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이 창설 70년 만에 명칭을 ‘군사경찰’로 바꾸는 등 변신을 모색하고 있지만 관련 법의 표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헌병’을 새긴 기존 헬멧을 전통 투구를 응용한 새 디자인으로 변경하는 등 복장과 장구류의 변화도 추진 중이지만 시행은 미뤄지고 있다. 왼쪽 사진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속 헌병의 모습. 오른쪽은 지난 4~7일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 지상군 페스티벌에 전시된 새 헌병 복장 시제품들로 전통 투구 디자인에 대한제국 시기 의복을 본뜬 행사복(오른쪽) 등이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헌병 창설 70년 만에 명칭을 군사경찰로 변경하겠다던 국방부 계획이 1년이 다 되도록 표류하고 있다. 법제처의 ‘입맛대로’ 입장 탓이다. 헌병을 군사경찰로 바꾸기 위해서는 관련 군인사법 시행령 일부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데 법제처는 상위법을 수정하는 게 먼저라며 국방부 안을 퇴짜놓은 후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법제처가 국군기무사령부 명칭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바꿀 때는 가만있다가 헌병 명칭 변경안에만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 표류하는 법안


국방부는 28일 “헌병 병과 명칭을 군사경찰로 바꾸기 위한 군인사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지난해 11월14일부터 12월24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쳤으나 다음 단계에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국방부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1월 이미 통과돼 헌병은 군사경찰로 활동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개정안 입법예고에도

법제처 “상위법 수정이 먼저”

1년여 동안 개정안 심사 중단


법제처는 지난 1월14일 해당 개정안을 접수한 이후 사실상 심사를 중단했다. 이는 헌병을 군사경찰로 변경하기 위한 군인사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이 대통령령인 만큼,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상위 법률인 ‘군사법원법’과 ‘군인사법’ 등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는 법제처 입장에서 비롯됐다.


군사법원법은 군사법경찰관인 헌병의 정의와 역할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상위법인) 법률에서 정한 ‘헌병’이란 명칭이 ‘군사경찰’로 고쳐져야 하위법인 시행령 심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게 법제처 의견”이라고 말했다.


법제처, 기무사 명칭 변경 땐

‘상위법’ 원칙 적용 안 해

일관성 없다 군 안팎 비판


그러나 법제처는 국군기무사령부가 폐지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출범할 당시에는 이 같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안보지원사로 해편(解編)된 기무사 역시 군사법원법에는 ‘기무부대’라고 돼 있다. 또 군사법경찰관의 자격을 규정한 군인사법 43조는 ‘법령에 따른 기무부대에 소속된 장교, 준사관 및 부사관과 보안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처럼 안보지원사로 바뀐 옛 기무사의 경우 상위법인 군사법원법에는 여전히 ‘기무부대’로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제처는 기관의 동일성이 인정돼 실무상 문제가 없다는 해석에 따라 군인사법 부칙을 통해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했다. 군 쇄신을 위해 법 해석을 유연하게 한 결과다.


법제처가 헌병에 대해 기무사와 다른 잣대를 들이밀게 된 데는 국회 관련 상임위의 질책이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법제처는 기무사 명칭 변경으로 ‘혼쭐’이 나자 나중에 명칭을 바꾸겠다고 나선 헌병에 대해서는 국회 입법을 요구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법제처장에게 기무사와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달라며 재고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국방부는 법률 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에 군사법원법과 군인사법 등의 개정을 요청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방부는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군사법원 업무보고를 통해 현재 ‘헌병’ 용어가 명시된 ‘군사법원법’과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등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법률 개정과 동시에 명칭 변경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조차 ‘조국 사태’로 올해 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과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 등이 발의한 군사법원법 개정 법률안은 ‘헌병’을 ‘군사경찰’로 고쳐놨지만 법안 심의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헌병 측은 당초 1월 시행령 개정 완료를 예상하고 이미 부대마크, 깃발, 간판, 현판, 차량 등을 제작했으나 현재는 ‘무용지물’인 상태다.


■ 정치 비밀경찰


헌병은 현재 군대 안에서 질서 유지와 군기 확립, 법률이나 명령 시행, 범죄 예방과 수사 활동, 교도소 운용, 교통 통제, 포로 관리, 군사시설과 정부 재산 보호 등 임무를 맡고 있다.


