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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한일 ‘초계기’ 해결책은 ‘CUES’···군사력 충돌은 손해

· 日은 치밀한 ‘시나리오’ 도발 VS 韓은 ‘냉·온탕’ 대응

· 지금 상황이 악화되면 ‘한·일 무력 충돌’ 가능성 배제 못해

· 일본의 의도된 무력충돌에 잘못 말려들면 ‘포크랜드 전쟁’ 악몽 재현될수도

 

일본의 도발로 촉발된 한·일 초계기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칫 ‘사소한 불씨’ 하나로 무력충돌로까지 번질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 사진 가운데)이 지난 26일 해군 초계기 조종사 가죽점퍼를 입고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부두에서 출항 준비중인 세종대왕함 전투통제실을 방문해 일본 해상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강력한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25일 초계기가 배치된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를 찾아 지속적 경계 감시활동을 당부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6일 부산의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일본 초계기가 다시 위협비행을 할 경우 군 대응수칙대로 적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정 장관의 해작사 방문은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이 전날 해상자위대 아쓰기 기지를 찾은 데 대한 맞불 차원이다. 아쓰기 기지는 지난달 20일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저공 위협비행을 했던 P-1 초계기가 배치된 곳이다. 이와야 방위상은 이곳에서 “주변 해역의 경계 감시 활동을 착실하게 실시하라”면서 “여러분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바다, 하늘, 영토, 국민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실익없는 군사력 대응

 

그러나 국제 여론은 이와야 방위상의 발언과 정 장관의 발언을 비교해본 후 한국 군부가 ‘호전적’이라고 평가할까 우려스럽다. 정 장관 발언은 ‘무력사용도 불사하라’는 의미로 읽혀지는 반면, 이와야 방위상 발언은 해상 자위대원들에 대한 격려발언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외견상으로는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민들 입장에서는 이와야 방위상 발언의 뒤에 숨은 뜻까지 파악할 수 있지만 ‘제 3자’인 외국인 입장은 다르다.

 

이는 자칫하면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에 이은 계획적인 군사적인 충돌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간 일본은 치밀한 도발로 군사적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살라미’식으로 한국을 자극해 왔다. 교활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 특히 국방부의 대응은 전략적인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을 어느정도 높이는데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를 위기상황까지 몰아부쳐 더 높은 지지율을 얻으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국제 여론전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 자위대의 질주에 대한 경계심도 읽혀진다. 군사적으로는 한국 보다는 일본 입장을 거들어준 사례가 많은 미군조차도 개입을 거부했다.

 

‘말폭탄’ 수준을 넘어선 도발에 응징하라는 한국군 군령·군정권자의 발언의 파장은 실제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사력이 대치하는 현장에서는 사소한 자극 하나가 확대돼 무력 충돌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일본의 의도된 계산인지 모른다.

 

한일간 군사분야 갈등에서 ‘버퍼링’(완충) 역할을 했던 미군이 끼어들 틈도 없이 양측이 무력충돌할 경우 그 파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만큼 이제는 군사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무력 대응은 실익이 없다. ‘전쟁은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손자병법에도 어긋난다. 국내 여론을 의식해 시작한 아르헨티나의 ‘포크랜드 전쟁’ 악몽은 자칫 한반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냉정한 현실은 무력충돌이 벌어지더라도 일본측에 승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이 군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는 배경이다.

 

일본은 해상초계기는 물론, 전투함정, 잠수함 등 거의 모든 해상전력에서 한국에 저만치 앞서 있다. 해상초계기만 살펴봐도 한국 해군은 P-3 16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 해상자위대는 P-3 80여대와 P-1 3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보유대수로 일본에 1대7의 압도적 열세다. 일본이 자체 제작한 신형 P-1은 최대속도, 항속거리, 최대이륙중량 등 모든 면에서 P-3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해군력 비교의 잣대인 함정 총 보유톤수는 일본이 46만t, 한국이 19만t으로 일본이 2.5배 앞선다. 초계기 사건이 발생한 원양에서의 작전이 가능한 대형 함정도 일본이 더 많이 갖고 있다.

 

작전 훈련중인 광개토대왕함. 해군 제공

 

■서태평양 23개국 해군이 배심원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Western Pacific Naval Symposium)의 해상규범인 ‘CUES’(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에 있다.

