. 언론인 단체도 가세해 이들에게 한반도 안보 진단 기고를 요청했다. 미 정부가 운영하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의 인터뷰 보도를 내보내면서 미국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독특한 역할 및 위상, 한국에서 사실상 ‘반 정치인’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분석했다.


■ ‘모자 4개’ 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직책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군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 등 4개 직위를 겸직하고 있다. 모자를 4개 쓰고 있는 셈이다. 각 사령관 직위에 따라 역할이 제각각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주요 임무는 한반도 위기 시나 전시 상황이 닥칠 때 한미연합사령부를 지원하는 일이다. 미 정부가 지정한 인원에 대한 ‘비전투원 소개작전(NEO)’ 지원도 한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또 미군과 다국적군에 대한 전시증원(RSO)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부가 인도태평양사령부 및 미군의 각 기능별 전투사령부(COCOM), 미 합참, 미국 정부 등과 소통할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사령관이기도 하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지휘소와 구성군사령관들로 구성돼 있지만, 평시에 상설 전투부대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는 주한미군이 평시에는 한미연합사 소속이 아니라, 유사시에 통제 전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연합사는 평시 상설부대는 없지만, 연합위임권한(CODA·Combined Delegated Authority) 사항에 의해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CODA는 평시와 한반도 위기 시 초기에만 적용되고, 이후에는 한미연합사령관이 준비된 작전계획에 의거해 전구작전을 지휘하게 된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미군사위원회의 전략지시와 작전지침을 받아 전시에 한미연합군을 지휘하게 된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인도태평양사령관의 소전구 통합군사령관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사령관은 인도태평양사령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한미연합사는 인도태평양사를 통해 주한미군의 지원을 받도록 돼 있다.


현재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1978년 한·미 간 합의된 전략지시 1호에 따라 한국군 통수권자인 한국 대통령과 미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이 합의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지시를 내리면, 이를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게 돼 있다. 전략지시 1호에 의하면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4성 장군인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함으로써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명시돼 있다. 리언 라포트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과거 한국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계획에 대해 “나는 주한미군사령관이면서 유엔군사령관이기에 그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는 유엔군사령관으로서의 작전지휘권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UNC)사령관도 겸하고 있어 평시에는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전쟁 발발 시에는 전력 제공국 병력을 협의에 따라 미8군이나 한국군에 배속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또 주한미군 선임장교(SUSMOAK)로서 본인이 겸직하고 있는 한미연합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과의 업무를 조정하는 책임자다. 미 합참의장을 대리한 주한미군 선임장교 자격일 때는 한국군 카운터파트는 한국군 합참의장이다. 동시에 미 국방부 대표 권한을 부여받은 자격일 경우에는 한국 국방장관이 카운터파트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업무는 3개 사령관 직위가 엉켜 있는 만큼 미측은 주한미군사와 한미연합사, 유엔군사 등 3개 사령부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겸직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각 사령부 참모직을 겸직하게 함으로써 미측 사령부들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단순화시켜 지휘 및 통제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런 만큼 한국군으로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과 위상이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 등을 겸직했을 때와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왼쪽)이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의 백선엽 전 육군대장(가운데) 사무실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 전 대장의 100세 생일을 축하하면서 ‘영웅’이라고 치켜세워 광복회의 반발을 샀다. 연합뉴스


■ ‘앞다퉈 모시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군 주요 지휘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실 이 자리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취임 후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강력하게 요구해서 이뤄진 자리였다는 후문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주한미군사령관이라는 독특한 위상을 배경으로 할 수 있는 면담 요청이었다.


이런 주한미군사령관에게 광복회는 지난 5일 강력한 항의 공문을 전달했다. 백선엽 ‘전쟁영웅’ 찬양에 대해 사과 및 재발 방지, 면담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광복회는 공문에서 “최근 에이브럼스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장성들이 독립군 학살에 앞장섰던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100세 생일을 축하하며, 그를 ‘영웅’이라 치켜세운 점에 대해 우리 국민을 모욕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로 인식하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광복회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하켄크로이츠 깃발 아래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레지스탕스 대원을 학살한 나치 친위대원을 ‘영웅’이라고 찬양하는 행위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백선엽 장군을 예방하고 주한미군이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백선엽 장군은 진정한 전사이자 지도자이며 오늘날도 우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한 데 대한 항의였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은 취임 후 갖는 중요한 의전 중 하나가 백선엽 전 육군대장에게 부임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불편하게 보이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장면이라는 게 광복회 입장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나 주한미8군사령관, 주한미해군사령관, 주한미공군사령관들이 부임하면 의례적으로 언론에 소개되는 행사가 있다. 한국 이름 작명식이다. 박유종(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보우해(마이클 보일 주한미해군사령관), 우기수(케네스 윌스바흐 미7공군사령관) 등 전·현직 주한미군 고위 관계자 수십명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준 단체는 한미동맹친선협회다. 회장단이 육군 사단에서 명예사단장으로 위촉되고 지프를 타고 열병식까지 해 물의를 빚었던 바로 그 단체다. 외교부의 설립 허가를 받은 비영리법인인 이 단체가 홈페이지에 소개한 지난 3년간 활동 내역을 보면 주한미군 고위층 한글 이름 지어주기, 미군과 한국군 부대 방문, 미군 지휘관들의 이·취임식 참가, 한·미 군 관계자들과의 리셉션이 대부분이다.


주한미군을 가까이서 수십년 동안 지켜본 ㄱ씨는 주한미군 고위 간부들이 한·미동맹을 내세우는 미군 주변 단체들과의 접촉을 통해 한국민 정서를 일방적으로 읽는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친미단체 주장을 대다수 한국민 정서로 받아들여 잘못된 판단을 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 방위비 분담금 관련 세미나에서 분담금 인상이 결국 미국산 무기 구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의소리 방송은 10월24일 ‘유엔군사령부 해체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와의 조율도 필요하다’는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최근 한·미 간 각종 현안에 편승해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의 발언이 나오면 국내 언론은 워싱턴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붙여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구조다. 이들 중 몇몇은 미국 방위산업체의 로비스트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