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상공 비행을 마치고 착륙한 F-4E.
F-35 스텔스 전투기는 JSF(Joint Strike Fighter)로 불린다. 공군과 해군, 해병대가 함께 통합해 사용한다는 의미다. JSF에 앞서 미국 해군과 해병대, 공군이 함께 주력기로 처음 사용했던 전투기는 F-4 팬텀이다. 팬텀은 애초 미 해군용으로 개발됐으나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미 국방장관 지시로 공군과 해병대도 임무 특성에 맞게 개량한 기종을 운영했다.
F-35와 F-4의 또 하나 공통점은 대량 생산이다. 미군이 도입하려는 F-35 대수는 2243대다. 여기에 개발에 동참한 영국을 비롯한 8개국 소요와 수출까지 포함하면 F-35 생산 대수는 3000대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팬텀은 1961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1981년까지 5195대가 생산됐다.
■ F-35에 둥지 내준 F-4E
공군의 청주 제17전투비행단은 ‘F-4E 팬텀의 고향’이다. 1977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F-4E 팬텀 95대가 지난해 1월까지 청주 비행단에 둥지를 틀었던 까닭이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사건 이후 당시 전두환 군부는 북한에 응징보복하겠다며 청주 기지에 F-4E 전투기로 구성된 ‘살수 대기’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원조 ‘참수 부대’인 셈이다. 이는 그만큼 군 수뇌부가 F-4E 팬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방증이다.
F-4E 팬텀은 청주 기지의 ‘터줏대감’ 자리를 F-35A에 넘겨줬다. 마지막까지 청주 비행단에 배치됐던 F-4E 팬텀 대대는 지난해 1월 수원 제10전투비행단으로 옮겨 갔다. 전력화가 시작된 F-35 스텔스기 부대에 둥지를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공군의 첫 스텔스기인 F-35A 2대는 지난 3월29일 청주 기지에 도착했다. 올해 말까지 10여대가 배치되고 2021년이면 청주 기지에 F-35A 40대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한국 공군에 처음으로 인도된 F-35A.
북한은 우리 공군이 F-35A 전투기 2대를 처음 배치하자, 지난 4월 ‘동족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 공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F-35A의 스텔스 성능이 위협적이라는 의미다.
공군은 전통적으로 한반도 공역의 중심인 청주 기지에 최정예 비행부대를 배치해 왔다. 청주 기지에서 평양까지는 약 300㎞, 신의주까지는 약 500㎞다. F-35A는 북한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북한 전역의 지휘소, 레이더 기지, 비행장 등을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F-35는 여러모로 F-4의 데자뷔 느낌을 준다. F-35와 F-4 모두 한국 공군의 전력 패러다임을 바꾼 ‘게임 체인저’다. F-35가 지금 공군 전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면, F-4는 1970년대 공군 전력을 수직 상승시킨 주역이었다.
한반도 하늘, 판도 바꾸다
1960~70년대 최강의 팬텀
베트남 파병 대가 무상임대
F-4D 18대 아시아 유일 운용
공군 전력 수직 상승의 주역
국민성금 구매 5대로 시작
개량 F-4E ‘참수 부대’ 원조
1994년 전력화한 KF-16과
공군 주력기로 종횡무진
F-4 팬텀 역시 ‘1960년대 말~1970년대’에는 세계 최강 전투기였다. 동시대 전투기 중 비행성능 및 공대공, 공대지 등 모든 능력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지금으로 치면 최강의 전투기로 불리는 F-22나 F-35에 해당하는 위상이었다. 대한민국 공군이 1969년 F-4 팬텀을 도입하면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팬텀을 운용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공군이 팬텀을 들여오기 전만 해도 북한 공군력은 한국 공군에 비해 수적으로 2배 이상인 데다, 성능 면에서도 우수한 미그 계열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깊게 분산 배치된 작전기지들의 주요 장비 및 시설물들은 엄체화 또는 지하화돼 있었다. 당시 북한 공군은 5분 내지 15분 이내에 항공기 150여대를 전 기지에서 비상 출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군은 북한의 이 같은 기습공격 능력과 주변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966년 ‘공군력 증강 5개년 계획서’를 통해 1968년부터 F-4D 팬텀을 도입할 것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 무렵은 1968년 1월21일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과 1월23일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 등이 발생한 때였다.
삼척, 울진 무장공비 사건 등도 연이어 일어나면서 한국 정부는 당시 베트남에 파병한 국군의 철군을 고려했다. 미국은 자국 다음 규모의 대병력을 파병한 국군이 철군하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뻔해 한국을 달래려 팬텀 공급을 약속했다.
