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에 ‘LGBT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 16일 육군 남성 부사관 ㄱ하사가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여군 복무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군내 성소수자 문제가 부상했다. 군 당국도 중장기적인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LGBT는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성소수자를 말한다.
육군은 22일 전역심사위원회를 열어 ㄱ하사의 복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ㄱ하사는 관할 법원에 신청한 성별정정허가 결정 이후 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일 군내 분위기를 종합하면 ㄱ하사가 군복무를 이어나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단 현행 육군 기준으로는 ㄱ하사가 생식기를 절제해 의무심사에서 심신장애 3급을 받은 만큼 계속 군복무가 어렵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차후에 관련 복무규정이 바뀌어 성전환이 ‘성주체성 장애’가 아닌 ‘성별 부조화’로 간주되고 심신장애로 판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지금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즉 군의 전역처분은 법령에 따른 적법 처리로 ‘성전환자 차별’이나 ‘성전환자 계속 복무’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ㄱ하사의 경우 의무복무를 겸한 남군 단기부사관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해준다 하더라도 본인이 군복무를 이어가겠다면 다시 여군 부사관 시험을 치러 입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ㄱ하사를 남군에서 여군으로 전환시켜 줄 경우 여군 부사관 정원(TO)에서 가져가는 것으로, 이 경우 다른 여군 지원자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군 당국 판단이다. ㄱ하사는 지난달 23일부터 국군병원에 입원해 비뇨기과와 산부인과, 정신과 등 관련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외국군은 어떻게
해외 20개국 성전환 복무 허용
미국은 2017년 오바마 정부 때
전환 수술·호르몬 치료비 지원
트럼프 집권하면서 입대 금지
전 세계적으로 성전환자에게 군복무를 허용하는 국가는 20개국이다.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벨기에·체코·덴마크·에스토니아·핀란드·프랑스·독일·아일랜드·네덜란드·노르웨이·스페인·스웨덴·영국 등 15개국이다. 나머지 5개국은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이스라엘, 태국이다. 태국의 경우 호르몬 치료나 가슴수술 등으로 외형상 부분적으로 여성으로 보이는 경우는 군복무 대상이나, 성기 수술까지 완료한 경우 군복무가 면제돼 부분적 허용 국가로 볼 수 있다.
미군의 ‘트랜스젠더 군복무 허용’은 오락가락이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허용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들어서는 군복무를 금지하고 있다.
미군은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때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을 시행하면서 성소수자가 군복무를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을 금지했다. 미군은 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정책을 폐지하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도 차별 없이 군 요직에 등용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6월 성전환자의 신병 입대 허가는 물론 트랜스젠더 군인의 성전환 비용을 국방부가 부담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7년 11월 미 국방부는 복무 중인 병사의 성전환 수술을 허용하는 한편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통해 수술·호르몬 치료비용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 금지 지침을 마련했다. 미군 내 트랜스젠더는 엄청난 의료 비용과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또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불쾌감을 느끼거나 성전환 수술을 할 의향이 있는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금지했다. 다만 이미 군에 복무하고 있는 공개적인 트랜스젠더에게는 예외를 적용했다.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 방침에 대해 하급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으나, 2019년 1월 연방대법원은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 금지 지침 허용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미군은 ‘트랜스젠더 복무 제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미군은 현재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이 필요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제한하고 있다. 또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장병은 자신의 타고난 성별에 맞는 복장과 외모를 갖춰야 계속 복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육군부나 공군부 등 장관급의 승인을 받으면 예외를 인정토록 했다. 미국 국립트랜스젠더평등센터(NCTE) 자료를 보면 미군 장병 130만명 가운데 트랜스젠더는 1만5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16일 ‘트랜스젠더 부사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동성애
군 당국은 20일 병영 내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동성애자 병사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병영 내 동성애자 병사는 평등하게 취급돼야 하며, 동성애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또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현역복무 부적합 처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지휘관들은 병영 내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사생활 관련 질문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동성애자 병사는 전역 시까지 대대장의 도움·배려 병사로 보호 및 지도하도록 하고 있다. 병영 내 동성애자에 대한 면담·상담 기록 등도 외부에 유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병영 내 동성애자가 몇명인지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게 군 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군내에서는 ‘아웃팅’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아웃팅’은 타인에 의해 동성애자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을 말한다. 군내 상담으로 알게 된 지휘관은 해당 병사 부모에게도 이를 알려서는 안된다.
동성애자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은 금지돼 있지 않다. 본인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혀도 이에 대한 처벌이나 강제 전역조치를 할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동성애자와는 차이가 있지만 이번에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군 복무를 희망한 ㄱ하사는 자신의 성소수자성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한국군 ‘1호 커밍아웃’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다만 동성애자 군인의 병영 내 성적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이성애자 장병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미군도 군 영내에서의 성행위는 동성 간이나 이성 간 모두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군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0년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의 남녀 군인이 부대 생활관 등에서 성관계를 한 사실이 적발돼 품위유지 위반으로 정직 또는 감봉 징계를 받았다.
‘군형법상 추행죄’ 논란 여전
‘자의적 해석’ 동성애자 처벌
“평등 원칙에 위배” 지적 불구
세 차례 합헌 결정으로 유지
그러나 군내 동성애 문제는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 때문에 여전히 논란이다. 이성 군인 간의 성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과 달리 군인 동성 간 성행위는 성범죄 추행죄로 처벌하도록 돼 있어 이 조항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이다.
군형법 추행죄는 1962년 제정 이후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조항은 “군인·군무원·사관생도 등에 대해 항문성교 및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행위의 정도·장소 등에 대해 법이 규정하는 바가 명확지 않아 자의적인 법 해석을 초래한다는 게 위헌 주장의 핵심이다. 강제성이 없어도 군형법 92조의6을 적용해 동성애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군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법률이라는 것이다. 군내 동성애를 ‘추행’ 범주에 넣어 성범죄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2011년, 201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리 때도 나온 바 있다.
군 당국, 군대 성소수자 문제
중장기적 종합 대책 마련 필요
군형법상 추행죄는 제정 이후 세 차례나 헌재에 위헌심판이 제청됐지만, 최종적으로는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군 전투력 보존을 위해서는 동성이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에 이 같은 형법 조항이 있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군 당국도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 기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미군의 경우 군사법에서 동성과 성관계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1993년 폐지했다. 2012년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와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는 “군형법 92조의6을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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