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미, 한반도 유사시 전력 제공하는 유엔사 ‘전력제공국’의 개념 놓고 이견
ㆍ미국은 ‘6·25 참전국’이 아닌 국가들에도 문호 개방해 몸집 키우기 움직임
ㆍ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이후에도 ‘중국 견제’를 위한 큰 그림의 일환으로 분석
유엔군사령부가 최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변수’로 등장했다. 주한미군이 최근 발간한 ‘2019 전략 다이제스트’의 잘못된 번역과 미국이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독일군 장교를 유엔사에 파견해 달라고 요청한 일련의 사건들이 빚은 결과다.
유엔사의 미래는 한·미 간에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이지만, 양측은 애써 구체적 언급을 피해 왔다. 유엔사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입장 조율이 어긋날 경우 동맹의 또 다른 주요 갈등 요인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미국 양국이 한반도 유사시에 전력을 제공하는 유엔군사령부 전력제공국의 개념을 놓고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유엔사 영역 확대 의지를 표명하면서 한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계병이 유엔사 정전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 유엔사는 ‘휴화산’
한·미 양국은 한반도 유사시 전력을 제공하는 유엔군사령부 전력제공국의 개념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이전까지만 해도 한·미가 규정한 유엔사 전력제공국 개념은 ‘6·25전쟁 당시 전투 병력을 파병한 국가 중 한반도 전쟁 재발 시 워싱턴 선언(1953년 7월27일)을 통해 재참전 의사를 표명한 나라’로 똑같았다.
그러나 미 합참이 지난해 6월 ‘유엔사 관련 약정 및 전략지침’을 개정하면서 한·미 간 유엔사 전력제공국의 정의가 달라졌다. 미국이 유엔사 전력제공국을 ‘유엔안보리 결의에 근거해 유엔사에 군사적·비군사적 기여를 하였거나 할 국가’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엔사 전력제공국 개념을 확대시킨 후 6·25 의료지원국인 덴마크와 노르웨이, 이탈리아에 가입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현재 미측이 주장하는 유엔사 전력제공국은 이들 3개국과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투 파병 14개국 등 총 17개국이다.
미국은 앞으로 6·25 참전국이 아니더라도 유엔 가입국가라면 유엔사 전력제공국에 추가로 가입하는 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유엔사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유엔사 회원국가도 이들 17개국으로, 유엔사에 연락장교를 파견하고 있다. 유엔사 연락장교단은 대부분 대사관 무관이나 외교관들이 겸직하면서 군정위 순환대표, 정전협정 조사관 등 유엔사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은 유엔사 연락단을 운용하고 있을 뿐 회원국은 아니다.
미국은 최근 주한 독일무관을 유엔사에 파견하는 방안을 독일과 협의했다. 정부는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된 미국과 독일의 협의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독일이 파견 의사를 철회했다. 그러나 독일이 동의했을 경우 우리 정부 입장이 받아들여졌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일단 6·25전쟁 참전국을 대상으로 유엔사 전력제공국을 확대한 후 6·25 비참전국으로까지 문호를 개방해 늘려 나가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미측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유엔사 전력제공국 가입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다만 유엔사는 지난 11일 “일본을 전력제공국으로 제안하지도 않았고, 일본이 요청하지도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일본은 (한국 정부 기준으로) 6·25전쟁 참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제공국으로 활동할 수 없다”며 “유엔사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우리의 요청으로 우리의 자위권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단체 “유엔사 해체하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엔사 전력제공국 확대와 관련, ‘미국 규탄 및 유엔사 해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해체 VS 강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합의문을 보면, 남북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계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진보진영 단체들은 평화협정이 미래에 체결되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되므로 정전체제 유지·관리를 담당해 온 유엔사는 당연히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유엔사 해체는 유엔사가 창설될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되거나 미국 정부가 해체 결정을 내려야만 가능하다는 게 국제법적 시각이다. 게다가 미국은 2014년부터 본격화한 ‘재활성화(revitalization)’ 프로그램의 강화를 통해 유엔사를 다국적 군사기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유엔사 부사령관으로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을 임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유엔사 부사령관을 미군이 아닌 장성에게 맡긴 것은 처음이었다. 후임으로도 스튜어트 마이어 호주 해군 소장이 임명됐다. 유엔사 참모장으로 취임한 마크 질레트 미 육군 소장이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을 겸직하지 않은 사례도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유엔사 재활성화 전략은 크게 세 방향이다. 첫째는 미군이 겸직하고 있는 유엔사 주요 보직을 줄이는 것이다. 두번째는 유엔사 주요 보직에서 미군을 줄이는 대신 영국, 캐나다 등 한·미를 제외한 다른 16개국의 인원을 증원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비무장지대(DMZ) 사건에 대한 대응을 이전에는 거의 한국군에 맡겼으나 앞으로는 유엔군 스스로 독자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든다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라도 평화협정 내용에 평화협정 준수 감독 및 분쟁 발생 시 사실 조사 등을 유엔사의 새로운 기능 또는 역할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이브 아이(Five Eye)’로 불리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유엔군 재활성화’의 핵심이다. 지난 5년간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유엔사 참여국들의 키리졸브 등 한·미 연합훈련 참가가 늘었다.
미국의 구상은 유엔사의 현 상태를 유지하되 유엔사 참모 기능을 대폭 강화해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를 한반도 작전 주역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미측은 지난해 10월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펜타곤에서 열린 제50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 합참·유엔사·연합사 관계 관련 약정(TOR-R)을 맺었다. 2급 비밀로 분류된 이 약정은 그동안 모호했던 유엔사와 연합사 간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당시 작전통제권을 이양(handover)한 게 아니라 위임(reference)을 했다. 이는 유엔사 작전지휘권이 소멸되지 않았으며, 유엔사 작전통제 아래 주한미군과 한국군뿐만 아니라 주일미군까지 한반도 유사시 동원이 가능하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유엔사는 “유엔사를 작전 기능을 가진 사령부로 만들 계획은 없다”면서 “한국군 4성 장군이 전작권을 가진 연합사령부로 안정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우려하는 유엔사의 전투사령부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한국군의 현실적인 작전 주도 능력이 없으면 유엔사로 작전권이 넘어갈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군사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실제로 미래연합군 사령관인 한국군 대장이 항모나 핵잠수함, 전략폭격기와 같은 미 전략자산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한·미 장성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형편이다.
미국이 유엔사 체제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이후에도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동북아 평화관리 기구’로 변환해 존속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동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임호영 전 연합사 부사령관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원하는 유엔사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롤랜드 윌슨 조지 메이슨대 교수는 지난달 한반도 안보환경 평가 세미나에서 “미래에는 유엔사 역할이 북한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며 “동북아 지역에서 나토를 벤치마킹한 동맹 모델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사 앞날에 대한 진단이 제각각인 가운데 미국은 이미 유엔사 강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엔사는 50년 전에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거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 전쟁 때처럼 유엔안보리 결의를 끌어내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사 강화는 비핵화와 상응조치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반발을 불러 협상 과정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할 소지가 많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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