당시 국군이 보유 중인 F-5A를 베트남에 보내는 대신 F-4D 18대를 임차해 준 것이다. 임차 조건은 가격 무료, 기간 무기한이었다.
베트남전이 끝나자 미군은 무상임대했던 F-4D 18대의 반납을 요구했다. 이에 공군 전력의 감소를 우려한 정부는 국민성금 163억원을 모아 1975년 이 중 5대를 구매했다. 이 5대가 ‘방위성금헌납기’로, 공군은 헌납 전투기 편대를 ‘필승편대’로 명명했다.
이후 공군은 F-4D를 추가 도입했고, 대구 제2전투비행단에서 F-4D 74대를 운용하면서 팬텀은 공군 주력기로 자리매김했다.
‘1980~1990년대’에도 팬텀은 7.25t에 달하는 강력한 무장 능력과 고성능 레이더 및 항법장치 등을 갖춘 다목적·전천후 항공기로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다. 공군이 1994년 KF-16을 전력화하기 이전까지는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하는 전투기로 공대공 및 공대지 임무를 수행했다. KF-16 도입 이후에도 F-4 팬텀은 (F-16 계열 항공기와 함께) 한국 공군의 핵심전력이었다.
F-4E 팬텀기가 지난 4월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위 사진). 아래는 공군의 주력기로 활약한 ‘방위성금헌납기’ F-4D 필승편대의 비행 모습. 공군 제공
■ ‘불멸의 도깨비’
국내에서 F-4 팬텀의 별명은 ‘불멸의 도깨비’다. 수평꼬리날개 사이로 두 개의 엔진이 내뿜는 붉은 화염은 도깨비 얼굴을 연상시킨다. 팬텀의 전투력이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막강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다.
팬텀은 1958년 첫 비행을 한 후 1961년부터 실전 배치됐다. 팬텀은 공중전 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폭격 및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CAS)도 가능하다. 미군이 운용했던 팬텀은 핵폭탄까지 투하할 수 있었다.
한국 공군이 도입한 팬텀은 F-4D와 이를 업그레이드한 F-4E, 정찰기 버전인 RF-4C 등 세 종류다. 공군은 1969~1989년에 도입한 F-4D를 2010년 6월 퇴역할 때까지 100대 이상 운용했다. F-4D 생산 당시 설계수명은 4000시간이었다. 미 공군은 1974년부터 1983년까지 항공기 동체와 날개 등 18개 부위를 보강하는 항공기 기골보전 프로그램을 통해 수명을 8000시간으로 연장했다. 한국 공군도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이를 동일하게 적용해 수명을 연장했다. 이후 한국 공군은 정비사들의 노력으로 다시 F-4D 경제수명을 9600시간으로 추가 적용했다.
팬텀은 여전히 살아 있다
‘단일기종 41년’ 기록 F-4D
마지막 대대 2010년 해체돼
현충원 등 7곳에 ‘위용’ 전시
‘불멸의 도깨비’ F-4E 대대
지난해 수원기지에 새 둥지
최후 20여대 2024년에 퇴역
청주기지 넘겨받은 F-35A
2021년 40대 ‘게임 체인저’로
마지막까지 F-4D를 운용한 151 비행대대는 단일 기종 41년 운용, 24년 7개월 무사고라는 기록을 세우고 2010년 6월 해체됐다. 더 이상 날지 않게 된 F-4D는 대전 현충원과 가평군청 등 지상 전시대 7곳에 전시되고 있다.
공군은 F-4를 개조한 RF-4C 정찰기 18대를 1989~1990년에 도입했다.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RF-4C 생산을 1966년 11월 시작한 이후 1973년 종료했다. 한국 공군은 미 공군이 운용하던 RF-4C 정찰기를 1990년 9월 15억4000만원을 주고 처음 구매한 이후 군사분계선(MDL) 남쪽 상공에 띄워 북한군에 관한 정보 수집에 적극 활용해 왔다. RF-4C는 2014년 6월 한국 공군에서도 사라졌다.
공군은 아직까지도 수원 기지에서 F-4E 1개 대대 20여대를 운용 중이다. 지금도 근접항공지원 등 한반도 전구에서의 작전적 유용성은 지속되고 있다. 공군은 마지막 팬텀 20여대를 2024년 퇴역시킬 예정이다. 2024년은 F-4E 팬텀의 설계수명인 생산 후 45년이 되는 해다.
팬텀 개발국이자 최대 사용국이던 미국에서는 2016년 12월 표적기로 활용하던 F-4 팬텀을 공식 퇴역시켰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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