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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북 목선 귀순’ 발표 전, 군 수뇌부는 왜 사흘간이나 대책 회의했나

은폐 의혹 등을 빚은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에 대한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가 상당부분 마무리돼 곧 결과가 발표된다. 사진은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목선을 해경정이 지난달 15일 예인해 가는 장면이다. 독자 제공


북한 소형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을 조사해온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이번주 중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군의 ‘허위보고·은폐 의혹’과 ‘경계근무 태세 문제’ 두 가지다. 이를 놓고 국방부 감사관실을 주축으로 작전·정보 분야 군 전문가,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 등 30여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1일 현재 큰 틀의 사건 조사를 마무리하고 추가 사항을 확인 중이다. 국방부는 조사 결과 발표 날짜와 장소 등을 내부적으로 조율 중이다.


야권 등에서 지적한 청와대가 관여한 정황 의혹에 대해서는 청와대 차원에서 설명할지, 아니면 아예 ‘무시 전략’으로 나올지 주목된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육군 대령)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청와대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방부 합동조사단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 권한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합동조사단은 지난달 20일부터 합동참모본부, 해군 1함대와 육군 23사단 등에 대한 현장 방문과 관계자 면담, 북한 목선의 항적 분석 등을 통해 경계근무 태세와 보고체계 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왔다.


‘인근’은 군 용어인가


삼척항 ‘방파제 입항’을

‘인근서 발견’으로 발표

축소·은폐 의혹의 발단

청 “군 용어일 뿐” 거들어


군이 북한 목선 귀순 사건을 언론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은폐 또는 허위·축소 행위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것은 이번 합동조사의 핵심이다. 군의 허위보고·은폐 의혹은 합동참모본부가 지난달 17일 백브리핑에서 북한 목선이 실제 발견된 장소인 ‘삼척항 방파제’를 ‘삼척항 인근’으로 바꿔 발표하면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는 군 당국이 경계 실패에 대한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북한 목선이 인근 바다에서 표류하다 발견된 것처럼 꾸민 것 아니냐는 게 논란으로 확산됐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국방부의 지난달 17일 발표에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에 “(인근은) 군에서 대북 보안상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라며 “해경 공지문에서 발표한 목선 발견 지점(삼척항)을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 이미 공개된 장소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드린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은 지난달 20일 브리핑에서도 “(국방부 발표 중) ‘인근’이라는 표현은 군에서 많이 쓰는 용어”라고 재차 언급했다.


고 대변인의 설명은 ‘팩트’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합참은 탄도미사일 발사 장소와 같은 북한 정보 사안을 브리핑할 때 정확한 좌표를 밝힐 경우 군의 대북 정보능력이 드러난다는 이유로 ‘인근’이나 ‘일대’ 표현을 써왔다. 지난 5월4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오늘 09시06분경부터 09시27분경까지 원산 북방 호도반도 일대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발사하였음’이라고 발표한 것이 최근 사례 중 하나다.


그러나 대북 정보사안도 아니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우선인 공보사항에 대해 ‘인근’이란 표현을 쓴 것은 사실을 은폐하려고 의도적으로 사용한 정황이 짙다. 군 당국은 사건 당일 이미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입항하는 모습을 여러 주민이 목격한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눈 가리고 아웅’식 브리핑이 통할 것으로 봤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군 안팎에서는 합동조사단이 허위보고·은폐 의혹의 발단이 된 브리핑에 대해 용어 사용이 부적절했던 측면은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식으로 정리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설명이 신중하지 못했지만, 징계를 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식의 결론이 나면서 책임 소재가 흐려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은폐 책임자는 누구