헌병 명칭은 일본 군국주의에서 비롯됐다. 일본 켄페이타이(憲兵隊·헌병대)는 정치 비밀경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국민을 감시하고 모략·암살까지 하는 조직으로 악명 높았다. 일본은 1896년 청일전쟁 후 대한제국에 헌병대를 처음 설치했다. 이후 대한제국 군대에도 1900년 헌병사령부가 설치됐다. 한국군 헌병은 이를 ‘헌병의 기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대한제국 헌병도 폐지됐으나, 1948년 12월15일 국방경비대 예하 군기병을 헌병으로 명칭을 바꾼 이후 현재에 이르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군은 헌병이 일제강점기 헌병대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에 따라 병과 명칭을 군경(軍警), 군경찰(軍警察), 경무(警務) 중 하나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다. 국방부가 전군 의견을 수렴한 결과 헌병 명칭에 대해 군사경찰(40%), 군경찰(30%), 군경(17%), 경무(5%), 현행처럼 헌병(3%), 기타(5%) 순으로 나타났다.


국방부는 ‘군사경찰’ 명칭은 민간경찰과 구분하면서 민간경찰의 파트너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영국·인도·호주·브라질이 군사경찰(Military Police), 이탈리아·프랑스는 기병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 ‘환골탈태’ 헌병


헬멧·부대마크 등 새로 제작

복장·장구 디자인 변경에도

무용지물 상태로 남겨져


헌병은 명칭뿐만 아니라 복장과 장구류 등의 디자인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 그 첫 작업으로 육군 헌병은 올해 말까지 헬멧을 전통 투구를 응용한 새 디자인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행 헬멧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앞면 중앙에 ‘헌병’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영화 &lt;공동경비구역 JSA&gt;에서 이수혁 병장(이병헌) 등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가 쓴 헬멧 이미지다.


육군 헌병의 새 헬멧은 앞면에 ‘헌병’이란 글자가 육군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바뀌게 된다. 헬멧 윗부분에는 작은 뿔 장식을 달았다. 옆면과 뒷면에도 뿔 장식으로 이어지는 금테를 둘렀다. 육군 관계자는 “조선시대의 ‘두석린 갑주(갑옷과 투구)’ 중 투구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겨레를 지키는 정통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육군 헌병은 짙은 녹색 계열의 행사복도 검은색 계열로 바꾸고, 하의 측면 봉제선엔 빨간 줄을 더 넣기로 했다. 대한제국 군인의 복제를 본뜬 것으로, 군의 뿌리를 대한제국군으로까지 넓히겠다는 군 당국 방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이 같은 디자인을 포함, 여러 안을 검토해 최종 확정한 뒤 12월부터 새 헬멧 등을 각급 부대 헌병대에 보급할 계획이다.


국방개혁 2.0과 연계한

헌병 병과 명칭 개정 지연에

‘헌병 작전·수사 조직 분리’

군 사법제도 개혁안

물 건너간 거 아니냐 비판도


그러나 정작 중요한 국방개혁 2.0과 연계한 헌병 병과 명칭 개정이 지연되면서 군 사법제도 개혁에 따라 헌병 작전과 수사 조직을 분리한다는 계획은 지지부진하다. 송영무 전 국방장관 시절 추진한 헌병개혁안이 사실상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 초기 수사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사 전문부대와 야전 헌병조직의 전문화를 추진했다. 송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헌병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수사조직을 떼어내 각 군 참모총장 직속의 수사조직으로 만드는 방안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 군 본부 헌병실 및 중앙수사단 등의 상부 조직과 일선 부대의 구조 개편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헌병의 기능 분리 방안은 육군헌병실과 중앙수사단 등 상부 조직과 야전부대의 구조를 개편해 수사 전문부대와 야전 헌병부대의 전문화 및 수사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병과 명칭 개정과 함께 헌병의 수사와 작전 기능을 분리하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한 군 수사기관 개선 작업은 여전히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군의 수사 및 경비·경호·군기 확립·교통까지 전담하는 헌병은 현재 육군 6000여명, 공군 7000여명, 해군 4000명 등 총 1만7000여명의 병력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안보지원사 병력 4300여명보다 4배가량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병은 장군이 준장 2명인 데 반해 안보지원사는 중장 1명, 소장 1명, 준장 4명 등 6명으로 3배 많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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