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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군 스스로 관성을 깨기 어렵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 이후 국민들이 체감하는 남북 군사적 긴장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군사력은 한반도를 에워싸면서 한국 해군과 공군의 작전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우리 군의 전력을 ‘가두리 양식장’ 속 물고기처럼 일본과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촉발한 ‘초계기 위협’과 중국의 반복되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무단진입과 ‘서해의 내해화(內海化)’ 움직임이 그 방증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지난해 말부터 1월까지 수차례 한국 해군 함정을 위협하는 저공비행을 한 배경에는 한국 해군으로 하여금 카디즈 바깥 해역으로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 있다. 군사적으로 분쟁지역을 확대해 자위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표면적인 정치·군사적 목적 외에, 토끼몰이 하듯 한국 해군을 카디즈 안쪽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실질적인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건의 발단은 일본 초계기가 카디즈 바깥쪽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 구조작전을 실시하던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STIR-180)로부터 조사(겨냥해 비춤)를 받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일본 자위대는 사태를 봉합하기보다는 한국 해군의 율곡이이함과 노적봉함에까지 저공 위협비행을 실시했다. 그 이면에는 한국 해군이 굳이 카디즈를 벗어나 작전을 하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다고 해군 장교들은 지적한다.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진입은 한 수 더 뜬다. 전자전 정찰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 군용기는 아예 카디즈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불과 2년 사이에 카디즈를 무단진입한 횟수는 2.8배나 늘어났다. 무단진입 범위는 더 깊어지고 있다.

 

중국 정찰기는 카디즈나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자디즈)에 무단진입할 때 중국 군함과 함께 움직이는 입체작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카디즈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에 진입하는 외국 항공기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군사 패권주의’나 다름없다.

 

한·중·일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공역인 제주와 이어도 공역에서도 중국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그들의 앞마당인 양 지나다니고 있다. 중국 해군 함정도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이어도 해역에 대한 실질적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군당국의 분석이다. 

 

중국은 서해와 이어도 근해에 ‘중국해양관측부표’나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표시한 부표 8개를 설치했다. 이 부표들 가운데 4개는 한국 해군의 공해상 작전구역에 설치했다. 중국이 한·미·일 잠수함과 함정에 대한 감시·경계 목적으로 부표를 설치했을 것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해군은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 문제를 영토분쟁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해를 내해화하기 위한 중국의 기도는 124도 E선을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틈만 나면 이곳 해역에서 매년 대규모 해군 연습을 정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해군에 124도 E선을 넘지 말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124도 E선이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어지면 서해 대부분은 중국 바다가 된다.

동해는 각국이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치열한 각축장이다. 공중에서는 미국의 RC-135 정찰기·MC-12W 정찰기·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이 날아다닌다. 일본은 EP-3, YS-11 전자정보 수집기를, 중국은 Y-8·Y-9 정찰기를, 러시아는 IL-20·Tu-214R 신호정보 수집기를 운용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일본의 정보수집함은 물론 중국의 동디다오급(815식) 정보수집함과 러시아의 발잠급 정보수집함 등이 활동하고 있다. 동해를 자신들의 작전 영역으로 여기는 주변국들은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한국 해군 자체 훈련도 감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정보수집함이 몰려드는 바람에 해군이 훈련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연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한 한국군의 전력은 언감생심이다. 금강 정찰기는 대북 정보 전용이다. 정보수집함은 속도가 느려서 기동훈련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한국군이 대북 정보 외에 주변국 군사동향을 탐색하고 정보를 얻으려는 시도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미군이 관련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어도 해역에는 중국과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해상 레이더조차 없다. 그나마 공중급유기를 들여와 장시간·장거리 작전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이 위안거리다.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이나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무단진입은 단순한 일회성 무력시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이 구체적 대응전략을 세웠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대북 상황에만 몰입하던 관성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 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그동안 인재를 키우지 않은 탓이다.

 

주변국의 위협은 지금까지의 우리 안보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안보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군사 전략이나 정책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우리 군은 한반도 주변의 바다와 하늘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일깨워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주변국의 살라미식 도발이라 하더라도 안보 상황은 한번 밀리면 계속해서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군의 대응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주변국 위협에 대응해 카디즈 전 공역에서의 정례 훈련이 가능한지도 보고받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가 의지가 반영된 ‘톱다운’ 방식의 전략지침이라도 군에 내려야 한다. 군 스스로 관성을 깨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