국방장관 주재 연석회의서

언론 가이드라인 만들어

군 합조단 ‘셀프조사’ 한계

부실 조사 가능성 우려 나와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목선이 내려온 지난달 15일부터 16일, 17일 등 사흘에 걸쳐 매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 등이 주재한 관계자 회의가 열렸다. 1.8t 규모의 목선이 함북 경성에서 삼척항까지 군경의 경계를 뚫고 700~800㎞를 이동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허위보고·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지난달 17일 브리핑을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는 정 장관과 박 합참의장, 국방부 정책실장과 대변인,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과 공보실장 등 6명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는 합참 작전 담당 조직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에서 삼척항 방파제란 구체적인 위치를 빼고 ‘인근’이란 단어를 집어넣은 PG(언론 가이드라인)가 만들어졌다. 내부 문건 원본은 북 어선이 15일 오전 6시50분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적시하면서 관련 요도에는 ‘삼척항 방파제 인근’으로도 기술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목선이 엔진으로 움직여 삼척항에 입항한 사실을 숨기고 표류한 것처럼 브리핑하기로 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목선은 지난 15일 야간에 삼척항 인근 먼바다에서 엔진을 끄고 한참을 대기했다.


실제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삼척항 입항’이 명시된 보고서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브리핑 준비 과정에서 ‘삼척항 인근’으로 용어가 바뀌었다. 전비태세검열실장인 조모 해병 소장은 “(삼척항에 들어와 있는 북한 목선을 주민이 신고한 것을 지난달 17일 브리핑에서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PG에 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 즉 국방부의 언론대응 지침에 따랐다는 것이다.


문제는 PG를 누가 작성했느냐는 점이다. 국방부 대변인을 지낸 ㄱ씨는 “언론대응이 필요한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주로 장관과 정책실장, 관련 부서 국·실장, 대변인이 머리를 맞대고 브리핑에 필요한 PG를 만든다”며 “장관이 작성된 PG를 최종 승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관행대로라면 국방장관도 PG 작성에 일정 부분 이상 관여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이순택 국방부 감사관을 단장으로 하는 합동조사단이 정 장관과 박 합참의장을 조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도 “국방부 장관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합동조사단이 과연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까지 조사할 수 있겠느냐”며 “합조단의 결과가 나오나 마나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부실 조사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났다. 국방부 차원의 ‘셀프조사’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국방부 백브리핑에 두 차례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 관계당국의 허위보고·은폐 의혹 논란을 키웠던 김모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에 대한 합동조사단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도 논란거리다. 해군 대령 진급 예정자인 김 행정관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야당에서 주장하는 청와대의 개입 여부가 정확히 가려질 수 있어서다.


경계 실패인가


군 ‘경계 실패’ 인정했지만

“작전 문제없었다” 주장도

해경과 ‘통합방위’에 허점

NLL 경계 근본대책 필요


국방부는 합동조사단이 공식 조사를 착수하기도 전에 경계 실패가 명확하다고 정의하고, 정 장관은 지난달 20일 대국민 사과를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 검열실장은 지난달 17일 최초 브리핑에서 “경계작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19일 브리핑에서 “합조(합동심문조의 조사) 결과 대입하면서 조사 과정에서 일부 과오가, 미비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으로 작전이 됐지만 탐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에서는 레이더에 포착된 표적을 판독하고 식별하는 작업과 경계근무 과정에서 일부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 감시레이더 한 대에 북한 목선이 남긴 물결 흔적이 찍혀 있는 것이 사후 조사 과정에서 파악됐지만, 해당 경계요원의 책임구역 밖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책임지역에서 대북상황이 발생하면 해군과 해경을 지휘하는 통합방위작전 책임을 지는 육군 23사단이 해경으로부터 관련 사항을 직접 통보받지 못한 것은 통합방위 허점으로 지적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경계 전력을 강화한다 해도 ‘북·중 합영조업구역’ 확대로 조업 경쟁에서 밀린 북한 어선들이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면서 해상 경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중국 어선들이 조업할 수 있도록 수천만달러를 받고 꽃게철인 4~6월에는 서해 조업권을, 오징어철인 6~12월에는 동해 조업권을 판매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