 

WPNS는 서태평양 지역 해군 간 해양 안보협력과 상호신뢰, 이해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1988년부터 2년 주기로 실시되고 있는 서태평양 역내 유일의 다자간 협의체다. WPNS는 돌발적인 해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해군 함정과 항공기들이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사용할 표준화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CUES는 2014년도에 호주 주도로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Western Pacific Naval Symposium)에서 한·일·미·중·러·싱가포르·뉴질랜드·베트남 등 아태지역 25개 국가들의 만장일치로 비준한 것이다. 이름 그대로 해상위에서 예상치 못한 선박·항공세력간 조우가 있을시 적대적인 행동이나 오해없이 서로 잘 넘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상호 무전방법 무터 대형, 속도까지 매우 상세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이 CUES에 서명했다. 비록 국가간 약속의 성격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를 어기면 국제 여론에 반하는 것이다.

 

12월 22일 일본 방위성은 광개토대왕함의 사격 관제 레이더 사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는 2014년 한일 양국이 모두 서명한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에 관한 강령’(CUES·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광개토대왕함이 ‘승선중인 지휘관(해군 함장)이 적대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을 금한다’는 CUES 2조 8.2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CUES 2조 8.2항은 ‘···공격행위와 유사한 주포·미사일·대공포·사격통제(화기관제)레이더· 어뢰관 또는 다른 무기를 조우한 함선 또는 비행체 방향으로 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와 관련한 과학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억지 주장만을 반복했다.

 

■‘CUES’ 위반한 日 초계기

 

일본 와야 방위상은 또 P-1 초계기가 150m 이하로 저공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에 규정된 것보다 높게 비행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이 기준은 일본이 마음대로 독자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국제법 또는 국내법, CUES나 항공법 등에 따른 것”이라며 “미군이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등도 거의 같은 기준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싱가포로 회담에서도 초계기 특성 및 전술 목적상 저고도 비행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한국 해군 초계기도 (북한 상선 정찰을 위해) 저고도 비행을 하지 않느냐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찰 목적 항공기의 운용은 군사자원의 운용에 관한 부분이고, 주권사항으로 그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한국 국방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은 민간항공기에만 적용되는 것일 뿐, 군용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CUES 2조 8항에서는 ‘해군기(초계기 포함)에 대해 함정 주변에서의 곡예 비행이나 공격 태세 시연도 피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저공비행이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일상적인 관행이라 하더라도 해군 함정에 저공으로 위협적인 근접 정찰비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만큼 국방부는 WPNS 회원국들에 일본 초계기가 CUES를 위반했는 지 여부를 물으면 된다. 일본에도 공동으로 하자고 제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CUES 합의국이니만큼 WPNS에 유권해석을 함께 요청하자고 하는 데 대해 반대할 명분이 없다.

 

정상적인 상식을 지닌 국가라면 일본 초계기가 CUES를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CUES에 합의한 25개국 가운데 일본을 제외한 그 어느 국가도 일본 초계기의 도발적인 정찰활동을 용납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회원국들이 ‘강령 위반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린다 해도, 앞으로 해군 초계기도 일본 함정에 대해 똑같은 비행패턴으로 감시하면 될 일이다.

 

앞으로도 일본 초계기 도발은 일상화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WPNS 회원국에 CUES 문제를 제기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기간만큼은 일본도 국제여론을 의식해 초계기 도발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한기 합참의장(가운데)이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하기 전 식순에 따라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합참의장 지휘서신의 ‘부작용’

 

박한기 합참의장의 지난 26일 ‘지휘서신 1호’는 예하 부대 입장에서는 자칫 무책임한 지시로 해석될 수 있다. 박 의장은 서신에서 최근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상황과 관련, 작전 반응 시간 단축과, 작전현장 가시화를 위한 신속·정확한 상황 보고체계 확립 및 행동화 숙달을 강조했다. 이 지휘서신은 일본 초계기의 저고도 위협비행에 대한 지침으로 보인다.

 

합참은 군의 작전 대응 시간 단축과 신속 정확한 상황 보고체계 확립을 주문했다고 하지만, 합참의장 지휘서신에는 이율배반적인 내용이 숨어있다. 상부에 신속 정확한 상황보고를 하면서 동시에 작전 대응시간을 단축하기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작전 현장의 지휘관이라면 상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북한군 도발에 대해서 ‘선 조치 후 보고’라는 작전 지침이 전군에 내려졌던 것이다.

 

현재 군지휘통제 및 전술통신체계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인근 해상에서 해군 함정과 일본 초계기가 맞대응을 하는 상황이라도 합참 지휘통제실과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동시에 인지하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돼 있다. 해군과 일본 자위대의 대치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합참과 해군작전본부는 지통실에서 상황을 24시간 정밀하게 모니터하면서 먼 바다에서 작전중인 해군 함정으로부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고 외에는 현장 조치를 우선시하도록 해 상부 보고부담을 덜어주는 게 맞다.

 

게다가 합참은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사건이 발생한 이후 대응수칙 매뉴얼을 다단계로 구체화한 터다. 그런만큼 바다위 함정에서는 각 단계마다 상부보고 절차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