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군 코멘터리

일본 ‘피해자 코스프레’에 말려들지 말고 국방장관 직접 나서라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판결 이후 날 선 대립을 이어오던 한·일관계가 지난달 20일 발생한 일본 자위대 P-1 초계기의 ‘위협비행’으로 격랑 속으로 더 빠져들고 있다.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일본 정부의 ‘피해자 코스프레’가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방위상과 관방장관, 총리까지 나서 적반하장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방부가 일본이 도발한 ‘프레임 전쟁’에 말려들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13일 만인 지난 2일에야 일본 측에 사과를 처음으로 요구하는 등 수세적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그동안에는 마치 한국이 “우린 잘못한 것 없는데 일본 측이 오해하고 있다”는 식의 변명하는 듯한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줬다. 국방부가 일본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실 사안은 간단하다. 엄밀히 말해 한국 해군 입장에서 보면 ‘레이더 논란’이 아니라 일본 자위대 P-1 초계기의 ‘위협비행 사건’이 본질이다. 군국주의 시절 ‘가미카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모하게 비행한 일본 P-1 초계기가 문제였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다.

일본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일본 초계기가 공격적인 레이더 전파를 맞았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일본 초계기는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위협을 느꼈다면 조종사는 무조건 ‘풀파워(전속력 회피)’를 외치며 자리를 피했어야 한다.

 

일본 초계기는 또 대공미사일을 갖춘 군함을 경계하기는커녕 무모하게 접근했다. 일본 P-1 초계기는 대잠탄과 어뢰뿐만 아니라 대함 유도탄, 공대지 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다. 구축함 입장에서는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통상 예측불가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군함에는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게 국제 관례다. 그런 만큼 한국 해군 초계기는 외국 군함을 발견하면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멀찍이 떨어진 데서 사전 교신을 한다. 1~1.5㎞ 이내에는 접근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신을 시도한다. 그런 후 인가를 받고 들어가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게다가 일본 자위대는 ‘사고 전과자’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1990년대 림팩 훈련에서 표적 예인기 역할을 하던 미 해군의 A-6E기 한 대를 ‘오발’로 떨어뜨렸다. 일본은 호위함 근접방어무기(CIWS)가 오작동했다고 변명했으나 조준 자체가 A-6E기를 향했던 것으로 분석 결과 밝혀졌다. 미군기 격추 7개월 전인 1995년 11월에는 항공자위대의 F-15J 전투기가 앞서 가던 동료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 명중시키는 사건도 벌어졌다. 처음에는 기기 오작동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조종사 실수로 드러났다. 두 사건 초기에 일본은 거짓으로 일관했다. 만약 한국 해군 P-3 초계기가 일본 초계기처럼 행동했다면 격추당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초계기의 상식 밖 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일본 초계기는 한·일 해군 간 소통할 수 있는 통신망 대신 국제상선공통망을 이용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하에 통신을 했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후 일본 정부 각료들이 문제를 확대시켰고, 지난달 28일 13분7초 분량의 일본어판·영문판 영상을 공개해 파문 확산의 기폭제로 사용했다. 지난 1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가세했다.

 

둘째, 일본 초계기는 인도적인 해상 수색 및 구조 작전(SAR Operation) 현장에 사실상 난입해 구조활동을 방해했다. 당시 일본 P-1기의 광개토대왕함 상공 150m 저공 위협비행은 국제적으로 ‘비전문적 행위(unprofessional behavior)’였다. 파도가 바람에 날리는 ‘백파’ 현상이 나타나는 현장에서 조난 선박 식별을 위해 광학영상장비(EOTS)를 작동한 것을 두고, 마치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P-1기에 대해 적대행위를 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SAR 작전의 기본 원칙과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일본 P-1기는 구조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광개토대왕함에 근접비행을 하면서 헬리콥터 탑재 여부 정찰 등 위협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한 것이 확인됐다. 이는 적성국 항공기라면 대공 미사일 격추를 자초하는 행위였다. 공해상에서 빠른 속도로 초계기가 위험수준으로 접근해 머리 위까지 왔는데 미사일 발사 준비조치를 하지 않은 광개토대왕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항해 중인 군함에 대한 저공 접근은 그만큼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개토대왕함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고려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셋째, 일본 해상자위대는 스스로 일본 해군이라고 자처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제4항공군 소속 초계기 기장은 ‘일본 해상자위대(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JMSDF)’가 아닌 “Japan Navy(일본 해군)”라고 수차례 스스로 불렀다. 이는 이미 일본이 정상 군대를 갖고 있다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다. 또 군사적 분쟁지역 확대를 통해 자위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군사력 보유 명분의 확보 차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이 ‘기획도발’을 했다는 정황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꼬투리를 잡을 수 있으면 사사건건 걸고 넘어가겠다는 일본 정부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군의 대응도 단호해야 한다. 일본의 속내가 무엇이든, 국내 정치적 명분을 얻기 위한 도발 대상으로 한국을 정조준한 것이 이번 사건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과 요구에 그치지 말고 필요하다면 정경두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인도적인 작전을 방해한 일본 해상자위대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청해야 한다. 일본 초계기는 한·일 간 20년 가까이 실시해온 ‘수색 및 구조 훈련(SAREX)’을 무력화시켰다. 국제사회에도 일 자위대의 행위가 한·일 간 상호 협력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동북아 및 태평양 안보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